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뱀파이어의 성 (4)
붉은 안개보다 더 붉은 어스름이 하늘에 생겨났다.
“……메테오?”
“메, 메테오 스트라이크다!”
대마법, 메테로 스트라이크.
대마법사 질 고메즈가 단 한 번 사용했으며, 그 결과물은 훌륭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였던 마법이었다.
때문에 모두의 뇌리에 강렬하게 자리 잡은 마법이기도 했다.
철원에서 사용할 당시 정우는 결계를 친 상태였다.
누구도 메테오가 발현된 걸 파악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테오 스트라이크가 가능한 인물은 대마법사와 이프리트라 불리는 화염의 마법사, 루드가 전부였으니까.
그중에서도 실제로 메테오를 사용한 이는 대마법사뿐이었고.
“한정우 씨!”
유서린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메테오 스트라이크는 강력하다.
뱀파이어의 성이 어떤 형태인지, 어떤 방어도를 지니고 있는지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그랜드 캐니언을 전부 무너트릴 셈인가요!”
대마법으로 분류되는 메테오가 성은 물론 이 일대를 전부 무너트릴 정도란 것은 알 수 있었다.
유서린의 음성을 들은 정우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무너져요.
“……!”
‘이거… 텔레파시인가요?’
-맞아요.
‘별걸 다 할 줄 아는군요.’
유서린은 정우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할 겁니다.
‘텔레파시가 가능했으면 미리 말해도 되지 않았어요?’
-잘하고 계셔서요.
‘……사람이 뻔뻔해졌네요.’
-원래는 더 뻔뻔했어요.
‘그거 이제 알았네요.’
-풋. 아무튼… 이제 준비하세요.
‘사람도 다 내보냈는데 지원군을 안 기다리고요?’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젠 안 돼요.
‘왜요?’
-버튼을 누른 셈이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부추긴 건가요?’
-이왕 쓸모가 없어질 바에야 이렇게라도 쓰는 게 낫죠. 그리고….
‘그리고?’
-저 타이밍을 맞추려면 관의 개수가 적어야 하고요.
유서린이 저도 모르게 하늘로 고개를 올렸다.
‘메테오…. 블리자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메테오까지 쓰네요.’
-…….
‘그래서…, 저희가 해야 할 일은요?’
-단순합니다.
웅웅!
유서린은 은은한 마법진이 그려진 하늘에서 시선을 떼 정우를 보았다.
-단 한 마리도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 주세요.
‘…혼자서 전투를 할 건가요?’
-네.
‘…팀 버튼 협회장 말로는 이곳의 등급은 S급을 넘는다고 하던데요?’
-상관없어요. 두 가지만 꼭 지켜 주면 됩니다.
정우의 설명을 들은 유서린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어 버렸다.
“…대화한 건가?”
“……네.”
“뭐라고 했지?”
강세기의 얼굴엔 미묘한 열감이 있었다.
같은 마법사로서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본다는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그의 어조는 종전보다 높고 빨랐다.
“저희는… 놈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
유서린의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S급 플레이어 데니 라이언의 마력 방어력조차 웃도는 감염이 겨우 등장 조건인 뱀파이어의 성.
그 안에 있는 놈들은 얼마나 강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싸우겠다는 의미였으니까.
“그게 무슨….”
“혼자 싸우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가뜩이나 높았던 강세기의 음성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하지만 유서린은 잠시 정우를 보더니 다시 강세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두 가지만 지켜 달라고 했어요.”
“뭔데!”
유서린이 다시금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후우웅!
준비가 끝난 건지, 소름 끼치는 느낌이 전면으로부터 풍겨 오기 시작했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기운이었다.
한발 늦게 고개를 다급히 돌리며 긴장한 표정을 짓는 두 명의 S급에게, 유서린은 정우의 말을 전했다.
“첫째, 단 한 마리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틀어막는다.”
한 마리의 뱀파이어가 만들 수 있는 건, 고작해야 흔적 정도에 불과한 박쥐 한 마리를 보내어 사람들을 감염시켰던, 오스카가 벌였던 일과는 다르다.
박쥐 무리는 세력을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 중 하나였지만, 그렇게 강력한 놈들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뱀파이어는 아니다.
특히나 성 안에 기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은 새로운 왕조를 꿈꿀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된다.
뱀파이어의 피는 다단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넓게 퍼진 뱀파이어들은 흡혈을 통해 마력을 흡수하고, 그 마력을 다시 위로 보낸다.
태생부터 강한 뱀파이어 로드이지만, 대부분의 일생을 성 안에서 보내면서도 모든 뱀파이어를 아우를 수 있는 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종속성과 더불어 귀속성까지.
때문에 뱀파이어 한 마리라도 밖으로 빠져나가서 찾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상당히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죽는 사람도 생길 거고.
“저걸 보고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나섰단 말이야?”
“…지금이라도 합류해야 옳지 않겠나?”
“아뇨. 다음 게 중요해요.”
유서린이 정우의 말에 수긍한 건 다음 이유가 더 중요했다.
“뭔데?”
“둘째….”
유서린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우가 마지막 남은 석관을 부쉈다.
검붉게 물든 하늘의 태양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석관에 누워 있던 뱀파이어는 눈을 뜨지 못하고 절명했다.
정우의 지팡이가 심장을 쪼개었으니까.
그랜드 캐니언의 풍경은 장관이다.
얼핏 보기엔 지하를 관통할 것 같은 높다란 협곡이 웅장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할 정도의 크기로 자리하고 있다.
셀 수 없는 많은 인파들이 몰렸고,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찬사를 머금었다는 장소조차.
촤아- 촤아-!
갑자기 밀려드는 파도와 같은 사이한 기운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압도당한다.
장엄하다 못해 존귀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 정도의 오랜 고성이, 그랜드 캐니언의 중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장엄함이 이계의 고성에 밀려 배경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고성의 장엄함조차.
압도적인 기세조차.
“……!”
“저, 저것이….”
“대마법… 메테오!”
하늘의 마법진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태양과도 같은 그것의 존재감 앞에선 한낱 폐가처럼 변해 버렸다.
정우는 멋있게 등장한 뱀파이어의 성을 보며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번, 멸절해라.”
거대한 운석이 그랜드 캐니언을 향해 떨어졌다.
* * *
뱀파이어는 악몽 중 하나였다.
오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마스터에게도.
수십 가지의 마법을 난사할 수 있는 대마법사에게도.
말 한마디에 수만의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군주에게조차.
뱀파이어는 두려운 존재였다.
피를 매개체로 부리는 고급 마법은 일반적인 마법보다 강력하고, 마스터에 준하는 육체 능력은 탄생과 동시에 주어지는 일반적인 신체 능력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피가 3대나 옅어진 2세대 뱀파이어조차 엑스퍼트에 5서클 마법사의 능력을 보였으니, 가히 악몽과도 같았다.
과거 일부 국가에선 뱀파이어에게 제물을 바치고 영토의 안위를 갈구한 적이 있을 정도로.
뱀파이어의 상대는 드래곤밖에 없다는 것이 세간에 퍼져 있던 소문이었을 정도로…….
까득!
정우는 잠시 멈칫했다.
그런 뱀파이어였기에 강력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의 자신에겐 몇 개의 마법으로 압살할 수 있을 정도의 나약한 집단일 뿐.
소문만큼의 위상 따위는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막는다?’
모든 뱀파이어를 불살랐으며, 그들이 자랑하는 고성을 흔적도 없이 무너트렸던 메테오가 누군가의 의지에 가로막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전진하고는 있지만.
‘…막혔어.’
파괴력만큼은 최고 수준에 놓인 대마법이 가로막혔다.
“……확실히, 증오스러운 장면이군요.”
“나 참. 이걸 또 보게 될 줄이야.”
“그래도 그때와는 다르다.”
그리고 운석을 향해 손을 뻗은 이의 양옆으로 네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공작이 하나, 후작이 둘. 백작이 하나. 그 밑엔 왜 없지?’
진조라 불리며 로드로부터 피를 직접 받아 변화한 이들.
자작과 남작의 작위를 가진 실질적인 행동 대장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남은 귀족의 수도 부족해.’
간단한 대화만 들어도 놈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메테오에 멸살당할 때의 기억.
당시의 귀족은 스물에 달했다.
선발대로 나선 오스카도 당시의 기억을 가졌던 것처럼, 모습을 드러낸 놈들 역시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수가… 모자라.’
정우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성의 출현은 그 여파만으로도 엄청났다.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충격을 받을 정도로.
지구의 양식, 그 어떤 것도 닮지 않았으나 모조리 닮은 것 같은 압도적인 위용과 더불어.
‘로드…… 예전보다, 강하다.’
이젠 정말로 어지간한 이들에겐 악몽이라 불릴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감을 떨치는 로드만으로도 모든 걸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우는 확실히 기억해 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진조의 수를.
로드의 패배에 절망하며 운석에 맞아 불타오르던 놈들의 모습을.
“……힘을, 거뒀어.”
그리고 그들의 모습에서 정우는 이 현상의 의미를 알아냈다.
피는 마력이다.
뱀파이어에게 피는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피라미드처럼 위에서 아래로, 집약이 옅어지며 퍼진다.
반대로 말한다면.
‘그래. 666의 관을 없애야 하는 이유도 같은 의미겠지. 수많은 뱀파이어의 피로 강림하는 고성처럼….’
수하들의 피를 거둔다는 것은 힘을 다시 거둔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로드는 자신의 피로부터 퍼져 나간 힘을 거둬들였다.
진실로 악몽이라 불릴 때의 모습으로.
드래곤조차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강대함을 지녔을 때로 돌아간 것이다.
가각, 가가각!
손톱에 짓이겨지는 운석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자칫하면 폭발한다!’
공중에서 운석이 폭발한다면 그 여파는 아군을 뒤덮을 터였다.
인상을 구긴 정우가 몸을 날렸다.
로드와의 거리는 상당하다.
치직!
‘마력 흐름이 불안정해. 읽는 건 시간이 걸리겠어. 젠장. 블링크 한 번이면 될 텐데….’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마력장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그러고 보면 성도 업그레이드가 됐어.’
성의 존재감이 예상을 웃돌고 있었다.
뱀파이어의 성.
과거를 떠올리며 가볍게 생각했던 정우로서는 낭패를 본 상황이었다.
‘메테오가 이렇게 쉽게 막힐 줄이야.’
“어딜, 왕께 가려 하느냐!”
거대한 할버드를 휘두르는 뱀파이어의 기세는 날카로웠다.
허공을 딛고 몸을 회전한 정우의 지팡이가 창처럼 찔러 간다.
‘찌르기.’
지팡이의 형태이지만 삼단창보다 더 단단하고 예리한 게 바로 세계수의 가지로 만들어진 지팡이였다.
기세등등하게 등장했던 것과는 다르게 기겁한 뱀파이어의 곁으로 무언가가 접근했다.
‘레이피어…. 빠르다.’
“감히 우리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네 선택을 죽어서도 후회하거라!”
대마법을 사용하는 대마법사조차 한 수 아래로 보는 오만한 어조로.
파앗!
시뻘건 검을 정우의 얼굴을 노리고 찔렀다.
픽.
정우는 볼에 느껴지는 열감을 느끼며 손을 휘저었다.
‘매직 미사일.’
“…흥!”
코웃음과 함께 뱀파이어의 망토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촤아-!
망토 안쪽으로부터 붉은 점과 선이 송곳처럼 뿜어진다.
매직 미사일을 모조리 쳐 내는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정우는 손을 뻗어 뱀파이어를 향해 휘저었다.
“……!”
휘청!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뱀파이어가 휘청거릴 때.
파아아앙!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메테오.
기어이 그것이 제 힘을 잃고 부서진 것이다.
정우는 다급히 고개를 돌려 로드를 보았다.
메테오를 부순 후, 오연히 서 있는 로드의 형체를 주시했다.
‘로드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네.’
몸 안의 마나가 회전한다.
보다 빠르고, 가볍게.
‘언령으로 승부를 본다.’
그렇게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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