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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30화 (230/293)

230화

-다니엘 (5)

석판의 내용을 전부 다 읽은 다니엘은 열쇠를 자신의 아공간에 넣은 후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기다리던 세계수가 말을 건넸다.

“네 판단을 지지하는구나.”

나무 인간은 긴 팔로 다니엘을 휘감았다.

세계수의 포옹이 끝나자 다니엘은 짧게 인사했다.

“준비가 되는 대로 다시 올게요.”

“…나는 그동안 부정을 부정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되겠구나.”

피식.

세계수의 농담에 다니엘은 웃음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이윽고 그의 몸이 사라진다.

단 한 번의 경험.

그것만으로도 다니엘은 단절의 결계를 무시한 채로 공간 이동을 진행했다.

가히 신비에 가까운 능력이 아닌가.

하지만 세계수는 그런 그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주시하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푸스스.

나무 인간이 녹아내리듯 땅속으로 사라진다.

사삭, 사사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묘한 음성을 만들어 내는 것만 같았다.

-그때를 기다리며… 난 방대한 앎을 갈구하는 자의 또 다른 부탁을 준비해야겠구나. 미안하다, 아이야. 네가 짊어져야 하는 짐은 지금보다 더 무거울 수밖에 없으니….

작은 꽃봉오리가 생겨난다.

이윽고 열매가 될 그 하나만을 바라며, 세계수 역시 준비를 시작했다.

지식의 신이 바랐던 대로.

세계수는 다니엘의 결심으로 많은 부분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만 아니었다면…….

* * *

“다녀올게.”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몸을 돌렸다.

누구도 다니엘의 인사를 받아 주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이야기 안 하고 가도 돼요?”

마야가 커다란 눈을 반개하며 물었다.

그녀만이 쓸쓸한 출정에 동참할 뿐이었으니까.

“안 해. 그리고 안 해도 돼.”

다니엘의 말에 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죠?”

“그럴 거야. 부디 따라오지나 않았으면 좋겠어.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흥! 제가 안 가면 외로울 거 아니에요.”

“안 외로운데?”

“거짓말! 잊었어요? 주인과 난 심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그래서 같이 가는 거야.”

“두고 가면 친우들에게 말할까 봐요?”

“그래.”

“피.”

마야가 입술을 삐죽였다.

거짓말이라는 건 안다.

자신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서 저렇게 말을 하는 걸 왜 모를까.

어둠의 영역.

수년간 고심하고 연구하던 다니엘은 기어이 어둠의 영역에 발을 들이기로 작정했다.

“…계획은 확실히 선 거예요?”

“어.”

다니엘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 먼 곳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에 다니엘은 슬쩍 화답했다.

자신이 어둠의 영역에 들어가 발을 묶고 시선을 잡아끄는 사이.

“통로는 완성시켜 뒀어. 엘프의 단절의 결계까지 활용해서 알뜰히 남은 재원을 전부 사용했지.”

“확률은요?”

“알 텐데?”

다니엘의 말은 수더분했다.

하지만 마야는 입을 다물었다.

확률?

높지 않다.

아니, 지극히 낮다.

다니엘이 어둠의 영역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세계수도 새로운 터전을 완성시킬 것이다.

다니엘이 얼마나 버티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제가 도와줄게요!’

그렇기에 마야도 의지를 불태웠다.

홀로 감당하는 전장.

자신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공간을 넘는다.

거부감이 느껴지는 탁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꿀꺽.

서큐버스란 종족의 한계를 넘어 ‘신’의 반열에 든 자신조차 감히 감당하기 어려운 곳.

어둠의 영역.

시커먼 안개로 가득 찬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어? 곧장 들어갈 거예요?”

“들어가야지. 망설일 이유도, 여유도 없으니까.”

다니엘의 단호한 음성에, 마야도 의지를 다졌다.

* * *

시간이 흐른다.

변질된 동식물은 더 이상 자연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였고.

어둠의 영역에 집어 삼켜진 몬스터는 괴물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변화를 겪고 등장할 리 없는 먹잇감에 침을 뚝뚝 떨어트리며 달려들었다.

무한에 가까웠던 마력은 어느새 육체의 반절도 채 남지 않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변질된 건 자연뿐이 아닌지 마력조차 익히 알던 형태에서 벗어나 독이 되어 있었다.

죽음의 땅.

마야는 은은한 빛이 전부인, 검은 안개 속의 세상에서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육체를 버려.”

며칠의 고심 끝에 다니엘이 조언했다.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던 마야는 겨우 얻은 현상화의 능력을 지우며 다니엘의 정신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힘을 비축해…. 마야.”

남은 마력을 쥐어짜며, 다니엘은 처음으로 무력함을 느꼈다.

어둠의 영역 외부에서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력함이었다.

작은 대화도 사라진다.

고요만이 내려앉으며, 이따금씩 다니엘을 노리는 적의 등장만이 소음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강자.

그나마 다행인 건 다니엘은 이곳에서도 강자란 점이었다.

의지를 잃어버리고 그저 포악한 괴물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몬스터조차, 다니엘의 공고한 아성을 넘진 못했다.

그렇기에 형성된다.

다니엘만의 작은 공간이.

먹을 음식, 마실 물조차 없는 공간에서 다니엘은 버티고 또 버텼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다.’

얕보았다는 걸 인정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라면 변수조차 감당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만한 준비를 해왔다고 자부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어둠에 발을 들인 후 느끼는 감정은, 그 준비조차 미약했다는 것이었다.

자신감이 아니다.

오만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고심한다.

또다시 설계하고, 또다시 확인한다.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하지 못하는 것.

나누고 또 나눈다.

그리고 해야 하는 것에서 선후를 정한다.

‘마력의 고갈이 문제다.’

마법의 영역의 한계를 경험했다고 여겼다.

마법이란 존재를 전부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경험한 건,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윗 단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평소였다면 환희에 차 연구에 매진했을 정도의 성과야.’

그걸 녹여내는 건 문제였지만.

‘할 수밖에 없어.’

지금은 연구에 매진할 시간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변화를 감당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

다니엘은 이를 앙다물었다.

‘마력은 멈춰 있지 않고 흘러. 그리고 대기는 물론 모든 사물에도 깃들어 있지. 그것조차 고여 있지 않아. 흐르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자신은 마력을 무한에 가깝게 사용했다.

고이지 않기에.

끊임없이 흐르기에.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마력을 사용해도, 그사이에 또 다른 마력이 자신에게 흘러들어오기에.

‘외부의 마력을 사용하는 건 무리야. 이곳은 흐름이 이상해. 패턴이랄 것도 없다. …어둠의 마력. 이건 고여 있어.’

각자의 사물을 스쳐 가는 마력은 고유의 패턴이 생긴다.

사물이 가진 패턴에 잠시 동화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력은 동화성이라는 성질도 가지고 있다.

다니엘은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파악할 수 있었다.

마력의 패턴.

그건 모든 마법을 이해하게 만드는 원천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게 없었다.

패턴이랄 것도 없이.

‘무변화가 아니야. 끝도 없이 변한다. 같은 패턴이란 게 없어. 없던 형태로, 파장으로 변화하고 변화할 뿐이야.’

그 변화조차 읽어야 한다.

아니, 예측해야 한다.

무한에 가까운 다변화를 예측해야만 했다.

그런 변화를 몸에 담아야 했다.

‘……어둠의 마력. 그것을 사용할 줄 알아야만 버틸 수 있어.’

희생을 각오했다.

열린 통로로 자신의 뿌리를 넘긴 세계수는 새로운 묘목을 탄생시킬 것이고.

묘목의 뿌리가 새로운 세계수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대지에 깊게 뿌리를 내려야 했다.

태고의 자연을 형성해야 했으며.

그게 완성된 이후, 자신의 유지(諭旨)에 따라 남은 모든 생명체는 통로를 넘어야 했다.

방법을 연구하던 몇 년의 세월 동안, 유일한 왕국이 무너졌다.

하나의 도시가 녹아내렸다.

기겁한 모두가 유토피아로 몰려들었다.

더 이상 대륙에 사람이 기거하는 다른 도시는 없었다.

유토피아만이 유일한 도시가 되었고, 유일한 터전이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결정을 내린 것이다.

통로를 연결하기로.

‘…내가 문제일 줄이야.’

모든 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었다.

새로운 터전이 완성될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벌어 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외부에선 어둠의 영역이 발을 넓히는 걸 막을 수 없기에 들어온 내부였다.

내부에서 버티며, 이곳의 사정을 알아보리라.

내부에서 이 영역을 억제하고, 세계수로 향한 시선을 돌리리라.

그런 결심과 함께 여차하면 근원도 파악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모든 건 과욕이었으며 자만이었다.

이곳은 자신이 익히 파악했던 그때보다 더한 위험을 가진 공간이었으며.

‘…부정(不淨)하며 부정(不正)하고, 부정(不定)한 장소였어.’

더러운 기운에 옳은 게 없으며 일정한 규칙조차 없는 장소.

다니엘은 이를 앙다물고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죄송…….

단 한마디를 내뱉는 것도 며칠을 노력해야만 가능해진 마야의 안위도 걱정되었지만.

‘……못 먹겠어.’

모든 감각이 뒤틀려 음식조차 먹지 못하게 변해 버린 자신이 더 문제였다.

체력이 고갈된다.

머리가 멍해지며.

마력이 비명을 질러댄다.

한계라는 단어가 성큼 자신을 향해 다가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엔, 자신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버텨!

파악해!

기를 쓰고 이곳의 마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고.

애를 쓰고 살아남기 위해 발악했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처절한 시간이 이어진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마야조차 입을 열지 않은 시간이 상당히 흐른 것 같기도 하고,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어느 날.

움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니엘의 육신이 한 차례 떨렸다.

‘…이건… 뭐지?’

익숙한 기운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덜덜 떨리는 손길로 그것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리고.

‘…닿아라.’

움켜쥔다.

움직일 여력조차 없는 다니엘의 곁으로, 그것이 움직였다.

언령과는 또 다른 형태의 발현이었다.

그것에 다니엘은 눈을 슬그머니 떴다.

처음이었으니까.

마법이 아닌 다른 이능을 펼친 것이.

반가웠으니까.

콰직!

아공간에 넣어둔 채로 잊어버렸던 한 열매가 떠오른 것이.

세계수의 열매.

죽은 자도 한 번은 되살릴 수 있다고 전해지는 그 불사의 열매를 베 문 다니엘은, 바닥까지 드러나다 못해 조각조각 부서진 그릇의 잔존마력을 자극했다.

간만의 청량함이 온몸을 뒤덮는다.

하지만 다니엘의 시선은 자신의 내부에 있지 않았다.

외부.

‘……묘목.’

어둠에 삼켜진 세계수의 묘목.

하나이자 여럿이고, 여럿이자 하나인 세계수의 분신.

그것이 놀랍게도 어둠의 영역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꺼질 듯한, 아주 미약한 형태의 촛불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세계수의 열매.

다니엘의 아공간 속에서 고이 모셔졌던 그것이 묘목과 반응했다.

한순간의 빛.

안개 속의 촛불과 같은 미약함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분명한 빛이었다.

아주 작은 틈이나 다름이 없다는 소리였다.

다니엘은 열매를 씹고, 반은 묘목에 뿌려주며.

‘묘목에 정신을 집중해.’

어둠의 마력이 짙게 녹아든 묘목을 읽었다.

세계수의 열매로 얻은 마력을 집어삼키며 변화시키는 그 형태를.

일렁!

그 끝에서야, 다니엘은 깨진 그릇을 채우는 한 방울의 마력을.

‘……!’

자신의 몸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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