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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204화 (204/293)

204화

-마탑 (17)

칭 샤오의 등장.

그건 정우보다도 상황을 지켜보던 대마법사에게 충격이었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이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은신도 아니고 공간 이동도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버레이? 아니… 말이 안 되는데?”

근처에 있던 일반인이 돌연 모습을 바꾸었다.

넉넉한 뱃살의 중년 남성에서 여우를 닮은 웃는 낯의 사내로.

그 변화는 대마법사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그가 정우의 손을 잡고서야 그녀는 반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우의 음성을 듣고서야 상대를 파악했다.

칭 샤오.

마왕을 제외한 네 명의 왕보다도 더 중요한 인물로 지정되어 있는 그의 등장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팔 한쪽으로만 봐주면 안 될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대답은 공중에서 들렸다.

“그쪽에게 물은 건 아닌데요?”

차분한 대꾸에 대마법사가 소리쳤다.

“놈을 잡아!”

빠르게 하강하며 생성되는 여러 마법이 퇴로를 점했다.

그 와중에도 칭 샤오는 정우의 대답만 기다렸고, 정우는 칭 샤오보다 그 품에 안긴 발키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진수를 죽인 살인자.

자신에게서 친구를 앗아간 증오스러운 자.

뇌리를 파고드는 기억과 함께 시야가 정상을 되찾아갔지만.

발키리를 향한 분노와 증오만큼은 도무지 가라앉지가 않았다.

“아직 쓸모가 있어서요.”

“한정우! 잡지 않을 거면 비켜!”

뾰족한 경고와 함께 또 다른 마법이 준비된다.

어지간히도 큰 마법인지 달싹거리는 입술이 바빴으며 치솟는 마력량이 심상치가 않았다.

하지만 칭 샤오도 정우도 그녀란 존재를 무시한 채로 대치를 이어 가고 있었다.

“한정우!”

다시 한번 터지는 일갈.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히 해.”

“뭐?”

처음으로 발키리에게서 시선을 뗀 정우가 어느 정도 다가온 대마법사를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

그와 동시에.

“……!”

사라진다.

치솟았던 마력이.

그 마력을 기반으로 생성되던 마법이.

“……말, 도 안 돼.”

질 고메즈는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누구인가.

S급에 도달한 여러 마법사가 있지만, 그들은 편향적인 능력을 보였다.

그런 그들과는 달리 대부분의 마법을 다루는 이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대마법사’라 불리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마력이 통제를 벗어났다.

시전되던 마법이 취소되었다.

들끓던 마력이 가라앉았다.

마력이라는 걸 바구니에 담아 무거운 추를 달아 놓은 것처럼.

‘반응하지 않아?’

수족과도 같던 그것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매우 느리게 반응했다.

이 모든 게.

‘말 한마디라니……!’

정우의 말 한마디에 벌어졌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경악하는 질 고메즈에게서 관심을 끈 정우가 다시 발키리를 보았다.

어떻게 보면 짧은 틈이었다.

정우는 자신의 감각을 무시한 채로 다가온 칭 샤오가 이 순간을 노리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대비는 했지만. 대체… 뭘 원하는 거지?’

정우가 보기에 그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목적이 뭘까.’

기이했다.

들끓던 분노와 증오.

발키리를 볼 때마다 되살아나는 살의.

그게 희한하게도 칭 샤오의 두 눈을 보는 순간 옅어졌다.

하지만.

으득!

정우는 자신의 심장을 파고드는 낯선 감각을 무시했다.

그리고 되찾아 왔다.

지금 당장 필요한 감정을.

그 변화를 직시한 대마법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음. 하기야…….”

웅얼거리는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몇 발짝이면 닿을 거리.

인간을 초월한 청력조차 저 말은 담아 내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호기심을 다시 억누른 정우의 양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쩔 수 없군요.”

칭 샤오는 한숨과 함께 발키리를 뒤로 던졌다.

바닥을 쓸며 날아가는 그녀의 몸을 반투명한 구가 감쌌다.

“방어막? 음… 저 정도라면.”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대마법사가 침음했다.

상당히 고위급 능력이었다.

‘저 정도 아티팩트면 시간이 걸리겠어.’

대마법사는 정우와 칭 샤오를 힐끗 본 뒤 마력을 끌어 올렸다.

‘아직도……!’

하지만 마력의 반응은 늦었다.

비행기를 타다가 자전거로 달리는 느낌이랄까.

그녀는 질린 듯 정우를 다시 보았다.

‘대체 어떻게 이 정도의 수준을…….’

그사이 정우의 기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신에게 싸늘한 일갈을 날릴 때보다도 날카로운.

‘하지만 뭐랄까…….’

어딘지 모를 인위적인 감각이 대마법사의 기감을 자극했다.

만들어 낸 감정이라.

‘칭 샤오…… 저자 때문인가?’

빌런 협회의 숨은 공로자이자 오버레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을 만들어 낼 정도의 수준을 지닌, 자신들의 후원자인 제임스 밀러를 뛰어넘는 연금술사.

그녀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당장 마력을 움직이지 못하는 대마법사는 한낱 마법사보다도 못한 법이었다.

더군다나.

‘잡는다!’

정우가 이대로 칭 샤오와 발키리를 잡는 게 이득이었다.

관전자로 빠진 대마법사의 시선이 정우에게로 고정되었다.

과연 자신을 억압한 이 기운이 무엇인지.

왜 마력이 이토록 느리게 반응하는 것인지.

그녀는 그 와중에도 탐구에 나섰다.

쿠궁!

묵직한 중력이 주변을 짓누른다.

놀랍게도 칭 샤오는 태연했다.

정우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름 아닌 이진수를 죽인 인물을 감싼 사람.

일전에 가만히 놔두었던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스릉!

놀랍게도 칭 샤오는 검을 꺼냈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애매한 길이의 검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

칭 샤오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에 잠시 멈칫한 정우의 눈이 노기(怒氣)로 번들거렸다.

자꾸만 친구의 죽음을 뒤로 미루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면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면서도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즉각적인 반응이 이루어졌다.

“대화는 물 건너갔고…….”

갑작스럽게 생성된 돌풍을 보면서도 칭 샤오는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럼…….”

하지만 한숨이 끝났을 때.

다시금 고개를 들어 돌풍을 보는 그의 눈엔 기이한 열망이 가득했다.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칭 샤오가 뛰어들었다.

* * *

‘베어진다.’

저 짧은 검은 허공을 베었다.

돌풍을 가라앉히기엔 지극히 허무한 손짓.

하지만 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지면을 들어 올렸다.

파앙!

막 난폭해지려던 돌풍이 맥이 끊긴 듯 산들바람으로 변한다.

하지만 솟구치는 돌무더기가 돌풍을 대신했다.

“나쁘진 않은데…….”

하지만 칭 샤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돌무더기에 담긴 파괴력은 그저 물리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안에 깃든 거력은 이 일대를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빠르다…….’

정우의 전개를 눈여겨보고 있는 대마법사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하지만 칭 샤오는 반응했다.

솟구치는 지면을 박차고.

때로는 검을 휘둘러 지면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단순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맥을 끊는군.’

하지만 정우의 눈엔 칭 샤오의 검격이 보였다.

정확하게 마법이 완성되는 맥을 끊어 가는 검.

기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검격에 정우는 드디어 마력 대신 마나를 움직였다.

“……음?”

즉각 반응한 건 칭 샤오다.

점점 옅어지던 열망에 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과연….’

자신을 압박하던 마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마법이 사라졌느냐.

‘보여 주시죠!’

그건 아니었다.

쿵!

“……!”

휘청거리는 대마법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라진 존재감을 대신하기 시작한 건.

‘산!’

그것은 태산(泰山)이었다.

세상을 아우를 것 같은 바람과도 같은 존재감이 묵직하게 변했다.

‘아니, 단단하다!’

정우를 잘 알고 있는 제이조차 이런 감각을 처음 느껴볼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건 뭐죠?’

이걸 직접 겪은 건 이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하데스뿐이었으니까.

의문에 휩싸였던 칭 샤오가 다급히 몸을 비틀었다.

팟!

‘…피?’

자신의 어깨에서 나는 핏방울을 보며, 그는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

‘뭐지?’

반복되는 질문.

하지만 내용이 달랐다.

그전에는 변한 기운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면, 이번엔 공격이었다.

‘마법의 결이… 보이지 않아.’

칭 샤오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그는 결을 본다.

모든 사물에는 결이 있었다.

어느 결은 단순히 상처를 내는 것만으로도 사물을 파괴시키기도 하고, 어떤 결은 오히려 사물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칭 샤오는 그것으로 연금술을 습득했다.

그는 그만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다.

하지만 막상 그는 ‘검사’였다.

결을 보는 건 비단 연금술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마법도 베어 버리는 검.

사물을 넘어 마력 자체의 결을 느끼고 베는 건, 칭 샤오의 가장 큰 무기이자 장점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사물의 조합을 연구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모든 걸 베는 검을 들 때의 그는 ‘신’과 같은 전지전능함을 느꼈다.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때문에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웠다.

이건 칭 샤오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콰릉!

묵진한 진동과 함께 칭 샤오가 검을 난도질하듯 휘둘렀다.

모든 걸 벨 정도의 거친 움직임.

“……음.”

하지만 튀어나오는 건 답답한 침음뿐이다.

정우의 마법은 끝도 없이 변했다.

들썩이던 대지를 대신하는 건 예고 없이 타오르는 불꽃이었으며, 불꽃이 꺼진 뒤에 등장한 건 날카로운 비수가 된 빗줄기였다.

모든 건 급변했으며 자연스러웠다.

가만히 서서 명령만 내리는 정우의 모습은 기이할 정도로 이질감이 느껴졌다.

때문에 대마법사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마력의 반응이 약간 회복되었다.

‘…….’

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전투에 끼어들거나 쓰러져 있는 발키리를 사로잡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마력을 순환시켜.

“…….”

누군가의 움직임을 따라 할 뿐이었다.

아주 조금씩.

느리지만 예리하게.

정우가 힐끗 눈알만 굴려 그녀를 보고는 다시 고리를 공명했다.

웅웅!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거대한 울림.

‘……진수야.’

그것이 정우의 복잡한 심정에 반응하듯 보다 난폭해져 있었다.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당장이라도 잡아 죽이고 싶은 살심(殺心)이 튀어나온다.

칭 샤오는 훌륭한 검사였다.

오러를 제대로 다루며, 검은 물론 육체까지 활용하는 검사.

마스터(Master).

S급의 플레이어였다.

그런 와중에 제임스 밀러를 뛰어넘는 연금술사였다.

이만한 천재는 따로 본 일이 없었다.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다른 분야에서는 평범 혹은 그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정우는 이진수를 떠올렸다.

그의 무기는 커다란 방패였다.

그리고 그 방패 사이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군용대검 같은 길이의 검이 무기였다.

검은 익숙지 않다.

그나마 익숙해진 건 창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

정우는 사무치게 검이 들고 싶어졌다.

만약을 대비하여 아공간에 넣어 둔 검 하나를 꺼내는 순간.

정우의 기질이 변했다.

모든 걸 압도할 만한 무거운 존재감에서.

“……!”

모든 것을 베어 버릴 듯한 날카로운 존재감으로.

“…거, 검. 검이라고?”

그런 정우의 변화에 칭 샤오가 두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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