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20화 (220/293)

220화

-뱀파이어의 성 (10)

* * *

자다가 깨어보니 전혀 다른 장소였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아니었다면, 이 사태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을 것이다.

빛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장소.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퀘스트.

“G…급 던전?”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사람을 찾았다.

열 명의 입장 인원.

함께 움직인다면, 갑작스럽게 등장한 던전이라고 해도 승산이 있었다.

“누, 누구 없습니까?”

하지만.

어둠으로만 가득 찬 공간은 화답이 없었다.

그 누구의 음성도.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 이어졌다.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혼자 여기에 들어왔다고?’

지끈!

정신을 차리며 느껴지던 두통이 조금씩 강해진다.

홀로 던전에 내던져졌다는 사실이 스트레스로 작용했는지, 두통은 더욱 심해졌다.

“여긴…….”

하지만 두통 때문일까.

의외로 멍할 것 같은 뇌가 빠릿하게 돌아갔다.

G급 던전에 대한 기본적인 사안.

몬스터를 만났을 때의 대처법.

여러 생존 방법까지.

성인이 되면 한 번쯤은 배우고 넘어가야 하는 의무 교육이 의외로 또렷하게 떠올랐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한 점이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 장소조차 흐릿하게 구분이 되기 시작했다.

[ 안력(F) ]

“스킬!”

숨을 죽이며 소리쳤다.

G급 던전에 입장했다는 소리는 튜토리얼이 진행 중이라는 의미였다.

각성을 하여 이곳을 벗어나든.

아니면 죽든.

‘죽을 순 없어.’

그렇게 생각하자 외딴곳에 혼자 떨어진 이 상황이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G급 던전은 열 명의 인원을 집어삼킨다.

정황상, 자신만을 남겨 둔 채로 다들 이동했을 가능성은 적었다.

자신의 옆자리에서 같이 잠을 자던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이의 울음소리조차 듣지 못할 정도로 기절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을 자다가 튜토리얼에 휩쓸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입장하자마자 변한 환경에 절로 잠이 깬다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나 혼자다.’

그런 판단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 같다는 느낌과는 달리 정신을 차린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입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그나마… 위안이다.’

더듬거리며 주변을 확인한다.

의외로 반듯한 바닥이 만져진다.

툭툭, 벽까지.

“…여기…… 인위적인 공간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잔뜩 묻어 있는 장소였다.

대리석과 같은 바닥과 벽.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여태껏 들었던 G급 던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긴장감이 치솟는다.

중급 이상의 던전에나 들어가야 접한다고 들은 인위적인 건축물 속이라니.

지끈!

“……으.”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쥐면서도 확인을 끝마쳤다.

하나의 입구를 둔 사각형의 방.

‘입구를 나서면 퀘스트가 시작되는 건가.’

협회의 교육을 받고 각성에 나섰다면 혼란이 적었을 테지만, 이젠 모든 걸 혼자서 헤쳐 나가야 했다.

입술을 바짝 깨물며.

몸의 긴장을 푼다.

“살아서 돌아갈게. 여보. 아빠, 꼭 돌아간다! 정우야. 정희야.”

“……성이다.”

지하에서부터 시작된 훈련은 악의적이었다.

처음 주어진 검을 쥐고, 변형된 쥐를 잡았다.

크기가 고양이보다 커다란 쥐였다.

먹을 게 없어 이틀을 내리 굶다가 처음으로 먹은 건 그 쥐였다.

복통으로 앓아누웠다.

지하답게 쥐는 많았다.

쥐를 잡으며 검에 익숙해졌고, 검에 익숙해진 만큼 몸은 빠르게 말라 갔다.

그렇게 지하를 전부 공략했을 때.

F급 플레이어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 층을 올랐다.

투계와 비슷한 형태의 칼날을 날개와 부리, 발톱에 달고 있는 새가 가득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지끈!

두통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이 두통 때문에 죽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로.

그나마 새는 좀 더 먹을 만하다는 게 위안이었다.

한 층을 더 올랐다.

고블린과 싸우고 놈들 중 가장 강했던 놈의 머리 위에 올린 왕관을 베어 버렸다.

남은 고블린 네 마리가 몸을 떨며 복종을 맹세했다.

놈들과 함께 한 층 더 위로 올랐다.

때로는 오크를, 때로는 웨어울프를.

사냥하고 또 사냥하는 동안 세가 불어났다.

열네 개의 층을 올랐을 때.

휘하에 놓인 몬스터의 수는 일백에 달했다.

이게 튜토리얼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G급이 아니라, 그냥 던전에 내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살아 돌아간다.”

그 말만이 반복해서 입가를 맴돌 뿐이었다.

마지막 놈은 강했다.

뼈로 이루어진 놈 주제에 마법을 사용하는, 아주 강력한 놈이었다.

백 마리 중에 서른 마리를 희생하고서야 놈을 잡았다.

보상은 달콤했다.

마법이라니.

지끈….

뇌종양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통은 심각했지만 무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복종한 몬스터는 몬스터일 뿐.

자신이 앓아눕는 순간, 오히려 놈들은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먹어 버릴 테니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나날이 이어져 신경은 날카롭기만 했다.

열다섯 번째 층을 올랐을 때 보인 건, 꽤나 넓은 장소였다.

처음으로 어둑한 하늘이 보였던.

자신이 있는 장소를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지상이었다.

성.

평생 일만 하느라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유럽의 그런 성과 같은 모습이 앞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불길한 형태로.

와들와들.

처음으로 지상에 올라온 건 자신만이 아니었는지 쭈뼛거린 몬스터들이 지상을 밟고선 와들와들 떨어댔다.

몬스터의 본능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지끈!

누군가가 있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이런 지하를 만든 고성의 주인이 약할 리가 없으니까.

그때.

퀘스트가 처음으로 갱신됐다.

살아남으라는 단어만 툭 던져 놓았던 퀘스트의 변한 내용을 보는 순간.

욱신!

지끈거리던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토악질을 하고.

허리를 꺾는 순간 이를 드러내던 수하 한 놈의 목을 베어 버리고서야.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고 자신을 향한 살의 역시 조금 가라앉았다.

쉴 틈은 없었다.

쉴 수도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선.

‘움직여야 한다….’

변화한 퀘스트를 보았다.

외성의 장악.

마치 침략자라도 된 것 같은 명령이었다.

주변을 살피기 위해 움직였고, 조금 날랜 몬스터를 풀었다.

몬스터와 대화 따위는 통하지 않았지만, 놈들을 부리며 대충 알아듣게 된 바로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과연 튜토리얼이라는 것인지, 놈들은 일정 거리 이상을 접근하지 못했다.

지하에서 올라온 이곳.

이곳이 바로 안전지대였다.

거리가 멀어지면 놈들은 자신들이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코가 예민했고, 발이 빨랐다.

핏빛 늑대.

놈들이 지상에 와서 처음으로 마주한 적이었다.

한 놈에게 물린 뒤로 고열이 치솟았다.

비틀거리는 자신을 틈틈이 노리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다.

놈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는지 툭 밀려 찢어진 눈을 동그랗게 뜬 고블린 하나가 비틀 다가왔다.

휘두른다.

반으로 갈라진 고블린의 상체가 허우적거리다가 나뒹군다.

울컥, 치솟는 핏물이 놈들의 정신을 바짝 일깨운다.

주춤 물러서는 놈들을 가만히 노려보자 놈들이 바닥에 엎드린다.

잠깐의 숨 돌릴 시간.

가족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혹한에 내던져진 것 같은 오한과 용암에 발을 담근 것 같은 고열이 오갔다.

다행인 건, 억겁 같은 그 시간 동안 몬스터들은 다시 달려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체감과는 다르게 고통이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핏빛 늑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항체가 형성된 건지 물려도 그저 통증만 있을 뿐, 자신을 힘들게 했던 그건 사라졌다.

핏빛 늑대 역시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꼬리를 말았다.

놈들은 몬스터와 달랐다.

시시때때로 뒤통수를 노리던 몬스터와는 달리, 놈들은 충견이라도 된 듯 호위를 자처했다.

늑대 스무 마리를 거둬들이고서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겨우 처음으로 눈을 깊게 붙일 수 있었다.

늑대들과의 전투로 인해 전투력은 급증했다.

마법도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외성에선 처음으로 인간을 만났다.

아니, 인간을 닮은 몬스터를 만났다.

송곳니가 날카로운.

흡혈귀를.

“로드께서… 널 죽일 것이다.”

저주에 코웃음을 치며 심장에 검을 꽂았다.

스멀스멀.

놈들의 피가 증기가 되어 코를 타고 속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기겁을 했지만, 놈들의 힘이 쌓이는 것에 반색했다.

강해야 한다.

그래야 가족에게 돌아간다.

그 생각만이 인성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수단이자 방법이었다.

다행히 놈들의 힘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흡혈의 욕구가 생겨나진 않았다.

외성을 장악하자.

과연 튜토리얼답게 남은 흡혈귀들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었다.

고블린을 먹이로 던져 주었다.

보상은 충분했다.

지끈!

두통은 날이 갈수록 강렬해졌다.

주기도 짧아지고, 통증의 강도도 세졌다.

그럼에도 누울 수가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내성을 공략하라.

새로운 명령에 따른다.

퀘스트는 명령이었다.

행하지 않으면 그저 죽을 뿐인, 명령과 같은 지시.

그렇다면 반감을 품을 필요는 없었다.

퀘스트를 완료하면 결국 자신은 지구로 돌아갈 테고, 이 빌어먹을 튜토리얼을 끝낼 수 있을 테니까.

내성과의 전투는 치열했다.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보다 더 강한 놈들이 수두룩했다.

몬스터들을 전부 잃었을 땐, 눈앞이 캄캄할 정도였다.

때문에.

처음으로 흡혈을 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음식이라고는 전무한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의 변화를 인정해야 했다.

과연 흡혈은 새로운 힘을 가져다주었다.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남작의 목을 베고 그 힘을 취하고.

자작의 심장을 찌르고 그 힘을 취하고.

백작에서 공작까지 올라가는 건, 미치도록 어려운 일이었다.

사방이 뚫린 대전에 앉아서 권태로운 눈동자로 자신을 보는 왕을 먼발치에서 봤을 땐.

고작해야 그 시선만으로도 토악질을 멈추지 못했다.

예전 핏빛 늑대에게 물렸을 때처럼 오한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대전에서 움직이지 않는 네 명의 귀족과 한 명의 로드를 제외한 모두를 죽일 때까지.

그 힘을 모조리 흡수할 때까지 시간은 오래도 걸렸다.

강해졌다.

이제야 스스로에게 그렇게 다짐할 수 있었을 그때.

처음으로 대전의 근처에 다가갔을 그때.

‘……!’

두통이 멎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맑은 정신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좋았다.

네 명의 귀족을 보더라도.

그만한 전투 가운데에서도 자세 하나 변하지 않고 눈동자만 돌려 자신을 보고 있는 왕을 보더라도.

더 이상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드는 건, 자신감.

그리고.

“…….”

이제야 준비가 끝났다는 듯 밀려드는 기억.

사십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한 사내의 기억 위로.

그보다 더 길고 강렬한 기억 하나가 덧씌워진다.

오래전.

잊어버렸던 기억이.

“아아…….”

진조의 힘에 과거의 경험과 힘까지 거머쥔 그는 어렵지 않게 로드의 힘까지 취했다.

로드를 죽일 때까지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네 명의 진조가 무릎을 꿇는다.

그들의 세력들이 나타나 고개를 바닥에 찍으며 엎드렸다.

새로운 로드의 탄생.

튜토리얼의 끝이자.

‘다니엘….’

* * *

“…정우야.”

이야기의 끝이 머지않았다.

로드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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