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어둠의 영역(1)
‘일부러 먹혔어.’
세계수는 말했다.
묘목이란 또 다른 자신이라고.
분명히 세계수의 시작과 본질은 나무라는 식물이었다.
하지만 세계수는 나무의 틀에 국한되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의지에 따라 태고의 환경을 조성하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의지를 가진 나무가.
묘목이 집어삼켜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의아했었는데.
‘……내게 말하지 않은 내용이 있구나.’
이제 보니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였다.
여력이 없어진 건 사실이나, 나중에 몇 개는 일부러 어둠이란 놈의 아가리에 먹이처럼 던져 준 게 틀림이 없었다.
이때를 위해서.
세계수 혼자 이를 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대도서관의 열쇠를 맡기고, 여러 방법을 서술해 놓은 지식의 신.
그의 생각이 틀림이 없었다.
‘무슨 생각인 거냐.’
멍한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다니엘은 지식의 신의 의중이 궁금해졌다.
자신과 대화를 나눌 땐 이렇다 할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막상 그 후로는 여러 일을 계획했다.
자신도 모르게.
‘어쩌면… 다른 신들이 전부 모습을 감춘 게 지식의 신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다니엘은 고개를 털었다.
지금은 그런 잡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미약한 불꽃.
그것이 자신의 내부에 똬리를 틀었으니.
‘동화. 그것만큼은 이곳의 마력도 변하지 않았어.’
그것을 기틀 삼아 이곳의 마력을 흡수해야 할 때였다.
대륙 전역에 퍼져 있던 마력을 집어삼킨 어둠의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어둠의 힘은 마력을 감염 혹은 동화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는 이미 경험했으며, 확인한바.
마력의 성질 중 하나인 동화를 이용하여 자신이 품게 된 어둠의 마력을 사용하고자 했다.
‘해야 해….’
다니엘은 찰나의 순간 집중했다.
무수한 전투를 겪으며 자신은 이미 한 영역을 차지한 강자가 되었다.
괴물이 된 몬스터였지만 나름의 본능은 살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곳은 또 다른 환경일 뿐이었다.
자신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환경.
어둠의 마력을 듬뿍 받아들여 변이된 놈들은 이곳에 적응을 했다.
먹이를 먹고, 독을 머금거나 식인식물이 된 풀을 뜯고.
생명체에 대한 적의가 남다르고.
폭력이 우선시된다는 것만 제외하면 대부분의 패턴은 새로이 생긴 본능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그 본능 중의 하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지 않은가.
강자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묘목의 기운에 닿았다.
묘목은 예전처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았다.
말라 가는 뿌리였으나 지상에서 몸을 띄워 자신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기껏 잡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
봉인되다시피 잠들어 버린 마야의 입이 다물어진 이후.
자신은 줄곧 혼자였다.
외로운 사투에 외로운 생존이었다.
세계수가 전해 준 작은 기력은 자신의 속을 새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모든 걸 변화시킨다.
자신의 마력도.
마력을 다루는 방법도.
‘그래야만… 승산이 있어.’
* * *
저벅.
말라붙은 대지를 밟는 발소리가 크게 울렸다.
“…….”
높게 솟은 절벽을 보는 눈빛은 예전의 총명함을 잃은 듯 탁하게 빛났다.
어둠의 마력을 머금은 후, 다니엘은 자신의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새로운 마력.
그것을 탐닉하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마법사였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한 살 아이보다도 많은 종이었으니까.
어둠이라는 부정한 기운을 몸에 담고 그 변화에 저항하며 기운을 뜯어 파악하는 것은 놀랍도록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다니엘의 상황과는 맞지 않았다.
‘모두 도주했을까?’
친우는 물론 자신이 지키고자 한 생명들이 떠올랐다.
외부에 시선을 아무리 돌려도 느껴지는 건 없었다.
어둠의 마력을 흡수한 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난 것 같지만, 아직도 파악해야 할 내용이 가득했으니까.
도박은 성공했다.
외부의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내부의 감각은 잘만 느껴졌다.
단절의 결계는 세계수의 근처에 있는 게 아니었다.
어둠의 영역의 경계.
그건 진실로 단절의 결계라 불릴 만했다.
‘어떤 것도 외부로. 어떤 것도 내부로 흘러 들어오지 않아.’
그렇기에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이었다.
육안이나 마력으로.
그 어떠한 탐지도 통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어둠의 마력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어둠에 대해 알아낸 건 없었지만,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아니다.
심지어 어둠의 마력을 품게 되었기에, 다니엘은 이곳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다변화마저 규칙을 찾아낼 정도였으니, 그간 이곳에 적응한 셈이었다.
‘그렇기에 느껴져. 내 선택은 옳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어둠은 세계수를 뒤쫓지 못하고 있어.’
외부로의 움직임이 지극히 둔화되었다.
어둠의 마력이 퍼져 있는 지역의 경계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떻게 이 정도까지 가능해진 것인지는 모른다.
이곳은 규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느껴진다. 날 주시하는 시선이.’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 덕분에 어둠의 마력은 외부로 퍼져 나가지 못했다.
‘내가 이곳의 마력을 흡수하는 속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겠지.’
다니엘은 어둠의 마력을 조금씩 흡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조금씩이지, 그의 재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둠의 영역을 특정 누군가가 펼친 것이라면, 그 누군가의 시선을 잡아끌 정도의 유의미한 존재감을 떨치고 있는 셈이었다.
그건 분명히 다행이었지만.
‘……내가 인간이긴 한 걸까?’
한 가지의 불안감이 생겨난다.
더 이상 음식이 필요가 없었다.
식욕이 존재하긴 했지만, 굳이 먹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육신은 점검을 해봐도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데, 음식은 필요하지가 않았다.
어둠의 마력.
이건 보통의 마력과 확실히 달랐다.
마법 혹은 능력을 사용하기 위한 연료가 되기도 하며.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힘이기도 해. 어떻게 마력이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어둠의 영역 안에서 변이된 괴물들은 하나같이 먹이가 필요 없었다.
자신이 식욕을 느끼는 것처럼 그저 본능이란 것이 남아 있기에, 누군가를 죽이고 그 살점을 입에 넣는 것뿐이었다.
인간이 필히 느끼는 여러 욕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은 괴물들처럼 살의를 느끼거나 정신이 이상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둠의 마력에 영향을 받고 있다.’
자신의 상태가 이전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애써 털어 버리며 시선을 집중했다.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며, 어둠의 마력은 외부보다는 내부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전과는 달리 자신을 명백한 침입자로 규정하는 느낌이었다.
다니엘은 영역의 경계 탐색을 멈췄다.
이 상태가 유지되는 건 자신이 바라마지않던 사안이었다.
친우들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새로운 터전으로 떠나기 위한 시간.
자신이 벌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어둠의 영역을 처리하겠다, 그렇게 선언하긴 했지만 확신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둠의 마력을 머금게 된 지금이야말로.
‘이곳을 제대로 파악할 때다.’
그렇게 내부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
더 이상 외부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괴물들.
그것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음울한 마력이 발악하듯 터져 나갔다.
* * *
쩌적.
피부의 갈라짐은 아무런 고통도 유발시키지 못했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상황이었으니까.
악의(惡意).
다니엘은 상대의 의지를 그렇게 정의했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일념이 어둠의 마력을 타고 전해졌으니까.
악의의 감지는 매우 큰 성과였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 횟수만 백 번이 넘었으니까.
오크 이상의 몬스터는 그야말로 전설에나 등장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소드 마스터조차 둘 이상을 상대하는 게 버거울 정도의 괴물.
그런 놈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자신을 향해 흉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마법을 시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둠의 마력은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체계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무한에 가까운 다변화.
그런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오히려 패턴을 정해야 하는 마법은 어울리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은 터무니없이 약한 육체의 소유자였다.
강아지와 좋은 승부를 겨룰 수 있을 정도이며.
멧돼지만 나와도 오크를 마주한 것처럼 사력을 다해 도망쳐야 하는 수준.
그렇기에 또 다른 능력을 개화시켜야만 했다.
염동(念動).
생각으로 물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
이전엔 없던 능력이었으나, 아공간에서 세계수의 열매를 꺼낼 때나 묘목의 기운을 끌어당길 때 개화한 능력.
그걸 갈고 닦은 덕분에 다니엘은 이곳에서 버틸 수가 있었다.
어둠의 마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힘이 되어 주기도 했지만, 자신을 갉아먹는 독이 되기도 했으니까.
피부의 갈라짐을 비롯한 여러 부정적인 영향은 어둠의 마력의 본질 중 하나였다.
“……오늘로, 이십 년이다.”
대부분의 준비는 끝마친 상황이었다.
자신이 어둠의 영역에 발을 디디면 세계수는 준비된 계획을 실행할 터고, 며칠간의 여유만 벌어 주면 모든 이들이 안전하게 다른 대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내뱉은 오 일이었다.
자신의 능력이라면 어둠의 영역에서도 생존할 수 있으며, 도주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조금의 긍정적인 판단으로는 이곳을 제대로 파악해서 없애 버리지 않을까, 미소를 지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한계에 달했고, 우연찮은 기회를 얻어 재도전한 실패자에 불과했다.
어둠의 마력을 흡수한 덕분에 버티고 있을 뿐.
마력의 사랑을 받는 자.
그건 처음 마법에 입문할 때부터 줄곧 자신을 따라다니던 호칭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그건 통하지 않았다.
어둠의 마력조차 자신이 임의로 붙인 명칭일 뿐, 마력의 성질 중 아주 미약한 일부만 동일한 이것을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그렇기에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다.
어둠의 마력을 습득하고 얼마나 오만했던가.
과거처럼 마력이 자신을 사랑해 주며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거라 판단했던 때가 있었다.
중심부로 향하고, 시발점을 찾아 이곳의 근원을 처리하겠다던 판단.
때문에 몇 발짝 더 안쪽으로 디뎠을 뿐인데도 사방에서 악의가 밀려들지 않았던가.
그 후로 자신은 줄곧 싸우기만 해야 했다.
강자를 인정해 주는 풍습은 초입에서나 통하는 것이었다.
어둠의 영역의 경계면은 보통의 통념(通念)이 허용되었지만.
‘내부는 아니야. 딱히 이렇다 할 법칙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미 점령한 지역으로 발길을 옮길 땐 전혀 아니었다.
법칙도, 통념도, 본능도.
모든 것들이 무너진 채로 혼돈에 가까운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오만했다.
그 대가는 쉴 새 없는 전투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