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뱀파이어의 성 (11)
충격이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갑자기 나타난 던전 브레이크.
그것도 뱀파이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길이다.
과연 뱀파이어들이 관속에 누워 제 주인의 강림을 촉구하고 있었고.
고성과 함께 로드와 네 마리의 박쥐들이 등장했다.
생각보다 강한 로드.
표정을 알 수 없는 가면 뒤에 숨은 얼굴이.
“…아, 버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정우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전투는 끝났다.
“으, 으아아!”
“로, 로드시여! 이게…….”
“대체… 왜 우리를…….”
세 명의 귀족이 힘을 잃으며 빠르게 말라 갔다.
이때가 기회라는 듯 각자의 무기를 휘두른 세 명의 S급 플레이어들이 적을 베었다.
털썩.
김하란은 피가 꿀렁이는 복부를 손으로 틀어막은 채 주저앉아 버렸다.
머리가 핑 돌 정도였다.
유서린도 방패에 기대어 고개만 들어 하늘을 볼 따름이었다.
정우와 로드.
기이하게 전투가 끝났다는 걸, 이곳에 모인 이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남은 건 하나였다.
로즈 백작.
그녀만이 당황을 지우지 못한 채 사사키 후유를 밀어내며 소리쳤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로드!”
로즈 백작의 뾰족한 기세에 로드가 명령했다.
“넌… 저자의 제물이 되어라.”
“……!”
로드의 말은 지상 명령이다.
로드를 이길 힘을 가지지 않는 이상.
아니, 로드의 속에 담긴 근원의 피를 얻지 않는 이상, 명령 체계는 자연스러운 법칙이었다.
로즈 백작은 피눈물을 흘리며 사사키 후유를 노려보았고.
긴장감을 지운 사사키 후유는.
리정환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겨우 승리를 쟁취한다.
더불어.
“……S급.”
승리의 대가는 너무도 달콤했다.
자신의 변화에 놀라워하면서도 감격해하는 사사키 후유를 둔 채로, 다시 대화가 진행된다.
정우가 물었다.
“……정말로, 아버지인가요?”
로드는 정우의 모습을 가만히 보며, 힘겹게 가면을 벗었다.
쿵!
정우는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죽이고자 했다.
대마법을 사용했고, 지팡이에 오러를 둘러 창처럼 휘둘렀다.
곧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다면…….
오싹!
정우는 주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정우야.”
“아, 아니야.”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G-00.
세계 유일의 케이스인 그곳에서 튜토리얼의 시간을 5년 넘게 가진 분이 바로 아버지였다.
그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할 거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클리어된 던전 속의 아버지가 자신의 경우처럼 다른 던전 속으로 이동한 게 아닐까 의심하긴 했었지만.
‘로드라니…!’
뱀파이어의 수장이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튜토리얼이 왜 튜토리얼인가.
시작점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과정에 불과하지 않던가.
목숨을 잃을 위기는 있어도, 플레이어가 된 후로 돌아본 튜토리얼은 합리적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사람의 수준이 자신과 동일하다고?
그 5년 동안 변화한 게….
‘뱀파이어 로드라니…….’
정우는 말문을 잃었다.
* * *
기묘한 대치가 이어진다.
‘아버지?’
이제는 다섯이 된 S급들은 탈진 상태에서도 정우의 음성을 들었다.
세 명의 적이 무력해진 틈을 타 승리를 쟁취했지만 승리의 환희는 없었다.
오히려 혼란만이 가중될 뿐이다.
이제는 여섯이 된 S급이 한곳에 모여서 한 장소를 공략한 적이 있던가.
없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은 승리라기엔 찝찝한.
애매한 결과만을 남긴 채 마무리가 되었다.
유서린과 강세기는 정우와 로드를 번갈아 보더니 팀 버튼을 재촉하여 상황을 정리했다.
여전한 적과 고성.
마무리될 상황이 아님에도 태연히 정리하기 시작한 두 명을 필두로.
“…….”
모든 플레이어들이 거리를 벌렸다.
“잘… 컸구나.”
로드는 기다렸다는 듯 정우를 향해 여러 감정이 담긴 말을 건넸다.
당장이라도 달려와 안고 싶은 마음이 역력히 느껴지는 모습으로.
“이게… 무슨 일이죠?”
정우는 그 말밖에 반복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일반인으로서 G급 던전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을 기다리며 준비했고.
플레이어로서 G급 던전을 열 방법을 찾았다.
마녀의 비기, 통로를 배웠다.
아버지의 던전이 사라졌고, 아버지의 행적이 사라졌다.
때문에 자신과 같은 경우를 떠올렸고, 또 다른 던전 안에 갇힌 건 아닐지 고민하며 유지석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달라고.
제임스 밀러도 마찬가지였고, 유아영도, MJ 그룹도, 그 외에도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터였다.
칭 샤오의 행적은 낭보였다.
던전 안에 터전을 두고 있을 칭 샤오의 방법만 제대로 안다면, 아버지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란 판단을 내렸다.
도플갱어는?
‘……아니야.’
눈앞의 로드는 분명히 아버지였다.
그렇게 구하려던 아버지가 어떻게?
왜?
“…많은 일이 있었다. 상당히… 많은 일이 있었지.”
그 말에 정우는 말문이 막혔다.
무려 5년이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퍼뜩 정신이 들었다.
“…보고 싶었어요.”
정우는 다니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한정우란 사람이 아닌 건 아니었다.
한정우이자 다니엘.
둘 중엔 한정우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현생(現生)이니까.
그렇기에 아버지란 존재를 떠올리면 이분이 먼저 떠올랐다.
가진 건 없어도.
항상 웃음으로 자신과 동생을 대했던 분.
그분이 정우의 인사에 미소를 지었다.
“오지 마라.”
하지만 미소가 사라진 뒤 나오는 말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뱀파이어면 어떻고 로드면 어떨까.
차라리 로드여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주름은 반가웠다.
자신을 향한 애정 어린 눈동자는 꿈에서도 그리던 그것이었다.
뱀파이어가 되었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닌 건 아니었다.
“넌… 이곳을 점령해야 해.”
이어지는 말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점령… 이라면.”
“네 원래의 목적.”
정우로서는 처음 보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원래의 목적?
분명히 있었다.
뱀파이어의…….
“못해요.”
“해야 해.”
“못해요!”
“…정우야.”
“이게 말이 돼요? 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플레이어가 되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정우야. 그게 아니야.”
“뭐가 아닌데요?”
“넌… 어차피 플레이어가 되었을 거니까.”
“…그건 무슨 말이죠?”
“각성 이전에 마력을 느꼈을 거다.”
“……!”
“일반적인 플레이어의 방법으로는 성장도 하지 못했을 거고.”
“…그, 그걸 어떻게….”
정우는 두 눈을 부릅떴다.
튜토리얼에서 이제 갓 벗어난 아버지였다.
그렇기에 저 말은 예상할 수가 없었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
자신의 처지나 상황, 성장에 필요한 방법까지도 알고 있다는 말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를 이렇게 만난 것보다도 더.
‘……그럴 리가 없잖아.’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하지만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자신의 처지를 안다는 건, 아버지가….
‘이계의… 존재라는 게…….’
정우는 볼을 푸들 떨며 부정을 거듭했다.
* * *
왜 모를까.
얼마나 긴 세월을 보아온 사람이었나.
기억이 덧씌워지기도 전부터 정우는 자신의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정(友情)’이 ‘부정(父情)’보다 먼저였다는 소리다.
빌어먹을.
기억을 얻은 대가로 소중한 아들을 잃어야 한다는 게 소름이 끼치도록 증오스러웠다.
‘……지식의 신!’
자연스럽게 이 일의 설계자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정우를 지키도록 하려면 차라리 기억을 처음부터 심어 두든지.
탄생부터 함께한 대가치고는 너무도 가혹했다.
그 가혹함을 정우는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아니, 절감하고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
벌어졌다 닫히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입술이 그의 복잡한 심정을 대변했다.
사랑하는 아들.
낳을 때 흘렸던 눈물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품에 안을 때의 감동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우정이 부정보다 먼저였다.
하지만 자신에겐 부정이 우정보다 우선시되었다.
그렇기에.
“네 할 일을 해.”
지식의 신이 맡겨 놓은 고약한 자리를,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정우.”
* * *
“한정우.”
아버지의 음성은 단호했다.
네 할 일을 해.
그것이 말하는 건 명백했다.
로드를 죽이고, 성을 무너트려라.
이 던전 브레이크를 미해결로 남겨 두지 말고 공략해 버려라.
패륜(悖倫).
정우에게 있어서 이건 공략이 아닌, 패륜이었다.
더 이상 이건 전투가 아니었다.
뱀파이어?
그게 어떻다고!
“이곳은 매우 중요해.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네 생각보다 더 많다.”
“……못해요.”
“하늘의 별이 추락한다면, 내 손으로 추락했으면 해. 별을 닮은 검이라면…….”
“…로이?”
“다음은 뭐였지?”
정우는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널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씨익.
아버지가 웃었다.
아니, 이 순간의 웃음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왜?”
말투가 바뀌었다.
아버지에서.
자신의 친우였던 ‘로이’로.
“아버지가 어떻게 로이의….”
“덧씌우다.”
“…뭐?”
정우는 저도 모르게 로이를 대하듯 물었다.
얼굴은 분명히 아버지였지만, 분위기가 아예 바뀌었다.
기억을 더듬으면 분명히 익숙하기 짝이 없을 분위기로.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 않아?”
있었다.
“지식의 신이 이 일에 참여했다는 건 너도 알 거야.”
안다.
이 정도의 일을 벌이려면 지식의 신은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으니까.
“‘우리’는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무엇에?
아버지의 얼굴을 한 로이는 정우의 질문을 들은 것처럼 대답했다.
“널 구하는 것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할 수 없어. 그런 조건이거든. 최후의 최후까지… 네게 맡기는 조건.”
계약.
“그래. 우린 계약을 맺었어.”
지식의 신과?
“지식의 신과.”
이런 대화가 가능이나 할까.
정우는 입도 열지 않았지만, 대화는 이어졌다.
그만큼 로이는 정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아버지는 정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두 존재는 모두, 정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살인을 강요하는가.
정우는 반감이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인지.
친구들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제이를 통해 확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충격 속에서도 드는 생각이 있었다.
왜 아버지였을까.
왜 로이였을까.
로이가 아버지로 탄생해서 기억을 되찾은 것일까.
아버지에게 로이의 기억이 덧씌워진 것일까.
저분은 정말로 스스로를 로이이자 아버지라고 여기는 것인가.
만약에 그게 진실이라면.
왜 ‘내 손에 죽으려고 하는 거지?’란 의문.
성의 존재.
뱀파이어 로드가 된 아버지의 존재.
두근.
무언가가 떠올랐다.
자신을 배신했던, 친구의 얼굴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가 어렵지 않게 짐작이 되었다.
“……리허설.”
정확히 말하면, 연습인 셈이었다.
자신을 패배하게 만들었던 상황에 대한.
“정확히는… 예방 접종에 가깝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