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어둠의 영역 (5)
한 걸음에 바닥이 들썩인다.
두 걸음에 대기가 반응하며.
세 걸음에 하늘이 울었다.
낙뢰(落雷).
그것은 벼락을 닮았다.
캬, 캬아-!
그것의 비명을 알아듣기 위하여 다니엘은 마력의 효용에 심혈을 기울였다.
뱀 머리 거인은 시작에 불과했다.
키메라.
검의 신의 표현은 정확했다.
흑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이 만드는 키메라의 원형이 이곳에 다 모여 있었다.
누군가가 이곳의 괴물들의 초상화를 그려 흑마법사에게 전해 준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하지만 누더기에 가까운 형태로 여러 생물의 신체를 엮은 흑마법사의 키메라와는 달리 이곳의 괴물들은 어떠한 접합 부위도 없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추악하며 포악하고 거부감이 들 뿐이었다.
몇백 년의 전투는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 노도와 같이 몰려드는 괴물들은 버거웠다.
수는 이전보다 적어졌지만, 하나하나가 다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 이상의 신체 능력을 지니고, 대마법사 이상의 마법 방어력을 가진 놈들이었으니까.
어둠의 마력이 아닌 자연적인 마력으로도 쉽지 않은 놈들을.
‘……점점 익숙해져 간다.’
다니엘은 천천히 부수고 없애며 전진했다.
모든 건 다.
‘덕분이지. …검의 신.’
지하에서의 일 덕분이었다.
검의 신이 말한 일검.
그건 일격이었다.
단 한 번의 휘두름.
그것만을 위한 집념과 집중. 그리고 의지.
그것이 만들어 낸 기이한 기운은, 어둠의 마력을 흩어 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자신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방법이었으며 성과였다.
아무래도 마법사인 자신은 모든 걸 이용할 생각만 했었으니까.
어둠의 마력조차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검의 신은 어둠의 마력을 베기를 바랐다.
부정(否定)을 부정(否定)의 검으로.
부정의 기운은 묘했다.
어둠의 마력에 속해 있는 개념이기도 했지만, 모든 걸 부정하는 그것은 외부의 기운을 차단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그뿐이랴.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곳의 환경은 꿈에서조차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역한 공간이 되었다.
더불어 자연의 법칙을 모조리 부정하는 탓에, 먹거나 마시거나 자지 않아도 그에 따른 피로감은 없었다.
꼭 언데드처럼….
그런 부정의 힘을 역이용하여 이곳을 부정한다는 건,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었다.
마법사의 관점에선 도달하기 쉽지 않은 발상.
다니엘은 그 결과물의 흔적을, 검격으로 부서진 대지의 지하에서 발견했다.
어둠의 마력의 농도가 옅어진 장소.
검의 신이 만들어 낸 검흔(劍痕)이었다.
발상의 전환이 어려울 뿐.
이미 발생된 기운을 이용하는 건, 마법사의 특기 중 하나였다.
검으로 시작된 기운은 다니엘에게서 다시 해석되어 마법처럼 펼쳐졌다.
어둠의 마력.
그 본질에 한 발 나아간 셈이었다.
검의 신이 남긴 흔적을 읽으며 마력을 연구했다.
부정(否定)의 기운을 연구하는 건, 다니엘에게도 엄청난 흥미거리였다.
근 천 년 동안 무너졌던 마음이 다시금 흐른 이천 년의 세월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사이 밟은 대지가 얼마이며.
그사이 죽인 적의 수가 얼마인지, 감히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체되었다.”
흥미엔 한계가 생겼고, 성장엔 벽이 돋아났다.
어둠의 마력의 여러 줄기 중 한 가지에 대한 개념을 파고들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니엘은.
콰앙!
서너 마리의 괴물을 찢어 죽인 후에 고개를 돌렸다.
‘다시 돌아가자.’
검의 신이 잠든 장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검의 신은 부정(否定)의 검을 다뤘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부정을 연구한다.’
자신의 부정을 찾기 위해선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이었다.
다니엘의 사고는 어지간한 마법사로서는 따를 수도 없을 정도로 고차원적이었다.
좌표를 기억하는 건 물론, 지형이나 사람에 대한 기억력도 매우 뛰어났다.
그렇기에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검의 신의 무덤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애당초 무덤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였기 때문에 방향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부정(不定)의 개념이 이를 방해했다.
모든 걸, 뒤흔들어 놓았으니까.
이건 지형과 사물에 관련된 문제였다.
존재와 개념을 부정한 부정(否定)과.
거리와 사물, 지형에 따른 부정(不定).
때문에 다니엘은 지독한 전투를 겪어야 했다.
새로운 적과….
유령(Ghost).
그것과 비슷한 형태로, 자신보다 더 어둠의 마력에 예민하면서도 능수능란한 놈들이 적으로 등장했다.
짙은 안개와 함께.
스스스-!
놈들의 출현은 급작스러웠다.
마치 암살자들의 기예, 은신을 닮았으며.
그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은 채로 마력으로도 감지되지 않았기에.
파앗!
“……!”
다니엘은 어깨에 치명상을 당하고서야 놈들을 발견했다.
쭉 찢어진 안개와 같은 놈들을.
낙뢰를 사용하고, 염동을 사용해도 놈들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부정(否定)의 기운을 사용하는 건 검의 신이나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유령들 역시 그와 비슷한 형태의 기운을 사용하고 있었고, 기운의 상쇄로 인해 성과는 미미했다.
덕분에 다니엘은 몇천 년 만에 다시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
유령은 집요했다.
어지간한 피해를 입으면 아군을 부르기도 했으며, 형체가 없다는 이점을 십분 활용해 지면조차 안심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마력이 가장 큰 문제야. 놈의 존재감을 읽어야만 해!’
감지되지 않는 마력으로 인한 타격이 가장 컸다.
접근을 알아차릴 수가 없어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이 이어졌다.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감각은 둔화되었다.
과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언제 끝날지 모를 전투를 이어가며 무뎌졌던 감정의 나날을 답습하듯 이어 갔다.
다니엘은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유령이 나타날 땐 신경질적으로 무차별한 공격을 퍼부었고, 놈들을 소멸시켰을 땐 광소(狂笑)를 터트렸다.
그런가 하면 빠르게 무미건조한 모습으로 안전지대를 찾아 헤맬 따름이었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마모되다 못해 바닥만 드러내고 있는 정신은 유령에게만 쏠려 있었다.
덕분에 유령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뿐이었다.
키메라를 압도하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생을 유지하는 것에만 국한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
다니엘은 입조차 열지 않는 수십 년을 버티며 살아왔다.
그리고 무너져 내렸다.
마법사의 능력은 마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그보다 우선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 능력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정신이었다.
정신력.
남들보다 우위에 선 모든 이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모든 걸 정신으로만 계산하고 다루는 마법사에게는 절대적인 개념이기도 했다.
그게 무너져 내리니 다니엘의 신형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험하기만 했다.
절벽 위에 서서 비틀거리는 사람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무너져 내린다.
그 누구보다 다니엘 자신이 그 사실을 직감했으나.
‘……이젠….’
모든 걸 놓고 싶은 마음이 물씬 풍겼다.
그때였다.
득달같이 달려들고 사람의 정신을 무너트리는 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유령들의 접근이 뚝 끊긴 것은.
그곳의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다.
사방이 보이는 반구.
어둠의 마력이 아주 미약하게 옅어진 그곳은 다니엘에겐 익숙한 장소와 닮아 있었다.
검의 신의 무덤.
검흔의 장소와.
* * *
세상엔 여러 신이 존재하곤 했다.
희망을, 복수를, 우정을, 질시를, 사랑을, 증오를, 감사를, 원망을….
생명이 원하는 모든 감정은 하나의 구체적인 형체를 이루고, 생명은 그 형체에 ‘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어떤 신은 희망으로 불리고, 어떤 신은 절망으로 불린다.
그렇기에 범람한 신의 개념은 수 세기에 걸쳐 정립되고 규정되면서 하나의 신앙이 된다.
개념조차 단수가 아닌 복수로 변한다.
사랑과 우정과 희망의 신, 누구누구처럼.
다니엘은 딱 그 신을 본 느낌이었다.
모호한 감정의 집합체.
이런 종교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는 다니엘이었기에 딱히 신비하다고 여기지 못했던 이가 돌연 등장했다.
신과 같지 않은 모양새로.
검의 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이름 모를 신 역시 죽음을 맞이했다.
검의 신의 검이 키메라에게 상성이었던 것처럼, 이 이름 모를 신의 능력은 유령에게 상성이었다.
이 대목에서 다니엘은 의구심을 품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여러 신은 하나같이 사라졌다.
대륙 전역에 마력을 퍼트리고 기감을 읽던 세계수의 발언이었으니 정확할 터.
검의 신의 유해를 어둠의 영역에서 발견한 이후, 다니엘은 그 말을 더욱 신봉하게 되었다.
모든 신은 어둠의 영역에 발을 들이거나 죽었다.
혹은 전혀 다른 세계로 도주했거나.
검의 신은 자신을 이기기 위한 노력의 방편으로 어둠의 영역을 택했다.
이곳을 베고자 들어왔으며, 실제로 베는 성과를 보였다.
그런 것치고는 한계에 다다라 죽임을 당했지만, 족히 천 년 전에나 만든 흔적이 아직까지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는 점에서 검의 신의 도전은 성공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에게 부족한 건, 그의 깨달음을 지켜 줄 든든한 아군이 아니었을까.
이 신도 마찬가지다.
홀로 외딴곳에서 죽은 모습이 굉장히 씁쓸하게만 보였다.
정신의 능력.
그것을 한계까지 갈고 닦은 그것은 이곳의 또 다른 부정(否定)을 검의 신과는 다른 방법으로 무너트렸다.
한 번의 결과는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을지언정, 두 번의 결과는 우연으로 치부하기가 어렵다.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는 모든 부정의 집합체인 어둠의 마력조차 한계는 있다.
다니엘은 희망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메마른 감정이 조금은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여긴… 누구의 것이지?’
정체불명의 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그곳을 살피던 다니엘은 묘한 흔적을 추가로 발견했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웅웅.
은은한 진동이 느껴졌다.
마력에 민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다니엘조차 겨우 느낄 정도의 미약한 진동이었다.
다니엘은 이 진동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공명……. 무엇과?’
공명(共鳴).
자신의 속의 무언가가 이곳의 무언가와 공명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더욱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고,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묘목.’
다름 아닌 세계수의 묘목.
그것의 흔적이 이곳의 공간에 녹아 있었다.
비록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는 하나, 이곳은 내 존재완 다르며 나의 하위 개념의 관람자들이 떠도는 공간이니….
그리고 그곳에 돌연 글씨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사람의 상체 크기의 그것을 보는 순간 다니엘의 머릿속엔 그것의 형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티팩트라며 자신의 최후를 기록했던 검의 신의 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보다 원형에 가까운 물건.
‘세계수의 잎사귀.’
이로써 분명해졌다.
세계수가 관여했다.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게 해가 되지 않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긴 세월을 버텨야 한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엔 진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세계수와 지식의 신.
‘…뭘 계획하고 있는 거지?’
두 신의 계획이 심각하리만큼 궁금해졌다.
다니엘은 열쇠를 꺼내고 싶었다.
지식의 신이 보낸 대도서관의 열쇠.
하지만 이곳은 모든 마법이 통하지 않는 장소였다.
기존의 마력이라면 모를까, 체계 자체가 다른 어둠의 마력으로는 아공간을 열 수가 없었다.
다니엘은 그게 너무 아쉬웠다.
다른 건 몰라도 열쇠만큼은 도움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아공간이 아니었다.
또 다른 신의 전언.
이 신은 이곳에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것에 관심을 쏟았다.
때문에.
몇 년 전에 잠들어 버린 한 존재가 꿈틀거리는 것을, 다니엘은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