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마탑 (13)
마법사들의 지식은 탑에 쌓인다.
이건 당연한 법칙이었으며 지식이었고, 통념(通念)이었다.
마법의 종류는 크게 여섯 종류로 나뉜다.
불, 물, 바람, 대지의 자연계 마법과 저주나 환각 따위의 대응법을 연구하는 환각계 마법.
그리고 전격이나 중력같이 비주류의 수많은 마법을 연구하는 전체 마법까지.
설립자 혹은 여러 의미의 명칭을 가지고 있는 탑은 후에 각자 추구하는 마법의 색에 따라 간편하게 불리기 시작했다.
불은 적탑, 바람은 녹탑 등으로 불리게 된 것처럼.
때문에 청탑은 ‘물’과 관련된 계열을 위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들의 집합체였다.
이따금씩 가뭄이 인 대지에 비를 뿌리기도 하고, 홍수를 다스리기도 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이미지는 매우 훌륭했지만.
아무래도 파괴적인 부분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연계 중에서는 가장 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것이 변한 건.
‘나 때문이었지.’
정우는 오랜만에 기억을 떠올렸다.
청탑.
그렇게만 인지하고 있던 장소의 마법이 새롭게 떠올랐다.
오랫동안 전승되던 체계.
그것을 뜯어고치던 자신.
물로 시작하여 모든 마법을 거머쥐던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
오랜만의 문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쿠릉.
짧은 굉음이 손가락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뿜어져 나오는 그것은 이전의 물뱀보다 월등히 커진 형태로.
“…요, 용?”
“용이다!”
“드래곤…이 아니라 동양용이라고?”
일견 용과 같은 형태의 그것이 갑자기 허공에 떠올랐다.
[ 물의 정령이 진한 물의 마력에 진화합니다. ]
쩌적!
물의 정령이 덩치를 불려 나갈 때마다 생기던 반지의 균열이 이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더니.
쩡!
이내 산산이 조각나며 부서졌다.
이윽고 완성되는 용의 머리가 정우를 가만히 주시한다.
정령력과 마력은 다르다.
마법사라고 정령을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다.
마법과 정령의 운용법에는 엄연히 차이점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에 국한된 문제였다.
대마법사의 수준 정도라면, 마력을 정령력처럼 바꾸는 게 가능해지고.
‘그런 수준이 되면 정령을 부르는 게 당연해지지.’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느낌만큼은… 여전하구나.’
-이건… 꽤나 흥미로운 세계로구나. 아이야.
과거 자신이 청탑의 마스터로 있을 때의 존재감만큼은 여전했다.
‘……오랜만이야. 카이룰레움.’
* * *
[ 마력 : 200 ]
한 지역을 몰살한 대가는 곧장 반영되었다.
드래곤볼을 모아 소환한 용신처럼, 하늘에서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낸 용의 마법은 위협적이었다.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솟구치는 수십 개의 물기둥으로부터.
[ 마력이 1 성장하였습니다. ]
알람이 이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으로 네 수고를 덜어 주었노라. 아이야.
정령은 소환자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교감을 가진다.
메아리와 정우가 생각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정신적인 교감이 이어지는데 정령의 경우는 보다 심했다.
소환(召喚).
그것은 소환자의 존재에 자신을 맡기는 행위로, 소환자의 마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소환자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았다.
메아리보다도 더 정우와 밀접하며 가까운 존재가 바로 카이롤레움.
-꽤나 흥미로운 능력이로구나. 지정된 목표를 알아내는 능력이라니.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로고. 아이야.
카이였다.
카이는 등장과 동시에 정우의 능력을 파악하여 활용했다.
그건 메아리조차 불가능한 영역.
오로지 소환자의 능력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정령만의 전유물이었다.
덕분에 정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악의의 발견.
빌런을 구분 짓는 그것을 자신 못지않게 사용할 수 있는 이의 등장은 환영할 만했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불만이 약간은 생겨났다.
-나는 알지 못한단다. 아이야.
자신의 최후.
최후와 관련되어 당연히 벌였을 전투.
아쉽게도 카이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너와 내가 만난 세계에 대해서는?’
-음…… 그 부분이라면 언급할 게 있겠구나. 아이야.
달갑지 않은 ‘아이야’ 소리조차 반가운 내용이었다.
잡초 같은 세계수의 씨앗을 제거한 이후, 제이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대화를 나눴지만 음성은 간헐적으로 떨렸고, 진군을 명령하는 음성은 단호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그 와중에 기사를 내고, 천명을 할 정도로 무리한 제이는 분명히 쓰러진 채로 회복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을 것이다.
때문에 묻지 못했다.
과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떠한 일들을 벌인 건지.
추후에 대답해 주겠다는 말에 겨우 조급함을 억누른 채로 정우는 하데스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 상황에서 카이의 말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하지만 장소가 적합하지 않구나. 조급함으로 움직이는 중이니, 대화는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이는구나. 아이야.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빌런의 수는 많았다.
협회 혹은 각국에서 판단한 것보다도 더.
“……질리는구만.”
장상수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어찌 이런 놈들만 모아 놨니.”
하데스의 영역에는 필연적으로 네크로맨서와 흑마법사가 많았다.
더군다나 암살자 따위도 많았기 때문에 북한 플레이어들은 꽤나 피곤을 느꼈다.
“벌써 아홉 시간이오.”
“끄응. 저, 분은 멈출 생각도 아니 한다.”
물량전이 펼쳐지고 암살자가 틈을 노리고 달려드니, 제아무리 용병으로 이골이 난 이들이라 하더라도 지치는 건 당연했다.
더군다나 던전과는 달리 지구에서는 마력 회복력이 떨어진다.
꽤 넓은 영역을 손에 넣었다.
중국이 이를 인정할지는 차후 문제였지만.
‘우리 문제는 아니지.’
장상수를 비롯한 북한 플레이어들은 그 문제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수령 혹인 전투 도중 원수(元帥)의 직함을 받은 사내의 몫이었다.
“이거 꺼버릴까?”
“그리되겠소? 잘못하믄 경을 치오.”
장상수는 어깨를 늘어트렸다.
전투보다 이 비타에서 떠오를 다음 내용이 더 버거웠다.
“중국을 이리 무시해도 되겠니?”
“수령께서 알아서 하실 거요.”
“그거야 그렇디. 우린 명만 따르면 되는 거요.”
북한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순박했다.
용병으로 닳고 닳았지만 ‘리’라는 유례없는 성군을 만났기 때문인지.
적어도 자신들에게 무슨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전투만 벌어지면 굶주린 늑대처럼 노련하게 사냥을 하는 이들이었음에도, 대화는 가볍게 흘러갔다.
정우는 장상수를 비롯한 ‘대장’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저 아이들의 충성심은 기이할 정도로구나. 꼭 네 마탑의 아이들 같구나. 비록 그 대상이 다르더라도….
카이는 북한 플레이어들의 생각을 읽은 듯 흥미로운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늘 높게 치솟았던 거대한 덩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반지에서 소환되던 물의 정령보다도 더 작은 크기의 용이 정우의 목을 목도리처럼 휘감고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불편해 보이지만 다니엘 때부터 익숙한 자세였다.
묘한 향수 속에서 정우는 장상수의 곁으로 다가갔다.
빌런과 북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의 전투로 일대는 전쟁과 비슷한 형태로 무너져 버렸다.
“……아.”
정우가 다가오자 화들짝 놀란 장상수가 고개를 숙였다.
‘원수라……. 웃기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북한의 원수 직위를 받았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이 혼재되어 있는 정우로서는 어색하고도 웃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도 확실히 제이가 틀을 제대로 만들었다.’
말 한마디에 일말의 부정적인 감정조차 내비치지 않는 복종이라니.
그것도 생각의 자유를 지닌 상태의 판단이기 때문에 정우는 더더욱 놀라웠다.
카이의 말대로였다.
‘마탑의 충성심과 비슷하군.’
거기까지 생각한 정우가 장상수를 향해 물었다.
“비타로 연락이 옵니까?”
모호한 질문이었지만 장상수는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한 듯 어색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에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럴 때가 지나기도 했죠.”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중국은 일본보다도 더 무너진 나라였다.
그나마 두 명의 S급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진즉 무너져도 무너졌을 나라.
그만큼 하데스의 영향력은 중국의 상정을 갉아먹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중국은 네 명의 S급을 보유하고, 이백여 명의 A급이 존재하는 대국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대부분이 빌런이라는 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라운 사건이기도 했다.
중국의 장웨이 주석은 지금의 순간이 혼란스러울 터였다.
북한을 두고 보자니 무력감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불쾌하고.
제재하자니 그럴 힘도, 능력도 없었다.
A급을 위시한 천 명은 상대한다고 치더라도 리가 움직이는 순간, 중국은 오히려 북한에게 집어삼켜져 버린다.
때문에 주석이 한 판단은 하나였다.
적당히 위신을 살리면서 지원을 해주어 하데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
북한의 위세에 조금 기대야 하는 치욕스러운 일이 생기겠지만, 장웨이는 자신들은 언제고 승리하는 민족이었다며 이 기회에 다시금 세계를 노릴 초석을 다지겠노라 다짐했다.
“잠깐만요. 그 압박이 이곳에서 나가라는 게 아니라….”
“협조 요청입니다. 대가를 치를 테니 세계적인 이미지 그대로 용병으로 굴어달라는.”
장상수가 불쾌한 듯 짧게 혀를 찼다가 아차 하고는 고개를 더욱 조아렸다.
“음…….”
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북한의 정치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어차피 ‘내’ 세력이 될 이들이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어. 중동이야 테스트만 거치면 될 테고.’
정우의 눈이 번들거렸다.
‘차라리 움직이자.’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짧았다.
“주석을 만나 보죠.”
“…음. 그럼 진행은….”
장상수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에서 수입한 물건, 빌런 탐지기의 효능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 반경은 실제 제작자인 정우의 능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좁았다.
북한이라면 모를까.
컨트롤 타워를 다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빌런 탐지기만 믿고 움직이기엔 중국이란 나라는 넓어도 너무 넓었다.
“이 친구가 대신 진행하고 있을 거예요.”
정우가 자신의 어깨에 있는 카이를 툭 건드렸다.
-또 귀찮은 일만 골라서 시키는구나. 아이야.
심드렁한 표정이었지만 정우의 어깨에서 두둥실 떠오르는 카이였다.
‘곧 돌아올 테니, 알고 있는 걸 말해 줘.’
-으음. 추론이야 너의 영역이었으니 열심히 고민해 보거라. 아이야.
“……히익.”
장상수는 작아진 용이었지만, 자신에게 다가오자 질린 표정을 지었다.
A급의 끝.
S급의 벽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였기에 저 작은 동체가 가진 어마어마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후계자인가?’
카이와 정우를 번갈아 본 장상수는 그런 생각을 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철저히 음지에서 키워진 리정환에 대해서 아는 인물은 적었기 때문이다.
원수라는 직함에 전권을 위임받은 것까지 맞물려 후계자란 단어를 떠올렸지만, 막상 비타를 강타하는 ‘마스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었다.
‘설마…….’
장상수가 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비웃었다.
정우는 강했다.
하지만 수령이 말하는 한 ‘탑’의 수장이 될 정도로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더불어 수령을 밑에 둘 정도로 나이가 있거나 존재감이 거대하진 않았다.
아무리 좋게 봐줘야 비등(比等).
그것조차 수령께는 죄송할 따름이었지만, 빌런을 처리할 때나 용을 불러낼 때의 인상이 너무도 강해 장상수는 저도 모르게 정우의 수준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마탑이라…….’
하지만 장상수는 지금의 상황이 묘하게 흘러간다는 것만큼은 확신했다.
중국으로의 대대적인 작전을 개시했고, 백의 연금술사가 러시아에서 하데스의 세력을 지우고 있었다.
여러모로 기이한 상황.
‘설마 저자… 아니, 저분이 그 중심에 있는 건 아니겠지?’
아직 젊은 나이의 청년이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건지.
장상수는 정우의 지시에 따라 중국에 답변을 하면서도 묘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