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다니엘 (2)
“그래서?”
휘몰아치던 바람이 한순간에 잠잠해진다.
바람에 밀려난 구름의 모양새가 이색적이었다.
잠시 하늘을 보던 드워프가 이 사태의 주인을 보았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뭔지 잘 알 것 아니냐?”
“알지. 말해 달라는 거 아니야.”
“그런데 되물을 필요가 있던가?”
“음? 물어봐야지. 내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이것만으로는 안 되는 거야?”
손을 뻗은 그는 어느새 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지팡이.
자신이 만들어 준 물건이었다.
“그건 실험용이다. 세계수가 아니라 묘목의 가지라고.”
“그래도 세계수잖아.”
“달라. 세계수를 직접 본다면… 내 말을 이해할 거다. 에잉.”
드워프는 자신의 수염을 쓸었다.
자신 역시 세계수를 본 적은 없었다.
문헌이나 구전으로만 들었을 뿐.
하지만 묘목의 가지에 불과한 지팡이조차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다.
별다른 제련을 하지 않았음에도.
가히 아티팩트에 속하며, 마력의 증폭은 물론 부정적인 기운을 방어하고 반발하며, 정화하는 능력까지 지닌 지팡이였다.
묘목이 아닌, 세계수 본체이자 그 막대한 기운을 가진 가지로 지팡이를 만든다면.
그것으로 활이나 창을 만든다면.
목검조차 어지간한 명검보다 더 뛰어날 것 같은데.
‘에잉!’
드워프는 다시금 불만이 치솟았다.
한달음에 달려온 길이다.
엘프와의 대화는 답답했고, 여전히 망설이는 그의 작태엔 눈살마저 찌푸려졌다.
그렇기에 최후의 영웅에게 달려왔다.
자신의 의견을 거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음…….”
다니엘은 잠시 고민했다.
하기야 드워프의 은근한 요청은 처음 만난 이후부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걸 무시한 건 자신이었다.
적어도 한 번 확인 정도는 해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까지 이야기를 하니까. 실제로…….’
다니엘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세계수가 있는 방향이었다.
다니엘은 마력에 민감하다.
오죽하면 마력에 사랑을 받는 자라는 평가까지 받았을까.
그런 이였기에 알 수 있었다.
세계수라는 존재의 강인함을.
고작해야 마력이 많은 나무?
아니다.
그것은 엘프의 심정이 백분 이해가 갈 정도의 거대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다니엘은 드워프의 판단에 동감하면서도 세계수를 일부러 멀리했다.
나무이지만 신과 같은 존재.
그 존재의 영향력에 비집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신은 각자 독립적인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악화일로를 겪었다.
‘좋지 않아. 잠잠하던 연락도 간간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어.’
그 말인즉 세계수의 영향력이 조금은 줄어들었다는 소리였다.
어쩌면.
‘지금이 결정해야 할 최후의 시기일지도 모르지.’
드워프의 결단을 진작 이해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가볼 생각이군.”
“눈치도 빨라.”
“흐흐. 느는 게 경험이고 눈치가 아니냐.”
드워프의 눈이 반짝였다.
직접 확인해 본다.
그건 여태껏 다니엘이 취하지 않았던 행동이었다.
드워프는 이 변화가 기꺼웠다.
그의 판단은 남은 생존자 모두의 촉각을 곤두세울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으며 지표였다.
그의 친우들 역시 도드라지는 강자에다 뛰어난 능력자였지만.
저 정체불명의 어둠의 영역에 세계수 외에 저항한 사람은 다니엘이 유일했다.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저항에 성공한 유일무이한 존재.
그렇기에 그의 도시는 왕국과 대도시를 제치고 최후의 도시라 여겨지며 유토피아라는 희망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바로 다니엘이라는 청탑의 마탑주의 존재만으로.
그런 이가 결정을 내렸다.
‘어떤 결정이든… 이 정도 인물이 내린 결정이라면 따를 수 있지.’
“브룩 영감.”
다니엘의 말에 드워프 브룩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영감의 노고를 내가 왜 모르겠어. 하지만… 너무 미워하지 마. 코쿤 맥주나 마시면서 기분을 풀어.”
다니엘의 말에 드워프 브룩은 잠시 눈가를 좁히더니 헛웃음을 터트렸다.
“똑똑한 줄 알았더니 멍청한 아이구나. 내가 그 말라깽이를 미워만 할 것 같으냐.”
“아니지. 하지만…….”
브룩은 다시금 시선을 돌리는 다니엘을 따라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다니엘의 마력에 밀려서 바깥으로 밀려났던 구름이 다시금 빈 공간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맑은 하늘.
불과 칠 일이면 다다를 거리의 검고 칙칙한 하늘과는 대조적인, 청량한 하늘이 보였다.
지키지 못하면 더 이상 보지 못할.
“…어쩌면.”
“응? 어쩌면?”
“아니. …아니야. 마력도 점검해 봤겠다, 난 경계를 확인하러 다녀올게.”
“말을 돌리는 게야?”
“아니.”
다니엘이 희미한 미소와 함께 사라졌다.
드워프 브룩은 찰나의 순간 공간을 넘은 다니엘의 마법에 감탄하면서도 어리둥절했다.
흩어지던 마지막 말이 괜스레 정신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용도가 다를 것 같다니. 무엇이?”
* * *
“과연…….”
엘프의 마법 실력은 유명하다.
정령술을 가미한 마법은 매우 독특하고 독자적인 방향으로 발전하여 일반적인 마법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게 ‘단절의 결계’라는 거군.”
일부러 멀리하던 세계수 근처에 펼쳐진 결계는 자신조차 처음 보는 독특한 패턴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다니엘은 입술을 축였다.
마법사로서의 흥미가 생겼다.
‘어둠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미약하지만 조금씩 세를 넓히고 있었다.
세계수의 마력.
그리고 자신의 방비.
그 모든 것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확인해 보지. …브룩 영감의 뜻대로 되진 않을 것 같지만.”
다니엘은 이곳을 찾았다.
세계수가 있는 장소.
어지간한 대도시의 몇 배나 되는 넓은 숲의 중심지인, ‘세계의 중심’에.
스스스.
단절의 결계의 흐름은 기묘했다.
어디에서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기묘한 흐름이었다.
“정령력과 마력이 섞이니 굉장하군.”
이미 엘프를 통해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누대에 걸쳐 완성한 걸작.
조금의 틈새도 없이 정령력과 마력이란 이질적인 기운을 그물처럼 엮어 만든 결계.
과연 단절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의 견고함이 절로 느껴졌다.
“이런 결계를 뚫고 존재감을 느낄 정도라니. 이 결계가 없었다면 경계의 위치가 훨씬 더 멀리서 형성되었을 것 같은데?”
엘프의 판단은 이해한다.
하지만 단절의 결계를 구동하는 방식은 그들답지 않은 강제성이 다분하다.
정령력과 마력은 다르지만 같다.
패턴과 흐름, 사용처는 다르지만 정령력은 마력의 한 갈래였다.
본질만 놓고 보면 둘은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마력의 성질은 정령력에도 고스란히 통용된다.
아니, 보다 더 친환경적이라는 표현이 옳았다.
자유를 갈망하는 방랑자처럼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성질.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거쳐 가는 관여성까지.
그렇기에 엘프는 정령력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런 정령력과 마력이기에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
하지만 단절의 결계는 말 그대로 두 종류의 기운을 서로 얽어 만든, 단절성이 도드라졌다.
마치 지대를 낮춰 인위적으로 물이 고이게끔 만든 저수지처럼.
두 종류의 기운을 한 곳에 옭아매야지만 성립하는 조건을, 자연을 숭상하는 엘프가 행했으니까.
그렇기에 세계수의 영향력도 조금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얼마나 작정을 한 건지.
“이 넓은 지역을 빙 둘러 다 쳐놨어. 작은 틈도 없이….”
엘프의 집념이 무서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패착이다.
세계수는 그 자체로도 완벽하다.
엘프의 판단은 옳았다.
벽은 외부로부터의 유입을 막기도 하지만 내부의 단절을 초래하기도 한다.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내부에선 외부를 보기가 어려워진다.
벽에 오르지 않는, 지면에 서서는.
어쩌면 세계수는 지금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는 걸지도 몰랐다.
“세상의 근간이 되는 기운이라면서. 그럼 세계수의 기운을 한 자리에 옭아매게 만드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왜 모르는 걸까?”
과거 이런 결정을 내린 엘프의 대장로가 한심해지는 다니엘이었다.
완벽한 세계수였기에.
차라리 벽을 세우기보단 세계수의 기운을 이용하는 방법을 만들든가.
정령의 탄생이나 성장을 촉진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다면 훨씬 더 성과가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방어만 했을 뿐.
“종족의 성질이라고 보기엔 너무 아쉬워….”
다니엘은 진심으로 단절의 결계가 아쉽게 느껴졌다.
이 정도의 집념과 능력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면.
“어둠을 막을 저지선이 되지 않았을까.”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단절의 결계를 읽는다.
두 종류의 기운은 인위적으로는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서로 다른 기운으로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마력이나 정령력이나.
서로의 영향을 받아 나중엔 한쪽으로 기울어져 변화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인위성이 도드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걸 부수기엔 리스크가 있지.”
숲 전반에 걸쳐 펼쳐진 결계였다.
부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앞서 생각했던 것처럼 저수지와 같았다.
“고여 있던 물이 범람해. 밖으로든 안으로든. 위험할 수밖에 없어.”
자신이 모조리 처리하기엔 지역이 넓어도 너무 넓었다.
더불어 그 파장이 세계수에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 된다면.
“…저 교활한 어둠의 영역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지.”
몇 번의 조우 끝에 다니엘은 저 기운이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고민한 것이다.
저만한 기운의 존재라면, 세계수보다 더한 존재란 소리였으니까.
가만히 앉아서 대륙을 점령할 수 있는 자?
그런 자가 실제로 있다면, 자신 역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법의 신.
그렇게 불릴 정도이며 실제로 마법에 한해서는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자신이었지만.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아. 그저 남들보다 유달리 특별하기에 신이라 불리는 것뿐이야.’
어둠의 영역의 주인은 거의 전지전능에 가깝지 않을까.
다니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기운만으로 대륙 정복이라니.
‘터무니없군.’
어둠의 영역을 몰아내고 후대라는 게 존재하게 된다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엔 이런 사실을 믿을 수나 있을까.
그저 터무니없는 야사로나 판단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잡생각은 그만하자.”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엘프의 판단이 조금만 빨랐다면.
그리고 자신의 결정이 조금만 빨랐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확인해야지.’
세계수를 만날 때였다.
‘더 늦기 전에.’
단절의 결계는 잘 설계된 기계와 같았다.
잘못 건드릴 때의 여파를 염두에 두며 다니엘은 결계를 앞에 두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양손을 앞으로 뻗은 채로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마력엔 패턴이 있고 흐름이 있다.
패턴은 정령력이나 마력처럼 기운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마법의 종류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기도 했는데, 이는 자신의 존재를 마력에 묻히는 것과 같았다.
같은 학파에서 마법을 배운 마법사도 일정 궤도에 오른 이후부턴 각자의 고유 패턴을 가지게 된다.
마력을 사용하는 양, 세기, 순서가 모두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가 하면.
흐름이란 건 마력 자체가 지니고 있는 성질.
끊임없이 흐른다, 그 성질이 패턴에 따라 그저 변화할 뿐이었다.
보다 빠르거나 느리게. 보다 격렬하거나 잔잔하게.
하지만 변함없는 것은.
‘마력은 흐른다. 단절의 결계 역시 마찬가지다.’
흐름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흐름을 이해하는 건 패턴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었다.
다니엘은 그 흐름을.
“……됐다.”
말도 안 되게 빨리 감지했다.
그렇기에 패턴이 읽히는 것이다.
엘프의 패턴.
단절에 결계 앞에서 그들이 취했어야 했을 패턴을 고스란히 재현한 다니엘의 앞으로.
“…우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태고의 시대가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