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07화 (207/293)

207화

-마탑 (20)

정우는 익히 선언한 말을 내뱉었다.

“마탑을 설립할 겁니다.”

마법사의 탑.

어렵지 않은 개념이었다.

“길드 따위야 알아서 진행해도….”

인상을 구긴 대마법사의 말을 정우가 끊었다.

“길드가 아닙니다.”

“……길드가 아니면? 나라라도 세우려고?”

지원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제임스 밀러를 통해 공표도 했지만 나라는 다른 문제였다.

정우는 대마법사를 가만히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도시.”

“……도시?”

반문하는 대마법사에게서 시선을 뗀 정우가 유지석을 보았다.

“마력분해장치에 대한 가치는 아직도 상당히 남아 있습니다.”

“음…….”

유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치를 협회에서 사십시오.”

“…협회에서 산다?”

“그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더 뛰어난 물건들을 만들 겁니다. 제임스가 지원해 준다면… 보다 빨라지겠군요.”

진실을 언급하는 것처럼 정우는 담담하기만 했다.

“그에 따른 우선권과 중개권을 드리겠습니다.”

“……!”

마력분해장치는 현재의 체계를 뒤흔들 만한 물건이었다.

그에 준하거나 뛰어난 물건이 등장한다면 JM그룹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마력분해장치가 이슈를 일으킨 건,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산업 혁명으로 세계가 변했듯이, 마정석은 그보다 더한 속도로 세계를 변하게 만들었고.

이젠 기존의 모든 체계를 뒤바꿨다.

마정석 분해는 시추(試錐)와 같은 작업이었다.

막대한 재화를 거둬들일 수 있는 근원을 만드는 일.

석유를 대신하는 에너지원이니 그럴 만도 했다.

상당한 대가였다.

하지만 기존의 임대와는 달리 이건 판매였다.

거액의 돈을 벌기엔 좋으나 지속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정우는 그에 준하는 여러 물건에 대한 판매권을 넘겼다.

놓치기 어려운 거액과 지속적인 금액이라면.

‘국회의원들이 좋아하겠군.’

국정에 뛰어든 이들이 환장을 하고 정우에게 땅을 넘길 터였다.

협회에서도 받은 대부분을 넘겨야 가능하겠지만.

‘마력분해장치 건에 대해서만 언급해도 달려들 것이야.’

좁은 영토조차 빈 지역이 많았다.

그곳을 발전시켜 줄 길드의 등장은 국가 자체적으로도 반길 만한 일이다.

마력분해장치는 어차피 벌어질 일에 대한 기름칠에 불과했다.

유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다시 대마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원을 하시겠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래. 그랬지….”

대마법사 질 고메즈는 침음을 흘렸다.

그녀는 살짝 고민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빌런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던 그는, 완전히 반대의 영역에 들어섰다.

빌런에게 가족을 잃은 뇌신이나 빌런 때문에 고향을 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복수심.

그건 주효한 동기 부여이자 변하기 어려운 명분이었다.

때문에 믿을 수 있다.

다만 믿기 어려운 건 단 한 가지.

‘너무 강해.’

차라리 퀘스트가 정우를 돕기로 한 순간 완료가 되었다면 나았을 것을.

강해졌다, 말만 들었지 이건 숫제 괴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너무…….’

너무 강한 게 문제다.

아니, 빠른 시간 내에 너무 강해진 게 문제였다.

대마법사는 말을 아꼈다.

퍼뜩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구겼다.

예전에도 있었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강해지던 사람이.

하지만 결론은 어떤가.

‘그렇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고 나서야…….’

하지만 상황은 그녀에게 의심과 고민의 시간을 주지 않았다.

컥!

각혈과 함께 눈을 부릅뜬 발키리의 입에서 묘한 말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마, 마왕, 그가…… 얻고자 하는 게…… 이, 있었어…. 난, 난 그걸 알아냈는데…….”

* * *

각혈과 함께 드문드문 이어지는 내용은 부정확했다.

“……뭘까?”

질 고메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발키리는 그렇게 말한 것치고는 많은 걸 알지 못했다.

다만 확실히 파고들 만한 주제가 있었다.

“칭 샤오가 가지고 있는 게….”

마왕은 칭 샤오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탐냈다.

마왕의 목을 노리는 발키리였기에 알게 된 사실.

의외의 부분에서 칭 샤오가 부각되었다.

마왕은 칭 샤오의 품에 있는 물건을 탐낸다.

물건인지 사람인지 정확한 건 모르지만, 아무튼 간에 마왕이 찾는 건 칭 샤오에게 있었다.

그런 면에서.

“천운이군….”

질 고메즈는 안도했다.

인천.

칭 샤오가 스며든 곳을 파악한 것은 여태껏 이룬 적이 없는 성과였다.

어쩌면 마왕까지 옭아맬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고문실로 들어간 정우를 보았다.

머릿속이 약간 복잡했다.

“……도시라. 마탑이라는 게 연구도시 비슷한 건가?”

JM그룹의 연구소는 한국의 중소도시 규모였다.

가히 거대한 크기.

그렇다면 정우의 요청이 이해가 되는 수준이었다.

그보다 더한 물건을 만들어 준다고 선언했으니까.

‘지식이 있는 건가? 어디서? 어떻게?’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정우의 성장과 지식에 대해서.

‘리는 무슨 생각으로 한정우를 지지한 거지?’

자연스럽게 ‘리’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예전부터 리는 무언가를 숨긴 사람처럼 보였다.

나라가 달라서.

목적이 달라서 만난 적은 드물었지만, 그는 분명히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대체 무언가를?

질 고메즈는 이제는 그걸 캐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어차피 곧 알게 될 터.’

어쨌든 목적은 같았다.

해결되지 않던 퀘스트의 찬탈자가 한정우로 의심되는 상황.

리의 천명은 자신의 목적과 부합했다.

리가 나라 자체의 전력을 정우에게 바치는 느낌이라 질 고메즈로서는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하고.

“……모르겠군. 머리가 복잡해.”

한숨과 함께 질 고메즈가 머리를 털었다.

고문실 안은 여전히 넘실거리는 살의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살의조차 억누른 채로 고문을 이어 가는 정우의 의지엔 감탄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친구의 목숨을 앗아간, 적을 눈앞에 두고.

하지만 그것도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발키리에게 있어서 마왕은 삶의 목표였다.

그건 꽤나 유명한 내용이었다.

마왕은 대담하게도 자신의 목을 노리는 이들로 협회를 구성해 두었다.

그중에서도 발키리는, 암살로 마왕의 목을 노리는 인물.

스스로의 손으로 죽여야지만 가치가 있다고 언급하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런 자가.

“무너졌군.”

“…음. 더 이상의 심문은 소용이 없겠네.”

“오래 버틴 거야. 솔직히 마왕의 목적에 대해서 말한 순간부터 스스로가 주장하던 가치는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발키리는 무너졌다.

스스로 마왕을 입에 담았을 때부터.

세상을 양분하는 두 세력의 다섯 왕 중 하나가 또 이렇게 무너졌다.

그렇기에 또다시 관심이 일었다.

“대체 무엇이 저자의 정신을 뒤흔든 것인지 모르겠군.”

발키리의 정신을 무너트린 방법.

육안상으로는 그 어떤 특이성도 보이지 않았던 방법이 매우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녀가 정우의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대로 지옥에 빠질 거야?

간만에 정우에게 나타난 메아리가 그 원인이었으니까.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몽마의 여왕.

-내뱉어야만 얻을 수 있어.

그녀는 조용히 발키리의 뇌리를 장악했고, 끝내 그녀의 근원까지 뒤흔들었다.

-좋아! 거기까지만. 더 이상은 언급하지 마…. 그래야 ‘내’가 살아.

스스로에 대한 자문처럼.

발키리는 스스로가 무너진 것도 모른 채 꿈속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정우에게만 보이는 메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캐낼 건 다 캤다.

정우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주인을 잃은 머리가 천장까지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저, 저…….”

갑작스러운 상황에 질 고메즈가 말문이 막힌 듯 손만 허우적댔다.

“망자의 기억.”

하지만 이어지는 정우의 말에 입을 다물고 얼굴을 굳혔다.

그녀도 안다.

망자의 기억이, 말 그대로 죽은 자의 사념을 읽는 능력이라는 것을.

최후의 최후까지.

그녀는 정우의 선택에 작게 신음했다.

처음으로 발키리가 아쉬워졌다.

무너졌기에 모든 걸 다 토해 냈을 거라 짐작하면서도.

목을 벤 흔적은 고문실 곳곳에 남았다.

불과 30초가량.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죽은 자의 기억을 되짚은 정우는 고문실을 벗어났다.

그의 전신은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들었는지 호기심이 가득했다.

질 고메즈는 참지 못하고 입을 뗐다.

아니, 떼려고 했다.

“대마법사님.”

“……음?”

“새로운 마법을 가르쳐 드리죠.”

“……?”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누가 누구에게?

“대마법사의 경지 다음으로 하나의 경지가 더 있습니다.”

그 말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또 하나의 퀘스트.

“……마도사?”

“네. 마도사.”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석이 정우의 직업을 떠올리고는 탄성을 참았다.

질 고메즈에게 언급해 준다고 해놓고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잊었던 내용이었다.

질 고메즈가 마도사라는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걸 어떻게…….”

S급의 벽보다 더 견고한 벽에 가로막혀서 입구를 찾지 못하던 질 고메즈였다.

의외의 상황에서 단서가 주어졌다.

마도사.

대마법사에 이르러 여러 마법을 습득하여 S급으로 만들자 주어진 퀘스트.

찬탈자를 지원하라는 말과 함께 오리무중인 퀘스트의 단서에 그녀는 들썩거렸다.

비록 스킬로 얻은 마법이지만, 그녀의 탐구심은 이계의 마법사와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짧은 대화 끝에 질 고메즈가 볼에 열기를 띤 채로 말했다.

“확실히 지원하지!”

정우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 *

“……미안하다.”

정우는 싸늘히 식어 버린 이진수의 손을 붙잡았다.

사마귀를 닮은 얼굴.

놀리기도 꽤 많이 놀렸다는 게 생각났다.

그와 관련된 여러 추억이 뒤따랐다.

“……저, 정우야.”

“…승민아.”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온 이승민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이트 길드와 협회는 신의가 있었다.

나이트 길드는 반쯤 무너져서 연신 뉴스에 오르내렸다.

길드장조차 무너진 것으로 좋지 못한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들은 죽은 자들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협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당장 이진수는 협회 소속이었으니…….

죽은 자들에 대한 추모는 성대하게 치러졌다.

막대한 위로금이 책정되었지만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은 없었다.

눈물과 고함.

절규와 슬픔만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이틀간 발키리를 심문하고 복수하던 정우가 합동 장례식장에 들어선 건, 이승민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때였다.

이승민은 이진수를 연신 불렀다.

장난기가 많았던 친구였다.

장난 그만 치고 일어나라고, 이진수의 배를 툭툭 쳤다.

큼지막한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지도 못하고.

친구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정우의 심장은 점점 쿵쾅거렸다.

발키리를 죽이며 약간은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던 살의가 전신을 휘감았다.

-주인님.

메아리가 걱정 어린 음성을 보내왔을 때.

정우는 수십의 인원이 터트리던 울음이 모조리 싹 사라져 있는 것을 느꼈다.

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승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가 지켜 줘. 진수의 마지막까지….”

“…저, 정우야. 넌?”

“나…….”

이승민은 끝까지 듣지 못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장례식장을 나서는 정우의 뒷모습에서 답변을 들은 것만 같았다.

‘……다치지 마. 정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