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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36화 (236/293)

236화

-어둠의 마력 (1)

‘정신의 신.’

정체불명의 신을, 다니엘은 그렇게 정의했다.

더불어 이 신이야말로.

‘어둠의 마력과 정확하게 대척점에 존재하는 능력을 품은 이였어!’

어둠의 마력의 천적이었다.

부정한 기운을 정상으로 돌리는 힘.

정신의 신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또한 예상할 수 있었다.

정신의 신이 세계수 이전에 대륙을 지키던 첫 신이었으며, 어둠의 마력에 사로잡힌 채 소멸당한 첫 번째 신이라는 사실을.

존재 자체도 모르는 이 이름 모를 신이 자신이 사는 대륙을 수호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니엘은 묘한 감정이 들었다.

감동과 함께 의구심이 생겨났다.

이자는 왜 홀로 이만한 기운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둠의 마력이 퍼져 나가기 전까지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주의점이나 경고를 하기엔.

…혹시.

‘이자가 더 이상 이 마력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져서 어둠의 마력이란 것이 세상에 등장한 게 아닐까?’

이자가 봉인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아닌가.

그런 의구심 말이다.

그렇다면 이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설에나 등장하는 용사와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악을 봉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성녀와 같은 존재일까.

모든 것이 모호한 그 상황 속에서.

다니엘은 이자의 유언을 떠올렸다.

나는 이것을 억누를 자의 등장을 기다리노라. 그것이 내가 가진 새로운 언약이니, 먼 미래에 닿을 인연의 한 자락에게 남길 것 또한 ‘언약’이노라.

언약.

정신의 신이 약속한 보상은 언약이었다.

검의 신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한 가지 남긴 것이다.

다니엘은 이것이 우연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엔, 어둠의 영역이라는 불가해의 공간이 말이 되지 않았다.

부정(不定)으로 방향을 잃고, 지리(地理)가 어두워졌으며, 검흔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정신의 신이라 이름을 붙인 이의 흔적을 찾았다.

더불어 세계수의 묘목까지.

‘세계수가 잃은 묘목의 수가 여섯 개였던가.’

다니엘은 묘한 확신이 들었다.

세계수는 어둠의 영역에 묘목을 잃으면서도 뭔가 수를 썼다.

그 묘목은 신이라 불리는 이들의 힘에 닿아 마지막 하나의 유언을 완성시켰다.

어쩌면….

자신은 일곱 개의 각기 다른 어둠을 이길 힘을 찾게 되지 않을까.

여섯 신의 부정과.

자신이 찾을 부정.

다니엘은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불쾌함마저 들었다.

‘나 역시 거대한 계획의 일부라는 건가?’

자신이 아는 한 이런 계획을 세울 존재는 한 명뿐이었다.

지식의 신.

다니엘은 놈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기에 ‘언약’을 파고들었다.

언약의 힘.

이건 부정의 기운을 정화시키는 유일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렇게 다니엘의 훈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지만 훈련만 이어 갈 수는 없었다.

유령을 지속적으로 소멸시켜야만 했다.

정신의 신의 영역에서 일정 거리 이상으로는 다가오지 않는 유령들이었지만, 그 수가 많아지니 영역이 축소되곤 했으니까.

그렇기에 다니엘은 쉴 틈이 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 언약의 단계는 두 단계가 있어. 하나는 서약(誓約). 맹세한 것을 지키기 위한 의지가 필요해. 이건 어겼을 때의 페널티를 막을 방법이 있어. 하지만 다른 하나인 맹약(盟約)은 아니야. 이건 드래곤의 맹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수준이야. 어기는 즉시 그에 따른 반발이 이어져.’

언령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었다.

다만 언령이 언어 자체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면, 서약과 맹약은 내뱉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의지.

굳건한 의지가 맹세가 되고 약속이 되었다.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맹세의 강도는 높아지고, 그에 따른 제약도 강해졌다.

평생 누군가를 저주하지 않겠다, 라는 맹약을 건다면 그에 준하는 능력을 거머쥐지만.

‘단 한 번이라도 저주를 한다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잃는 건 기본이고 몇 배의 저주마저 자신을 뒤덮을 거야.’

리스크가 컸다.

무척이나.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힘…. 이런 게 있을 줄이야.’

드래곤의 맹약은 드래곤 하트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의 힘은 맹약과는 상관이 없다.

맹약의 여부와 강함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렇기에 드래곤에게 맹약은 곧 제약이었다.

자신이 평생을 짊어질 제약.

정신의 신의 맹약처럼 단 한마디에 힘이 생기고, 단 한마디에 힘을 잃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반발까지 다 떠안아야 하는 그런 것과는 달랐다.

놈들은 그저 지킬 수 있는 말만을 내뱉으니까.

‘그렇기에 다행인 거지. …녀석이 내뱉은 맹약은 지켜질 테니까.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다니엘은 한 친구를 떠올렸다.

친구라고 여기는 건 자신뿐일지도 몰랐다.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안다.

녀석에게서 마야라는 친구를 얻었으며 맹약을 이끌어 내 대륙의 안정을 얻어 냈으니, 무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

그 방대한 힘을 가진 채 홀로 떨어져서 외롭게 지내는 녀석이 너무 안쓰러웠다.

웃음과 우정으로 둘러싸인 자신과는 전혀 다른 존재에 대한 연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관이 없었다.

녀석과 친해지는 것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렸으니까.

실제로 시간이 흐르고, 녀석은 자신의 노력을 알아봐 주었다.

덕분에 외곽이긴 하나 도시에도 들어와 인간들과 더불어 살지 않았던가.

피식.

다니엘은 녀석의 존재를 떠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어쩌면 그 녀석 덕분에 자신의 생존을 친구들이 알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모두 죽었겠지만, 적어도 죽는 순간까지는.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겠지.’

그렇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다니엘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이 맹약을 잘 파고들어야 해.’

정신의 신이 가진 언약의 힘은 그가 가졌던 힘의 일부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았다.

검의 신이 가졌던 힘이 부정의 검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 많은 것 중에 이 언약이라는 것을 남긴 이유는 분명했다.

이게 어둠의 마력에 가장 주효한 능력이기 때문일 터였다.

가정이기는 하지만 확신에 가까운 판단으로 본 정신의 신은 어둠을 오랜 시간 묶어 둔 존재였다.

누구일까.

그런 궁금증조차 오래 가지 못했다.

이 언약을 어떻게 파고들 것인지.

그것에 대한 궁리를 이어 나갔다.

그리고 약간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시적인 맹약도 가능하군.’

기간을 정하는 맹약의 설정도 가능했다.

이를테면.

‘어차피 먹지 못하는 거, 이런 것도 가능하지.’

음식을 먹지 않는 대신 보상을 달라.

그 결과 감각이 예민해졌다.

비단 오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어둠의 마력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이전보다 나아졌다.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나아지니 유령에 대한 감각 또한 나날이 발전해 나갔다.

등장 자체를 감지하지 못했던 이전과는 달리 접근을 알아차리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언약의 활성화.

확실히 다니엘은 마력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다.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설정하여 맹약을 걸면 당연히도 맹약이 진행 중인 일주일 동안 감각이 예민해졌다.

일주일이 지나면 감각이 예전으로 돌아갔다.

예민해진 감각이 둔화되는 건 썩 좋지 못한 경험이었으나.

두 번의 맹약 끝에 다니엘은 감각을 유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맹약이 감각을 발전시키면, 다니엘이 그 감각을 따라잡는 일이 이어졌다.

그 결과.

‘이젠 한시적인 맹약으로는 더 이상 감각이 상승하지도 않아.’

다니엘은 맹약의 결과물을 따라잡는 수준에 이르렀다.

수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수면을 하지 않는 김에 잠을 자지 않을 것을 맹약하니, 사고력의 증폭을 가져왔다.

사고력의 증폭이란 그런 것이다.

한순간,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

생사의 기로에서 검의 궤적이 눈에 보이며, 화살의 촉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일순간의 감각.

사고력의 증폭을 따라잡는 것 역시 몇 회의 맹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력의 감각보다 더 빠르게 적응해 버렸다.

다니엘은 여러 종류를 실험했다.

‘한시적인 영역을 넓힐 수도 있어. 이를테면, 이곳을 벗어날 동안 맹약을 거는 거지.’

정확하게는 제약을 거는 것이다.

자신을 제물 삼아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방법.

‘드루이드의 타투를 적용하거나 마법진을 사용하면, 한 부위나 일정 공간에 맹약을 적용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다니엘은 여러 번의 실험 끝에 한시적인 언약에 따른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다.

그때부턴.

캬- 키아-.

끼이- 끄그극-.

유령들의 접근 반경이 보다 넓어졌다.

놈들은 키메라와는 확실히 달랐다.

유령은 보다 어둠의 마력에 민감했다.

아니, 어둠의 마력에 동화라도 된 듯 그것의 흐름과 동일한 능력을 보였다.

어둠의 마력이 실체화가 되면 딱 이렇지 않을까.

그렇기에 다니엘은 더더욱 언약을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언약을 파고들 때마다.

그리고 그 맹약의 수준에 다다를 때마다 유령을 상대하기가 수월해졌으니까.

그렇게 유령을 상대하며 보낸 시간이 또 몇백 년이 흘렀다.

크으-!

어느 순간부터 영역 너머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스으-.

다니엘의 감각 역시 그쪽으로 향했다.

저릿!

‘뭔가… 위험하다.’

키메라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으며, 유령 또한 버겁지 않게 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체득된 본능은 저 너머의 존재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고민은 짧았다.

결정이 되는 순간 다니엘은 영역을 넘었다.

어둠의 마력이 넘실거리는 공간에서, 유령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지키려는 건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유령을 피한 뒤, 손을 휘저었다.

주변으로 퍼지는 힘이 유령들을 뒤로 날려 보냈다.

공간이 생겨나자 정신을 집중하며.

앞으로 뻗은 손을 아래로 툭, 떨어트렸다.

콰지지지지지지직!

요란한 소음과 함께 검은 번개가 내리쳤다.

캬아-!

비명을 지르는 유령들의 모양새가 연기처럼 흩어진다.

소멸이었다.

평소라면 이쯤 해서 도망갔을 놈들이었으나 이번엔 달랐다.

다니엘의 목적이 저 비명을 내뿜는 존재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놈들의 공세는 끊이질 않았다.

한시적인 언약의 힘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한 가지 언약을 떠올렸다.

이 언약을 떠올리는 순간, 정신의 신이 스스로에게 가했을 언약이 유추가 되었다.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존재를 지우고, 외부에 힘을 사용할 수 없는 대가로 어둠의 마력을 억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면 이 어둠의 마력은 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세계수는 정신의 신을 알고 있어. 오래된 존재이기 때문에? 아니야. …이미 조우한 적이 있거나 연락할 방도가 있는 거야. 그렇다면 힘을 잃었겠지.’

세계수는 존재 자체가 지워졌던 자에게 제 힘을 실어 주었다.

그 순간 언약의 제약이 발동했을 것이다.

‘…….’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식의 신은 일부러 언약의 제약을 발동시켰고, 세계수와 접촉했다.

언약의 주체였으니 반발력을 일정 시간 이길 힘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하나.

세계수의 말이 이 순간 이해가 되었다.

단순히 계승하기 위한 묘목이 아닌, 묘목 자체가 세계수의 일부라는 뜻이.

다니엘은 새로운 세계를 지탱하고 있을 세계수를 떠올렸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다니엘은 세계수에게 또 다른 속셈이 있음을 확신했다.

괘씸하기는 하나 딱히 걱정은 되지 않는다.

세계수라는 태생을, 타락에는 적합하지 않은 그 힘을 믿기 때문이었다.

지식의 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을 드러냈다.

세계수는 미리 준비해 두었다는 듯 지식의 신과 접촉했다.

그리고 남긴 것이다.

언약을….

다니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휘젓는 손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같았고, 주변의 폭음이 절정에 달한 음악과 같았다.

한 걸음도 멈추지 않은 다니엘의 두 발이 멈췄을 때 눈앞에 드러난 장면은.

“……!”

다니엘의 정신을 뒤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니엘! 어서 와!”

다니엘은 신음처럼, 잊어버렸던 얼굴을 떠올렸다.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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