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32화 (232/293)

232화

-어둠의 영역 (2)

이십 년.

과거를 되짚는 짧은 여유를 되찾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염동에 익숙해졌고.

악의란 감정의 파악에 익숙해져서 놈들의 접근을 미리 알게 된 덕분에 얻게 된 여유였다.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겠어.’

다행인 것은 어둠의 영역은 외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만한 시간이었다.

오 일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시간이 무려 이십 년이나 주어진 셈.

‘다 잘 있겠지.’

계산은 확실했다.

지식의 신이 건네준 지식과 자신의 능력.

거기에 세계수가 지닌 능력을 총동원하여 세운 계획이었다.

자신이 어둠의 영역의 진출만 틀어막고, 통로의 흐름을 역으로 꼬아 두기만 하면 계획은 끝이었다.

하지만.

어둠의 영역의 진출은 틀어막을 수 있었지만, 통로의 흐름을 역으로 꼬아 두는 건 무리였다.

영역에서 나가지 못했기에.

나갈 수 없었기에.

찰나의 욕심과 오만.

그 결과가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만들어 버렸다.

살기 위해 몸을 비틀어야 했고, 바닥을 굴러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 도주를 감행해야 했고, 몸을 숨겨야 했다.

처절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어딘지 모르겠어.’

마력이 충분했을 땐 이곳의 위치를 한순간에 알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둠의 마력은 오로지 파괴만을 위한 것이고, 탐색이나 감지 따위의 형태에 부합하는 점은 단 한 가지도 없었으니까.

어둠의 영역 속으로 사라진 지역은 이전의 특성이 남아 있지 않는 기이한 장소로 변화했다.

황금빛 곡물이 풍성히 자라는 비옥한 토지는 온데간데없고, 쩍쩍 갈라진 대지의 흉터는 깊고 깊어 지옥의 무저갱처럼 보일 정도의 흉물스러운 오지가 되어 버렸다.

과거의 흔적이 남은 장소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지형이나 자연이 변화했다는 것만 인지한 상태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지옥의 형상이 이러할까.

자연은 처참할 정도였으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다니엘의 음성은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지쳐 있었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를 힘겹게 한 건.

‘……공략, 할 수는 있는 건가?’

이곳에 대한 막연함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근원을 파악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리만큼, 자신은 정신없이 휘둘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것뿐이었다.

‘시간의 축. 옛날에 얻은 고대의 아티팩트. 아티팩트로만 존재했다면 쓸모가 없었겠지만… 몇 년이나 파고들어서 그 흐름을 파악해 놓은 게 도움이 되고 있어.’

다니엘의 탐구심은 고대의 아티팩트조차 분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단순히 활용법만 연구하기엔 너무도 지고한 수준이었으니까.

덕분이었다.

이곳은 기존의 마력을 거부한다.

아티팩트조차 효용성 없는 돌멩이로 변질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시간의 축은 사용이 가능해.’

유일하게 시간의 축만큼은 어둠의 마력으로도 적용이 가능했다.

‘…아직까진 별 차이는 아닐 거야. 하지만 어둠의 마력을 다루는 수준이 높아지고 있으니, 곧 상당한 차이를 보이겠지.’

시간의 흐름이 다를 것이다.

자신과 자신 외의 모든 것들은.

자신의 이십 년은 외부의 십사 년 정도일 터였다.

그것도 어둠의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성장할수록 효율은 극대화될 터였다.

이상하게도 어둠의 마력과 시간의 축은 궁합이 좋았다.

그렇기에.

다니엘도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이십 년.

그게 외부에선 불과 몇 시간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어둠의 영역은 외부에 관심을 끊은 게 아니었다.

아직 반응하기도 전이란 소리였다.

세계수가 정상적으로 새로운 터전을 생성하고 적응하며.

유토피아의 모든 생명체를 새로운 터전으로 몰래 옮겼을 그때는.

“…….”

싸늘하게 식어 버린 눈동자엔 어떠한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달려드는 괴물의 목을 비틀 뿐이었다.

죽이고.

죽인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죽어 버린 것은 적뿐만이 아니었다.

마음.

그리고 희망.

“…….”

무려 사백 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야.

세계수는 통로를 열었다.

어둠의 영역이 기다리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꺼져만 가던 불꽃이 갑작스러운 바람에 반응하듯 흔들렸다.

퍼뜩 정신을 차린 다니엘의 눈이 사나워졌다.

외부의 흐름은 인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놈이 외부로 눈길을 돌렸다.

이 긴 세월 동안 버티고 버틴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제야 어둠의 마력은 총력을 다하고 있었다.

어둠의 마력이 요동치는 게 느껴진다.

다니엘은 그 변화에 정신을 차렸다.

지독한 회의감에 휩쓸렸던 다니엘에게는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다니엘은 사백 년 동안의 노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어둠의 마력이 펼쳐지는 것을 자신의 장악력으로 억제했다.

놈의 시선이 닿는 진로에 자신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다니엘은 몰랐었다.

자신의 시간의 축.

그것보다 더한 시간의 비틀림이 이 어둠의 영역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어둠의 마력을 막아 내면서, 다니엘도 이 사실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닌, 무려 사백 년의 시간이었으니까.

어둠의 영역의 시간의 비틀림과 더불어 자신의 시간의 축의 효력이 맞물려 외부의 며칠을 사백 년이란 시간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하지만 덕분에.

‘……기회를, ……잡았어.’

어둠의 마력의 행사에 방해를 할 만한 힘을 보유하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 * *

모두는 통로를 넘었다.

아니, 세계수는 다니엘의 예상보다 더한 수를 써냈다.

통로를 자신의 정령력과 동화시켜, 수많은 정령들을 퍼트려 남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통로의 영역에 속하게 만들었다.

인위적으로 벌린 거대한 통로.

그것은 하루아침에 유토피아라는 거대 도시의 모든 인원을 삼켜 버렸다.

하지만 몇몇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이런 상황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자신들의 왕이 안전히 돌아와 주기를 바라며, 기도로 간절히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할 따름이었다.

“……다니엘.”

안나는 하늘을 보았다.

그녀는 이변을 알아차린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분명히 어제까지도 보던 하늘이었다.

나무도, 대지도.

모든 것이 어제와 동일했다.

하지만 아니다.

다르다.

육안으로 보기엔 전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마력이 달라졌어.’

순도가 옅어졌다고 해야 할까.

마력 자체는 깨끗해졌지만 순도는 낮아졌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마력보다는 정령력에 가까운 형태로 변해 버렸다.

“넌… 왜 여기에 없는 거야?”

세상이 변했다.

그건 분명히 느껴졌다.

변한 것 없이 모두가 일제히 다른 장소로 넘어온 상황에서.

그만이 없었다.

하늘을 보던 안나의 눈에 기어이 눈물이 맺혔다.

또르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가만히 둔 채로, 친구이자 자신이 사모하는 사람을 떠올린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부스럭.

안나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돌렸다.

“…….”

어두운 기색의 남자가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로이.”

안나가 로이의 이름을 불렀다.

“잠이 안 와.”

한 자루의 검을 든 채로, 로이는 공터로 나왔다.

“나도… 마찬가지야.”

안나가 망토를 만지작거렸다.

“이곳…. 녀석이 말하던 그 장소 맞지?”

다니엘의 계획을 모든 친구들은 알고 있었다.

새로운 터전으로 도주하겠다는 발칙한 계획.

하지만 반갑기 그지없는 계획엔 모두가 동의를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변할 줄은 몰랐는데….”

로이는 흐름을 느끼자마자 도시의 외곽으로 달려 나갔다.

소드 마스터인 그는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벽을 마주했다.

예전엔 없던 벽이었다.

이보다 더 먼 곳을 가서야 만나는 어둠의 영역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검조차 받아 낸 벽을 끝으로.

“세상이 잘린 듯 떨어져 있더라.”

세상은 사라졌다.

유독 맥주가 맛있었던 코쿤 지방엔 로이가 즐겨 찾는 단골 술집이 있었다.

어둠의 영역에 먹힌 후로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남은 코쿤 맥주는 금값보다 비싸졌고 드워프를 위해 남겨 두었다.

자신은 맛도 보지 못한 시간이 얼마나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로 흘렀다.

그렇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어둠의 영역은 모든 땅을 죽음의 땅으로 만든다.

생명체는 살 수 없는 땅이다.

추억의 코쿤 맥주는 더 이상 볼 수 없으며.

뚝 하니 떼어다가 다른 곳에 가둬 둔 것 같은 모양새로 인해 더 이상 영토의 수복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원래 그런 계획이었잖아.”

“알아. 알아…….”

로이의 음성이 잠겼다.

부모의 묘도 저 잘려 나간 지역 너머에 있었다.

이 사태를 마무리 지으면 언제고 넘어가서 꽃 한 송이와 함께 그간의 사건을 끊임없이 읊겠다는 다짐도 쓸모가 없어졌다.

후우, 루이가 긴 숨을 내쉬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가운데, 로이가 고개를 돌려 안나를 보았다.

“그래서 결심했어.”

“결심?”

“어.”

단호한 눈빛의 로이를 보는 순간 안나는 묘한 불길함을 느꼈다.

“지식의 신이 말한 조건. 내가 할 거야.”

“조건이라면… 설마.”

“부탁이 있어, 안나.”

“너… 이럴 생각으로 날 찾아온 거였어.”

로이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니엘이 돌아오기 전까지. ‘성녀’가 예지했던 걸, 네가 꼭 준비해 줬으면 해.”

“…….”

“안나. 이건 우리의 싸움이야. 예지의 결말이 그런 거라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니엘을 지킬 거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안나가 침음하듯 말했다.

그녀의 마음은 로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제이는?”

안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림자가 일렁이며 일어났다.

음울한 기색의, 어깨를 축 늘어트린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 사신이라 불리는 제이였다.

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워낙 다니엘의 그림자를 자청했기 때문이었다.

안나와 로이를 비롯한 몇몇의 인원들.

다니엘의 친우 중에서도 최강자라 불리는 이들만이 제이의 기척을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감을 숨길 여력조차 없었다.

하기야 지금뿐일까.

다니엘이 자신을 두고 홀로 어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고 할 때부터 그의 낙담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세계가 통째로 어디론가 이전되었다는 것을 느낀 직후엔 기척을 숨길 여력조차 없어 보였다.

음울한 기색의 하얗게 탈색된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

“제이. 나도 너무 슬퍼. 그리고 힘들어…. 하지만 다니엘의 말을 기억해야지. 금방 돌아온다고 했어. 그가 언제 자신의 말을 어긴 적이 있어?”

제이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나가 제이에게 다가가 폭 안아 주었다.

토닥이는 손길에 제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울음을 참는 듯한 모습으로.

“…로이의 말대로 하자.”

안나가 울음기가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로이는 ‘만약’을 대비할 터였다.

자신은 ‘예지’를 대비할 터였다.

제이 역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때였다.

그가 무엇을 준비할지 지금 이 상황에서 결정 난 것은 없다.

다들 같은 마음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일 뿐.

자신들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최후의 나라의 왕이자 도시의 영주이며, 세상 최고의 능력자이기도 한 자신의 친구를 위해서.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딸깍.

안나를 비롯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이를 앙다물고 후일을 기약할 때.

그중 누군가는 이 상황을 기회로 여겼다.

감히 올려다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높은 이의 빈자리가 너무도 찬란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품에서 꺼낸 작은 병의 마개를 딴 이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서슬 퍼렇게 빛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