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90화 (190/293)

190화

-마탑 (3)

“……?”

문을 앞둔 정우의 표정이 변했다.

“미스터 한?”

“……아니. 아니에요.”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멈칫했던 직원이 정우의 눈치를 살짝 살핀 후에 문을 개방했다.

연구소 안의 풍경은 여타 영화나 영상 매체에서 보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러 모니터와 홀로그램이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그 안쪽의 강화 유리 내부로 굵고 가는 선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각자 업무에 바빠야 정상인 연구원들이 일렬로 서서 일행을 맞이했다는 점뿐이었다.

연구실은 꽤 넓었다.

작은 축구 경기장 정도는 되는 사이즈.

그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여러 물건과 마정석 등은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오로지 정우만 빼고.

정우는 고가의 장비나 여러 물건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정면에 꽂힌 그의 시선은 도무지 움직일 줄 몰랐고,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것들은 사라진 것처럼 고요했으니까.

기묘한 파장이.

기묘한 울림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 기묘한 것을.

‘……이게 왜.’

정우는 잘 알고 있었다.

큰 유리관 안에 존재했으며 몇 년이나 이어진 연구 가운데에서도 그 무엇 하나도 내어 주지 않을 정도로 고고한 그것을.

‘…퀸의, …뿔.’

정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으로 얼룩진 것이 아니었다.

예기치 않은 소득에.

그리고…….

‘확실히… 아름답다.’

곧게 뻗은 저 뿔이 뿜어내는 고고한 마력의 자태에 흠뻑 빠져 있었다.

정우는 이 순간이 매우 아쉬웠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더 좋은 타이밍이었다면.

‘본인의 것을 취했을 텐데…….’

메아리가 얼마나 땅을 치고 아쉬워할지, 정우는 웃음을 흘렸다.

리 박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가서 그간의 연구 자료를 확인했고.

제임스 밀러와 닥터 브라운도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나아가 연구를 파악하느라 바빴다.

“…저기, 한정우 플레이어?”

유아영만이 끼어들지 못한 채로 정우의 뒤에 서서 애매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환대도, 안내도 끝났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정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유아영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 괜찮아요.”

정우는 걱정을 담은 유아영의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정신을 차렸다.

‘간만에 마주하는 퀸의 마력이라… 홀릴 뻔했군.’

이곳에 S급. 그중에서도 마법사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아니. 그건 아닌가? 어차피 유지석 협회장은 이걸 봤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걸 제대로 파악하는 건 자신뿐이란 소리였다.

“그래서 이걸 저희가 발견하여….”

“심지어 마정석 분해 장치까지 쓸까 고민하다가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아무리 고민해도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오 박사와 리 박사, 제임스 밀러와 브라운까지 합세하여 적극적으로 토론에 나섰다.

“확실히 뿔처럼 보이는군요.”

“이 정도 크기면 본래의 몸체는 얼마만 했을까요? 드레이크와 비슷할까요?”

“어쩌면 그보다 클지도 모르죠. 이건 뿔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저 조각이나 막대에 비슷했거든요. 그게 조금씩 모습을 바꾸더니….”

“지금의 모습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음… 대략적으로 1년 전이죠.”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실되어 버린 일부가 제 주인의 등장에 반응한 셈이었다.

1년 전.

그건 대충 봐도 자신이 각성한 시기였으니까.

새로운 물질은 과학자들에게 무한한 호기심을 선사해 주었다.

선물로 받은 장난감의 작동법에 대해서 설왕설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네 명의 천재는 머리를 맞대고 곧장 토론에 들어갔다.

대기하고 있던 연구원들도 가세하여 금세 토론장이 되었다.

각종 복잡하고도 난해한 언어가 난무하고, 전문 지식이 빠르게 오갈 때쯤.

정우가 입을 열었다.

“이거…….”

정우의 음성에 소음이 싹 사라졌다.

조용한 음성이었지만 모두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 만큼의 기운이 담겨 있었다.

천천히 모두의 시선이 정우에게로 향한다.

“이거의 정체를 알고 있어요.”

그러고는 이어지는 말에 경악과 부정에 가까운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오로지 이곳에서 과학이나 이능과 가장 거리가 먼 유아영만이.

“진짜요?”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듯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뿔.”

‘누가 뿔인 걸 몰라서 그러는 줄 아나?’

‘뭐, 뭐야… 저 사람은? 정상 맞아?’

‘으음? 저 사람을 보고 느꼈던 건 착각이었나?’

정우의 그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과 함께 불쾌함을 표했다.

하지만 두 명.

제임스 밀러와 닥터 브라운은 예외였다.

제임스 밀러는 놀란 표정을 지우며 즐겁다는 듯 히죽 웃었다.

닥터 브라운은 눈가를 좁힌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의 뿔이지?”

제임스 밀러의 말에 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퀸. 퀸 마야의 뿔.”

뿔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퉁, 차가운 유리 벽에 닿는 손 너머로 선명하게 느껴지는 익숙하고도 아름다운 마력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네 잃어버린 힘이 미리 와서 널 기다리고 있었군.”

메아리를 떠올렸다.

* * *

“이 안에 담긴 마력은 사용이 불가능해요.”

정우의 확답에 소란이 생겨났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건 주인이 따로 있거든요.”

“아니, 정우? 그러니까 그 주인이 누군데? 퀸 마야가 누구야?”

“제임스. 아무리 그렇게 보채도 대답하긴 어려워요.”

“끄응. 누군지 말할 순 없지만, 저게 누구의 것인 줄은 안다?”

“네.”

“으으. 답답하군!”

제임스 밀러와는 달리 리 박사는 차가운 눈으로 정우를 주시했다.

지상에서의 일을 잊은 듯, 그녀는 매우 날카로운 태도로 정우를 대했다.

“잊으신 모양인데, 이건 두 나라가 공동으로 발견한 물건이에요.”

“알고 있어요.”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도 믿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믿는다고 쳐도, 왜 우리가 이걸 양보해야 하죠?”

“양보가 아니에요.”

“강탈이라도 할 건가요?”

정우는 리 박사의 공격적인 어조에 피식 웃었다.

“강탈할 필요도 없죠.”

“…그게 무슨 말이죠?”

정우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돌렸다.

투박한 형태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지금의 메아리와 비교하자면 오히려 그녀의 일부였던 뿔이 가진 마력이 더 방대할 정도.

과거의 그녀는 그토록 대단했다.

모든 서큐버스의 여왕.

그리고 기어이 신의 반열에 오른 초월자.

저 뿔은.

‘초월자 때의 기운을 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신의 파편인 셈이었다.

“……신이라니.”

정우의 말에 리 박사는 불신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다물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오 박사가 물었다.

“저희가 이걸 몇 년간 연구하면서 느낀 건, 이것의 강도와 그 안에 담긴 마력이 엄청나다는 겁니다.”

“강도(剛度)라…….”

“다이아몬드의 몇십… 아니, 몇백 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테스트 안 해본 건가요?”

“했습니다. 하려고 노력했는데….”

“측정 불가. 맞죠?”

“……아, 네. 측정 불가…. 맞습니다.”

오 박사가 정우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실험을 자행해도 강도 측정은 불가능했다.

심지어 A급 검사의 오러도 견뎠다.

검사의 말로는 ‘벨 수 없는’ 무언가를 베기 위해 노력하는 느낌이라며….

“벨 수 없다, 라…….”

닥터 브라운이 턱을 쓸며 고심했다.

“S급에 요청해 본 적은 없나?”

“그럴 정도로 대외적인 일은 아니어서 말입니다.”

오 박사가 안경을 고쳐 썼다.

제임스 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명이나 생각에 빠지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제임스 밀러는 혀를 차며 정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설명 좀 제대로 하면 안 돼?”

정우가 제임스 밀러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거, 어차피 곧 사라질 거예요.”

“……!”

그 말에 생각에 잠겼던 리 박사가 벌떡 일어났다.

“그 말은… 신이 강림한다는 건가요?”

“강림까지는 아니지만…….”

말을 잇던 정우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가만히 리 박사를 주시했다.

신이라는 단어에 곧장 생각에 빠진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며, 등골을 짜릿하게 강타하는 전격에 정우는 아찔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우는 오히려 잠시 숨을 고른 뒤에 화제를 이어 나갔다.

“곧 본인에게 돌아갈 힘이에요.”

그 말에 리 박사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제임스 밀러가 대표로 물었다.

“아는 게 있는 모양인데?”

“……무엇을요?”

“신에 대해서.”

“…모릅니다.”

“신이라는 단어에 유독 크게 반응한 사람이 닥터 리였지. 우리는 놀랐지만, 닥터 리는 오히려 생각에 잠겼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지.”

“…….”

“북한에도 있나?”

“…….”

“신의 파편이라.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다면야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만, 정황상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제임스 밀러가 볼을 긁적였다.

“이제야 말이 되네.”

히죽 웃은 제임스 밀러가 리 박사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노스엔 이미 신의 파편이 하나 있는 거야. 그래서 이 ‘뿔’을 한국에 맡긴 거지. 몇 년에 한 번씩 확인하듯 공동 연구를 자처하며.”

“……!”

제임스 밀러의 말에 리 박사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여기 미스터 한이 놀랍게도 이것의 정체를 알고 있네? 도움 필요하지 않아?”

“제임스?”

제임스 밀러가 정우의 팔을 툭 쳤다.

조용히 해, 그런 의사가 전달되었다.

“이게 진짜로 신의 파편이고, 이게 진짜로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 버린다면 한국의 연구는 더 이상 불가능하겠지.”

제임스 밀러가 천천히 상체를 숙였다.

“더 이상의 연구는 불가능할 테고. 지금까지 연구가 이어진 거 보면 아직 위쪽도 연구는 지지부진할 거 같고….”

슬그머니 입가를 올리는 게 노련한 기업인 같았다.

“나라면 이 기회에 더 묻고 알아내서 돌아갔을 때 적용할 거 같은데. 닥터 리의 생각은 다른가 봐?”

리 박사의 눈이 더욱 흔들렸다.

차갑고 이지적이던 모습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정우는 확인했다.

무너지는 가면 속에 담기는 슬픈 눈동자를.

대한민국만 놓고 봐도 ‘이’ 씨는 흔하디흔한 성이었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로 흔한 성인 ‘리’ 씨였지만.

한국에서도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공간 이동을 사용할 정도로 막대한 권력을 보유했으며.

연구할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틈틈이 성장을 도모해 크게 무시하기 어려운 실력을 지닐 정도로 여력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흔할 리가 없었다.

진짜로 천재로 이름을 날려 국가적인 지원을 받고 있거나.

혈족의 가장 간단한 증거이자 대표적인 표시인 성(姓)이 같거나.

그 정도가 아니면 이런 지원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리의 직계겠지.’

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리’의 등장은 파격적이었다.

공산주의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연 혁명가.

그리고 매년 수많은 아사자를 만들어 내던 북한을 탈바꿈시킨 영웅.

전 세계를 무대로 뛰어다니던 그가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췄다.

그게 신의 파편과 관련이 있다면?

“……!”

거기까지 생각한 정우가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마왕도 같은 이유일지 몰라.’

신의 파편.

그것을 이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느라 두문불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우는 등골이 사늘해졌다.

하데스의 기억은 온전치 않았다.

하지만 그 온전하지 않은 기억 속에서도 무엇보다 선명하고 또렷하며, 강렬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으니.

‘마왕…….’

바로 마왕의 모습을 알현할 때였다.

그것은 알현이었다.

신하가 왕을 배알하는 기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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