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202화 (202/293)

202화

-마탑 (15)

“칫…….”

질 고메즈는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 눈살을 찌푸렸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도 유명한 나라였지만 그녀에겐 딱히 익숙하지 않은 국가였다.

조국인 미국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영토와 인구.

하지만 영토에 비해 많은 인구는 대부분이 서울이라는 수도권에 밀집해서 살았고, 전 세계에서도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축에 드는 도시가 바로 서울이었다.

초기 대응이 가장 훌륭한 나라였다 보니, 온갖 플레이어 기관과 길드의 본사가 서울에 밀집되어 있었고.

과거보다 더 많은 인구가 밀집되는 일을 초래했다.

오천만 명이 넘어설 때와는 다르게 급감해 버린 인구는 아예 서울 근처에 뿌리를 내렸으니.

당연하게도 발전은 또다시 서울과 경기도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빼곡한 건물들과 미로에 가까운 골목길은 당연한 발전의 산물이었지만, 추격엔 방해가 되었다.

“…상처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여력은 있다는 거지?”

괜히 오기가 생겨났다.

질 고메즈의 양손이 한차례 발광하며 그녀를 중심으로 기파가 뿜어져 나온다.

흔적은 발견했다.

다만 그 흔적의 대상이 도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그녀는 조금 난폭한 방법을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바람의 노래, 대지의 부름!”

스킬명을 내뱉음과 동시에 쿠르릉, 지진이 인다.

휘이잉, 광풍이 분다.

지상에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소란이 일기 시작했지만 질 고메즈는 입술을 살짝 깨무는 것으로 무시했다.

이마에 도드라진 핏줄이 이 스킬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짐작게 했다.

“격변 후 건설된 보람이 있기를 바랄 뿐이야.”

격변 후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한 건 다름 아닌 특별 지구의 건설이었다.

협회가 주도하여 설립한 A 지구.

던전 브레이크를 해결한 지역에 거대 길드가 연합하여 건설한 B 지구.

한강을 끼고 남북으로 나뉜 두 개의 특별 지구가 대단한 건, 전방위적인 이능(異能)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이었다.

마정석을 통해 거의 대부분을 해결하는 특별자치지구.

때문에 마력에 대한 방어도는 일반 건물의 수백 배 이상이었다.

‘놈은 작정하고 나이트 길드 때처럼 움직이지 못해!’

여차하면 오히려 공격을 가할 것도 염두에 둬야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제발 그래 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발키리는 대단히 강했다.

정상적인 범주라면 자신조차 골머리를 앓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제아무리 기습에 뛰어난 그녀였지만, 지금의 상태로 자신을 공격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때문에 아주 잠깐.

놈을 움직이게만 만들면 됐다.

쿠르릉!

건물이 흔들리고 막대한 마력이 지면과 지상을 훑으며 쏘아졌다.

경악한 시민들이 겁을 왈칵 집어먹으며 도망치려 했지만 기이한 파동이 자신을 삼키는 게 먼저였다.

다급히 도망치다가 쓰러지는 이.

동료를 밀치고 도주하려는 이.

여러 혼란이 내려앉은 지상을, 질 고메즈는 가라앉은 눈으로 주시하고 또 느낄 뿐이었다.

그때였다.

팟.

무언가가 자신의 마력에 닿자마자 튕기듯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바람의 노래가 그것을 움켜쥐려고 했지만, 상대가 한발 빨랐다.

“찾았다.”

자신의 패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그녀는 미소 지었다.

두 마법을 해제하고.

곧장 블링크로 공간을 넘는다.

두 번의 블링크 끝에 도착한 지역에서 다시금 퍼지는 기감이 황급히 도주하는 적을 찾아냈다.

“놓칠까 보냐!”

표독스럽게 중얼거린 그녀의 신형이 총알처럼 쏘아진다.

비행 스킬에 여러 마법을 곁들인 그녀만의 특제 스킬이었다.

발키리는 빨랐다.

그리고 노련했다.

확실히 그녀를 잡는 건 보통의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하데스, 수르트와는 결이 달랐으니까.

정확히는 스나이퍼와 비슷했고 그 때문인지 둘이 함께하는 일이 잦았다.

흔적도 찾기 어렵지만 막상 잡고 나면 스나이퍼에게까지 이어지는 단서가 풍부한 보물이었다.

때문에 질 고메즈는 전력을 다했다.

쿠릉!

그녀의 마력에 호응하듯 주변이 연신 굉음을 내며 기묘하게 흔들렸다.

가히 막대한 마력.

B 지구조차 타격을 입을 정도의 거센 폭풍이었다.

“……빌어먹을 년.”

정보가 부족했다.

“저 망할 년이 이곳에 있을 줄이야.”

목표에게 정신이 팔린 것도 아니었다.

목표가 협회가 아닌 나이트 길드에 진입하고서야 한국에 도착했지만, 발키리는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 평온하고 안일한 나라에 큰 충격을 주는 것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으로.

한국 3대 길드이자 이 작은 나라에 존재하는 또 다른 S급의 목을 전리품으로 삼는 것도 좋다며, 양손에 목표와 S급의 목을 거머쥔 채 환희의 미소를 짓는 자신을 떠올렸다.

당장 기절할 것만 같은 환희가 밀려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수준을 잘 알고 있었고, 상대의 수준도 잘 알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길드의 비밀 무기도 있겠지만, 상관이 없었다.

그조차 없애면 그만이었으니까.

빌런들의 왕.

자신은 가히 왕에 걸맞은 힘을 보유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여러 아티팩트를 활용하여 잠입에도 성공했고, 목표를 발견하는 것도 당연한 일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일이 틀어진 건 다름 아닌 목표를 발견했을 때였다.

헌터(Hunter)라는 네임으로 불리며 자신들을 구별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파악된 한정우.

그를 잡을 미끼 중 하나.

그의 가족보다 더 잡기 쉬운 미끼가 오히려 사냥꾼을 발견해 버린 것이었다.

고작해야 B급.

한 손가락으로도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버러지의 발악에도 그녀는 가볍게 웃었다.

길드 전역에 소란이 퍼져도.

그 길드 건물을 가득 뒤덮고 있는 여러 방어 체계가 작동해도, 그녀는 무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이곳에 설치된 대부분의 방어 체계를 알고 있었으니까.

특별 지구.

훌륭하기까지 한 계획이었지만 빌런들이 그 틈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건설에 참여했고, 여러 보안을 뚫고 기술이며 사람까지 심어 두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과거 정우를 잡을 때 벌어졌던 CCTV 무력화 사건 또한 꽤 고위직에 있는 빌런이라면 어렵지 않을 수준이었다.

새로운 도시이기에 자신들이 끼어들 틈이 많았다.

나이트 길드 역시 마찬가지.

엄선하고 선별했다지만, 3대 길드 건물 건설엔 모두 빌런들이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세계를 암약하면서도 지금까지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모르는 게 있었다.

3대 길드쯤 되면 가지고 있는 비장의 무기가.

하필이면 특정 스킬에 대한 대대적인 무력화라는 것.

그리고 그 스킬이 바로 ‘암습’에 관련된 것이란 점이 그녀에겐 예기치 않은 악재로 작용했다.

전리품으로 생각했던 길드장의 전력 또한 예상보다 출중했으며, 암습 관련 스킬의 사용이 버거워진 상황에서 그녀는 자신의 이점을 버리고 정면 대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초지일관 밀어붙이는 건 발키리였다.

여차하면 건물의 방어벽조차 무너트릴 정도의 일격을 날리며, 전투를 일부러 확장시켰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 전투에서 목표에게 ‘독’을 주입했다는 점이었다.

길드장에게 날리려던 독을 번뜩이는 판단력으로 가로막은 목표는.

‘…얻은 것도 없는데……!’

순식간에 절명했다.

그건 엄연히 실수였다.

일부의 스킬이 봉인된 여파로 범한 실수.

때문에 그녀는 당황했고, 채 피하지 못한 일격을 얻어맞고야 말았다.

지끈.

그녀는 유지석의 추격을 염두에 두고 나이트 길드의 마정석을 자극했다.

마정석의 인위적인 증폭.

이건 연구진이 개발한 하나의 폭탄이었다.

굳이 따로 물건을 챙길 필요도 없이 도처에 널려 있는 마정석을 이용한 폭탄.

인질이 사라진 그녀는 김상훈에게 분풀이를 했지만, 결국 목을 베는 것에도 실패했다.

중상(重傷).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시간이 필요한 상처만을 남긴 채로 그녀는 도주를 감행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튀어나온 추격자만 아니라면 이미 도주에 성공했을 터였다.

그랬다면 불쾌하긴 해도 치욕은 아닐 터였다.

“질……! 지이이일!”

하지만 질 고메즈는 아니다.

뇌신 알렌 보머와 함께 자신들의 뒤만 쫓는 추격자들.

감히 우리 자유자들에게 빌런이라는 틀을 씌워 가둔, 빌어먹을 놈들 중 하나였다.

만전일 때조차 조심해야 하는 상대거늘, 상처를 입고 조금의 무리를 한 상황에서 그녀는 피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마력이 주위를 장악할 때 놀라웠다.

이곳의 단단함이야 자신도 알고 있다지만, 질 고메즈는 이 지역조차 단번에 무너트릴 수 있는 실력자였다.

모든 건물이 어찌 같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을까.

자칫 한두 개의 빌딩을 무너트리고, 상당수의 사상자를 발생시킬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그렇기에 발키리는 대마법사가 증오스러웠다.

모순된 행동.

스스로의 행동엔 스스로가 붙인 명분과 명분을 완성시킬 이유를 덕지덕지 붙이겠지만, 어차피 근본이야 비슷한 살인자인데.

자신들만 의인인 척하는 모습이 역겹기만 했다.

미리 정해 둔 장소에서 땅을 박찬 그녀는 질 고메즈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했음을 직감했다.

‘닿았나? …닿았을 거야.’

명색이 대마법사였다.

마력 감응력이 뛰어날 터.

그녀는 질 고메즈가 자신의 뒤를 바짝 쫓는다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질 고메즈가 끈질긴 추적자라는 건 익히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강대한 육체조차 옅은 피로감에 젖어 들 무렵.

“……!”

갑자기 끼어든 이질적인 감각은 대마법사의 추격을 잠시 멈칫하게 만들었다.

“……뭐야?”

발키리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아해하면서도 눈을 빛냈다.

이건 기회였다.

정해진 장소에서 대략 5분의 시간.

그녀가 온전히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건 고작해야 그 정도였다.

‘그게 부족했었는데….’

갑자기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에 환호성을 내지르며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을 놀렸다.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신형은 건물 사이를 자유롭게 누볐다.

더 이상 질 고메즈의 감각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그제야 그녀는 빌딩의 그림자 사이로 녹아들었다.

숨을 죽이고, 마력을 지우고.

존재 자체를 없애는 찰나의 작업은 너무도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옅은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쉴 그때였다.

조용하지만 뇌리에 꽂히는 낮은 음성과 함께 한기가 몰려들었다.

“……숨었나?”

‘……뭣?’

다가오는 느낌은 없었다.

감각 자체가 마비가 된 것만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음성이 자신에게만 들리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타닥타닥.

요란스럽게 내달리는 시민들의 고개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 판단은 빨랐다.

음성의 존재가 자신의 위치를 대강이나마 파악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파악과 생각은 찰나에 이루어졌으며, 반응 역시 즉각적이었다.

수풀에서 튀어나오는 뱀처럼, 빌딩의 그림자 일부가 쭈욱 늘어진다.

그 또한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흔적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대단했지만.

발키리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설마…….’

발키리는 확신했다.

‘정확하게 날 봤다.’

보지 않고 느끼지 않아도 판단은 섰다.

정확하게 꼬리를 잡혔다고.

그렇기에.

‘사신의 낫.’

그녀는 방향을 돌렸다.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음성과는 달리 느껴지는 기감이 없었기에.

‘강하든가 감지 능력만 뛰어나든가.’

둘 중 하나의 기로에서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질이 오기 전까지 처리한다.’

양손이 검게 물들고 두 눈에서 귀광이 흘렀다.

순식간에 공간을 점하듯 뛰어넘은 그녀가 흐릿한 존재감을 향해 양손을 휘둘렀다.

호랑이의 앞발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상대를 찢어발길 듯 쇄도했다.

아니.

“……어?”

쇄도해야만 옳았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터져 버린 멍한 음성처럼.

터무니없이 허약하게 사그라들어 버린 일격은 그녀의 정신을 일순간 앗아 갔다.

그리고 느껴지는.

“……헉?”

목을 감싸는 억센 손길에 경악했다.

다급히 내지른 일격이라 하지만 이렇게 가볍게 무력화될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생한 잠깐의 머뭇거림.

그 찰나의 순간에 목을 옥죄는 손길은 그녀의 예상엔 전혀 없는 사건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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