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97화 (197/293)

197화

-마탑 (10)

단 한 명의 절대자가 다스리는 국가는 이런 게 좋았다.

“말 한마디면 충분하군.”

네 세력 좀 빌리자, 그 말에 이상준은 리정환을 움직였다.

리의 비밀 호위이자 전권 대리인인 그의 명령에 북한은 별다른 잡음 없이 상당한 수의 플레이어가 집합을 마쳤다.

“한국에선 알고 있어?”

“모르고 있지. 알아도 상관없고.”

“하기야. 하! 그런데 신기하긴 신기하네. 북파 공작원 출신이라니.”

놀랍게도 이상준은 남한 출신이었다.

북파 공작원으로 북한에 잠입을 했다가 격변을 만났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을 휘어잡아 기존 체제를 전복시켰다.

이계의 기억과 단련된 육체를 지닌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불과 반년 만에 아이들까지 북한으로 불러들였다.

정우는 그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따지고 보면 통일이 된 셈이었다.

북한의 수령이 대한민국 국민이었으니까.

“어쩐지… 묘하게 한국과 분위기가 좋더라니.”

유례없는 친북, 친남 정책에 남북 간의 분위기는 매우 훌륭했다.

“나도 네가 한국에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이상준이 고개를 돌렸다.

“인연이 있네.”

정우도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서른 명의 A급 플레이어들.

그보다 배는 더 많은 B급 플레이어들까지.

C급 이상의 플레이어 수만.

“일천이십 명이야.”

“……많네.”

일천이 넘었다.

명령 한 번에 움직이는 수만 그 정도였다.

세계 곳곳에 퍼져 던전을 공략 중인 플레이어 수가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걸 염두에 둔다면 가히 충격적인 숫자였다.

“이 많은 플레이어들이 네 백성이 될 거야.”

“난 영주가 아닌데?”

“될 거잖아. 탑주.”

“가끔은 네가 안나보다 날 잘 아는 거 같아.”

“세력이 필요하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중국.”

정우의 즉답에 이상준이 눈가를 좁혔다.

“우연이군.”

“왜?”

“‘그림자단’이 파견된 장소가 중국이거든.”

“작명은 여전하군.”

“내 정체성이니까. 네가 내게 구해 준 능력이고….”

“더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시간이 없으니 나중으로 미루자. 한 놈이라도 더 찾으면 그때 술이라도 한잔하면서 하고.”

가히 장관이었다.

일천의 강자들이 광장에 도열하여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그 모습을 보며 정우가 물었다.

“내 권한은?”

그 말에 이상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전부! 나의 왕이여.”

* * *

왕(King).

그것은 고래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자리였으며, 역사를 주도하는 자리였다.

“왕이라…….”

노인은 손에 쥔 물건을 달그락거리며 굴렸다.

묵색의 총알.

노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나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래서 더 탐이 나지.”

그의 등장은 모두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거역할 수 없는 자.

노인 역시 그를 그렇게 느꼈다.

평생을 사채놀이만 하다가 이젠 시체놀이를 하는 왕의 충성된 개와.

닮고 싶기에 뛰어넘고 싶고, 뛰어넘고 싶기에 죽이고 싶어 하는 미친X.

타인의 재능을 강탈하여 불이라는 힘을 손에 쥔 가짜까지.

모두는 왕을 만났고, 그에게 패배감을 느꼈으며 각자의 감정으로 그를 대했다.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자신은 그의 능력보다 그의 자리가 탐이 났다.

힘의 논리가 중요한 이곳에서, 왕의 자리가 가지는 힘은 무력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왕이라…. 내가 가진 게 거짓이라는 점이 불쾌하군.”

앞을 다투며 왕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협회를 나누는 네 명의 왕조차 단 하나의 진실된 자리를 염두에 두고 움직였다.

마왕은 타인이 경외심을 담아 ‘왕’이라는 칭호를 붙였지만, 자신들은 그저 스스로가 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타의(他意)와 자의(恣意).

그 차이는 매우 컸다.

때문에 모두는 악착같이 세력을 길렀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변화는 매우 긍정적이며 훌륭한 기회였다.

칩거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왕’을 끌어내릴, 절호의 기회.

“불과 며칠일 뿐이지만 확실하다.”

발키리나 수르트 역시 눈치를 챘을 터였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마왕이라는 든든한 배후를 둔 채로, 누구보다 넓고 탄탄한 일대를 거머쥐고 있는 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만약을 대비하여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손을 대는 순간 먹잇감은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감히 죽음의 신이라는 이명을 가진 사갈 같은 노인네가 어디로 간 거지?’

스나이퍼라는 간단한 이명과는 달리 한 지역의 패자이자 빌런 협회에서도 ‘정보’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에선 오히려 움직이기가 꺼려졌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툭!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왕이시여, 보고드릴 것이 있나이다.”

“무슨 일이냐?”

보고자는 스나이퍼의 손아귀에서 이리저리 굴려지던 총알이 엄지 끝에 걸리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저게 발사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었다.

자신의 보고는, 왕의 상념을 깨트릴 정도로 값어치가 높았으니까.

“리가 움직였나이다.”

과연.

“……리? 노스 코리아의 리 말이더냐?”

왕은 총알을 으스러트리며 반응을 보였다.

보고자는 더욱 고개를 깊게 숙였다.

“한 치의 거짓도 없나이다.”

보고자의 정수리를 주시하던 스나이퍼가 손을 휘저었다.

스윽.

사라지는 보고자의 뒷모습을 보며 스나이퍼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골치가 아프군.”

평생에 걸쳐 후회하는 일 중의 하나가 바로 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놈을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무려 두 명의 왕이 나선 작전이었다.

그럼에도 중상을 입힌 것 외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자신 역시 당시의 피해로 1개월간 요양을 해야 했고.

발키리 역시 2개월의 병상 신세를 져야만 했다.

치욕 그 자체인 기억.

몇 년이나 잠잠하기에 혹시나 했었던 가정이 무산이 되어 버렸다.

“일천이라….”

북한의 감시자는 일천이 넘는 수가 움직일 때에야 보고가 진행되도록 사전에 지시가 내려져 있었다.

일천의 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데스의 영역을 먹어 치울 생각이로구나!”

바로 하데스의 군세가 그 정도의 수가 되었으니까.

중국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북한의 지도자는 항상 하데스를 경계했다.

스나이퍼는 반지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무슨 일이지?

-뭔 일이죠?

곧장 음성이 들려왔다.

“보고가 들어왔는데… 내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들 알 만한 건이라서 말일세.”

-전투 중이야. 빨리 말해.

수르트의 음성에 스나이퍼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합의에 따라 정보를 공유하긴 하지만.

‘굳이 기다릴 이유도 없지. 전투라… 더 오래 끌었으면 좋겠구나.’

“노스 코리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네.”

-……!

음성만으로도 침묵이 전해져 왔다.

스나이퍼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전해 줬으니 나는 이만 움직이겠네.”

-흐응. 아쉽겠네요. 불의 왕은.

발키리의 희미한 미소와 함께 툭, 수르트가 대꾸도 없이 연결을 끊었다.

-목표는요?

“이쯤이면 알 것 같은데, 혹시 모르겠나?”

-뻔하죠. 복수를 우선시하면 우리를 노릴 거고, 대의를 우선시한다면 중국을 노리겠죠.

“그대 생각은?”

-중국.

“흐흐. 어떤가? 이번엔 아예 그의 목을 노리는 건?”

-나쁠 건 없지만… 아쉽게 됐군요. 불의 왕만이 아니라 저 역시도.

“……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 정보도 들어가고 있을 텐데요? 모르고 있나요?

“‘왕’과 대치할 때까진 협력 관계를 유지하자는 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네만.”

-깔깔. 총에 맞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해두죠.

발키리가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멎었을 때.

-한국에 있어요.

발키리는 의외의 행적을 알려왔다.

“한국? 왜?”

-헌터(Hunter)의 목을 베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귀찮아질 것 같거든요?

“흐음. 헌터가 지금 한국에 있던가?”

-헌터를 찾을 필요는 없더라고요.

“가족을 노릴 셈인가?”

-그렇다면 좋겠지만… 한국의 특수 지구에서 일을 벌이는 건 저도 불편해서….

“그런 것치고는 예전에 한 번 쓰레기들을 움직였던 경험이 있잖는가.”

-어머. 들켰군요.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왜지?”

잠깐의 침묵 뒤에 웃음기 섞인 음성으로 발키리가 말했다.

진득하고 서늘한, 늪과 같은 음성으로.

-알아서 판을 깔아 주는 ‘친구’가 있더라고요. 부디 제 몫만 좀 남겨 놔요. 안 그러면 실망할 테니까.

뚝.

“푸흐…….”

스나이퍼가 웃음을 터트렸다.

즐겁고도 환한 웃음이었다.

거대한 고래의 사체의 대부분을 손에 쥐게 생겼다.

즐거운 웃음을 흘린 스나이퍼가 무기장에서 총기 몇 자루를 꺼냈다.

긴 라이플과 권총 몇 자루.

“싸우고 또 싸우거라. 왕에게 필요한 건, 백성과 영토이니… ‘짐’은 영토를 손에 쥘 것이니라.”

스산하게 웃으며 스나이퍼가 명령했다.

“출정이니라!”

* * *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지구 전체로 보면 점보다 작고.

영토 단위로 봐도 허탈할 정도로 작은 나라에 온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는 없었다.

어떠한 영상에도 등장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음성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영상 말미에 등장하는 자막은 그의 의지를 대변하는 듯, 두꺼운 글씨체로 1분가량 가만히 떠 있었다.

[ 돌아왔다. ]

의미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북한.

그 작은 영토에서 송출된 영상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돌아와? 누가?”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고.

“‘리’가 노망이라도 든 건가?”

뜬금없는 멘트에 조롱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본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은, 그저 선전용에 불과한 영상을 모두가 보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의문이 극대화될 무렵.

또 다른 사건의 특보가 세상을 강타했다.

일천의 군사.

용병으로 성장하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또?”

의문과 관심으로 드론으로 찍힌 영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이들도 있었다.

“저게 무슨 짓이야!”

하지만 장웨이는 관찰보다는 분통을 터트렸다.

쾅!

팔걸이를 세게 내려친 그는 손바닥에 느껴지는 충격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를 빠득 갈았다.

“사자가 사라지더니… 이젠 호랑이라고?”

리 본인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저 영상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수년간 잠잠했던 용병 국가의 움직임.

저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면.

“…설마, 준비를 한 건가?”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의심은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설마…….”

하데스의 부재는 중국의 호재였다.

대국(大國).

중국은 세상의 중심이었고 자신은 그런 중심의 지배자였다.

원래라면 부강해야 옳았을 국력이 과거의 수준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한 것은, 전부 다 한 명 때문이었다.

하데스.

죽음의 왕이라고 불리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때문에 북한의 움직임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리라는 걸출한 강자 때문에 하데스는 장백산을 넘지 못하고 중국과 러시아까지만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장웨이는 그게 충격이었다.

대국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이 독버섯처럼 퍼져 있던 사자를, 속국이었던 저 조그만 땅은 어렵지 않게 막아 냈으니까.

하데스를 경계하는 건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하데스가…….”

하데스의 부재를 틈타고 세력을 움직였다는 게 의미하는 건, 주석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뿐이었다.

“리에게 잡힌 건가?”

막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

장웨이는 주름진 눈가를 꾹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잠시 망설인 장웨이가 한숨과 함께 전화를 걸었다.

“유 협회장. 한번 뵀으면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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