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98화 (198/293)

198화

-마탑 (11)

일본에서의 발표 뒤에 벌어진 격변이라는 단어는 모쪼록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벌어졌다.

쉴 틈 없이 터지던 던전 브레이크와 무분별한 각성을 통한 혼란.

비명과 피가 난무하던 당시와는 다르게 지금은 나름의 체계가 공고했으니까.

그럼에도 혼란은 생겨났다.

던전의 보상 증가.

G급 던전의 생성률 증가.

던전 브레이크의 감소까지.

루키의 영입이 활발하게 벌어졌고, 보상 증가로 인한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혼란은 단 삼 일을 넘지 못했다.

권력과 무력을 거머쥔 거대 길드와 협회가 힘을 합쳐 진압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던전을 놓고 사상자까지 발생했던 길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거대 길드의 중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모두는 예상과는 다르게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강세기를 비롯한 S급들의 설레발을 비웃는 사건도 벌어졌으나, 세 명의 S급이 반응하지 않음으로 그저 그런 해프닝으로 끝났다.

아무튼 이 짧은 변화 가운데에서도 이득을 본 이들이 있었고, 손해를 본 이들이 존재했는데.

“허어. 교묘하군.”

이득을 본 이들의 대부분은 움직임이 매우 조직적이었다.

이를 눈여겨본 한 명이 폴란드의 빌라누프 궁전 지붕에서 혀를 찼다.

“협회만 조질 게 아니었네. 조질 이들이 이렇게 많아서야….”

파직.

손아귀에 뭉친 전격이 당장이라도 터트려 달라는 듯 요동을 치다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발광(發光)은 없었다.

전격의 번쩍임은 사내의 손아귀에서 완벽히 제어 당했으니까.

“이 아름다운 도시에도 바퀴벌레는 존재한단 말이지.”

우연히 이득을 손에 쥔 집단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극소수.

상황 파악과 집결, 회의와 전투까지.

이 모든 걸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집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허허. 드러났음에도 표면적으로는 건드리기가 어렵다?”

굉장히 머리를 잘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편끼리 전쟁도 벌여 일부러 키운 혼란에 편승하면서, 당위성과 기회를 모두 확보했다.

가까스로 진압하지 않았다면 세계를 뒤엎을.

“그야말로 격변(Revulsion)이 될 뻔했어.”

화마의 씨앗이 뿌리를 내릴 뻔했었다.

과거와는 달리 이 정도로 막았다는 것에 그는 만족했다.

놈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상, 결국 기회만 포착하면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한국에 가봐야 하는데….”

그가 나타났다.

질 고메즈의 말과 유지석의 말은 충격에 가까웠다.

파직.

그의 감정을 읽은 듯 전기가 두 눈동자에 머물렀다.

“왜 여기까지 온 거니?”

그의 눈이 골목을 훑었다.

어느 순간 사라진 도망자를 떠올리며.

“…피에로.”

* * *

“놓쳤어.”

“또?”

털썩 주저앉는 알렌 보머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대체 이 세상에 뇌신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그 질문만 여덟 번째다.”

알렌 보머는 콜라를 받아 벌컥 마셨다.

루크 스미스는 그런 알렌 보머를 보며 앞에 앉았다.

“정보가 새고 있을까?”

“아니. 그냥 놈이 뛰어난 거야.”

입가를 훔치며 알렌 보머가 피에로를 떠올렸다.

과한 움직임에 항상 존대를 놓지 않는 모습으로 상대를 우롱하는 존재.

유원지의 피에로가 생각나는 모습에 알렌 보머는 그를 앞에 두고 피에로라 불렀고, 놈은 그걸 굉장히 만족해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얼굴에 손이 닿지 않은 적은 두 번째야….”

“음…….”

루크 스미스는 침음을 삼켰다.

알렌 보머.

뇌신이라 불리는 사내의 손을 피한 다른 한 명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마왕(魔王).

“피에로가… 마왕의 수준일까?”

알렌 보머가 눈가를 좁혔다.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만약, 이라는 가정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그렇다면… 놈은 마왕보다도 뛰어나다는 소리겠지.”

“…그건 말이 안 되네. 내가 헛소리를 했어.”

마왕이라니.

전 세계의 모든 플레이어를 유린하고 조롱하며 발아래로 두는.

‘그… 날은 여전히 선명한데, 그를 뛰어넘다니 말도 안 되지!’

불가해의 영역에 다다른 포식자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했다.

“문제는 놈의 능력을 모르겠다는 거다.”

“네가 모를 정도면 심각한데?”

“이번 기회에 질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아, 그러고 보니. 한국엔 왜 가는 거라고?”

“만날 사람이 있다고 했어. 꼭 만날 사람이.”

루크 스미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옛날부터 물어보고 싶던 건데….”

“물어봤었어.”

“그랬나? 너흰 뭘 그렇게 찾아다니는 거야?”

“사람.”

“그니까 누구?”

알렌 보머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누굴까.

가끔씩 그런 장면이 보이곤 했다.

푸른색의 망토를 걸친 왜소한 사내의 등이.

‘그 주변에서 용암처럼 들끓던 마력은… 하늘 끝까지 솟구칠 정도로 아지랑이를 만들어 내던 그것은…….’

타인에게는 악몽이라 불리는 마왕조차 우습게 보일 정도로 거대했다.

때문에 알렌 보머의 기억 속의 그는 ‘거대한’ 등을 가진 사내였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뭔 비밀이 이렇게 많은 건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루크 스미스가 화제를 돌렸다.

“대통령이 좀 보자던데.”

“백악관?”

“아니. 이 근처에 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럼 싫어.”

“왜?”

“안 그래도 날 인지하고 있어. 그게 난지 아니면 그냥 시선을 느낀 건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을 만나면 내 존재가 발각돼.”

“그럼 내 선에서 처리하지.”

“그래.”

알렌 보머가 일어나 루크 스미스의 어깨를 툭 쳤다.

“가게?”

“어.”

“아! 이걸 말하지 않았네.”

“뭘?”

알렌 보머가 고개를 돌려 오랜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리가 움직였어.”

“……!”

알렌 보머가 상체를 돌렸다.

“……누구?”

단번에 관심을 가지는 알렌 보머를 보며 말을 이었다.

“본인이 나선 건 아니지만….”

“움직였다는 게 중요하지.”

알렌 보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미국의 무한한 지원을 받는 알렌 보머조차 리의 전투와 상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간의 행보가 오히려 의아한 상황이었다.

“리의 활동이 멈춘 게 언제부터였지?”

“음. 대략 3년 전?”

“…그렇게나 오래됐었나?”

“노스의 활동은 여전히 활발했으니까.”

“음…….”

알렌 보머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피에로를 쫓느냐.

‘아니면… 나도 넘어가 보느냐.’

그렇지 않아도 이 일만 해결하면 한국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1년 만에 S급이라……. 놈조차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졌다면 그녀가 말하던 ‘찬탈자’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찬탈자.

대체 무엇에 대한 찬탈인지, 무엇을 찬탈하는 자인지 알지 못함에도.

모두는 한 명을 기다려왔다.

‘퀘스트…. 보상이 기대되니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퀘스트 때문에.

그리고 그 보상 때문에.

혹은 궁금증 때문에.

각기 다른 이유를 지녔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점이다.

“어디로 움직인다고?”

“중국.”

“파핫!”

대답을 듣자마자 알렌 보머는 웃음을 터트렸다.

빤히 보이는 움직임.

하지만 더없이 적절한 판단.

“하데스가 없구나? 중국에.”

“상황이… 묘하긴 하지.”

“한 팔 거들어. 이 기회에 그쪽부터 정리하는 게 낫지. 미스터 유도 움직일 거고, 그쪽은 정리될 거야. 이 기회에 중국을 짓누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전달하지.”

“조금은 조심히 움직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

“드러낼 거면 대통령을 만나고.”

“그럴 시간 없어. 나중에 술이나 먹자고 전해.”

“…끄응.”

루크 스미스가 앓는 소리를 내며 손을 휘저었다.

사라지는 알렌 보머를 보며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던 그의 비타가 짧게 울어댔다.

천천히 기사를 보던 루크 스미스의 눈이 커진다.

“…자, 잠깐만…….”

지구 제일의 용병 국가.

뇌신, 대마법사와 동일선상에 놓이며 S급 플레이어 중에서는 최상위권에 속한 인물.

성별만 공개가 되었을 뿐, 외모와 나이를 비롯한 어떠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은 베일에 싸인 사람.

리.

중국으로 자신의 세력을 보낸 그가 돌연 괴이한 발표를 해버렸다.

특유의 검은 가면을 쓰고 나타난 그의 말은 여전히 짧았다.

다만 그 파급력은 종전의 것들을 모두 압도할 정도로 엄청났을 뿐.

[ 나는 ‘청탑’ 소속이다. 나의 마스터의 결정에, 나와 내 모든 세력이 움직일 것이다. ]

누군가에 대한 지원.

아니, 충성심.

“…리가. 누구의 하수인이라고?”

세상을 아우를 수 있을 정도의 강자가 누군가의 수하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

세계가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 * *

정우는 허탈하게 웃었다.

“살려 놨더니 뒤통수를 요란하게 치네.”

청탑.

자신이 수십 년간 몸담았던 장소이자, 최후 도시의 기틀이 되었던 곳.

제이에게 있어서 그곳은 후회하며 죽어 가던 자신을 받아 준 유일한 세계였으며, 지켜야 할 군주가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였다.

“제임스, 대마법사… 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지원한다는 세력이 생겼다.

그저 성장을 목표로 달려왔을 뿐인데 말이다.

세상은 리의 발언에 주목할 것이다.

네임드인 그의 발언은 세계의 증시까지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파급력이 컸으니까.

그런 그의 ‘마스터’가 누구인지.

그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전 세계의 조직이 움직일 터였다.

“제대로 처리하라고 등을 떠미는군.”

리의 발언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스스로를 드러낼 준비를 하라는 뜻.

‘몰아가고 있긴 한데… 어차피 하려던 일이야.’

드러내는 것.

그건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동하던 정우는 묘한 기류를 느꼈다.

‘읽었군.’

정우와 마찬가지로 비타를 소지한 이들이 기사를 읽었다.

B급 이상의 관리자들.

짧게 소란스러웠던 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하는 건 필연이었다.

유일한 외부인.

누구인지 모르지만 누구인지 물을 수조차 없는 사람.

북한은 그간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군대와 플레이어만큼은 과거와 비슷했다.

명령에 복종하고, 의문을 품지 않는 문화.

그것만큼은 이상준도 신경을 써서 관리를 했으니까.

모든 건 다니엘. 즉, 정우를 위하여.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표현마저 억눌린 건 아니었다.

“저거이 무엇이니?”

“당에서 지시가 내려왔어. 입 다물라.”

“궁금하잖아.”

“설마… 수령께서 말한 아이가 저 아이 아니니?”

“아이라니. 누군지도 모르는데.”

“약해 보이잖아. 운동은 좀 한 거 같아도….”

“누군지도 모르는데 같이 움직이는 것도 거북하다야.”

“네가 한번 물어보라.”

“내가? 왜?”

“네가 가장 강하잖니?”

“……약하다고 안 따를 거니?”

“따라야지. 수령께서 하신 말씀인데 따를 거긴 한데… 우리가 놀러 가는 건 아니지 않니.”

“그래. 한번 말 좀 해봐.”

“실력은 알아야지.”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팀장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수령의 지시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파악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 수준은 알아야지.”

“잘 생각했다야!”

말린 느낌이 들긴 했지만 천천히 정우에게 다가가던 A급 플레이어 장상수는.

“……!”

때마침 고개를 돌리는 정우와 시선을 마주쳤다.

들었나? 고민하기도 전에 정우로부터 상당한.

‘…어, 어?’

아니, 엄청난 존재감이 뿜어져 나왔다.

장상수뿐만이 아니다.

A급 모두의 시선이 황급히 정우에게로 향하고, 뒤이어 B급 이하의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보며 한기에 몸을 움츠렸다.

천 명.

모든 인원이 정우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엔 단 1초면 충분했다.

장상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당황한 동료들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너네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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