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업데이트 (5)
목숨을 잃기 전.
정우는 고민을 거듭하며 당시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처참한 모습은 사망 직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며, 설사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상황이 주어질 때마다 순조롭게 떠오르는 기억과는 달리.
당시의 상황만큼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갇힌 것처럼 깜깜하기만 했다.
하지만 뱀파이어를 잡고 만난 칭 샤오에게서 확인한 것들은.
“……친우들이라면….”
“안나를 비롯한 친우이자 신하였던 놈들.”
정우에게도 심각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아예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다.
친구들은 물론, 이계에서 신처럼 군림하던 이들조차 지구로 넘어온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빌런?”
메아리의 경악처럼 빌런으로 활동할 것이라곤 예상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모르겠어. 아스란이 맞는 건지. 아니면 그녀의 힘을 누군가가 계승한 건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지만 뱀파이어에게서도 정보를 얻어야겠다.”
“…….”
메아리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만 끝나면 진짜 쉬게 해주셔야 해요.”
“걱정하지 마. 뱀파이어의 기억을 훑고 나면 사다코부터 원래대로 돌릴 거니까.”
“아… 그러고 보면 더 이상 깃들 필요도 없겠죠.”
메아리가 자신의 육체를 이리저리 훑었다.
“드디어 조금 쉴 수 있겠네요.”
앓는 소리를 낼 정도로 메아리는 지금 지친 상태였다.
정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금빛 안개까지 사용하는 걸 보면… 성장한 모양이군.”
금빛 안개는 그녀가 여왕으로서 군림하던 시절에 보인 최고의 능력이었다.
자신이 읽은 기억을 꿈으로 전달해 주는 것.
영상처럼 보는 것으로 국한된 게 아니라, 체험이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당시의 상황을 겪게 해준다.
마치 빙의라도 한 것처럼.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보다 선명해지고 정확해진다.
정우는 그렇게 하데스의 기억을 얻었다.
그가 겪었던 과거를.
그리고 경험을.
이건 꽤 훌륭한 보상이었다.
“성장했죠…. 당장 죽을 것 같아서 그렇지.”
“미안하군.”
정우가 볼을 긁적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여유만만한 게 아니었다.
세상은 변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만은 그 변화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정우는 그것을 체감했다.
G급 던전이 급증하기 시작하고, 때를 기다린 것마냥 각성을 위해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수가 늘어났다.
마력 분포도에 따른 보상이 증가하면서 이전에 없던 탐욕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더 나은 성장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멸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세간에서 업데이트라 부르는 것은 정체가 모호했다.
“분명한 것은 이득이 되기 위한 작업이었다는 거야.”
“그런데 그게 온전치 않다는 건가요?”
“그래.”
지금의 상황은 정우가 보기엔 하나로 규정할 수가 있었다.
‘키’를 두고 두 존재가 서로 자신의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다투는 느낌?
“적어도 신 하나만 이동한 건 아니야.”
“그럴 거 같은데… 누굴까요?”
“지식의 신은 확실할 거 같고….”
“하긴, 그가 아니면 이런 체계는 불가능하니까요.”
“다른 하나를 모르겠어.”
“……음. 주인님.”
“어?”
“혹시 신하들의 흔적을 찾진 않으실 건가요?”
그녀의 말에 정우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찾아야지.”
친우들이 이곳으로 넘어온 게 확실하다면, 정우는 어떻게든 그들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을 찾는 게 우선시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하데스 건부터 해결해야 해.”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메아리가 반쯤 감은 눈으로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연히도 지금이 타이밍이 적기였다.
업데이트가 되고.
세상이 변하고 있으며.
그 틈을 타서 자연스럽게 활개 치고 있는 빌런.
그중에서도 눈앞의 저 인물은 중국과 러시아를 한 손에 쥐고 흔들던 거인이었다.
돌고 돌아갔을 길을 가로지를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하지만 이 길 또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터.
그 안에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백작 정도 되는 거 같더군. 어떻게 넘어온 건지, 정확한 목적이 뭔지 파악해 줘.”
“…….”
짜게 식어 버리는 표정을 본 정우가 다급히 하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멍한 표정의 노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 정우는.
전혀 거리낌 없이 창을 들어 하데스의 목을 찔렀다.
푹!
뒤늦게 생명에 대한 집착이란 불꽃이 눈에 담겼다가.
태풍 속의 촛불처럼 희미하게 꺼져 버린다.
아주 찰나 만에.
하지만 그 대가는 달콤했다.
[ 마력이 20 상승하였습니다. ]
무려 20의 마력 수치 상승.
마력이란 걸 잃어버린 거인을 사살한 대가치고는 너무도 달콤했다.
하지만 달콤한 실과는 한 개가 아니었다.
“망자의 기억.”
메아리가 얻지 못한 기억의 일부.
정우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죽은 자의 기억을 불러냈다.
* * *
“……!”
“……님!”
“…인님!”
“주인님!”
흐렸던 음성이 형체를 이루었을 때.
“……허억!”
막힌 숨을 토해내듯 정우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부릅떴다.
망자의 기억.
그것을 사용한 정우의 손바닥엔 땀이 흥건했다.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다.
파리한 안색의 메아리는 제 몸의 상태도 잊은 채로 다급히 정우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하지만 정우는 반응하지 않았다.
가만히 정면만을 주시할 뿐.
하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는 지금 정우의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것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고 있었다.
메아리는 입술을 간질거리는 질문을 꾹 참았다.
정우의 표정이 심각성을 알려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기억이 있었던 거야?’
때문에 그녀는 정우가 읽은 기억이 매우 궁금해졌다.
지금 정우의 모습은 ‘충격’을 받은 사람 그 자체였으니까.
그런 메아리의 기다림 덕분일까.
아니면 시간이 약이 된 덕분일까.
흔들리던 눈동자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얼마나 씹은 건지 피가 날 정도의 입술도 제자리를 되찾았을 때.
“중국행을 서둘러야겠어.”
정우는 자신의 행보에 대한 조급성을 드러냈다.
“…무슨 기억이었나요?”
메아리의 물음에 정우는 다시 한번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숨길 일도 아닐뿐더러 둘이서 서로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일이었기에.
정우는 침음과 함께 하데스의 기억을 말했다.
마왕을 섬기기로 결정한 하데스는 자신의 모든 금력과 권력을 총동원했다.
본가를 뒤로한 채 중국에 자리를 잡은 것도, 전부 마왕을 보좌하기 위함이었다.
하멜.
사채업으로 세력을 키운 그는 영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쥐고 있었다.
부채와 비리로 인한 권력.
그런 상황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중국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그가 접근했다.
칭 샤오.
오버레이의 제작자.
오버레이를 보자마자 새로운 계획을 세운 그는 자신의 아들, 로건의 존재를 강탈했다.
스스로의 손으로 자식을 죽인 추악한 선택이었으나, 하멜은 만족했다.
영국의 새로운 영웅으로서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하멜은 로건을 위한 무대를 설치했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향력을 십분 발휘했다.
로건이라는 루키가 존재하는 한, 이 영향력이 끊어질 리는 만무할 터.
그 뒤로 하멜은 중국에서 은밀히 활동을 시작했다.
이따금씩 로건에 대한 업적을 만들면서.
그가 중국에 자리를 잡은 건 마왕 때문이었다.
마왕은 당시 중국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슬슬 하데스라 불리기 시작한 하멜은 마왕의 수족을 자처하며, 자신의 왕이 찾는 물건의 발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사이 다른 왕들과 부딪치며 서로 다투기도 했고, 중국의 여러 길드를 잡아먹으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도 했다.
모든 건 마왕을 위해서.
그리고 그가 찾는 물건을 위해서.
일 년, 이 년.
상당한 시간이 흐름에도 하데스는 집요했다.
자신의 돈을 떼먹은 채무자를 뒤쫓는 사채업자의 심정으로, 단 하나의 흔적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격변의 시대로부터 5년 후, 어느 날에.
“……세계수 가지?”
메아리가 어안이 벙벙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마왕이 찾고 있던 건 세계수의 가지였다.
“맞아.”
난생 처음으로 주군이란 걸 섬겨 본 하데스는 스토커보다 더한 심정으로 마왕에게 빠져들었다.
그런 것치고는 마왕에 대한 이미지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희미했지만.
마왕이 세계수의 가지를 찾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막상 발견한 가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왕을 찾았을 땐, 마왕은 잠적한 후였다.”
“잠적이라뇨. 어디 다친 걸까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하데스에게 맡기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 같아.”
“세계수의 가지라니… 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걸까요.”
“그건 모르지. 하지만 하데스는 가지를 발견했고 보유하고 있었다는 거지.”
“그걸 주인님이 강탈했고요?”
“그래.”
“…원래의 지팡이가 묘목이 되었다면, 이것도 묘목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지만 반응이 없어. 어쩌면 특별한 지역에만 반응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예상 가는 지역이 하나 있다.”
“어딘데요?”
정우가 고개를 돌렸다.
“드레이크의 둥지.”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를 관통하는 거대한 영역이자 S급 몬스터 드레이크의 서식지인 전 세계의 대표적인 미해결 지역.
그곳이 정우가 의심을 하는 장소였다.
“드레이크의 둥지라면… 준비가 필요하겠네요.”
세이렌의 영토보다 더 위험한 지역이며, 공략을 시도했던 세 명의 S급 플레이어 중 한 명을 집어삼킨 전적이 있는 난공불락의 장소였다.
때문에 준비가 필요했다.
“인원은 필요 없을지도 몰라.”
“미해결 지역이라서 그러죠?”
메아리는 정우의 말을 이해했다.
미해결 지역.
그곳이 세이렌의 영토와 동일한 성질을 가졌다면.
“그곳도 어둠의 영역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그렇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야 고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 테니까.”
어둠의 영역.
그 안에 담긴 기이한 패턴의 마력을 운용하여 만든 고리를, 정우는 보다 두껍고 견고하게 탈바꿈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정우가 멈칫했다.
메아리에게 언급하지 못한 무언가가 뇌리를 가득 채우다가 사라졌다.
고개를 저은 정우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뭔데요?”
“넌 뱀파이어의 정보를 캐내는 것이고.”
메아리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난… 약속을 지켜야겠어.”
“약속이요?”
“어. 꼭 지키기로 한 약속이 있었거든.”
이 선택으로 정우는 하데스의 온전한 영역을 집어삼키지 못할 확률이 생겼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우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
두 번째는 다른 선택을 하고선 제자리를 지켜 준 한 인물을 위해.
그런 정우가 향한 곳은.
대구에 위치한 한 병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