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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93화 (193/293)

193화

-마탑 (6)

기억은 온전치 않다.

그건 비단 정우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겪고 살아온 인생임에도 과거를 돌아보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수는 굉장히 적었다.

잊어버리는 것도, 아예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는 것도 많았다.

오히려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더 소수일 정도로, 삶은 길고 사건은 많았으니까.

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떠올리는 건 지난한 일이었다.

자신의 태생.

이계에서의 업적.

친우들과의 사건.

마탑과 도시의 건설.

어둠의 영역.

만 년의 전투.

그리고 최후까지.

굵직한 일들이 떠올랐음에도 정우는 여전히 전생(前生)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전히 기억은 구멍 뚫린 치즈처럼 부실했으며, 심지어 이 사태의 원인이라고 예상되는 자신의 최후와 관련된 일은 깜깜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온전치 않은 기억.

그건 정우를 답답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정우는 나무 문을 앞두고 멈춰 섰다.

도무지 이 감정을 무엇이라 규정할 수가 없어서.

떠오르지 않는 기억 속의 어떤 무언가가 자극이라도 된 듯 정우의 가슴을 헤집었다.

“한, 정우 씨!”

어떤 표정이었을까.

자신을 붙잡는 리 박사의 표정이 당혹과 불쾌함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보고는.

“……아.”

정우는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여기 맞죠?”

“네? 네… 맞아요.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 모습은…… 후우. 아닙니다.”

감정을 가라앉힌 리 박사가 한숨과 함께 정우를 제치고 나무 문 앞에 섰다.

노크를 하자.

“…들어오십시오.”

안쪽에서 음성이 들렸다.

딸깍.

열리는 문.

웅-.

짧게 공명하는 그것.

리의 성향을 알게 해주듯 삭막하고 단출한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커다란 연구 장비까지.

‘비슷하다.’

그것은 언뜻 한국에서 보았던 연구소의 장비와 비슷했다.

하지만 다른 점은.

메아리의 잃어버린 뿔이 자리했던 그 자리에.

후욱-, 후욱-.

유리막까지 관통하여 들리는 길고 깊은 숨소리의 주인이 누워 있다는 점이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플레이어와 짧은 인사와 대화를 나눈 리 박사가 정우를 안내했다.

안내랄 건 없었지만.

리 박사는 남조선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랬다.

문을 앞두고 가만히 멈춰 섰으며.

여러 복잡한 표정으로 뿔을 주시했다.

하지만 리 박사가 당혹스러운 것은.

‘왜… 저런 표정인 거야?’

남조선에서의 여러 표정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환희와 더불어 느껴지는 반가움.

첫 만남의 강렬함 때문에 지속해서 관찰했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짧게 드러났던 감정이.

비슷한 상황에선 전혀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환희? 반가움?

“……한정우 씨.”

리 박사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슬픈 표정이죠?”

정우의 얼굴에 담긴 감정에 대해서.

* * *

철그렁.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소년은 어두운 감옥에서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곰팡이 핀 빵조차 감지덕지할 정도로 주린 상태로.

‘죽겠구나.’

자신의 어린 시절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때부터 자신의 앞엔 단검이 들려 있었고.

무언가의 애정을 갈구해 보기도 전에 그 애정의 고리를 제 손으로 끊어 내야 했으니까.

당연한 인식.

당연한 행동.

태어났을 때부터 당연했던 그것에 의문을 품은 건, 열 번째 살행에 나섰을 때였다.

두려움에 두 눈을 꼭 감고.

앙증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작은 손을 쭉 뻗어.

사정없이 떨리는 몸을 제어하지도 못한 채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한 아이로부터.

의문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목표를 죽였다.

그것만이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소녀라고도 부르기 어려운 아이의 울부짖음이.

‘아빠’라는 단어만 내뱉으며 절망한 듯한 아이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소년의 모든 걸 뒤엉키게 만들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던 살행이 열한 번째에 실패하고.

시작된 실패가 열다섯 번에 이르자 소년은 감옥에 갇혔다.

단 한 번, 도주를 감행했지만 그것마저 실패로 끝났다.

배식은 끊겼고.

벌써 열흘째 굶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눈동자엔 끊임없이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가로막은 걸까.

어렸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다기엔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난…… 왜 그때를 잊지 못하는 거지?’

자신들은 감정이 없어야 했다.

손아귀에 힘이 생기고, 걷고 뛰는 행동이 가능해졌을 때 가장 처음으로 한 건 살인이었다.

자신들을 돌봐 주던 이들을 죽이는 것.

자신을 비롯한 여러 ‘암살자’들은 첫 살인의 성공부터 모든 게 나뉘게 되었다.

실패한 자는.

약을 먹어 기억을 잊은 채로 죽음을 기다리며 ‘아이’를 양육해야 했고.

성공한 자들은 훈련에 돌입하며 암살자로서 길러졌으니까.

소년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우수한 암살자였다.

‘실패? …빌어먹을. 난 도대체 무엇을 한 거지?’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 담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살려달라 애원하는 타깃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음에도.

유독 아이의 모습만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암살에 필요한 여러 기예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자신은 암살자로 키워진 암살자였다.

그렇기에 그간 해온 암살이 성공이라는 걸 머릿속으로는 내뱉으면서도, 과연 그들을 죽인 게 성공이었나 하는 의문이 뒤따랐다.

죽이지 못한 게 실패였을까.

죽인 게 실패인 건 아닐까.

자신을 돌봐 주던 이들을 죽이지 못했던 이들이.

오히려 성공한 건 아닐까.

‘인간’으로서…….

소년은 더욱 웅크렸다.

퀭한 눈으로 열리지 않는 창살을 가만히 주시했다.

이대로 죽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뒤따랐지만…….

‘사과……하고 싶다.’

처음으로 사과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불가능하겠지…….’

소년은 갈라진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아이는 죽었을 것이다.

한순간에 부모를 잃고, 살해 장면을 목격했으니 제정신이 아닐 가능성도 높았다.

열 번째 타깃은 귀족도 아니었고 부자도 아니었다.

허름한 건물에서 하루하루 겨우 입에 풀칠만 하고 사는 평범한 평민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타깃이 되었고 죽임을 당했다.

거지?

아이가 거지로 살아남는 건 매우 희박한 확률이었다.

소년은 그게 가슴에 남았다.

‘누가…… 이곳을 무너트렸으면 좋겠다.’

단 한 번이라도.

시체라도 좋으니 그 아이를 찾아 사과하고 싶다는, 자신만을 위한 생각을 하며…….

구릉.

그때였다.

살짝 흔들린 감옥의 천장에서 우수수 흙먼지가 떨어졌다.

소년이 천천히 눈알만 굴려 천장을 보았다.

보일 리 없는 지상.

그 너머의 세계를 떠올리며.

‘…이 위라면 훈련장이다.’

이곳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더불어 가장 단단한 공간이기도 했다.

우수수!

또다시 흔들림과 함께 흙먼지가 떨어졌다.

소년은 힘겹게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뭐지?’

의문이 뒤따랐다.

갑자기 시작된 진동.

억제당한 감각 때문에 느껴지진 않지만, 연이어 이어지는 진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소년이 차갑고 축축한 벽에 등을 기댄 채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토벌을 당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가능성이 있었다.

피식.

웃음이 흘렀다.

침입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 고리를 끊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소년은 자신이.

13년이라는 평생을 살아온 이곳에 대해 전혀 미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원망한다는 것도.

‘무너져 내려라.’

어차피 의미가 없는 목숨이었다.

누군가를 죽이면서 살아온 삶.

더 이상 살아서 무엇을 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뒤따랐다.

하지만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던 진동이 가라앉고.

자신을 뒤덮은 흙먼지가 더 이상 쌓이지 않으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침묵이 찾아왔을 땐.

“……킥.”

소년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실패.

자신을 괴롭혔던 단어가 위에서도 벌어진 것만 같아서.

“…이왕 들쑤실 거면 제대로 죽이지 그랬어?”

소년은 침입자를 떠올리면서 탁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철그렁.

쇳소리만이 대답하듯 짧게 울릴 뿐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푹 내렸다.

“제대로 죽였는데?”

“……!”

숙였던 고개가 퍼뜩 올라갔다.

철창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 누군가가.

‘지, 지금… 내 말에 대답한 거 맞지? 저거… 사람 맞지?’

자신의 말에 대답을 했다.

“넌 여기에 왜 갇혀 있는 거야?”

사람이 맞았다.

침입자.

그가 지하 감옥에 나타났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경악하면서도 소년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도주.”

“아!”

침입자가 나지막한 탄성을 내질렀다.

너무도 태연한 모습으로.

‘진짜… 전부 죽인 거야?’

살인 기계들.

사람을 죽이는 일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하는 달인들이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침입자를 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마력 자체는 위에 놈들과 같은데… 왜 도주를 한 건지 물어볼까?”

소년은 침입자의 물음에 놀라워하지 않았다.

이곳을 전멸시킬 정도의 실력자라면 아무리 억제되었다지만 마력의 흐름 따위는 구별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이기도 했고.

“……사과, 하고 싶어서.”

“사과? 네가 죽인 사람에게?”

“……아니. 생존자.”

침입자는 소년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과하고 나면?”

그 물음에 이번엔 소년이 입을 다물었다.

‘난… 사과를 한 뒤에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

짧은 고민 끝에 소년이 말했다.

“……죽고 싶어.”

‘그래…. 난 이 삶을 끝내고 싶은 거구나.’

숨겨진 본심이 드러났다.

사과를 하고, 죽음으로 얼룩진 삶을 끝내고 싶다고.

“음……. 좋아. 일단 구해 주지.”

침입자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철창이 휘기 시작했다.

오러조차 막아 내는 철창이… 나뭇가지 휘듯 가볍게 휘어졌다.

저벅.

태연하게 철창 안으로 들어온 사내의 손짓에 발목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 끊어졌다.

너무도 가볍게.

‘…대단하네.’

자신 따위는 손짓만으로도 죽일 수 있는 강자였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준의 강자.

그 힘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침입자가 말했다.

“잠깐 유예해 주는 거야. 위의 놈들과는 눈빛이 다르니까.”

열흘은 굶고 삶의 의지를 잃어 탁할 게 분명한 눈빛.

그런 눈빛에서 무언가를 본 건지.

아니면 자신의 말에 그저 수긍해 준 건지 모르지만, 소년은 그저 지금의 순간에 감사했다.

거지로 산다면 살 방도를.

노예로 잡혀갔다면 구함을.

죽었다면… 자결을.

나름의 결론을 내린 소년이 비틀거리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입자는 그런 소년을 보며 말했다.

“새로운 목적이 생겼으면… 그 탁한 눈동자부터 지우지 그래?”

쌔액- 쌔액-.

리 박사는 정우의 말을 들으면서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급변했으니까.

리.

조국의 위대한 수령이자 영웅인 자신의 아버지.

그를 보며 천천히 걸어 다가가는 정우를, 그녀는 제어하지 못했다.

“그 말을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어.”

“……!”

결계에 가까운 유리 벽에 구멍이 생겨났다.

정우의 크기에 맞춰서.

정우는 리를 앞에 두었다.

누워서 고개만 돌리고 있는 리를 보며, 정우가 침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이.”

‘……어?’

정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리 박사는 깜짝 놀랐다.

탁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동자에 희미한 열기가 감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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