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34화 (234/293)

234화

-어둠의 영역 (4)

* * *

한 자루의 검에 의지를 담았노라.

세상 그 어디에도 벨 수 없는 것은 없다고 자부했던 검이 한 차례 꺾였다.

심각한 좌절과 낙담이 내 몸을 휩쓸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한 자루의 검은 여전히 내게 있어서 유일한 동반자이자 함께하는 구도자였다.

평생을 함께해 온 이 낡은 검이, 세상엔 절세의 보검이자 신물이라 알려져 있다는 게 우스울 따름이다.

아티팩트조차 되지 못하는 검.

그저 단단하기만 한, 나의 마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한 검이었지만 평생을 함께하며 나의 반신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도전한다.

날 꺾은 그조차 두고 볼 뿐인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 베고 또 베리라.

모든 걸 베고 난 뒤엔.

그의 ‘마법’조차 벨 수 있겠지.

* * *

품에서 떨어진 일기장은 그의 마력을 머금고 있어 이곳의 영향을 조금 더디게 받고 있었다.

오히려 첫 장이 아닌 뒷장이 영향을 받아 빛바래져 있었다.

푸석거리는 종이는 아티팩트였다는 사실만 증명할 정도로 미약한 마력만이 남아 깜빡거렸다.

‘세계수의 잎사귀다.’

다니엘은 종이의 재질을 알아차렸다.

보통의 아티팩트로는 어림도 없는 이곳에서도 조금은 버티고 있는 이것은 무려 세계수의 잎사귀로 만든 물건이었다.

다니엘은 입술을 씹었다.

“…내가 당신을 이곳으로 이끌었나요?”

함께했으면 좋았을 것을.

검의 신은 든든한 전력이었다.

순간순간의 깨달음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자신은 검의 신보다 더 이전에 목숨을 잃었을 터였다.

상성만 놓고 보면 검을 쓰는 그가 더 자신보다 나았다.

어둠의 영역, 이곳의 마력으로부터는.

검의 신은 스스로의 몸을 그릇으로 삼았다.

마력을 정제하여 쌓고 또 쌓아 신의 힘을 손에 넣은 인물이었다.

압축할 대로 압축한 마력의 양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많았다.

더불어 그의 검은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파괴적이었으며, 압도적일 뿐만 아니라 거대했다.

검의 신.

과연 그는 그런 칭호를 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다니엘 역시 그와의 전투는 인상적이었다.

어느 날 찾아와 대련을 청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상체 아래로는 형태만 남은, 불타 버린 잔해의 모습이 아닌 온전할 때의 그가.

소드 마스터인 로이는 검의 신을 보고 전설의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가 저러할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로지 그만이 자신과 검의 신의 대결을 참관했다.

검의 신의 허락하에.

그만큼 로이의 재능은 뛰어났다.

당장의 우세를 점하고 있는 핸리보다도 더.

‘……다들 죽었겠지?’

다니엘은 친구들의 얼굴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시간의 축으로 인해 외부와 이곳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은 낭보였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의 문제였다.

벌써 근 천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품은 어둠의 마력의 양이 많아질 때마다 시간의 축 역시 강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를 증명하거나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어둠의 영역의 경계면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이 되질 않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천 년이다.

세계수와 약속했던 시기를 훌쩍 지났으며, 친우들의 수명이 다 다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곳의 시간 흐름이 두 배 이상 빠르더라도.

셋 정도를 제외하곤 모조리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묻혔을 터였다.

다니엘은 새삼 그 사실에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어둠의 마력!’

감성조차 메마르게 만드는 이 기운은, 다니엘에게서 눈물을 빼앗아 갔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되찾은 다니엘이 일기장을 읽었다.

검의 신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 * *

이곳은 특별하다.

단련에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공간을 본 적이 없었다.

오감을 무너트리는 힘에, 정신까지 앗아갈 정도의 마력이 쉴 틈 없이 밀려든다.

좋다, 좋아.

여차하면 들어온 것처럼 뒤로 돌아가 벽을 베고 후퇴를 할 수도 있겠지.

아주 작은 확신이 든다.

이곳이라면….

마법의 신보다 내가 더 나을 거란 확신이.

그렇기에 이 마력의 정제에 힘을 쓴다.

검으로 베고 자를 수는 있어도 다시 합류하는 마력만큼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으니까.

안으로 들어가 볼까?

잠시 고민해야 했다.

그건 정말로 잠시였다.

이 안으로 들어온 목적은 고작해야 이 정도 성과로는 만족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벗을 손에 쥐고, 검을 휘두른다.

달려들던 검고 탁한 무언가가 툭 하니 잘리며 내 손을 더럽혔다.

그래도 좋으리.

베고, 또 베다 보면.

언제고 이 기운의 주인조차 벨 수 있지 않겠는가.

* * *

아직까진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느낀 것을, 그도 느꼈다.

이곳은 마법보단 검이 적합한 공간이었다.

검이 더 상성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능력이었다.

자신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장소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파했으니까.

하지만 덕분에 한 가지를 확신했다.

‘이곳은, 기존의 마법 체계가 더 나은 공간이다.’

기존의 마법 체계.

마력을 내부에 가두며, 하나의 서클을 만들어 공명하는 방식으로.

‘외부의 마력을 사용하는 난 관심조차 두지 않은 옛 방법이었지.’

다니엘에게는 그저 입문에 불과한 이론이 되었다.

다니엘 이후 모든 마법사는 서클보단 외부의 마력을 끌어 사용하는 방식을 선호했고.

다니엘은 이에 호응하듯 여러 방식을 선보여 여러 마법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불과 몇 년까지만.

꽤 이름을 날리는 마법사들조차 다니엘의 방법을 한계가 명확한 방식이라고 설명했고.

다니엘 역시 이에 동감했다.

재능.

대기의 마력을 끌어와 사용하는 방식은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대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자나 적용이 가능할까, 그 이하의 재능을 지닌 자에게 다니엘의 방식은 신화 속 용사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호응을 받고 선호를 받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서클.

그걸 이룩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대기의 마력을 끌어다 자신의 몸에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서클을 만드는 방식에 있어선 다니엘의 이론은 천금을 줘도 아깝지 않은 지식이라는 소리였다.

때문에 마법사들은 마법에 입문할 땐 다니엘의 방식을, 그리고 마력을 쌓는 순간 기존의 방식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마도 시대의 포문을 열게 되었다.

물론, 그 찬란함은 이십 년을 채 유지하지 못했지만….

서클의 운용 방식.

그건 검사의 오러와도 어느 정도 닮은 구석이 있었다.

마력을 쌓아 두는 방식.

자신의 몸이 하나의 아티팩트가 되고, 마력의 그릇이 되는 방식.

자신에겐 하등 쓸모가 없는 방식이었지만, 외부의 마력을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이곳에선 켜켜이 쌓은 마력이야말로 힘이라는 사실을.

‘아까워….’

다니엘은 검의 신을 통해 확신했다.

이미 짐작해서 알고 있는 내용이긴 했지만….

하지만 자신이 뱀 머리의 거인을 만난 장소에서 멀지 않은 지하에, 검의 신이 시체로 남아 있었다.

실패자.

바스러진 일기장의 일부가 허무하게 넘어가고 글자가 다시 나타난 건, 그런 단어 이후였다.

다니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이야기가 꼭 자신의 것만 같아서.

* * *

키메라다.

사자의 얼굴, 독수리의 날개, 새의 발톱.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형태의 그것은 돌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그 거대한 놈의 접근을, 나는 상당히 늦게야 알아차렸다.

사신의 낫과 같은 발톱에 담긴 힘은, 평소의 반밖에 남지 않은 여력으로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검은 형태의 놈은 영악했다.

날개라는 이점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 거대한 동체를 자유자재로 흔들며 날 공격했다.

더불어 지상의 거머리 같은 놈들까지도 놈의 지시를 받는 건지, 상당히 날 귀찮게 만들었다.

약간의 깨달음.

그것을 녹일 만한 공간만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쉬움이 밀려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힘을 쓰고, 다시 ‘채우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수밖에.

일검을 준비한다.

처음 검을 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은 일검이었다.

수직 내려치기.

지극히 단순한 공격이지만, 더없이 효율적인 공격.

비록 마법의 신의 수많은 마법엔 가로막히고 말았지만.

이곳의 깨달음을 녹인다면, 능히 이번엔 그 마법조차 꿰뚫을 수 있으리.

저 괴물은 강하고 빠르며 영악했지만, 마법의 신만큼 강하거나 빠르고 노련하지 않았다.

당연히 베고, ‘유지’하리라.

* * *

“……유지?”

다니엘의 눈이 검의 신에게로 향했다.

고개를 떨구며 힘없이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지만, 당장이라도 눈을 뜨며 검을 내지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일기에서 그런 느낌이 전해져 왔다.

무슨 깨달음일까.

다니엘은 그 사실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렇기에 재촉하여 일기를 넘겼다.

바스러지는 부분이 많아졌다.

드문드문 떠오른 문자는 문장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족했다.

그나마 여러 단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여 유추할 따름이었다.

“……흡수.”

‘흡수라. 결국 나와 같은 깨달음인 거잖아.’

다니엘이 마른 입술을 축였다.

검의 신은 자신보다 더 나아간 게 틀림이 없었다.

흡수하여 쌓는 방법이라면, 검의 신이 자신보다 뛰어났으니까.

상성조차 우위에 선 이가 자신조차 이겨 낸 곳에서 쓰러졌다?

‘아니야. 뭔가가 더 있어.’

다니엘은 일기를 읽었다.

* * *

살기를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죽지 않기를 바란다.

‘놈’은 너무나 강했다.

터무니없이.

지독하리만큼.

신이라 불려도 좋을 존재는 우리가 아니었다.

놈.

치명상을 입은 나의 도주를 가만히 보고만 있던, 그놈이 바로 신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의 존재였다.

단번에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한 굴욕과 좌절을 맛보게 할 뒤틀린 심산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 난 죽겠구나.

확정된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죽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에게 이걸 전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마지막을 적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마법의 신, 다니엘.

그대는 천적과 같은 이곳의 능력을 이기고 내게 다다를 수 있겠지.

아마도 난 그대가 이 일기를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더 바라는 것은, 내 말과 생각을 기록하는 이 아티팩트가 제 기능을 상실하기 전에 내게 다다르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읽었다면… 연이 닿았던 거겠지.

그렇다면 다행이다.

내가 전할, ‘검’을 그대가 볼 수 있어서….

그걸 바라며 내가 벤 대지에 몸을 숨긴다.

이 또한 내가 전할 수 있는 한 가지의 가르침이겠지.

검을 갈고 닦아라.

균열이 간 내 검은 버리고, 그대만의 검을 갖춰라.

가능한 한 이곳의 기운을 많이 머금은, ‘부정(否定)’의 검을…….

검이 익숙지 않다면…….

……창도, 좋겠지.

아무래도…… 창의 형태가…… 마법엔… 흔하……니.

* * *

일기장이 끝났다.

손아귀에서 바스러지는 일기장은 더 이상의 열람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허무하게 사라졌다.

더불어.

텅, 상체에 기대어져 있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스러진 건 일기장만이 아니었다.

검의 신.

하나의 검을 들고 세상을 오시하며 신이라는 칭호까지 받았던 이의 남은 신체 역시 탁한 흙으로 변해 사라졌다.

순간의 변화였다.

부정의 검.

다니엘은 검의 신의 말을 곱씹었다.

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그가 자신에게는 익숙지 않은 물건을 집어 들었다.

검의 신이 사용하던 검이었다.

“……음.”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일검’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파스스.

그가 남긴 모든 것들이 그와 함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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