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92화 (192/293)

192화

-마탑 (5)

한정우, 김하란, 레베카.

그 외에도 두 명의 S급이 더 있었다.

‘메아리와 이지스가 있지.’

정우는 메아리의 힘을 성장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 아래의 물건.

퀸 마야의 부러진 뿔.

그것만 흡수하면 메아리는 단번에 S급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힘을 보유하게 될 터였다.

저 힘은 본인의 것이지만 본인이 가장 강했을 때의 힘의 일부니까.

이지스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지구로 넘어오기만 한다면 명실상부 최강자였으니까.

“다, 다섯?”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S급은 불가해(不可解)의 영역이었다.

새로운 능력 속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천재들만이 넘을 수 있는 S급의 벽.

그 벽을 넘은 이들의 수는 전 세계를 논해도 사십이 넘지 않았다.

고작해야 그 정도의 수가 전 세계에 퍼져 있었기에, 한 터전에 둘 이상 몸담고 있는 건 희귀했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유지석과 유서린이 몸담고 있는 한국 플레이어 협회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다섯?

그건 도무지 믿을 수도 믿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진짜니까 걱정 말아요. 물론 한 자리에 한 번에 모이는 건 어렵겠지만.”

열쇠를 사용해서 레베카를 이동시키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이지스는 아직도 불가능했다.

정우의 수준이 더욱 높아지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그를 부르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이 고리가 완성되는 순간, 정우는 이지스를 부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역량이 부족한 건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그런 확신 속에서 다섯이란 수를 불렀다.

둘은 머리를 흔들어 충격을 해소했다.

“…허허, 허언처럼 안 들린다는 게…… 후우.”

고민에 빠졌던 제임스 밀러가 눈을 반짝였다.

“…믿어 볼게. 그렇다면… 내가 가진 인맥이 빛을 발할 테니까.”

무슨 생각인지 제임스 밀러는 정우의 말에 오히려 반색했다.

“좋아. 그럼 밑그림을 제대로 그려볼 수 있겠어.”

정우와 시선을 교차한 제임스 밀러가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우도 상태창 확인했지?”

“음.”

“내 완성률은 64%야. 넌?”

그 말에 정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전, 메시지는 물론 완성률도 본 적이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지?”

“특이 케이스. 이미 경험해 본 적 있잖아요. 던전 안에서.”

* * *

빈자리를 가만히 주시하던 정우는 공간을 넘었다.

“…대화는 끝났나요?”

“오래 기다린 건가요?”

“그럴 리가요.”

리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언뜻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를 보면서도 정우는 잠시 상념에 빠졌다.

각성이라는 G급 던전의 법칙 외에 그 어떠한 것도 모든 플레이어에게 동시적으로 적용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모든 인원이 같은 메시지를 받았고, 그에 따른 변화를 체감하고 확인했다.

완성률이라는 단어로.

하지만 그 모든 것에서 유일하게 본인만이 제외되어 있었다.

초창기 때와 마찬가지로.

제임스 밀러는 계속해서 정우만 배제되는 이 상황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유일한 케이스.

무엇인지 모를 ‘찬탈’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특이성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제임스 밀러는 추후 유아영에게 기업 인수 절차에 대해서 전부 숙지시켜 놓겠다며 그녀를 데리고 가버렸다.

정우는 어리둥절한 채로 끌려가던 유아영을 끝으로 조금 전의 생각을 지웠다.

리 박사는 초조한 게 맞았다.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신의 파편’이라는 걸 언급한 게 바로 정우였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녀는 큰 결심을 했고 정우와의 독대를 요청했다.

‘아무래도 북한으로 가자고 하겠지.’

“…우리 조국을 한번 방문해 주세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리’는 그 정도의 인물이었다.

북한의 모든 플레이어의 존경을 받는, 진정한 수령(首領).

혁명을 성공시키고 외교에 집중하여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급성장한 북한이었지만, 특유의 폐쇄성만큼은 예상외로 옅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북한을 방문하는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과학자나 건설업자, 마정석 관련 특수 직업 등이었으니까.

“제게 무엇을 바라는 겁니까?”

“…확인. …확인입니다.”

“무엇에 대한 확인인가요?”

“…….”

리 박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왕지사 내친걸음이었다.

“한정우 씨도 아시다시피 우리 조국은 그릇된 지도자 아래 피곤한 생활을 살아왔습니다.”

북한의 김정운은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인물이었다.

그의 취미인 슈퍼카 수집은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개인의 영달일 뿐이었다.

먹을 게 넘쳐나는 지도부와는 달리, 죽음이 만연했던 국민들은 여러 세뇌와 선전에 자신의 처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격변의 날이 밝았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게이트에 빨려 들어간 사람들은 힘을 얻었다.

그중 한 명인 ‘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각성자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총으로 사방을 경계할 뿐인 지도부를 노릴 틈이 지금밖에 없다는 것을 안 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소수의 인원과 함께 잠입하여 지도부의 목을 따버렸다.

3대 정권이 무너진 역사적인 날의 탄생이었다.

때문에 유일하게 격변의 날이 부정적이기만 하지 않은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다.

빠르게 지도부를 장악한 리는 플레이어를 규합하였고, 특유의 카리스마와 전투 능력으로 모두의 위에 군림하였다.

그로부터 북한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남한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성장을 거듭할 정도로.

때문에 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북한의 안위와도 직결되어 있었다.

“거기까지는 아는 내용이군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지만….”

“3년 전에 수령은 한 의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의뢰?”

특별할 게 없었다.

북한은 용병 국가였고, 김하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리였지만, 던전 브레이크 혹은 미해결 지역으로 도시와 시민이 증발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빌런의 사살.”

“……!”

정우의 눈이 커졌다.

리에게 요청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리 많지 않았다.

“빌런들의 왕의 암살이 수령이 받은 의뢰였습니다.”

과연 정우의 예상대로였다.

“……허! 누구였죠?”

“스나이퍼. 그 음습한 놈의 암살이었죠.”

리 박사가 이를 갈았다.

순식간에 치솟았던 살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붉게 달아오른 낯빛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듯, 가라앉지 않고 뜨겁게 유지되고 있었다.

“스나이퍼…….”

정우는 스나이퍼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저격수.

그는 마탄(魔彈)이라는 스킬을 개화시킨 인물로, 모든 총기를 다룰 줄 아는 건 마스터(Gun master)라고도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스나이퍼라 불리는 이유는 S급 플레이어를 사살할 때의 강렬함이 너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S급 플레이어를 사로잡으면서 유명세를 탔고, 그 후로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듯 수많은 주요 인사와 플레이어들을 죽인 인물이었다.

스나이퍼라는 이명답게 그의 위치나 움직임을 파악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꼬리를 잡았습니다. 저희 쪽 정보부에서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정보는 진실이라고 판별했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니 급하게 움직였겠군요.”

“…맞습니다.”

“표정을 보면… 오히려 낭패를 본 모양인데…… 함정이었나요?”

리 박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키리…. 그 빌어먹을 년이 모습을 감춘 채 수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습을 감췄다?”

“…수령의 말대로라면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기척이나 마력이나… 도무지 감지할 수 없이.”

‘오버레이!’

정우가 눈가를 좁혔다.

하데스를 봤을 때 오버레이를 해제하는 건 상당한 페널티를 떠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버레이는 위험했다.

상대의 모습과 마력, 능력과 기억까지 덧씌우는 게 위험하지 않으면 무엇이 위험할까.

활용법은 무궁무진하며, 실례로 마왕과 견줄 만한 인물 중 하나인 리가 낭패를 볼 정도였다.

발키리.

또 다른 왕의 등장으로 인해서.

“…다행히 수령은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때문에 리는 ‘무언가’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무언가?”

“제가 듣기로는 각성 때부터 보유했던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설마 이중 던전인가?’

정우가 눈을 부릅떴다.

정우는 제임스 밀러에게 추가적인 정보를 얻었다.

마왕이라 불리는 플레이어가 ‘마족의 뿔’을 손에 넣었고 뇌신이 ‘용의 정수’를 얻었다는 정보 말이다.

튜토리얼에서 얻은 물건이 S급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중 던전에서 얻은 보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행히 그건 수령의 상처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 주었지만…….”

“치유도 못 하고 있다?”

“……현재 수령은 정신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걸 저한테 말해도 되는 건가요?”

“글쎄요. 이 일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지, 아니면 천운으로 알게 될지는 시간이 흘러 봐야 알겠지만…….”

“……이젠 아니군요. 상태를 유지시키는 게 한계에 달했어요.”

“영민하십니다. …맞습니다.”

리 박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자괴감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성녀는 불러보셨나요?”

리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했습니다.”

“치유가요? 아니면 모시는 게요?”

“치유… 말입니다.”

정우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성녀까지 실패했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데? 그걸 유지시키고 있다면…… 무엇일까?’

정우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리 박사가 손을 뻗어 정우의 손을 붙잡았다.

“제발… 같이 조국을 방문해 주십시오.”

그녀는 지금 애원을 하고 있었다.

천재로 유명했고, 익스퍼트의 능력을 지닌 그녀조차 지금의 상황은 막막했다.

오히려 스스로의 한계에 달했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는 거야.’

그녀는 정우가 아래의 ‘뿔’을 알아본 것과 그에 따른 설명을 한 것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히 제임스 밀러의 예상은 옳았다.

리 박사는 조국에서 리의 물건을 연구하고, 오 박사는 한국에서 퀸의 뿔을 연구하며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초월자의 그것을 일개 플레이어와 과학자가 파악할 수 있을 리가.

비밀리에 연구하던 뿔을 제임스 밀러와 닥터 브라운에게까지 공개하기로 한 건 상당한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 일을 밀어붙인 이가 유지석이 아닌 리 박사라는 게 중요했다.

‘리가 회복된다면 중국을 압박할 중요한 패가 된다. 어쩌면 하데스의 영역을 온전히 강탈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정우는 답을 내렸다.

“그러죠.”

정우의 즉답에 리 박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곧장 이동을…….”

조급함이 역력한 그녀의 뒤를 따라 포탈에 올라탔고.

휘이잉!

바람과 함께 마력이 솟구쳤다.

환해지는 세상 속에서.

‘흐름이 바뀐다.’

정우는 흐름의 변화를 느꼈다.

“다녀오셨습니까, 리 동무?”

“동무는 무슨.”

“이분이십니까?”

“그래. 남조선의 대통령 이상의 귀빈으로 모셔라.”

척.

경례하는 군인들의 표정이 다부졌다.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준비를 진행하….”

정우는 리 박사의 말을 끊었다.

“저도 시간이 없어서요. 지금 바로 이동하죠.”

“…….”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공간 이동 마법진이 새겨진 방의 문을 열자 꽤 삭막해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긴 복도엔 창문 하나 없고, 전등 외엔 장식품 하나도 놓여 있지 않은 삭막한 공간이었다.

정우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지하군.’

마력을 퍼트려 파악해 본 바로는 이곳 역시 지하였다.

굳이 지상까지 들쑤시지 않은 정우의 마력이.

“……!”

어느 지점에 부딪혀 멈췄다.

기이한 파장에 억눌리듯.

고개를 돌려 해당 방향을 돌아본 정우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윽고 걸음이 빨라진다.

“…한정우 씨?”

리 박사의 물음을 무시한 채로 속도를 높이던 정우가 그녀를 지나쳤다.

다급한 음성.

하지만 더욱 속도를 높인 정우는 빠르게 이동했고.

한 나무 문을 앞에 두게 되었다.

“……여길 어떻게.”

뒤늦게 따라온 리 박사가 당혹과 경악. 그리고 은은한 기대감을 지우지 못한 채로 말을 걸 때까지.

“…….”

정우는 가만히 문 너머를 주시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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