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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12화 (212/293)

212화

-뱀파이어의 성 (2)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굉음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굉음과 함께 불어온 마력의 후폭풍이 요란했다.

가히 필살의 일격 같은 느낌.

거인이 내지른 망치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일격이었다.

쩌저적!

“…결계가, 부서진다!”

데니 라이언의 일격은 강력했다.

A급 플레이어 수십이 모여서 내지른 폭격도 막아 내던 결계를 부술 정도로.

“훗.”

데니 라이언은 어깨를 으쓱하며 발을 빙빙 돌렸다.

“척후조 진입!”

목소리를 증폭한 팀 버튼의 명령이 떨어졌다.

깨어진 결계 사이로 뛰어드는 플레이어들을 본 데니 라이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 멋진 일격이었습니다.”

팀 버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관계나 감정과는 상관없이 그의 일격은 엄청났다.

S급 던전 브레이크의 결계를 부술 정도로.

하지만 데니 라이언의 표정은 묘했다.

으쓱하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의 표정은 뭐랄까.

찝찝함?

“…음. 이상해.”

“이상? 뭐가 이상합니까?”

팀 버튼이 반응했다.

“그냥… 느낌이.”

“음…….”

팀 버튼은 고개를 갸웃했다.

척후조는 빠르게 진입했고, 주변을 살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손짓한 척후조가 첫 관을 부쉈다.

과연 관 안에는 뱀파이어가 들어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양손을 모은 채로 고이 눈을 감고 있는 뱀파이어가.

관 뚜껑이 깨어지자마자 쏟아지는 빛에 치이익, 매캐한 연기가 솟았다.

“캬아-!”

뱀파이어의 비명.

화형에 처한 것처럼 타오르기 시작한 뱀파이어의 모습에 척후조는 환호성을 질렀다.

“보상이 엄청 나!”

그 말은 너무나 달콤했다.

애가 닳은 플레이어들이 눈빛으로 진군을 명령했고, 세 개의 관이 더 부서진 이후에야 명령을 내렸다.

“전부 부숴라!”

플레이어들의 돌진 속도는 빨랐다.

밤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관 속에 틀어박힌 뱀파이어들을 도륙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S급의 던전 브레이크.

경험치는 얼마나 줄 것인지.

보상은 어떤 게 주어질 건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 그들의 눈에 담긴 건 탐욕이었다.

더 빠르게.

부서진 결계로 진입하여 단 한 마리라도 먼저 도륙하기 위한 움직임.

그 무분별함이 데니 라이언의 눈엔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척후조와는 다른 움직임이었다.

‘여기에 모인 놈들은 그래도 꽤 쓸 만한 놈들뿐이다.’

팀 버튼은 유능하다.

강자가 되지 못해서 무시할 뿐, 그의 능력은 인정하는 바였다.

이곳은 등장과 동시에 가파르게 마력이 상승하여 S급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빗은 장소.

어중이떠중이 따위는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막았을 터였다.

실제로 느껴지는 기운은 최소한 B급 이상.

적어도 수백 번의 전투를 경험한 베테랑들.

그런데.

‘직업이나 지형을 전부 무시한 채로 달리기만 한다?’

거기다가 안정적으로 주변을 살피며 관을 열던 척후조 역시 어딘지 모르게 조급해 보였다.

그런 척후조 주변으로 데니 라이언의 눈엔 은은한 붉은 안개가 보였다.

의심하지 않았으면 보이지도 않았을 정도로 옅은 안개였다.

“……아차.”

데니 라이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흐읍.

숨을 크게 들이켠 그의 입에서 괴성이 터졌다.

“함정이다! 들어가지 마!”

쿠르릉.

음성이 어찌나 큰지 그랜드 캐니언의 일부가 진동하며 무너질 정도였다.

바로 옆의 비서가 막아 주지 않았다면 일반인인 팀 버튼은 뇌가 터져 죽었을 정도로.

하지만 그 누구도 데니 라이언에게 무어라 하지 못했다.

함정.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심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데니 라이언의 괴성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뒤를 돌아보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당장 관을 열어 뱀파이어를 없애자.

신의 명령을 받은 광신도처럼, 플레이어들은 두 눈이 시뻘건 상태로 관을 향해 돌진했고.

“내가 먼저다!”

각자의 무기로 관 뚜껑을 부수기 시작했다.

데니 라이언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수하들조차 저 열기에 감염된 듯 자신의 명령에 반응도 하지 않았으니까.

“라, 라이언! 진짜로 함정입니까? 하지만… 뱀파이어는 진짜입니다.”

팀 버튼이 다급히 물었다.

플레이어들이 통제를 듣지 않았다.

부서진 결계 안쪽으로 진입한 플레이어들은 관을 여는 것에만 열중이었다.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S급이라는, 심장이 떨릴 정도의 수치와는 달리 이건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이었으니까.

뱀파이어의 목숨값은 저렴하지 않았다.

새로운 격변.

그 후로 던전에 들어가지 않았고 빌런과의 전쟁에 정신이 없었던 정우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정보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보상의 실시간 산정.

던전 브레이크에 한해서였지만 모든 걸 완료해야지만 주어졌던 보상이, 게임의 그것처럼 몬스터를 잡는 족족 반영되었다.

물론, 단번에 수치가 변하거나 마력의 양이 급증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곳의 등급은 S급 이상.

몇 번의 칼질로 얻어지는 보상은 화수분이나 다름이 없었다.

관을 부수고, 잠에 빠져 있는 뱀파이어를 죽이고.

단순한 작업의 보상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렇기에 팀 버튼 역시 데니 라이언의 판단에 동의했다.

무자비한 손속과 과감한 결정 때문에 자신과 상당히 부딪쳤던 데니 라이언이지만, 자존감만큼 판단력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어떻게 합니까!”

하지만 그 데니 라이언의 명령조차 듣지 않는 플레이어들 아닌가.

자이언트 길드원조차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부서진 결계의 영역 안쪽에서 무언가 작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내가 가보지.”

데니 라이언이 표정을 굳히며 어깨를 풀었다.

‘상태가 별로군.’

단 한 방이었다.

결계를 부순 건.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었다.

‘…부수지 못할 뻔했다.’

결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했다.

때문에 어깨에 무리가 갔다.

주먹을 통해 느껴지는 반발력을 억누르기 위해 마지막 순간 예상보다 더 마력을 쏟았다.

때문에 단 일격에 평소보다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으득.

그건 데니 라이언에게 불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사냥꾼.

입장 전부터 계산을 끝마친 그는 자신이 부순 결계의 경계를 단숨에 넘었다.

‘호흡만 조심하면 될 거야.’

파앙!

“……!”

포탄처럼 전진한 그가 가장 가까이 있던 플레이어의 뒷목을 잡아 뒤로 던졌다.

아직 아군이 남아 있는 결계 너머로.

바닥을 나뒹구는 모습이 상당한 충격을 예상케 했지만, 데니 라이언의 경로상 존재하던 플레이어는 하나같이 그의 손에 잡혀 뒤로 날았다.

열 명.

허공을 날아 나뒹군 열 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비상을 꿈꾸는 꼬맹이들은 없었다.

“푸흐…….”

아주 미약한 웃음.

하지만 이내 터진 광소와 함께.

“이곳은 내 몫이다! 버러지들아!”

우려를 표하며 달려들었던 사자가 사냥에 합류했다.

“……으음.”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팀 버튼이 신음을 흘렸다.

“저주…….”

힐러를 기다리는 게 정답이었다.

여러모로.

팀 버튼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지원을…, 지원을 요청해!”

그리고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뒤편에서 급증한 마력과 함께 익숙한 얼굴이 등장했다.

“…지원을……, 기다려야겠군요.”

그녀는 몇 번의 공간 이동을 통해서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을 눈치채고는 말을 바꾸었다.

“유서린 플레이어!”

팀 버튼의 환한 표정을 보며 그녀는 인상을 구겼다.

“데니 라이언은 왜 저기서 날뛰고 있는 거죠?”

“안에 현혹 같은 저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요! S급이라면 느꼈을 텐데….”

저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머맨의 왕의 것보다도 강력한 기운이 저 안에서 느껴졌다.

심지어 음흉하기까지 한 기운이었다.

그런데도 들어갔다면….

“결계를 부수고 아군을 구한다고….”

“멍청한!”

유서린은 그녀답지 않게 혀를 찼다.

데니 라이언의 능력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맹신하기보단 더 기다려야만 했다.

자신과 뒤이어 도착할 아군을.

합류할 S급만 무려 네 명이었다.

그중에 한 명은 터무니없는 성장을 보여 결국엔 자신조차 뛰어넘은 한정우가 아닌가.

한정우가 일전에 뱀파이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그 누구보다도 이 사태에 적합한 전문가는 바로 그였다.

그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다.

지금의 시간이 밤이 되기까진 여유가 있는 오후 3시라는 것도 크나큰 장점이었다.

그걸 스스로 무너트릴 줄이야.

유서린은 이들의 아둔함에 기가 질린 모습이었다.

“음…. 난리군요.”

김하란이 다가왔다.

“일단 진입하면 되나요? 상황이 심각해 보이는데….”

“아뇨! 지금 진입하면 안 돼요.”

유서린이 다급히 만류했다.

“…그래. 지금은 진입하면 안 되겠군.”

“강세기 플레이어.”

“저 사자는 보기보단 꽤나 영악한 여우 같은 사람인데… 함정에 걸려들었군.”

강세기까지 등장했다.

팀 버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가 다 거물이다.

데니 라이언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함정’이란 단어를 내뱉었다.

대체 이들은 무엇을 보는 걸까.

팀 버튼은 처음으로 플레이어가 아닌 것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상황은 낙관적이었다.

그것도 일방적인 낙관.

그 누구도, 단 하나의 피해도 입지 않은 채 벌써 수십 개의 관을 부수고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뱀파이어를 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전쟁으로 따지면 대승이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잖아? 더 기다릴 사람이라면…….’

왜 대기만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헌터…뿐인데?’

“중국에서 바쁜 건 알겠지만, 여기도 심각하다고 연락 좀 취해.”

강세기의 말에 유서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타를 조작했다.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한 일본마저 내버려 두고 미국으로 날아온 강세기였다.

팀 버튼은 총리 대행인 그에게 은근히 물었다.

“지원을 요청하기도 전에 어떻게 여길 알고 오신 겁니까?”

유서린이야 미국에서도 국빈 대우를 받을 정도로 활발히 교류를 해왔으니 그렇다 칠 수 있었다.

김하란도 미국의 의뢰를 상당히 처리한 거물.

하지만 대부분 일본 내에서 머문 강세기는 아니었다.

세뇌를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자국 내 일도 아직 채 마무리가 되지 않지 않았나.

표면적인 일 외에도 무수한 일이 산재해 있다는 걸 모를 팀 버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 어떻게 이들이 이렇게 모인 건지.

“당사자가 곧 올 거니 놈에게 들어.”

“…당사자?”

의아해하는 팀 버튼의 귀에 유서린의 음성이 들렸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요. 곧장 넘어오셔야 할 것 같아요.”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한국어와 일본어를 수준급으로 사용할 줄 아는 팀 버튼은 유서린의 말투에 귀를 의심했다.

존대.

그것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상대의 도움을 요청하는 투가 아닌가.

‘어? 중국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머리가 멍해졌던 팀 버튼은 강세기의 말을 기억했다.

세상을 뒤흔드는 건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사건이었다.

북한으로부터 시작된 침공.

그건 가히 침공이라 부를 법한 행위였다.

그곳에 헌터가 있다?

‘어떻게 넘어온다고?’

중국에서 넘어오려면 적어도 미리 움직여야 했다.

적어도 두 시간 이상.

공간 이동 비용만 수백억이 넘을 것이다.

유서린과 김하란, 강세기조차 한 번에 모여서 이동할 정도로 공간 이동은 여러모로 어려운 이동 수단이었다.

한데 혼자서?

지금?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두 시간이나 기다릴 여유 따윈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돌연 유서린의 옆쪽에서 은은한 빛과 함께 누군가가 등장했다.

검은 머리의 젊은 남자.

팀 버튼은 본능적으로 그가 ‘헌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더불어.

‘…이자가, 이들의 리더야!’

경악스러운 사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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