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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08화 (208/293)

208화

-퀸, 마야 (1)

“마왕이 찾고 있는 거라면 당장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야.”

-세계수의 가지.

“맞아. 바로 그것….”

그렇다면 칭 샤오가 세계수의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정우는 당장에 인천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메아리.”

-네. 주인님.

“네 것부터 취하자.”

부르르!

정우의 말에 메아리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자신의 힘이 담겨 있는 뿔.

그것이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애가 닳았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딘 참이다.

힘이 넘칠 때엔 얻지 못했던 깨달음.

분명히 그것은 반가운 일이었지만, 끝내 벽을 허물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정우가 느낀 뿔의 힘이라면….

“당장에 벽을 허물 수 있겠지. 네 깨달음을 녹이면 새로운 능력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의 단언에 메아리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능력은 환각을 다루는 것에 있다.

환각을 통해서 마력을 빼앗는 게 바로 서큐버스의 능력이었으니까.

하지만 하데스와의 전투는 그녀를 새로운 영역으로 인도했다.

환각.

그 자체를 자신에게도 사용할 수 있음을.

타인의 능력을 자신에게 덧씌울 수 있음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따로 명칭을 붙인다면 ‘환몽의 신’이라 불려도 좋을 능력을 지녔던 그녀였지만, 타인의 능력을 덧씌워서 제 힘으로 삼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면… 오버레이가 그것과도 비슷하군.”

정우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타인의 능력을 덧씌우는 오버레이.

그것은 메아리가 하데스의 능력을 사용할 때의 상황과 비슷했다.

-알아봐야겠네요.

“곧… 알게 되겠지.”

정우는 고개를 돌려 인천 방향을 보았다.

칭 샤오는 강했다.

하지만 강함보다도 연금술사로서의 능력을 정우는 더 높게 보았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흔적을 묻혔다.

발키리에게 정신이 팔렸음에도.

다행히 놈을 놓아줄 땐 추적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결과는 훌륭했다.

칭 샤오는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정우의 흔적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던전으로 도망칠 줄은 몰랐지만, 마녀들의 비기 ‘통로’가 빛을 발했다.

뭔가가 연결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주인님.

애달픈 메아리의 재촉이 아니었다면 몇 시간이고 생각에 잠겼을지도 몰랐다.

정우는 입맛을 다시며 메아리의 재촉에 응했다.

공간이 뒤바뀌고.

연구소의 입구가 나타났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하로 깊게 묻혀 있고, 그걸 지키는 철옹성에 가까운 결계는 무의미했다.

-확실히… 있네요.

웅웅!

짧은 공명과 함께 메아리가 선언했다.

그런 메아리의 표정엔 반가움이 가득했다.

-내게 와라. 나의 과거야.

조용한 선언에 지면으로부터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 * *

삐- 삐-!

돌연 터진 붉은 등과 경고음이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무슨 일이야!”

“뭐, 뭐야!”

소란이 뒤따랐다.

경고음보다도 더 큰 소란이었다.

침입자?

테러?

여러 불길한 가정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장악했을 때.

“……어?”

누군가의 탄성이 소란을 뚫고 들렸다.

이 연구소의 가장 시초가 되는 중요한 물건이자,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존재.

몇 년에 걸쳐 형체가 바뀌었고, 이제는 뿔이라고 규정한 그것.

그것에서 생겨나는 검은 연기가 점점 짙어져 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제대로 된 이변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하지만 연구자들이란 게 그렇다.

어차피 전투는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테러든 침입이든 무엇이든 간에.

“막을 사람이 막겠지. 이리 모여!”

선임 연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는 장치 앞으로 몰려들었다.

이 연구소가 존재하는 의의가 될 정도로 귀한 물건이자 엄청난 물건이었다.

그것의 변화를 목격하고 관찰하며 그 이유를 찾는 것이 바로.

“우린 연구자다. 끝까지 파고들어!”

무한한 탐구심을 가진 연구자란 족속들이었다.

각종 기계의 데이터를 읽는다.

뿔의 변화를 수치로 계산하고, 검은 연기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따지고 보면 5분의 시간에 불과했다.

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 연구자들이 하나둘씩 손을 떨구기 시작한 것은.

“…이건, 여전히…….”

“우리 손을 떠난 것이었군. …처음부터.”

낙담하는 연구자들의 눈이, 점차 크기를 줄여 가는 뿔을 보았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편.

연구소의 출입구가 있는 방향이었다.

“김 주임. 어디가?”

“지상, 지상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위험해!”

“저 연기가… 향하는 곳은 지상이에요. 대체 무엇이 저 뿔의 ‘힘’을 빨아들이는 건지, 봐야겠어요!”

수면시간조차 제한하며 연구에 매진할 정도로 뛰어난 연구자였다.

그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누군가가 뒤따라 붙었다.

“같이 가요.”

김 주임을 비롯한 네 명의 인원이 지상으로 향했다.

모두는 지상으로 향할수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걱정과 우려, 흥분 따위를 억누르지 못했던 이들의 말수가 적어지고, 지상에 다다를 때쯤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지상에 도착하자 이들은 천천히 연구소를 벗어났다.

별다를 게 없는 새하얀 공간을 천천히 벗어나던 그들이 위장된 1층 입구에 다다랐을 땐.

이미 많은 이들이 멍한 표정으로 서서 정면을 주시하고 있을 때였다.

1층의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이 기운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김 주임은 가만히 지면의 아지랑이를 보았다.

그 위에 서 있는 희끗한 무언가가 보였다.

점차 또렷해지는.

정령과도 같은 한 여성의 형체가.

“……아아.”

부지불식간에 탄성이 흘렀다.

반투명한 형체는 그 어떤 것도 선명하진 않았지만.

“……!”

여성의 형체는 너무도 선명했다.

모순이다.

하지만 모순이 아니다.

눈으로 보는 여성과 머릿속의 여성은 달랐다.

흐릿하지만 선명했고.

선명해진 만큼이나 그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아…….”

달뜬 신음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과거의 힘.

그것을 손에 넣은 메아리는, 그야말로 퀸이었다.

환각과 쾌락의 종족, 서큐버스의 퀸.

퀸, 마야.

그녀가 온전히 이 땅에 강림하였다.

* * *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던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짙군.’

그녀는 분명히 이 단계를 뛰어넘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 속의 그녀는 이 단계를 거쳐, 종의 한계까지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 힘은 분명히 그녀가 ‘마물’이라 불릴 때의 것이다.

현혹하고 환각을 보이며.

타인의 마력을 갈취하여 생을 연명할 때의 그것이었다.

“…너무 빠지면 위험하지.”

이 현혹은 너무 강렬하다.

자신들이 사라져도 그 잔해가 남아 평생을 괴롭힐지 모를 현혹이었다.

각자가 품은 판타지의 대상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자리할 터.

지워지지 않는 이상형이란 인간관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쿵.

발을 굴렀다.

정우의 발끝을 중심으로 퍼지는 기파가 관람자들을 휘감았다.

각자의 탄성이 뚝 끊겼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환상 속에서 허우적대던 이들의 행동이 멈추었다.

약간의 시간을 벌었다.

더 이상은 정신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정우는 시선을 돌렸다.

“메아리.”

제 힘을 섭취하는 것에 심취해 있던 메아리가 정우의 나지막한 음성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파악했다.

-……이런.

사태를 파악한 그녀는 자신의 힘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은연중에 퍼져 나가던 묘한 향기나 기운은 싹 사라지고, 지면에서부터 올라오던 검은 연기까지 뚝 끊겼음에도.

“예전보다 더 강력하군.”

-…그러게요. 죄송해요, 주인님.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환각에 빠졌다.

“도와줄 테니 빠르게 흡수해. 녹여내는 건 이동해서 하지.”

-알겠어요.

‘지구의 특성인 건가. 아니면 메아리가 강해진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정우는 당장의 사태를 안정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남녀가 섞여 있는 저 집단은 끝도 없는 쾌락으로 빠져들 터였다.

애당초 서큐버스란 종족은 그랬으니까.

때문에 정우는 마력을 휘젓는다.

메아리로부터 흘렀던.

아니, 뿔이 메아리에게 흡수되면서 흘러나왔던 마력을 휘저어 흩어 버렸다.

‘…음?’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메아리의 마력을 흩어 버렸다.

그 와중에 느껴지는 감각은 이전과는 달랐다.

예전에도 정우는 메아리의 마력 정도는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아니다.

‘확실히… 나도 성장했다.’

정우는 그 차이를 아라크네의 마력으로 보았다.

아라크네의 마력을 통하여 느껴지는 메아리의 세세한 감각은 신세계였다.

마치 서큐버스가 된 느낌.

‘…그렇군. 교류(交流)야.’

지금까지는 서큐버스가 자신의 능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여 상대의 정신을 뒤흔드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보다 상세하게 파고들면 아주 미약하게 받아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우습군. 상대의 정신에 따라 꾸며야 하는 환상이 다르고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함에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정우는 마력의 본질과 활용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의외의 성과군.’

미약해 보일 수 있지만 이건 매우 큰 성과였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마법 그 자체를 다시 손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정우는 마력을 읽었다.

흩었다고 생각했던 마력 사이로 남아 있는 잔여물들이 보였다.

메아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스으윽!

정우는 그것을 거둬들였다.

사람들의 멍한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할 무렵.

“……어?”

“왜… 아무도 없지?”

“우리가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사람들은 빈 공터를 가만히 보고 있는 자신과 동료를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지하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 어어? 이거…….”

“도, 도난? 증발? 여, 영상 틀어! 얼른!”

* * *

“……어?”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난 정우를 본 정상수는 깜짝 놀랐다.

“……!”

움찔거린 정상수의 빈틈을 노린 적이 검을 휘둘렀다.

거의 비등한 상대였기에 위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아차!’

정상수가 기겁을 하며 팔을 움직였지만, 벌어진 틈은 꽤나 컸다.

‘왜 하필… 지금 등장해서…….’

정우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갑자기 등장했다가 갑자기 사라진 낙하산이자 수령을 떠올리게 만드는 강자였지만,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욕을 하지 못할 게 뭔가.

플레이어가 되면서.

용병으로 수많은 전투를 경험하면서 이미 죽음이란 단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니미.’

막상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만 했다.

‘저 괴물이라도 이건… 어떻게 못 하겠지.’

곁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간 이동을 한 참이다.

상황 파악이 아무리 빨라도 A급 플레이어의 검은 0.1초 단위로 움직인다.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심장을 파고들 검을 막는 건 불가능…….

‘…엥?’

정상수는 잠시 멈칫했다.

여전히 검끝이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 의외의 기회를 얻은 상대의 눈동자가 멀겋게 보였다.

‘왜 아직도?’

진즉 자신의 심장을 찌르고 들어가야 했을 검의 끝이 여전히 눈알만 아래로 내리면 보였다.

벌써 느껴져야 했을 통증 대신에 상념이 꼬리를 물 듯 이어졌다.

생각도 정상일 때여야 할 수 있는 법.

정상수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움직이지 않는 상대와는 달리.

‘……느려. 하지만 움직인다.’

자신의 움직임은 슬로우라도 걸린 것처럼 느렸지만 움직이고 있었다.

까앙!

쳐 낸 상대의 검끝이 코끝을 스치고 솟구쳤다.

그제야 멀건 눈동자에 경악이라는 감정이 천천히 떠오른다.

씨익.

미소를 지은 정상수의 검이 푹, 상대를 관통했다.

“뒈지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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