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업데이트 (4)
격변의 시대는 플레이어나 일반인이나 할 것 없이 악몽으로 기억되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벌어진 세상에서 괴물이 등장했고, 가족과 친구의 팔과 다리를 물어뜯은 채 비명을 자아내게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몬스터보다 플레이어를 두려워했다.
영웅이라 불린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 많은 범죄자들이 들끓는 시대였으니까.
갑작스럽게 끌려간 G급 던전.
그 안에서 성장의 순간을 맞이하며 죽어 나가던 사람들.
열 명이 입장하여 한 두 명이 살아오던 초기의 귀환률은 각성한 플레이어들에게도 지옥의 순간으로 여겨지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PTSD든 좌절이든.
아니면 성격의 변화이든, 본능의 발현이든.
갑자기 인간을 넘어서는 힘을 얻고 능력을 발현하며, 몬스터와 싸우라는 의무를 짊어진 이들은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를 해야만 했다.
차라리 그 안에 담긴 선의(善意)와 정의(情意)를 판별했다면 좋을 것을.
G급 던전은 그런 종류의 편리성과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나 다 끌어들여 각성시켰고, 부족한 각성자는 어떻게든 끌어모아 수를 늘렸다.
그중에는 범죄자도, 사회 부적응자도, 혐오자도, 누군가에게 증오를 품은 피해자도 있었다.
수많은 군상들이 각성을 했지만 국가에서 하는 말은 같았다.
그 얻은 힘으로 저 괴물들을 물리치라고.
들을 리가!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경찰을 죽이고 도망친 범죄자의 수도 상당했고, 증오하던 이를 죽이고서부터 범죄의 길에 빠져든 자도 상당했다.
본성을 깨닫고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이도 상당했고, 오히려 몬스터를 피해 다니며 자신의 힘으로 약자를 괴롭히는 놈들도 상당했다.
영웅의 탄생은 그런 순간에 일어났다.
문제는 당시엔 영웅보단 악인이 많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악인들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수가 더 많았다는 것.
때문에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변화에 십 년 전의 그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는 것.
그게 문제였다.
G급 던전의 발생 빈도수가 급증한 것은 타이머가 사라지며 메시지가 떠오른 직후였다.
미징후 던전.
컨트롤 타워조차 감지하지 못한 그런 종류의 던전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문제는 그것들이 전부 G급 던전이었다는 것.
그리고 예전과는 다르게.
[ 입장 인원을 확정하시오. ]
던전 자체가 입장 인원을 선별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게 혼란을 부추겼다.
때문에 유지석은 당장 왕들의 영토에 관심을 둘 수가 없었다.
그저 여력이 있는 쪽에 연락을 취하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가 지켜야 하는 것은 엄연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기에.
유지석은 미국과 더불어 두 명에게 연락을 취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들이며, 그 누구도 감히 홀대할 수 없는 인물들에게.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르겠네, 미스터 유.”
“……알았네.”
대마법사, 질 고메즈.
뇌신, 알렌 보머.
둘은 흔쾌히 유지석의 요청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각자의 핫라인으로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터.
유지석은 이 작은 땅덩어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신경을 집중했다.
한국은 여타 국가보다 상황이 좋았다.
플레이어의 힘은 우수했지만, 그런 플레이어를 다루는 협회의 힘도 만만치 않았다.
단 한 번도 비리에 연루되지 않으며 공정과 정의라는 단어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유지석의 운영은 전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니까.
유지석은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불과 여섯 시간 만에 혼란에서 대략적으로 안정권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는 여전했다.
다름 아닌 G급 던전.
컨트롤 타워는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상당히 늦게 G급 던전의 출현을 확인했고.
협회에서 움직였을 땐 이미 입장이 완료된 G급 던전의 수가 늘고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G급 던전에 입장하지 말아 주십시오!”
협회에서 빠르게 움직여 발표를 하고 이에 따른 제재를 공표했지만.
G급 던전에 입장하는 인원을 막지는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의 수는 많았고, 그들은 언제라도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더불어 플레이어라는 ‘직업’을 노리고 있던 이들이 방대했으니까.
떨어지더라도 기회를 노리고 재등록을 진행한 플레이어 양성 학원의 수강생들이 그러했으며.
그런 학원조차 믿지 못하고 각자의 생활 터전에서 나름의 정보를 모으고 관심을 두고 있던 이들이 그러했으며.
그 긴 세월 동안 폐인에 가깝게 살던 이들의 불꽃 같은 원한이 남아있었으니까.
“골치가 아프군.”
전 세계의 모범 사례가 될 만큼 우수한 체계를 운영하던 한국 플레이어 협회조차 골치가 아플 정도로 G급 던전의 수는 엄청났다.
두 배?
아니다.
실제로 데이터상 발생 건수는 네 배에 달했다.
무분별한 각성은 지양해야 한다는 걸 이미 겪어 본 유지석이었다.
특히나 누가 입장한 건지 확인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빌런이 이 틈을 노리고 움직였다고 해도.
‘파악이 불가능하다.’
유지석은 모든 상황이 기이하게 돌아간다고 느꼈다.
그는 호출벨을 눌러 말했다.
“……한정우 플레이어는 어디에 있나?”
그렇기에 그는 정우를 찾았다.
급변이라는 사태와 가장 어울릴 정도의 변화를 겪은 사내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한국에서 일본까지 공간 이동을 사용했을 때도 정우는 S급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돌연 S급이 되어 하데스를 잡고, 보스를 잡은 뒤에 일본의 미해결 지역을 없애 버렸다.
더불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자신의 딸, 유서린은 이 모든 사태의 주인공이 한정우라고 말했다.
유지석은 자신에게 떠올랐던 메시지를 기억했다.
수많은 플레이어와 다를 바가 없는 메시지.
‘변화에 대비하라… 서린이와는 다르다.’
유서린과 자신의 차이는 그곳에 존재했는가 아닌가의 차이와 동일했다.
한정우의 지팡이가 돌연 스스로 움직여서 하나의 묘목으로 변화하는 시점.
당시에 참여했던 세 명에게는 ‘격변’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렇다면.
‘저번에 물어볼 것을….’
이 일의 당사자에겐 무슨 단어가 떠올랐을까.
일본의 사태가 마무리되고서야 제대로 자신에게 설명을 한 유서린과 갑작스럽게 클리어된 G-00 때문에 대화가 부족했던 것이 아쉬웠다.
“…철원 이후 모습을 감췄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유지석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땅거죽이 뒤집히고.
고온의 그을음이 가득하고.
정상적이라고 볼 만한 구석 자체가 전혀 없는 전투의 흔적을 발견한 건, 만약을 위한 지원조가 철원의 백마고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만한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이를 인지한 이들은 없었다.
어렴풋이 결계가 펼쳐져 있었을 거란 예상을 할 뿐이었지만 그조차도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정도 전투를 가릴 결계라면, 그 어떤 것도 가둘 수 있을 것만 같았기에.
유지석은 입맛이 썼다.
한정우의 등장 이후 무언가가 변화할 거란 징후를 포착했다.
다름 아닌 본인에게서.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란 예상을 지우지 못했기에, 그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한 상황이었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여러 패를 꺼낸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여러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이라는 단어조차 부족할 정도로 급변한 국제 정세 속에서 유지석은 한정우를 다시 떠올렸다.
오랜 친우의 정신을 되돌린 한정우 덕분에 일본은 총리를 몰아내고 내각 체제에서 플레이어 체제로 돌입했다.
온갖 비리가 난무했기에 의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시대에 순응할 뿐이었다.
명분은 주어졌고, 사사키를 비롯한 사대 길드의 지원을 등에 업은 강세기는 절대에 가까운 권력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벌인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제 살 깎아 먹기.
하지만 타소가레 길드를 비롯한 휘하 수많은 길드의 만행에 시달렸던 플레이어들은 환호했고, 길드와 얽혀 있던 수많은 중소 업체와 개인도 찬사를 보냈다.
덕분에 강세기의 지지율은 총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당장 총리가 된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당선될 정도로.
그런 이가 자신을 지원하고 있었다.
몇 년의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상황이 급변했다.
더불어.
“리 박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예의 연구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례없는 우호 관계에 접어들었던 북한 역시 리 박사를 다시 파견하면서 관계를 이어 나갔다.
“제임스 밀러는?”
“곧 도착 예정입니다.”
게다가 이번엔 미국의 제임스까지 입국했다.
지지부진한 연구를 보이고 있는 ‘뿔’에 대해서 파악하기 위하여.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전화기 벨이 울렸다.
버튼을 눌러 통화를 연결한 유지석이 내용을 듣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임스만이 오는 게 아니었다.
“한정우… 일본으로 다시 갔구나.”
닥터 브라운.
F급 플레이어였지만 세계적인 학자인 그가 제정신을 차렸다.
유지석은 어렵지 않게 이 일의 주인공을 알아냈다.
닥터 브라운이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 방문 의사를 표했다.
* * *
닥터 브라운과 짧게 해후한 정우는 곧장 공간을 넘었다.
연이은 전투.
아직은 안정되지 않은 고리.
“후욱….”
때문에 뜨거운 숨을 내뱉은 정우는 메아리의 흔적을 발견함과 동시에 들고 있던 한 마리의 반 시체를 바닥에 내던지듯 놓았다.
꿈틀.
바닥에 부딪히는 충격에 살짝 꿈틀거린 시체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스르르.
정우의 등장을 본 메아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 역시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헐떡거리고 있는 판이었다.
“…주인님.”
그런 그녀의 옆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하데스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폐허에 가까운 장소와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정보는?”
“…대충은 캐냈어요.”
메아리의 회복 부족은 다름 아닌 하데스 때문이었다.
하데스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그녀는 계속해서 그의 정신을 두드려야 했다.
차라리 B급 정도의 플레이어 수준의 마력이라도 머금고 있었으면 나았을 것을.
마력이 사라진 하데스는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에 불과했다.
더불어 그 충격으로 정신을 반쯤 놓은….
때문에 메아리는 뇌를 수술하는 의사처럼 매우 조심스럽게 마력을 운용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쳤던 몸이 더욱 지쳤지만.
나름의 성과는 분명히 얻었다.
“고생했다.”
정우의 치하에 그녀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며 통, 곧게 뻗은 손가락 끝에 금색에 가까운 안개를 한 방울 뿜어냈다.
표현이 어색했지만 이건 확실히 그런 모습이었다.
“…그거, 오랜만이군.”
금색의 안개를 보는 순간 정우는 그에 따른 기억을 또다시 되찾았다.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그녀의 손에서 떠난 금색 안개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보았다.
금색 안개가 자신의 이마에 닿는 순간.
파앗!
밝아진 시야 속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불과 30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중국이라….”
정우는 다음 행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하데스의 영지 중 하나인 중국으로.
그는 고개를 돌려 북쪽을 보았다.
그러고는 비타를 확인했다.
범람하는 내용 중 하나를 확인한 정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왜 그래요?”
정우는 메아리에게 그녀의 부재 이후 등장한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세계수의 가지와 그것이 묘목으로 화했다는 부분에선 메아리도 지친 게 무색할 만큼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람을 표했고.
타이머와 퀘스트에 대한 언급에선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는 빠졌다.
메아리는 어렵지 않게 정우가 잡아 온 반 시체의 정체를 알아차렸으니까.
그리고.
“…주인님?”
“어.”
“뭔가… 말씀을 안 하신 게 있는 거 같은데요?”
정우가 무언가를 언급하기를 상당히 꺼려 한다는 것까지 알아차렸다.
정우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할 수 있는 질문.
정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 현상…… 내 친우들이 벌인 게 맞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