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24화 (224/293)

224화

-뱀파이어의 성 (14)

* * *

아라크네의 실.

정우는 그것을 확인했다.

즉시 로드를 밀어내고선 실의 마력 파악에 나섰다.

뱀파이어의 성으로부터 뿜어지는 디버프가 감각을 혼란시켰다.

그것은 마치 해커의 침범을 막는 방화벽과 같았다.

하지만.

‘……잡는다!’

정우의 재능은 뱀파이어의 피 대부분을 갈아 넣어서 완성시킨 성의 디버프조차 뚫을 정도로 대단했다.

치직!

주파수가 흔들리는 것처럼.

디버프로부터 기이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더 복잡하게 꼬았을 뿐이야!’

전생과 현생까지.

모든 걸 통틀어서 가장 골치가 아팠던 마력의 흐름을 본 것은 마녀의 숲을 장악했던 아라크네를 두 번째 상대했을 때였다.

바로 리암을 구출했을 때.

그때라는 게 다시 생각해 보면 기이하게 여겨지기만 했다.

바로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장소인, 어둠의 영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조차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몇 년이나 허비하고서야 겨우 미약한 파악에 만족해야 했던 장소.

아라크네의 마력 따윈 그것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 정도여야 옳았다.

하지만 정우가 어둠의 영역을 떠올리지 못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곳에 진입해서 고생을 했고, 외부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겪었으며, 기어이 어둠의 영역을 없애는 데 성공하여.

‘감정을 잃은 채로 원래의 장소로 돌아왔다.’

그게 기억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감각.

어둠의 영역에서의 사건.

외부와는 다른 시간의 축을 통해 얻은 것들 전부.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없어.’

그게 문제였다.

때문에 정우가 겪은 가장 어려운 패턴은 아라크네의 것으로 남아 있었다.

희한하지 않은가.

‘…그 정도로 강렬한 기억만을 남겨 둔 채로 대부분의 기억을 되찾았다는 게….’

오히려 기억이란 건 강렬했던 것부터 되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확실히 기억하는 건, 자신의 수준이었다.

어둠의 영역에 들어가기 이전의 자신과.

‘이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

감정을 잃은 건 어쩌면 당연했다.

선명하지 않은 그 기억 속의 자신은 세상의 모든 것이 시시해 보였다.

긴 세월로 인한 부작용으로 추억도 사라지고 마모된 감정은 메마른 토양처럼 어떠한 씨앗도 품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친구들이 이 정도까지 한 걸 보면… 다시 날 되찾은 거겠지.’

그 사실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 자신을 이긴 ‘적’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더 집중해.’

아라크네의 마력은 복잡하다.

생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고도의 마력 집약체.

생명을 저장하기도 하고, 실을 통해 더미를 만들기도 하면서 하나의 지역을 만들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아라크네였다.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존재.

그게 왜 자꾸만 등장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지만.

[ 아라크네의 마력 패턴 ]

스킬로 아예 익숙해져 버린 패턴은 몇 개의 변화된 패턴을 제외한 모든 걸 파악해 버린다.

우웅!

성으로부터 뻗어 나온 실의 두께가 굵어지고, 보다 선명해진 건 바로 그때였다.

덜컥!

로드의 움직임이 한 차례 떨린다.

그 이변에 정우가 멈칫했다.

‘…반발력이 있을 거라곤 예상했어. 무시해.’

아버지의 육체.

아버지의 정신과 로이의 정신.

어떤 걸 놓고 봐도 감히 두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귀한 상대였다.

그렇기에 피치 못할 상황에서만 공격을 가할 뿐, 방어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정우의 정신은 그 어떤 전투보다도 예리해졌다.

울컥!

가면 안쪽으로 피가 넘쳐 후드득 떨어진다.

가면을 다시 쓴 뒤로 처음으로 로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정우의 마력이 들끓었다.

연결된 선을 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더…….’

외과 의사의 그것보다도 더 세밀하고 조심히.

자신의 마력으로 로드와 연결된 실을 끊어 낸다.

휘청!

로드가 휘청거린다.

당장 달려가 부축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마지막 작업에 착수했다.

로드는 더 이상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저 비틀거리며 충격을 해소하는 모양새로 버티고 또 버틸 뿐이었다.

파스스.

“……!”

정우의 눈이 커졌다.

마력의 실을 대부분 끊어 냈을 때.

끊어 낸 마력의 실 단면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빠르게 마력이 소멸되기 시작했다.

정우의 얼굴에 조급함이 떠오른다.

설마하니 이런 설정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로드는 그 자체로도 완벽하다.

실제로 자신의 손에 죽기 전까지, 로드는 무소불위의 권한과 권력으로 군림하는 초월자였다.

특유의 오만함과 나태함이 아니었다면, 전 세계를 뒤덮었을 정도의 강력함.

‘모두가 이런 걸까? …그건 아닌 거 같아.’

마력의 실을 끊는 걸로 소멸된다면, 그건 더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로드는 더미가 아니다.

친구의 기억도.

아버지의 기억도.

모든 걸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본체였다.

그렇기에 감행할 수 있다.

웅웅!

정우는 타들어 가는 심지와 같은 마력의 실을 보며.

끼릭!

통로를 열었다.

“……이건!”

로드가 그것을 알아보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소리쳤다.

갑자기 생겨난 검은 구멍.

그것은 게이트였으니까.

정우는 타들어 가는 마력의 실 끝을 게이트로 집어넣었다.

‘됐어!’

“…연결할 거예요.”

“……!”

“뱀파이어의 성은 일종의 발전기에요. …그만한 힘을 계속 공급하는 건 불가능해요. 어떤 ‘계약’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따로 공략하죠. 그동안…….”

정우가 조금은 아픈 미소로 로드를 보았다.

“아버지는 다른 던전과 연결해 두죠. 던전… 브레이크니까요.”

로드는 던전에 묶여 있다.

마력의 실은 던전 브레이크의 영역 전체에 퍼져 있었고, 던전 브레이크의 벽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몬스터는 던전을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는 각성과 동시에 몬스터의 위치에서 성장했다.

플레이어가 아닌, 뱀파이어 로드로.

로드는 분명히 던전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다른 던전에 연결해 버리면 그만이야.’

마녀의 마을.

자신의 영역이 된 그곳으로.

로드를 연결한다.

로드의 강함은 분명하다.

아무리 성의 버프와 디버프로 인해 보정을 받았다고 해도 S급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실력자였다.

하지만.

‘이지스도 마찬가지야.’

심지어 마녀 일족은 하나같이 뛰어난 마법사였다.

로드가 뱀파이어로서의 본능을 우선시한다면, 충분히 잠재울 수 있을 터.

상황 설명은 필요가 없었다.

이지스라면.

‘알아 줄 테니까.’

“……정우, 야.”

당황한 눈빛을 숨기지 못한 채로 게이트를 넘어 사라지는 아버지를 본 정우가 통로를 닫았다.

두근!

남은 건 고성뿐.

정우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대체 뱀파이어의 성에 무슨 중요한 내용이 있는 건지.

‘…확인해 주지.’

끼이익!

고성은 정우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듯, 커다란 문을 열며 그 속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어둡고 캄캄한 암흑 같은 그 속을.

* * *

고성의 안쪽은 고요했다.

작은 소음도 없었다.

정우의 발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어둠은 생각보다 짙었다.

마력을 눈에 부여하여 사방을 훑었음에도.

‘이것 자체가 장벽이군.’

사방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정우는 감각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딱히 잡히는 건 없어.’

자신의 목숨마저 내어 준 아버지의 각오치고는 성은 특이할 게 없었다.

‘분명히 뭔가 있다.’

조금 더 예리하게 감각을 끌어 올린다.

아예 눈까지 감고 모든 감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화륵.

“……!”

정우의 고개가 획 하니 돌아갔다.

‘아래….’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타오르는 불길처럼, 불길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정우는 마력을 퍼트려 주변 지형을 읽으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다.

저벅.

어느새 다다른 지하.

‘…빛.’

저 멀리 은은한 빛이 보였다.

이곳이 한없이 어둡지만 않았다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의 미약한 불빛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정우는 마력을 끌어 올렸다.

‘…마나의 고리가 두꺼워졌다.’

로드와의 전투는 정우에게 꽤나 큰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마력의 고리.

디버프에 저항하며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로드와 싸워야 했던 상황에서 정우는 고리의 안정화와 강화에 집중했다.

지금 당장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고리의 강화가 가져올 파장은 장기적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그리고 고리가 약간 두꺼워진 것만으로도 마력은 보다 안정될 터.

그 증거로.

스쓰스-!

디버프가 일정 거리를 침범하지 못하고 맴돌았다.

로드의 방해가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마력 실을 해제하면서 패턴이 익었어.’

정우는 디버프를 잠시 응시했다.

하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디버프가 짙어져.’

은은한 빛에 다가갈수록 디버프의 강도가 강해졌다.

‘하지만 이젠 어렵지 않아.’

그렇게 걷고 또 걷던 정우를 방해하는 건 의외로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빛에 다가갈수록 정우의 정신은 예민해진다.

소름 끼치는 감각.

그것이 디버프와 마찬가지로 점차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저건 뭐지?’

그렇게 목적지에 다다른 정우의 눈에 보이는 건, 굉장히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아주 미약한 불빛은.

‘……마력 실이다.’

고치와 같은 그것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고치가 마력의 실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고치 안의 존재.

웅웅!

미약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손가락이 진동했다.

정확하게는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였다.

아라크네의 다리로 만들어진 반지.

그것이 공명이라도 하듯 떨어댔다.

정우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반지의 공명이 열쇠라도 되는 듯.

스르르!

고치가 스스로 커튼이라도 치는 듯 열렸다.

들어오라는 듯.

일렁.

은은한 불꽃이 한 차례 일렁였다.

잠시 주시하던 정우가 지팡이를 틀어쥐며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얻게 해야 하는 그것이 이 안에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렸다.

‘…역시.’

가까이 다가가서 본 그것은 거미였다.

반투명한 상태의 거미.

“…아라크네.”

마녀의 숲에서 본 것보다 조금 더 커다란 모습이었다.

“대체 네가 뭐기에 계속 등장하는 거냐!”

정우는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아라크네를 살폈다.

아라크네는 죽은 듯 반응하지 않았다.

아라크네를 본 정우의 눈이 놈의 배로 향한다.

은은한 불빛의 정체는 바로 그것이었다.

‘은은한 게 아니었어.’

정우는 잠시 침음을 삼켰다.

아라크네란 거죽.

그리고 마력 실로 만들어진 고치까지 뚫을 빛이었다.

결코 미약한 게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정우가 지팡이에 오러를 둘렀다.

배 속에 있는 것을 꺼내 볼 요량으로.

그렇게 푹, 아라크네의 배를 가르자.

배 속에 있던 불꽃이 환한 빛과 함께 툭 떨어졌다.

“……어?”

그리고 그 존재를 보는 순간, 정우는 경직되었다.

그런 정우를 채근하듯.

[ 정화하라 ]

어둠을 밀어내며 겨우 버티고 있는 ‘나무’를 정화해라.

기억을 되찾을 각오와 함께.

성공 시 : ‘나무’의 활성화.

실패 시 : 멸망의 전초.

퀘스트가 떠올랐다.

* * *

“이제…… 우리도 준비해야겠군요.”

웃는 피에로 가면 안쪽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화르륵!

“명심해라. 헌터는 나의 것이니… 그 누구도 건드리지 마라.”

푸른 불꽃을 피워 낸 수르트가 히죽,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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