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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91화 (191/293)

191화

-마탑 (4)

이미 형성된 고리는 실시간으로 견고해지고 있었다.

마력의 고리.

서클(Circle)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밀집되는 마력의 질과 양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정우의 고리는 어둠의 영역에 존재하는 마력 그 자체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때문에 견고함은 시간문제라고는 하지만…….’

정우는 제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예상보다 빨라.’

어둠의 영역에서 시작된 고리가 오히려 그곳을 벗어나자 안정권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잠시 상념에 빠졌던 정우는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얼굴의 두 명이 각기 편안한 자세로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니. 제임스는 어딘가 불편한가?’

어딘지 모르게 제임스의 자세가 불편해 보여 정우가 물었다.

“불편한 게 있어요, 제임스?”

“나? 아니, 없어. 불편하기는. 아, 커피만 좋네.”

누가 보더라도 어색해 보였다.

닥터 브라운이 제임스를 살짝 돌아보다가 피식 웃었다.

입국하기 전에 들었던 그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스터 한의 곁에 선다, 라…. 옛 ‘약속’을 지킬 셈이구나. 시대가 변하고 있어.’

제임스는 손에 쥔 게 많은 사람이었다.

백의 연금술사로 불리며 수많은 특허를 손에 쥐었고, 전 세계로 수출되는 수많은 물건의 주인이었다.

아무리 시작이 ‘지원’이었다지만 지금의 성과는 온전히 제임스의 것이었다.

욕심이 일 게 분명할 터.

그걸 놓는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닥터 브라운은 제임스 밀러가 대단해 보였다.

자신보다 젊지만 존경할 만한 사람.

“언제까지 그렇게 말을 안 하고 있을 텐가. 자네가 여기까지 온 게 오롯이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 않은가?”

“에이. …좀 더 제대로 된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흥을 깨네.”

제임스 밀러가 실망한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정우.”

“네.”

“김하란이 네 편에 선다고 했어?”

“……!”

“뭘 놀라? 본인이 유지석 협회장에게 말했다는데.”

“…김하란 플레이어가 협회장님께요?”

“아는 게 없어? 김하란도 자네와 비슷한 입장이야.”

“비슷하다면….”

“미스터 유가 만든 ‘인정’? 그걸 S급 대우라고 했었나? 솔직히 S급이라고 하더라도 길드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만한 활동은 불가능해. 그가 혼자서 움직이면서도 여러 사건의 의뢰를 받을 수 있었던 건, 협회에서 중개를 해줬기 때문이야.”

“아…….”

“그의 딸을 구했다면서?”

“정보가 매우 빠르군요.”

“빠를 수밖에. 미스터 유가 직접 연락을 줬는데 당연히 빠르지.”

“음…….”

“그렇다고 경계할 필요는 없어. 미스터 유나 나나.”

“허허. 나도 한 팔 거들고 싶군. 나야 그대들과는 달리 아는 건 적지만… 은인 아닌가.”

닥터 브라운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임스 밀러가 입맛을 다시며 정우와 시선을 마주쳤다.

“나도 끼워 줘.”

“…네?”

“김하란이 네 편에 선다며. 돈은 이미 충분히 쌓였을 거고. 아마 돈만 놓고 보면 한국의 5대 길드도 너보단 적을걸? 심지어 더 쌓일 테지. 마력 분해 장치는 그만한 값어치를 하니까.”

마정석 분해는 모든 사업의 시작점이었다.

분해를 제대로 해놔야 각종 산물에 적용을 하니, 효율도 좋고 가격도 좋은 마력 분해 장치를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 입장에선 그걸 왜 판매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지만.”

잠시 입을 삐죽인 제임스 밀러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돈도 생겼다, S급 플레이어도 네 밑으로 들어간다고 하겠다, 남은 건 길드 창설이잖아. 거기에 한 발 걸친다고.”

“…당황스럽네요.”

“당황할 건 없네. 애당초 MJ 그룹이 이만큼 성장한 건, 한 계약을 조건으로 한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일세.”

“…전, 폭적인… 지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정이었다.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제임스 밀러가 입을 열었다.

* * *

격변의 시대는 혼란의 시대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는 그 어떠한 조짐과 준비도 없이 급작스럽게 벌어졌고.

인류는 몬스터들과의 생존 경쟁을 하며 새로운 체계를 설립해야만 했다.

그 체계조차 세계를 아우르던 권력가들이 남들보다 빠르게 기회를 잡았지만.

“질 고메즈와 알렌 보머, 유지석, 지하드 아브도. 이 넷이 나의 후원자였다.”

그런 체계 속에서 제임스 밀러는 이용당하기 좋은 위치의 천재에 불과했다.

지식은 상당했지만 본인 스스로의 힘은 나약했으며, 그 지식을 풀어나가려면 막대한 재화가 지원되어야 했으니까.

‘…그랬겠지. 연금술이란 건 돈 먹는 하마에 가까우니까.’

자본이 없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게 바로 연금술이었다.

때문에 제임스 밀러의 시작은 꽤나 불우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용당하는 입장에서.

“끊임없이 포션을 만들어야 했지.”

제임스 밀러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를 갈았다.

초창기의 각성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았다.

“나는 마피아에 의해 억압되었어.”

“…마피아요?”

천재적인 두뇌가 오히려 해가 된 케이스였다.

각성과 동시에 높은 등급의 스킬을 얻은 제임스 밀러는 전 재산을 털어 포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바로 붙잡혔지.”

여러 연금술사들 중 두각을 나타내자마자 마피아들이 들이닥쳤다.

하나같이 특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각성자들.

그들을 벗어나기엔.

“너무나 무력했어….”

제임스 밀러는 전투 능력이 전무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억압당해 포션을 만드는 것으로 삶을 연명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피아 길드는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제임스 밀러는 더더욱 마피아 길드를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들어봤을걸? ‘시칠리아(Sicilian)’라고.”

“어? 거기라면….”

초창기엔 세계 10대 길드에 속했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무너져 버린 길드였다.

꽤나 유명한 사건.

“거길 무너트린 게 앞서 언급한 네 명이야. 난 거기서 도움을 받았지. 내 능력을 알아본 그들이 지원을 해주었고.”

지금은 하나같이 S급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이들이었다.

두 개의 시미터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지하드 아브도도 중동 최고의 길드 ‘지하드(Jihad)’의 마스터였다.

“넷 모두 ‘이중 던전’의 경험자이지.”

“……음?”

정우가 관심을 보였다.

“이중 던전을 겪은 이들은 모종의 목적을 지니고 있네.”

“목적이요?”

“이 사태의 해결.”

닥터 브라운이 피곤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연구소 벽으로 가로막혔다고 해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던전이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닥터 브라운은 그것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 역시 바라는 일이다.’

그들의 바람은 정우의 생각과 일맥상통했다.

하지만 그 이유만큼은 궁금했다.

“이 사태의 원인을 아는 건가요?”

“모르지.”

“그런데 어떻게?”

“이중 던전을 겪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퀘스트’를 받아.”

“……!”

정우의 눈이 커졌다.

유지석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 내용이었지만 이토록 상세하진 않았다.

정우도 이중 던전을 클리어하며 퀘스트를 받았다.

바로 메아리의 성장과 관련된 퀘스트를.

“그 퀘스트가 원인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제임스 밀러는 어깨를 으쓱였다.

정우는 조금 답답해짐을 느꼈다.

제임스 밀러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각자 받은 퀘스트가 달랐거든.”

“음….”

“그중에서도 질 고메즈의 퀘스트명이 중요했어.”

“대마법사의?”

정우가 관심을 보였다.

그런 정우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제임스 밀러가 마자 말했다.

“‘찬탈자(簒奪者)를 지원하라.’”

“…찬탈자?”

정우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디선가 매우 익숙한 개념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개념이 자신의 자리를 찬탈한 그자를 언급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튜토리얼에서 정우가 메아리를 얻은 것처럼, 이중 던전은 친우들이 만들어 놓은 안배 혹은 지원에 가까웠으니까.

긍정적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질 고메즈는 그걸 미스터 한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야.”

“…대마법사가 언제 절 보고?”

“정우도 봤어.”

“음?”

“저주 해제가 가능한 인원을 섭외했을 때.”

“……어?”

정우의 눈이 커졌다.

강세기 사건 해결을 위해 저주 해제가 가능한 인물을 협회에 섭외 요청 했던 게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보다 수준이 뛰어나.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그런 의문을 품었던 상대가 대마법사라는 것이 놀라웠다.

“진짜로 대마법사였다고요?”

“질 고메즈가 변장에 좀 능하거든.”

정우의 얼이 빠진 표정을 본 제임스 밀러와 닥터 브라운이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가벼워진 분위기에 정우가 물었다.

“그럼 대마법사는 절 찬탈자라고 확신한 건가요?”

“어. 내 계약 조건이 그거였거든. 정해진 사람이 나타나면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 것. 그녀는 널 퀘스트에서 말하는 찬탈자라고 확신한 거 같아.”

“왜 그렇게 판단한 건지는….”

“본인에게 묻는 게 빠르겠지.”

정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하데스가 사용했을 오버레이를 파악할 물건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그녀는 자신의 퀘스트에 나온 인물로 정우를 지정했다.

일본에서 이 일이 벌어졌다는 점.

그리고 세이렌 영토의 실질적인 공략자가 한정우라는 점.

더불어 세이렌 영토의 공략에 성공함과 동시에 느껴진 파장과 ‘타이머’의 변화까지.

네 개의 관문을 연 정우를 눈여겨보고 있던 그녀는 여러 조건에 정우가 부합하다고 느꼈다.

“곧 넘어올 거야.”

“대마법사가요?”

“그럼 그녀지, 누구겠어?”

정우가 입맛을 다셨다.

“좀 이야기가 샜는데,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임스 밀러가 손을 내밀었다.

“날 네 편에 끼워 줘.”

제임스 밀러의 가벼운 표정이 사라졌다.

유아영까지 배제한 이유가 있었다.

이토록 무거운 대화라니.

정우는 가만히 고민했다.

“안 그래도 세력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게 수순이라니까.”

“음. 어디까지 지원을 할 생각이죠?”

“모조리.”

“…그룹 자체를요?”

“어. 뇌신은 질 고메즈에게 전권을 위임했고, 유지석은 그녀와 의견을 맞췄어. 남은 건 지하드 아브도뿐인데….”

제임스 밀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S급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아마 본인이 직접 찾아올 거야. 시험해 보고 싶어서.”

시험이라는 단어에 정우의 눈이 반짝였다.

중동의 지배자라 불리기까지 하는 그의 실력이라면.

‘지금의 내 수준과 플레이어의 수준을 구별하기에 나쁘지 않을 거다.’

오히려 정우에게는 기회였다.

‘재미있겠네.’

잠시 생각한 정우가 말했다.

“그를 꺾으면 온전한 지원을 얻는 건가요?”

“뭐? 지하드 아브도를 꺾는다고?”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제임스 밀러의 눈이 커졌다.

“푸하. 이봐, 이 짧은 시간 동안 S급이 된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 때문에 그녀가 정우를 택한 것 같지만… 지하드 아브도는 중동을 틀어쥐고 있는 지배자야. 보통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정우는 은근한 미소만 지었다.

제임스 밀러는 말문이 막힌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겪어 보면 알겠지.”

그런 그에게 정우가 물었다.

“아무튼 결정권자들이 정했다?”

“어. 정우도 이젠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는 있지만, 이 빌어먹을 체계를 없애려면 그 정도로는 무리일 거야. 내가 지지하는 순간부터 정우가 가지는 권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테니까.”

제임스 밀러는 각국의 대통령도 독대하기가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렇군요. 제가 닥터 브라운이나 제임스 밀러를 쉽게 만났던 것부터가 유지석 협회장의 지원이었어요.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더 깊이가 있는…….”

정우는 닥터 브라운에게 시선을 옮겼다.

“허허. 난 은혜를 갚을 뿐이네.”

“저도 닥터 브라운께는 받은 게 많아요.”

사실이었다.

마정석 분해 장치를 통한 연구를 비롯한 여러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목숨만 하겠나.”

닥터 브라운의 표정에 정우는….

피식 결국 웃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래도 두 분이 틀린 게 있어요.”

어차피 본인을 드러내기로 했다.

이들의 지원이 예정되어 있다면 이용하는 게 나았다.

그렇다면 이 정도는 미리 알려 주는 게 이득일 가능성이 높았다.

“제가 세울 ‘마탑’엔 S급이 두 명이 아니에요.”

“……엥?”

“그럼?”

“세 명. 아니…… 다섯이겠군요.”

“……뭐?”

갑자기 시간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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