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마탑 (18)
마법과 검은 다르다.
어느 정도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흉내에 불과하다.
쩌엉!
마법사는 오러를 다룰 수 없고, 검사는 마력을 변형할 수 없다.
아무리 S급이라 할지라도.
신체강화마법은 정우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처참할 정도로 부족한 체력.
어린아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체 능력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마법을 배우자마자 행했던 것이 바로 신체강화마법이었으니까.
근력, 민첩, 체력 등의 여러 수치를 급상승시키는 마법이 아니었다면, 토벌에 참여할 체력도 부족하여 업적을 쌓을 수 없었을 터였다.
횡으로 그어지는 검을 몸을 낮춰 피한 정우의 검이 비스듬히 그어졌다.
‘제이.’
암살자였지만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지녔던 제이의 검.
비스듬하게 그어지던 검이 돌연 허공을 찔러 들어갔다.
다급히 몸을 비틀었던 칭 샤오가 어지럽게 검을 휘두른다.
날붙이의 날카로운 굉음이 끝도 없이 울렸다.
“……으음.”
탄성은 침음이 되고, 침음은 당혹으로만 남았다.
정우에 대해 꽤….
‘아니, 대부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러라니!’
그에 따른 충격은 해소되지 않은 채 칭 샤오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정우의 움직임은 조용했다.
그런 와중에도 난폭했다.
서로 상반된 공격은 칭 샤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법과는 달리 이건 결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따금씩 사라지곤 했지만….
‘아니…….’
정우의 검을 쳐 낸 칭 샤오가 몸을 회전하며 뒤로 물러섰다.
정우는 재빨리 그에게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평생에 걸쳐 신체강화마법을 사용한 결과는 오히려 그때가 아닌 지금에 와서야 빛을 발했다.
오러.
마력의 또 다른 이름이자 다른 형태인 그것은 신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데 집중된 능력이었다.
즉, 신체강화마법처럼 사용한다면.
콰앙!
“……다 부술 셈인가요?”
일격에 지면에 구덩이를 만드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는 소리였다.
자신의 검을 피해 거리를 벌리는 칭 샤오를 쫓는 것도.
그의 곁으로 다가가 검을 휘두르는 것도.
신체강화마법의 운용에 익숙한 정우에겐 익숙한 운용법이었다.
오러라는 건.
‘……젠장.’
정우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기연이다.
탱커이기에 친구의 방식을 고스란히 따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검을 휘두르는 것만큼은 가능했다.
덕분에 선택한 검술은 전생의 방식과 맞물려 새로운 경지를 가져다 놓았다.
오러를 운용하는 운용법에 빠르게 적응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삼단창을 사용할 때의 보조적인 역할과는 전혀 달랐다.
친구를 위해 검을 들었고, 검으로 상대를 제압하고자 마음먹었다.
이 순간만큼은 마법을 잊었으며.
그 어떤 친우보다 선명해진 제이의 검술로 자신을 가득 채웠다.
친구를 잃었다는 슬픔과 그에 따른 분노가 칭 샤오 앞에서 희석되고 있는 지금의 기이한 상황은.
‘…정신이 맑다. 운용법이 보이고 활용법이 눈에 들어와. 이전에는 사용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로이 보이기 시작한다. 젠장! 그게…… 저놈 때문이라니.’
놈은 발키리를 구하기 위해 나타났고, 자신은 발키리를 잡기 위해 움직인다.
서로 대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우는 상대의 존재 때문에 성장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빌어먹게도.
전생의 기억 대부분을 떠올린 정우의 괴팍한 성향 역시 이 순간 떠올라버렸다.
바로 탐구심(探究心)이었다.
* * *
마력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마력, 오러, 정령력.
강화에 초점을 둔 게 오러.
순응과 적응에 초점을 둔 게 정령력.
마법은 마력 그 자체를 다루는 유일한 능력이었다.
‘왜 나뉘지?’
분노를 억누르는 탐구심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검사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마법사는 오러를 다루지 못한다.
정령사나 드루이드 등은 전부 정령력을 나름대로 변화시켜 다루며, 조화를 꿈꾼다.
과거 사제의 능력은 신성력이라 부르며 마력과는 별개의 것으로 분류했었지만.
‘…이제는 아니야.’
플레이어는 신성력이 없음에도 치유가 가능했으니 신성력 또한 마력의 범주에 속했다.
‘정확히는 정령력에 가까워.’
조화.
그 조화를 이루게 하면서 신체의 불균형을 수복하는 것이 바로 치유의 본질이었다.
마력은 하나지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더 많았다.
마력에 대한 고민만 놓고 보면 수백, 수천 년에 달하는 세월의 지혜가 쌓여 있는 이계조차.
‘능력에 따른 기운은 서로 다르다고 여겼다.’
검을 쳐 내며 정우는 고민했다.
상념이 머릿속을 파고들었지만 정우의 육체는 빠르게 제이의 검술을 재현해 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하지만 자연스럽다고 해서 ‘공격’까지 자연스러워진 건 아니다.
방어에 치중하자 칭 샤오의 검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이따금씩 정신이 들 때마다 반격을 하긴 했지만, 애당초 칭 샤오의 수준은 뛰어났다.
대마법사에 비견될 정도로.
승기는 빼앗겼다.
정우가 생각에 깊이 빠질수록 칭 샤오는 냉정을 되찾았다.
오러의 사용?
놀라웠다.
마법사인 정우가 오러를 사용한다는 건 분명히 기사(奇事)였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그저 도움이 될 아주 작은 이변에 불과했다.
S급?
지구 전역에 퍼져 있는 마스터도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곧 도래할 것이다.
소드 마스터 따위야…….
기대감이 묘한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분명히 대단한 능력임엔 틀림이 없었지만,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랬던 그의 눈이 다시 꿈틀거린 건.
‘또…다.’
또다시 느낌이 변했기 때문이다.
고요하며 난폭하고, 정신이 없으며 차분하다.
얼핏 대단한 것 같으나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고, 간단히 잊어버릴 것 같았지만 선명했다.
너무도.
칭 샤오가 입술을 살짝 씹으며 큰 기술을 사용했다.
여덟 갈래에서 시작된 난폭한 기운이 정우를 휩쓸었다.
일격(一擊).
네 개의 점에서 시작된 기운이 솟구쳤다.
이격(二擊).
이윽고 떨어지는 검의 파괴력은 태산을 쪼갤 것만 같았다.
삼격(三擊).
어찌나 강한 일격이었는지 방어력이 뛰어난 건물들이 크게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
칭 샤오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린 건 빌딩들의 건재함 때문이었다.
아니, 덕분이랄까.
칭 샤오의 반응은 빨랐다.
당장에 박찬 지면이 아무런 준비 없이 터져 나갔다.
‘……또 결이 안 보여!’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
약점이라고 봐도 좋고, 흐름이라고 봐도 좋은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칭 샤오는 이를 갈았다.
이격(二擊)은 없었다.
폭발에 피어오른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칭 샤오는 발키리의 앞으로 다가가 주변을 경계할 따름이었고, 먼지 너머의 상대인 정우는 잠잠할 뿐이었다.
하지만 칭 샤오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도주하지 못한다.’
그 어떠한 방법을 쓰더라도 도주엔 실패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다!’
결정과 동시에 움직였다.
수많은 아티팩트가 뿌려졌다.
소모품으로 사용하기엔 아까운 물건들이었지만, 칭 샤오는 개의치 않았다.
“…어어?”
또 다른 탐구자가 뒤늦게 반응했다.
얼추 회복된 마력으로 마법을 전개했다.
콰르르릉!
“콜 라이트닝!”
몰려든 먹구름 사이로 기둥에 가까운 번개가 떨어진다.
챙!
“……!”
하지만 수많은 아티팩트 중 하나의 방어막을 뚫었을 뿐이다.
무려 대마법사의 마법이.
하지만 질 고메즈는 당황할지언정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연이은 마법을 발동.
불과 10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세 개의 마법이 칭 샤오를 노리고 쏘아졌다.
하지만 모든 아티팩트가 전부 방어막인 것은 아니었다.
공간 굴절.
마력 약화.
능력 감소 등.
적의 공격을 흐리고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에 집중된 아티팩트의 수가 십여 개를 넘었다.
‘어디서 이런 아티팩트들을……!’
그녀가 경악하는 사이, 칭 샤오는 이미 도주의 준비를 마쳤다.
스스로 만든 물건이자 단 하나뿐인 최후의 보루.
귀환석을 손에 쥔 칭 샤오의 눈이 여전히 뿌연 먼지 너머를 보았다.
‘한정우……. 대체 무엇이 변한 건가요?’
그런 그의 눈빛이 묘했다.
* * *
마력은 오러와 다르고 정령력과도 다르다.
신성력도 다르고 사기와도 다르며, 마나와도 다르다.
‘과연 다른가?’
격렬한 전투치고는 차분한 고민이다.
때에 맞지 않은 배부른 고민.
하지만 정우는 고민을 놓지 않았다.
자신은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오러를 사용했다.
스킬이라는 이름하에.
그 스킬이란 이름이 적용되기도 전에.
‘몸속의 마력을 오러로 바꾼 뒤로도 마찬가지다.’
오러로 바꾸었다고 느꼈다.
보조 직업, 마스터가 마도사를 억누르고 위로 솟구쳤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람의 재능이.
탈부착이 가능한 메뉴판처럼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다.’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재능이 바뀌는 게 아니다.
재능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것의 활용법이 바뀌는 것이었다.
그 활용법이 바로 마력이었다.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의외의 상황.
냉정해지는 머리는 끝도 없이 자아 성찰을 강요했다.
순간적으로 든 의심은 고민이 되고, 고민은 탐구심으로 변하여 들러붙었다.
지식과 같은 체계라면, 정우는 마법을 사용할 땐 오러를 사용하지 못해야 옳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야 했다.
하지만 아니다.
마력을 끌어 올린 와중에도 정우는 오러를 사용한다.
반지에 있을 땐 별반 의문이 들지 않았지만 이젠 존재할 수 없는 존재를 계승하여 이곳에 강림하다시피 한 카이롤레움을 다룰 땐 정령력이 필요했다.
다른가?
다르다.
하지만…….
‘같다….’
전신의 마력을 오러로 변형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마법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땅을 내디디고 몸을 띄워 검을 내지르는 대신.
가볍게 찬 신형이 공간을 넘어 놈의 뒤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초능력에 가까운 염동은 어떤가.
마법을 사용하든 오러를 사용하든, 염동의 사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 같은 마력이다.’
정우는 스스로의 힘을 마나라 일컬었다.
다른 구분이 필요했다.
마력과 마나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선 의문이 앞선다.
‘과연 그럴까?’
고민은 길었지만, 고민에 필요한 시간은 짧았다.
전투는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고, 사고를 확장시킨다.
확장된 사고는 때로는 시간을 쪼개며 늘려 버린다.
지금이 바로 그랬고.
정우는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오러를 뿌리는 와중에도 마력은 존재한다.
찰나의 순간 변환하는 게 아니다.
‘아……!’
정우는 깨달음을 얻었다.
탄성과 함께 정우가 뒤로 물러났다.
전투가 벌어진 이후 처음으로 있는 대치 상황.
그 순간 이를 앙다문 칭 샤오의 검격이 이어졌다.
태산을 허물 정도의 거력이 높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정우는 그것을 가만히 보면서도 당장의 깨달음에 집중했다.
다르다.
하지만 다르지 않다.
같다.
하지만 같지 않다.
무엇의 차이인가.
무슨 이유인가.
그것에 대한 답은.
“……!”
“……!”
이글거리는 대지가 주변을 삼켜 버릴 것처럼 넓어지고 있을 때였으며.
흩뿌린 수십 개의 아티팩트가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대마법사의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있을 때에 이뤄졌다.
뚝.
배터리가 다한 전자 기기처럼 아티팩트가 가동을 멈췄으며.
시간을 역행한 것처럼 들끓던 대지가 잠잠해졌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누군가의 눈동자였다.
한정우.
그의 가라앉은 눈이 두 명의 강자를 압도하듯 일대를 장악했다.
마치.
그가 나약했을 때에 보았던, 사막 고블린의 던전 속의 그 눈동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