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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84화 (184/293)

184화

-업데이트 (2)

부서지는 지면을 바라보는 정우의 눈빛은 탁했다.

지하엔 게이트가 있었다.

언데드로 포장된 이명 아래 감춰진 진실, 뱀파이어의 통로가.

뱀파이어들을 무력화시킨 정우는 지하로 향했고,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칭 샤오.

‘누구냐… 넌.’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사내를.

전투는 허무하게 끝났다.

하지만 정우의 머릿속에는 허무와는 상반된 충격이 자리 잡았다.

이리저리 흔든 물의 이물들이 침전되기까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정우는 칭 샤오를 놓쳤다.

‘놓친… 걸까?’

놓아준 것과 놓친 것 사이의 어느 경계점에서 정우는 고민을 이어 갔다.

비타를 건드렸다.

딱히 조작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난잡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기사들이 한편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플레이어도 알아야 한다는 듯.

아니, 다름 아닌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알아야 한다는 듯.

일본의 사건이 채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유서린, 강세기, 김하란.

단 셋으로부터 시작된 정보가 퍼지기 시작했다.

일본을 중심으로 가까운 이들부터 먼 곳까지.

S급부터 시작하여 F급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력을 다룰 줄 아는 모두에게 동일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묘목이 자리한 후 생겨난 메시지와 동일했다.

[ 모두에게 떠오른 시간, 과연 무엇인가. ]

[ 점점 줄어드는 시간, 그 의미는? ]

[ 일본의 대표 플레이어 강세기가 말한다. “격변에 대비하라.” ]

[ ‘세이렌의 영토’를 공략한 세 명의 S급들이 말하는 격변이란? 플레이어에게 떠오른 ‘변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타이머.

그것의 흐름이 모두에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마치 퀘스트와 같은 개념으로.

격변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오히려 ‘변화’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격변이라는 단어를 접한 건 묘목을 직접 본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었다.

격변과 변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중요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 그런 메시지에 세상은 다시금 난리가 났다.

플레이어들은 이 타이머의 의미를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맸고, 결코 긍정적이지 않을 의미에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비단 플레이어만이 불안감을 지니는 건 아니었다.

기사가 퍼지면서 불안감은 모든 인간 세계를 휩쓸었고, 일반인은 그 여파에 직격타를 맞아 다들 문고리를 걸어 잠그거나 안전지대를 찾아 정신없이 이동을 시작했다.

어쨌든 이 시간이 끝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건 기정사실이었기 때문에, 마트는 물론, 동네 슈퍼조차 식료품을 강탈하다시피 구매하는 이들에 진통을 앓았다.

그런 소란이 확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

적어도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한다면, 예외란 게 존재하지 않는 이 메시지의 등장 속에서.

유일하게 예외로 분류된 이가 하나 있었다.

한정우, 바로 본인이었다.

뱀파이어와의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급력이 큰 S급부터 시작하여 F급까지 확산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S급.

그것도 상위에 놓이는 정우만큼은 그 어떠한 메시지를 본 적도, 받은 적도 없었다.

전송되지 않는 문자 메시지처럼 수신된 건 전무했다.

정우는 그 사실에 침음을 삼켰다.

또다시 자신만이 예외가 된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에.

‘…칭 샤오. 놈은 알고 있는 거 같아.’

누군가가 관여한 것만 같아서.

정우는 기분이 매우 이상해졌다.

자신을 두고 흘러가는 것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으로 치부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우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바로 기억을 되찾을 때부터.

자신은 이 사태의 주인공이었다.

의외로 많은 것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각성 전에 마력을 인지한 것도.

튜토리얼에서 상처 입은 옛 친우를 얻은 것도.

모든 몬스터가 자신을 노린 것도.

이계라 불리는 그곳이 자신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도.

홀로 입장하여 견뎌 내고 이겨 낸 어둠의 영역과 비슷한 장소가 펼쳐져 있는 것도.

모든 것들은 분명히 자신을 중심으로 흐르고 있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건… 하나야.’

의심은 갔지만 당장의 상황이 조급하여 신경도 쓰지 못했던 것.

‘이 상황을 만든 신. 놈을 찾아야 한다.’

플레이어란 존재를 만들고 퀘스트나 던전에 따른 보상도 생성했으며, 꽤나 견고한 시스템을 형성한 존재.

그 신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야 이 일의 종말을 예견할 수 있을 테니까.

‘아버지를 찾는 건…… 뒤로 미뤄야 해.’

그렇기에 정우는 가슴이 먹먹했다.

칭 샤오를 놓쳤지만 뱀파이어 로드를 불러낼 통로가 하나뿐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아니, 분명히 어딘가에서 또 다른 작업을 진행할 것만 같았다.

이계에서 정우는 뱀파이어 로드를 너무도 쉽게 상대했다.

몰려 있는 진조 또한 손쉽게 상대했다.

사슴을 잡는 오우거처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벼운 전투였다.

지금의 정우도 그 수준에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비록 다른 방법이긴 했지만 고리를 형성했고, 고리라는 고루한 방법이긴 하지만 S급의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랐으니까.

고리를 선택한 정우는 추후 후회를 할 수도 있었고, 좌절을 할 수도 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대로 마력이 정착만 한다면 적어도 뱀파이어 로드 따위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우가 뱀파이어 로드를 신경 쓰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니까.’

이계와 지구는 상황이 달랐다.

정우가 뱀파이어를 전멸시킬 때엔, 어둠의 영역이 상당히 퍼져 있을 때였다.

음험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 꼬리를 밟힌 것도 다 어둠의 영역에 밀려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현재와는 달리 이계의 뱀파이어는 인간의 세계에 녹아드는 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위험했다.

그 전에 잡은 진조가 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고성(古城)은 말 그대로 옛 성이었다.

‘놈들의 고성은 잊힌 성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래…… 게이트. 그것과 비슷하군.’

놈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이동하던 때가 기억이 났다.

정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 * *

“야, 이거 설마 X 되는 거 아니겠지?”

“X발.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네.”

“모든 길드에서 전부 길드원들 불러들인 거 아냐?”

“후우. 괜히 심장이 떨린다.”

“떨려야지, X신아.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아니, 근데… 일본 미해결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난리가 난 거지?”

“몰라. 근데 진짜 뭔가 벌어지는 거 같은데?”

“X발, 담배나 피워.”

삼삼오오 모인 플레이어들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눈을 고정한 채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동료들을 보았다.

“그런데 이거… 꼭 그거 같지 않냐?”

“그거? 뭐?”

매캐한 담배 연기와 함께 인상을 구긴 동료가 물었다.

“그 왜… 게임 업데이트. 그게 꼭 이런 느낌이잖아. 아니면 발매일이나….”

“……?”

동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몇 번이나 선명하게 떠올라있는 타이머를 보더니 슬쩍 입을 벌린다.

“어?”

“이거… 좀 비슷한데?”

“야, X발. 이 플레이어 시스템 업데이트되는 거 아냐?”

“이게 게임이냐, 업데이트되게?”

“그럼 플레이어와 몬스터는 게임이냐, X신아?”

핀잔을 건넸던 사내가 무안해졌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던 사내들이 첫 의견자에게 동조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하네?”

“업데이트? X발, 무슨 업데이트가 되는 거지?”

“후우. 필드나 나왔으면 좋겠다.”

“뭐?”

“뭔 개소리야?”

“필드! 게임에서 몬스터 나오는 필드 모르냐?”

“아니… 모르는 건 아닌데, 네가 한 말이 개소리잖아.”

“X발. 개소리는 무슨. 우리 같은 C급 이하 쩌리들이 성장하려면 이 체계가 무너져야지.”

“이 새끼 뭐 이렇게 무서운 소리를 지껄이냐?”

“안 그래? 던전은 협회에서 다 관리하고. 뭐, 그건 좋아. 손해는 없는 시스템이니까. 근데 그걸 분배받는 길드는 뭔데? B급이나 A급이나, 전부 다 격변 때 이득 본 놈들이 대부분이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필드는 장난이 아니지. 그런 시스템이 생겨나면 그건 더 이상 우리를 키우겠다는 게 아닐걸?”

“키워? 누굴? 우리를? 누가?”

“누구긴 누구야. 시스템이지.”

“풉. 이 새끼 순진한 구석이 있네.”

“뭐?”

“시스템이 우릴 키우고자 이렇게 체계를 만들었다고?”

“아니야? 그게 정론이잖아. 우리 학원에서도 그렇게 배웠는데?”

“푸핫!”

투덜대던 사내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모두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플레이어 학원? 풉. 그래 봤자 위에서 내려주는 부스러기 먹는 곳이잖아?”

“…너 약 처먹었냐?”

“잘 들어봐.”

“뭘 들어?”

“X발.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단 말이야. 이 타이머에 대해서.”

툭, 치이익.

던진 담배를 발로 끄며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세이렌을 공략한 세 명의 S급들은 격변이라는 단어를 썼어.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늦게 타이머가 뜨면서 ‘변화’라는 단어가 등장했지.”

“그런데?”

“타이머 끝난 후에 나오는 변화는 그거밖에 없어. 이 시스템의 변화.”

“다 아는 사실이잖아.”

“그런데 그게… 이걸 언급한 강세기 등은 격변이란 단어를 썼단 말이야? 격변 그리고 변화. 잘 생각해 보면 이 변화가…….”

은근한 눈빛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격변에 가깝다?”

“그렇지! 그게 내 생각이다 이거야!”

“이거 한 시간 전쯤에 커뮤니티에서 본 거 같은데?”

“에이씨, 너 베꼈냐?”

“뭔 개소리야? 우리 계속 같이 있었잖아?”

“…끄응. 그랬지.”

“아, 닥치고 잘 들어봐. 누가 말한 적이 있을 거야. G급과 F급은 같은 던전이라고 보기엔 전혀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다.”

“닥터 브라운.”

“아! 맞다. 난 그 갈색 아저씨 말에 공감한다니까?”

“그래서?”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이런 류의 소설이 굉장히 많았잖아?”

“방대했지.”

“그래서 말이야. 두 종류로 생각해보는 거야.”

“뭔데?”

“G급은 네 말대로 우리를 지키려는 시스템.”

“…F급부터는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놈들이라고?”

“그렇지!”

“…….”

“…X발,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소름이 끼치네.”

“말이 된다니까! 잘 생각해 봐. 아예 다르잖아. G급과 F급은!”

“그럼? 네 말은 이 타이머와 변화라는 퀘스트가 의미하는 게 F급의 강화라고?”

“정확하게 말하면 우릴 잡아먹으려는 의지의 강화겠지.”

“말 같잖은 소리를 해라. 너 어디서 인터넷 종말론 보고 왔냐?”

“맞아. 네 말대로라면 퀘스트명도 달라야지. ‘변화에 대비하라’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라’가 맞지 않아?”

“그러…… 어?”

“이 새끼 졸았네, 졸았어.”

“아, 진지하게 들었던 내가 병신이네.”

사내가 동료들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눈알을 데굴 굴리는 것이 자신의 퀘스트를 확인하는 듯했다.

동료들은 쓴웃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이제 1시간도 채 남지 않아서 마른침이 꼴딱꼴딱 삼켜지는데, 이제 와서 그딴 소리 할래?”

“아니… 생각해 보면 맞는 소리 같잖아.”

그 말에 입을 계속 다물고 있던 동료 하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거 예전부터 나왔던 주장인데?”

“…뭐?”

“G급은 아군, F급부터는 적군. 뭐, 그렇다고.”

“……나 혼자 생각한 게 아니냐?”

“어. 격변의 시대 지나고 바로 나온 주장이었어.”

“…X발. 아, 아니. 그런데….”

“뭐? 삽질 그만하고 이제 집결하러 가야 해.”

“그럼 G급 아군의 힘이 커졌나 보지.”

“그래서?”

“……튜토리얼 출현 횟수라도 늘어나려나?”

“확, 너 팀장님 앞에서는 입조심해라. 괜히 나불대다가 뒈지게 맞겠다.”

동료들이 사내에게 픽 웃어 보이고선 걸음을 옮겼다.

혼자 남은 사내는 입맛을 다셨다.

“왠지 느낌이 있는데…. 스킬도 반응한단 말이야.”

“네 ‘감응(感應)’이 반응하기도 전에 시간될 걸? 헛소리 그만하고, 이동해.”

“어디로 가는데?”

“…너 그거 생각하느라 진짜 아무것도 못 들었냐?”

“……어.”

“우리 길드는 협회와 협력해서 각 지역으로 지원 나가기로 했잖아? 우린, 경기도 이천이다. 이 똘갱아. 정신 차리고 빨리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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