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09화 (209/293)

209화

-퀸, 마야 (2)

“네 꿈을 보여 주렴.”

나긋나긋한 음성은 거부할 수 없는 마약이었다.

세상 그 어떤 마약보다도 달콤하고 지독하여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확실히 각성하니 좋군.’

메아리의 상태는 각성과 같았다.

잃어버린 힘을 되찾은 그녀는 그야말로 서큐버스로서의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 주었다.

환상을 보여 주는 것도.

기척을 숨기거나 물리력을 발휘하는 것도.

“……예상 밖으로 훌륭하군.”

“우, 우와……. 저 여자는…… 누구입니까?”

슬그머니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던 정상수는 메아리의 등장 이후 정신이 팔렸다.

말 그대로 한눈에 반한 듯했다.

정우는 곧장 공간 이동으로 중국으로 이동했다.

마킹을 해놓은 정상수의 곁으로.

정상수는 리의 명령대로, 그리고 정우의 명령대로 토벌에 한창이었다.

자칫 죽을 뻔했던 정상수를 위해 마력의 흐름을 강제적으로 늦추었고.

그건 강세기의 ‘동결’과 같은 효과를 보였다.

이전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개념.

하지만 플레이어의 스킬은 정우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곤 했다.

“퀸.”

정우의 대답에 정상수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메아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퀸, 퀴인. …진짜, 여왕님이네요.”

“풉.”

정우는 정상수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망자의 기억.

메아리의 환각은 그보다 더 정확했다.

망자의 기억은 죽기 직전의 가장 강렬한 기억을 읽는 것이었다.

때문에 대부분 한 장면이 전부였다.

하지만 메아리의 그것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모든 것을 아우를 만했다.

환각을 다루는 스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서큐버스를 따를 순 없지.’

보통의 서큐버스는 마력을 빼앗기 위해 즐거움이라는 범주의 환각만을 사용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바로 쾌락.

그것도 몸을 섞는, 성교의 쾌락이야말로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때문에 서큐버스를 생기를 빼앗는 악마 혹은 제 몸을 바쳐 마력을 빼앗는 창녀처럼 여기지만.

그들로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게 만연해졌다는 점이지만… 마야는 그 문제를 완전히 없애 버렸지.’

서큐버스의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환각과 현혹이었다.

메아리가 정우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본인들의 강점을 되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몽마로 부르며 죽였겠지. 다른 놈들처럼.’

그녀가 최후의 서큐버스로 불리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모든 서큐버스가 정우의 손에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청탑의 대대적인 토벌.

이를 계획하고 진행하며 전투에 참여했던 이가 바로 정우였다.

퀸, 마야의 목숨을 거두기 전 그들의 한을 풀어 준 것도 바로 정우였고.

“흐응. 대충 기억을 훑어봤는데요.”

메아리의 육성은 달콤하다.

꿀이 뚝뚝 떨어지고 옥구슬이 굴러간다는 표현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넋이 나간 정상수의 재미있는 표정을 힐끗 본 정우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손짓했다.

메아리는 조신한 아내처럼, 정우의 곁에 섰다.

“그런데?”

“주인님께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더군요.”

“…음?”

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국이란 나라는 너무 넓다.

하데스의 기억을 살펴보았고, 발키리의 증언을 떠올려 봐도 이 모든 지역의 악을 끊어 내는 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특히나 발키리의 영역은 전혀 다른 곳이었으니까.

‘거긴 질이 맡아 준다고 했으니… 다행이군.’

대마법사 질은 발키리에게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본인의 세력을 움직이기로 했다.

기이하게도….

‘아니, 당연한 건가? 그녀에게도 마탑이 있다는 게?’

그녀의 길드는 마탑을 닮았다.

마법사만이 가입할 수 있으며, 더 나은 효율을 뽑아내기 위한 연구가 끊이지 않는 곳.

매지션 길드는 마탑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정우는 중국으로 다시 넘어올 수 있었다.

리가 정상이 될 때까지, 성장할 요량으로.

‘정화와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니 딱 좋지.’

메아리는 정우의 상념을 뚫고 잠시 눈짓했다.

그녀의 눈짓은 정상수를 향했다.

정우는 스윽, 손을 휘저었다.

뻐끔.

정상수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중요한 이야기면 어떻게 하려고요?”

“녹화와 녹음도 가능해. 나중에 들으면 될 거다. 뭐, 쓸 만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흐응.”

“그래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뭐지?”

“이들의 기억을 훑어봤는데 한 가지가 없어요.”

“한 가지가 없다고? 그게 뭐지?”

정우의 의문에 메아리가 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맑지만 나지막한 음성으로.

“동기요.”

* * *

정우가 빌런을 처음 접한 건 오한우 때였다.

그건 각성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뒤로 처음 겪은 빌런은 결계사.

당시로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 뒤로 빌런을 잡을 때마다.

‘아니… 정확히는 플레이어를 죽일 때마다……지.’

플레이어를 죽일 때마다 마력이 회복되었다.

B 지구에서 벌어진 습격 사건.

이리 무리.

놈들을 상대하다가 겪은 첫 살인은 정우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 주었다.

빌런과 협력은 했을지언정 빌런 그 자체는 아니었던 이기적인 사람들.

그들을 통해 정우는 성장의 방법을 알게 되었고, 여러 고민 끝에 ‘헌터’란 코드명까지 받게 되었다.

그 후로 여러 빌런과 싸웠다.

찾아다니고, 죽이고.

꽤 많은 수의 빌런을 상대했음을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맞아. 빌런의 수가… 너무 많다.’

예상을 웃도는 수의 빌런은 때때로 당혹감을 선사해 주었다.

던전을 공략하면서도 마력을 성장시킬 수 있는 지금에 이르러선 빌런의 척결만이 성장의 답이 아님에도.

악의(惡意)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떠오르는 메시지는, 마치 빌런을 처단하기만을 바라는 듯했다.

빌런 협회는 분명히 세계 곳곳에 퍼져 있었다.

중국처럼 힘을 키우는 과정에서 빌런의 손아귀에 들어간 나라도 없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빌런이란 게.

‘그저… 소속을 나누는 그런 게 아니야.’

단지 국적과 같은 개념이 아니지 않은가.

이를테면 범죄자였고, 테러범이었으며, 힘을 가진 살인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격변의 시대 땐 몬스터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인 경우가 더 많았어.’

때문에 한국에서도 유지석이 빌런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승리했다.

더불어 전 세계가 빌런에 대한 적의를 표출했으며, 적극적인 전쟁을 통해 마왕을 비롯한 빌런 무리들을 몰아내는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박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청소 정도는 분명히 역사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중국으로 들어선 이후, 하데스의 영역은 생각보다 방대했고.

‘빌런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각성자가 많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상당수의 인원들이 빌런이란 점도 의외였다.

전투가 끊이질 않는다.

중국 전역에 다다르고, 러시아와 몽골을 넘어서는 방대한 영역 속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빌런의 수는 너무 많아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빌런은 너무 많았다.

한때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왜 빌런만이 ‘악의’라는 마력의 흐름을 지니고 있고, 왜 자신이 특정할 수 있도록 특이한 것인지에 대해서.

여러 상황이 복잡하여 잊어버렸던 내용이 다시금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악의.

그보다 더 자연스럽게 습득한 마력.

G급 던전에서 각성하기도 전에 습득한 마력은 자연스럽게 마력의 구별의 단계까지 발전했다.

왜 그랬을까.

‘나에게만…….’

각성 전부터 정우는 마력을 느꼈다.

각성 과정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옛 동료가 보상이랍시고 주어졌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붙긴 했지만……. 그러고 보면 당장의 힘과 나중의 힘이라는 표현이 있었던 거 같은데….’

각성 이후엔 성장하지 못하는 특이사항을 겪었다.

성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여러 고민을 했지만 결국 잔여물처럼 남은 마력의 그릇을 수복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아 그것의 마력으로 그릇을 수복하는 것.

악마 그 자체인 방법 말이다.

당시엔 그렇게라도 강해져야만 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 사태를 만든 건 내 친구들이다.”

“그렇다고 했죠.”

“그래서 더 이상한 거야.”

친구들이 왜 이런 방법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깨어진 그릇.

“그건 내 전생과 관련이 있겠지.”

메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의 자신은 처참한 상태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지구로 환생을 한 것인지 모르지만, 처참하고 부족한 당시를 떠올리면 전생의 상태가 계승되어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게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왜… 내 그릇을 수복하는 데 플레이어의 목숨이 필요했을까?”

“그거… 고민해 봤는데요.”

메아리는 약간 망설이는 투로 말을 꺼냈다.

“어쩌면 목숨이 아닐지도 몰라요.”

“…목숨이 아니라고?”

“진리를 추구하며 본질을 탐닉하는 자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지식의 신.”

“…전 그의 편린을 본 적이 있거든요.”

“언제?”

“처음 조우했을 때요.”

“아…….”

정우는 지식의 신을 만날 당시 살짝 휘청거렸던 메아리를 기억해 냈다.

“그저 경계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꽤 깜찍한 짓을 저질렀군.”

그녀가 관찰한 자는 신이었다.

전지전능은 아니더라도 이계에선 가장 전지에 가까웠던 인물.

그런 자의 능력이 하찮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얻은 게 있었나?”

편린은 조각에 불과하다.

수만, 수억 가지의 피스 중 한 개의 피스를 손에 넣는 수준.

하지만 우연히도.

정말 우연히도 그녀가 본 피스가 지금의 상황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마력.”

“…음?”

“플레이어의 마력 말이에요. 어쩌면 주인님께서 얻어야 하는 건, 목숨이 아니라 마력 그 자체일지도 몰라요.”

“…….”

정우는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가능성이, 있군.”

마력은 여러 성질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흐르는 성질.

그런가 하면 머무르려는 성질.

응축되는 성질과 흩어지려는 성질.

서로 상반된 개념들이 충돌 없이 자유분방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 바로 마력이었다.

지식의 신은 분명히 세상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에 대한 건 내가 더 뛰어났어.”

경험한 부분을 지식으로 치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마력에 대한 이해도는 지식의 신조차 정우를 따르지 못했다.

그게 그의 흥미를 샀고, 자신을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주인님의 마력에 대한 개념은 이해도에 국한되어 있었죠. 실제로 이번에 제 마력에서 새로운 걸 느끼셨잖아요.”

“…아. 연결. 그렇군. 이것도 잊고 있었어.”

정우의 정신은 메아리와 연결되어 있다.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메아리와 관련되어 있을 땐 연결의 정도가 강했다.

때문에 메아리의 마력 흐름에 대해서 새롭게 느낀 점이 그녀에게 전달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장과 주인의 성장을 동시에 맛보았다.

때문에 주인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주인은 자신이 뿔을 흡수할 때, 새로운 개념을 이해했다는 것을.

“마력… 마력이라…….”

메아리는 단어를 곱씹는 주인을 잠시 기다려 주었다.

이내 생각에 잠겼던 주인의 눈이 번뜩인다.

“그렇군…. 마력이었어.”

메아리의 그것이 의심이었다면, 정우의 그것은 확신이었다.

마력을 복구하기 위해서 빼앗는 것은 마력.

생명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G급 던전…. 지구의 인원에게 인위적으로 마력을 각성시키는, 각성 체계.”

바로 그것이었다.

G급 던전이 인위적인 던전이라는 것.

때문에 그것만이 달랐던 것이다.

G급과 F급의 차이.

튜토리얼과 몬스터가 적의를 드러내는 던전과의 차이.

인위(人爲).

이 사태를 친구들이 계획한 것이 확실하다면, 이런 인위성을 집어넣은 이유 또한 명확하다.

종말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종말인 핵을 터트리는, 급박함.

“……뭔가 문제가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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