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89화 (189/293)

189화

-마탑 (2)

“왜 여길 온 거예요?”

뾰족한 음성에 제임스 밀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데리러 왔지.”

“절요? 왜요!”

“데리러 왔다니까? 와우! 미스 유가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네?”

조금은 음질이 안 좋은 통역기의 답변을 들으며 유아영은 머리를 짚었다.

“당신, 오늘 회의잖아요.”

직접 들은 사안이었다.

“거길 같이 갈 거야.”

“제가 왜요?”

어디서 공수해 온 건지 타고 있는 큼지막한 리무진은 불편하기만 했다.

“당신이 한정우의 사람이니까.”

“…….”

유아영의 눈동자가 살짝 굴렀다.

“잠깐만요. 그럼…….”

은근한 눈빛에 제임스가 히죽 웃었다.

“맞아. 나도 합류할까 고민하고 있거든.”

“……에?”

유아영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하. 보고 판단할 거니까…… 음. 김치? 국? 그거 마시지 말라고.”

제임스 밀러가 손을 휘저으며 웃었지만 유아영은 그저 멍했다.

합류.

그 단어가 주는 파급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밀러는 백의 연금술사다.

마정석으로 이룰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업에 그가 관여하고 있었다.

로얄티로 벌어들이는 수입만 해도 한국의 재벌에 준할 정도.

개인적인 사업까지 합한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부인 셈이었다.

각종 영역에 뿌리를 내린 그의 영향력은 상당했고, 유지석과 닥터 브라운이 아니었다면 얼굴조차 보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대통령 그 이상.

그 정도의 사람이 합류를 선언한다면.

‘……말도 안 돼.’

한정우라는 사람의 가치는 잭과 콩나무의 콩알이 되는 셈이었다.

“영입이… 아니고 합류요?”

“오우! 내가 그에게 가는 거니까 합류지. 지분도 넘길 생각이 있다고?”

제임스 밀러의 행동은 파격 그 자체였다.

그의 ‘MJ 컴퍼니’는 국내 재벌 따위는 취급도 안 할 정도의 재벌이었으니까.

그걸 한정우에게 넘긴다?

“…오늘이 만우절인가?”

그런 생각은 당연했다.

“만우절? 그 거짓말쟁이들이 판을 치는 사기의 날?”

“……에? 풉.”

제임스 밀러의 말에 유아영이 기어이 웃음을 터트렸다.

“만우절은 아니니까 걱정 말고. 문자 봤잖아?”

“봤죠. 봤기야… 봤는데.”

“그런데 무슨 걱정이야? 지금 하는 거 그대로 하면 되는데.”

“한정우 씨만 말하는 거면 걱정이 안 되죠. 제임스가 끼어드니까 걱정이 드는 거예요.”

“우우. 내가 그런 이미지야? 민폐만 끼치는 캐릭터인가?”

“그건 아니지만…… 아, 몰라요. 가보면 알겠죠.”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제임스 밀러가 피식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도착했습니다.”

기사의 말에 제임스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차창 밖의 광경에 의아해하던 유아영도 따라 내렸다.

“…여기가 어디예요?”

“여기? 회의장?”

“여기가요?”

삼엄하게 경계 서고 있는 군인과 그보다 더 삼엄한 표정의 플레이어들이 곳곳에서 사방을 예의 주시 하고 있었다.

“……저거, 북한 측 마크인데?”

“맞아. 노스(North).”

“북한까지 등장하고… 이거 괜히 온 거 아닌지 모르겠네.”

유아영이 고민하는 사이, 제임스 밀러는 이미 연구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의 여인을 보았다.

“오우! 여기서 보다니! 미스 리!”

“제임스 밀러.”

“맞아! 그게 내 이름이지. 북한에 천재가 있다고 하기에 만나고 싶었는데, 미스터 유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어.”

제임스 밀러가 리 박사에게 인사를 하는 사이 누군가가 유아영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 유아영의 눈에 익숙하지만 낯설고, 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한정우 씨!”

“오랜만이군요. 반가워요.”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정우가 유아영과 인사를 나눴다.

* * *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고민? 아, 날 여기로 부르는 거에 대해서?”

“맞아요.”

제임스 밀러가 리 박사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인정을 받았다는 소리네?”

“인정이라뇨. 누가 봐도 당신이 더 뛰어난걸요.”

“하하. 난 연금술이라는 이능에 기댄 사람이고. 닥터 리나 브라운 같은 사람들은 진짜배기 천재들이지.”

리 박사는 제임스 밀러의 말에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브라운 박사님도 오신다는 거, 들었어요?”

“오우! 안 그래도 이 노인네를 만나서 멱살을 잡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온다니까 다행이지.”

“기대하고 있어요.”

리 박사가 눈을 빛냈다.

“기대는 무슨. 우리도 이번에 처음 보는 건데…….”

“그런데 저 여성은?”

“아, 미스 유? 한정우의 전담 비서지. 가서 인사라… 도….”

“……?”

갑자기 뚝 끊기며 늘어지는 말에 의아함을 표한 리 박사의 시선에 누군가가 잡혔다.

미스 유라 불린 여성의 곁에 다가가는 훤칠한 남자.

오싹!

그를 보는 순간 한기가 전신을 파고들어 리 박사는 저도 모르게 반 발짝 뒷걸음질 쳤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나서야 쿵쾅거리는 심장이 약간은 안정을 되찾아 갔다.

“정우!”

제임스 밀러가 소리를 높이며 움직였다.

보조 계열이라고는 하지만 A급에 걸맞은 빠른 움직임이었다.

리 박사는 천천히 걸어 이동했다.

제임스 밀러가 한정우의 어깨를 짚은 채로 닦달하는 모습을 보며, 한정우의 전신을 눈에 담았다.

오싹한 한기는 사라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리 박사의 눈엔 경계심이 생겨나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어떻게 오란 말에 반응도 안 해?”

“미안해요, 제임스.”

웃는 모습은 훈훈해 보였다.

하지만 왜일까.

리 박사는 처음 그를 볼 때의 강렬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녀의 발길은 조심스러웠다.

리 박사가 다가오자 제임스 밀러가 살짝 손뼉을 치곤 소개했다.

“오우. 소개가 늦었군. 여긴 닥터 리. 정확한 이름은 아직 모르지만….”

“수연이예요. 리수연.”

“노스 코리아의 천재 박사야.”

“반갑습니다.”

정우가 내민 손을 잠시 주시하던 리 박사가 손을 마주 잡았다.

의외로 서늘한 기색은 없었다.

잘못 느꼈나 싶을 정도의 평온한 모습이었다.

“너무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이동부터 하시죠.”

직원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모두는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외부에서 보는 연구소는 그저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는 단순한 건물처럼 보였다.

“브라운 박사님께서 도착하시려면 약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어디에 계시죠?”

정우의 질문에 태블릿을 확인한 직원이 위치를 말했다.

“잠시 다녀오죠.”

그러고는 곧장 사라지는 정우의 모습에.

“……!”

“어? 공간 이동?”

모두는 깜짝 놀랐다.

연구소 직원은 두 눈을 비빌 정도였다.

공간 이동은 물론, 여러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 시스템이 운영 중인 상황이었으니까.

모든 출입은 제한이 걸려야 옳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초 뒤.

스윽!

“……!”

“브라운…….”

브라운 박사와 함께 등장한 정우의 모습에 아연실색해 버렸다.

충격적인 장면.

이 일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유아영만이 눈치를 보며 애매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엄청난 장면에 모두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허허. 진짜로… 텔레포트라니…….”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수준이 낮다고는 하지만 F급의 플레이어였다.

조금이나마 마력을 느낀다는 소리였다.

자신을 타고 흘렀던 막대한 마력의 양은 가늠하지 못할지언정, 그 크기가 자신의 감지보다도 더 방대하다는 것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놀라운 표정의 사람들을 보며.

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시간이 없어서요. 빠르게 이동하죠.”

“……어, 어. 그럼… 이동을…….”

더듬거리며 안내를 시작한 직원을 따라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제임스 밀러가 툭툭 치며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급변했는지 물었지만, 정우는 나중을 기약할 따름이었다.

그런 정우의 모습을.

리 박사는 한시도 떼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조선…. 아니, 한국에 또 다른 대마법사가 등장한 것 같군.’

* * *

닥터 브라운의 일본행에 대한 질문을 던진 제임스 밀러는 씩씩거리며 일본의 모든 걸 무너트리겠다고 욕설을 내뱉었다.

“허허. 어쨌든 제정신을 차렸으니 된 것 아닌가.”

“되긴 무슨! ……나 말리지 마! 오케이?”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으며 당시의 기억이 없다, 는 답변을 받았을 뿐이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닥터 브라운의 처지를 이해하기엔.

허허 웃는 그였지만 세뇌를 당한 동안 대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넉넉한 인심의 뱃살이 반은 사라져 있었다.

“안 그래도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었네. 이번 기회에 하면 반은 성공 아닌가?”

제임스 밀러는 볼을 푸르르 떨다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리고 일본의 새로운 수장이 된 강세기는 여기 한정우 군과 썩…. 아니, 매우 괜찮은 관계일세.”

몇 번이나 닥터 브라운이 만류하고서야 분위기가 쇄신됐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상당히 깊군.”

“지하 180미터군요.”

“그걸 어떻게 알았나?”

“느껴지니까요. 지상으로부터 지하까지의 거리가.”

“……못 본 사이에 천재가 다 됐네. 정우는.”

제임스 밀러가 기가 찬 표정으로 위를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자신은 물론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보일 수 없는 능력이었다.

“이쪽으로…….”

잠시 멍하기 서 있던 직원의 안내에 모두는 걸음을 옮겼다.

지상으로부터 상당히 내려온 지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드러난 건,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요새.”

“그렇군. 하나의 요새와도 같군…. 도대체 이 안에 무엇이 있기에…….”

요새와도 같았다.

제임스 밀러나 닥터 브라운이나 연구실이라면 남부럽지 않을 수준이었다.

일반인으로 알려진 닥터 브라운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제임스 밀러는 그에 준하는 지원을 받으면서도 거대 기업을 운영하는 수장이었으니까.

“어……? 이거 나도 아직 못 구한 건데?”

하지만 입구서부터 보이는 몇 개의 연구 장비는 제임스 밀러조차 탐을 내던 것들이었다.

막대한 자본뿐만이 아니라.

“미스터 유가 아예 영혼을 갈아 넣었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지위를 지니고 있는 유지석이 자신의 모든 권한을 총동원해서 이 연구소를 설립한 게 틀림이 없었다.

더군다나 둘이 이곳의 존재를 모른다는 건….

“결계사가 유명한 건 진짜 결계를 특이하게 사용했기 때문인가? 왜 이렇게 결계가 흔하지?”

“무슨 말인가?”

“아니. 이곳 말이야. 보통의 공사가 아니었을 텐데 미국에서 정보를 놓쳤다고? 말이 안 될 텐데?”

“음. 결계라… 그럴 가능성이 높겠군.”

닥터 브라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에서 언급한 단 한 가지 물질에 대한 연구만 진행될 거란 예상과는 달리, 강화 유리벽으로 된 파티션으로 나뉜 각각의 연구실은 서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제임스 밀러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저건 무슨 연구지?”

“그거까진 비밀입니다.”

“…그럼 아예 벽으로 막아 두라고!”

제임스 밀러가 분통을 터트렸다.

보여 주고선 알려 주지 않으니 속이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직원은 예정된 대로 이들을 한 장소로만 안내할 뿐이었다.

그곳은 이 연구소가 세워진 근간이자 중심이 되는 장소.

하나의 문을 앞에 둔 직원이 간단한 주의 사항과 설명을 이어 나갔지만.

“……?”

문 너머의 풍경을 그리고 있던 정우의 눈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꿈틀거린 채로 고정되어 있었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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