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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83화 (183/293)

183화

-업데이트 (1)

좁다면 좁은 지하였다.

그 안이 눈이 멀 정도로 밝아졌다.

발광체는 아니었다.

막대한 파괴력까지 지닌 전격 때문이었으니까.

“휘유…!”

나지막한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정우는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파지직 거리는 공기를 가로지르는 매직 미사일의 수는 압도적이었다.

질릴 정도.

하지만 칭 샤오의 태도는 태연했다.

전격을 피해 낸 게 우연이 아니라는 듯 가볍게 휘젓는 손에 가로막힌 매직 미사일이 허공에서 폭발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폭발이었다.

터질 리 없는 매직 미사일의 폭발.

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뿌렸다.

“오… 염동인가요?”

제 몸을 억압하는 구속력에도 칭 샤오는 히죽 웃었다.

그저 흥미롭다는 듯 정우의 일격을 방어하며.

‘마정석의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하.

그리고 게이트를 앞둔 상황에서 어지간한 위력이 담긴 마법을 사용하는 건 정우로서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것의 완성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칭 샤오의 말마따나 게이트는 아직 열려 있으니까.

‘파괴한다.’

때문에 정우의 결정은 간단했다.

뱀파이어 로드는 강하다.

과거의 자신에겐 무릎을 꿇었지만, 현재로서는 꽤나 강력한 상대였다.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를.

그런 자의 출현을 반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다행히 마정석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조금의 충격만 가해져도 칭 샤오의 계획은 일그러질 터.

쿠르릉!

“…어라? 이건 아닌데요?”

정우는 오히려 매몰을 작정했다.

지면이 들썩인다.

마력을 한껏 머금은 그것은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처럼 끊임없이 요동쳤다.

칭 샤오도 난색을 지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마법 중에 대지를 택한 건가요?’

대지 마법은 마력으로 흙 혹은 돌 따위를 움직이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지가 지닌 파괴력을 그대로 이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마력보다는 물리적인 파괴력이 우선시된다는 거였다.

힐끗.

칭 샤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가보려고 했더니….’

마정석을 본 칭 샤오가 처음으로 공격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방향은 정우가 아니었다.

울컥거리며 땅거죽을 밀어내고 있는 지하.

쿠웅!

손바닥이 지면과 닿는 순간.

“……!”

대지의 움직임이 멈춘다.

정우의 눈이 커졌다.

아니, 부릅떠졌다.

“……너, 너……!”

우뚝 멈춰 서서 칭 샤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다.

“어떻게… 습득한 거지? …이 능력을?”

* * *

정우가 어둠의 영역을 공략하려 하기 전.

대륙의 절반은 어둠이 집어삼킨 후였다.

위세를 자랑하던 왕국이 무너졌고.

특별하다 자부하던 귀족과 왕족들이 마차를 타고 제 영지와 왕국을 등진 채로 도주했다.

호기로운 강자들이 몇 번이나 영역의 정화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나름의 역사가 종결되어 버렸을 때.

강자들은 물론 호기심 많은 학자들까지 어둠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때문에 그들은 안전한 지역에 대한 갈망을 가졌다.

마스터조차 삼켜 버린 어둠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을 잊을 장소.

청탑의 마스터이자 마법의 새역사를 쓴 거인이며, 각 종족의 지도자들이 수하를 자청하는 다니엘의 도시는 그런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장소였다.

때문에 온갖 군상들이 몰려들었다.

이름만 대면 알 정도의 강자도.

그 누구도 이름을 모를 정도의 약자도.

막대한 부를 쌓은 거부도.

빵 하나 살 돈이 없어서 구걸을 하는 거지도.

그렇게 몰려든 이들에게 다니엘의 도시는 그야말로 최후의 도시, 유토피아(Utopia)였다.

정우는 그들을 구분했다.

전투가 가능한 강자들을 분류했고, 그들의 능력을 점검했다.

그 와중에도 강함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던 강자들은 평화 속에서도 흥분을 찾았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결투를 진행하며 서로의 우위를 점검했다.

정우가 한 건, 그런 점검을 보다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한 것뿐이었다.

대전(大典)을 통해서.

그렇게 파악된 능력을 토대로 새로운 능력을 완성시켰다.

정우의 곁에 있던 친우들은 그들의 능력을 재현하며 변화시킬 만한 능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모든 건 어둠의 영역을 없애기 위해서.

친우들과 정우는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 중 가시적인 상과를 보인 것들이 있었다.

칭 샤오가 보인 것도 그런 것들 중 하나였다.

문제는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강자 중의 강자라 불리던 친우들 사이에서도 오로지 한 명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스란.”

최후의 하이엘프, 아스란.

정우를 제외한 사용자는 그녀가 유일했다.

정우가 그 이름을 내뱉은 건 충격에 의한 본능적인 것이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억조차 나지 않았던 이름이 퍼뜩 떠오르며, 그녀를 비롯한 여러 기본 사항들이 기억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기에 되짚은 이름.

하지만 그 이름에.

“…….”

칭 샤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살짝 커진 눈동자에 파르르 떨리던 눈가가 인상적이었다.

항상 웃는 낯을 그려 내던 이에게 생겨난 균열.

정우의 판단은 빨랐다.

‘잡는다.’

오버레이부터 게이트에 이르고.

뱀파이어부터 아스란에까지 이르러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다.

결정한 정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스퀘이크(Earthquake)를 막은 것을 보면 물리적인 공격을 꺼린다는 소리다.’

마정석 때문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면서도 정우는 빠르게 고리를 변형시켰다.

끼릭, 소리가 나며 마치 철로가 노선을 바꾸는 것처럼 정우의 육체를 가득 채우는 건.

스스스!

오러였다.

* * *

비스듬하게 중심을 낮추며 회전한 정우의 발이 허공을 후려쳤다.

‘생각보다 빠르다. 이게… 제임스보다 뛰어난 연금술사의 능력이라고?’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사라질 무렵 뒤쪽에서 나타난 칭 샤오가 양손을 휘저었다.

“근접 전투에 뛰어나군요.”

“…무술인가?”

휘적거리는 자세.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형태는, 과거 무협 영화에서 보았던 자세와 비슷했다.

무술.

중국 특유의 전투 방법 말이다.

쿵, 바닥을 찍으며 달려든 정우가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을 휘감는 손길에 왼손으로 손을 쳐 낸 정우가 발을 내질렀다.

공기가 터져 나갔다.

“새로운 개념이 있더군요.”

정우의 일격을 피한 칭 샤오가 아래로 가라앉듯 몸을 숙이며 발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발이 하체를 쓸어왔다.

살짝 발을 들어 막은 정우가 그 발을 그대로 앞으로 뻗어 축으로 삼은 채로 로우킥을 날렸다.

콰앙!

막은 자세 그대로 뒤로 밀려난 칭 샤오가 손을 털었다.

“강함을 제압하는 건 부드러움이다.”

칭 샤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강함을 제압하는 건 더 강한 강함이다.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르지 않나요?”

“…넌 누구지?”

정우가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저 말은 곤욕스럽게도 철혈의 군주를 우상으로 삼았던 친우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뱀파이어 따위가 된 줄도 모르고 우상으로 삼았던 친우의 흐릿한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칭 샤오. 오버레이의 제작자이자 뱀파이어 로드를 불러낼 소환사… 라고 하면 우스꽝스러울까요?”

씨익 웃는 칭 샤오의 태도에 정우는 표정을 굳혔다.

“…그럴 리가.”

오러를 사용해서 몸을 푸는 작업은 끝났다.

지금 필요한 건.

상대를 제압할 정도의 수준.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간절함으로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 가던 때를 떠올린다.

마력 따윈 한 줌도 없는 처참한 육체였지만, 도리어 기억을 되찾은 지금엔 그때만큼 자유로울 때가 없었다.

마력도 없이 그 정도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

마치 심장의 피가 사지백해로 뻗어 나가듯.

오러가 천천히 전신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세포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오러는 탐욕스럽게도 정우의 전신 곳곳을 누볐다.

반은 의도된 것이며 반은 의도치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천천히’라고 했지만 그 시간은 불과 30초도 채 되지 않았다.

모든 오러가 전신을 누비고 다니며.

과거 정우의 생활 마법을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의 강화를 이루어 낸 것이.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것은.

‘과거의 나한테도 마력을 보는 눈이 있었어. 그런 나는 친우들의 수련을 지겹도록 보았고, 그걸 변환시킬 정도의 지식을 지니게 되었다.’

과거의 기억.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 그것을 덧씌운 정우의 기세가 일변했다.

칭 샤오의 표정도 달라졌다.

눈웃음은 여전하지만 싸늘하게 변해 버린 입가가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잠깐의 침묵.

그것을 깨트린 이는, 의외로 칭 샤오였다.

기이한 걸음으로 순식간에 다가온 칭 샤오의 양손이 뱀처럼 휘어져 들어왔다.

방어하며 쳐 낸 정우의 일격은 일견 우직해 보였다.

“……칫.”

하지만 칭 샤오가 뒤로 물러설 만큼 그 일격은 강력했다.

강한 힘을 제압하는 건 더 강한 힘이다.

그런 신념이 담긴 일격.

정우는 칭 샤오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몸을 부딪치고, 서로의 신체를 향해 주먹과 발을 나누는 상황에서도.

뜨거운 숨을 내뱉는 입술을 열어 묻고 싶었다.

진정으로 넌 누구냐고.

저 신념에 대해 언급한 건 ‘친우’들만이 있던 때였다.

아스란만이 습득한 그 능력 또한 자신들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전염병 같은 검은 대지를 없애기 위한 고민 중에 나온 대화들.

그걸 아는 건 그 회의장에 들어설 수 있었던 이들뿐이었다.

칭 샤오의 얼굴은 그 누구도 닮지 않았다.

전투 방법.

심지어 마력 운용법까지 그 누구를 연상케 하는 특징이 없었다.

그럼에도 손을 맞대는 정우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빌어먹을.

정우의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전투에 감정은 사치다.”

아주 간혹.

지금처럼 대화를 청하는 것도 아니면서 입을 열어 지껄이는 내용은 더욱 정우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친우들에 대해 염두에 둔 게 있었다.

기억을 되찾은 이후, 친우들을 떠올렸으니까.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

그것도 친우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친우들과의 대화를 듣는 건 굉장히 기분이 나쁜 일이었다.

차라리 같은 플레이어로서.

아니, 같은 편에서 만났다면 달랐을 것을.

‘……어?’

거기까지 생각하던 정우가 멈칫했다.

찰나의 틈을 노리고 들어온 칭 샤오의 주먹에 얻어맞으면서도 다급히 몸을 틀어 피해를 줄였다.

“집중력이 벌써 떨어진 건가요?”

이죽거리는 칭 샤오를 보며, 정우는 굽어진 무릎을 폈다.

얻어맞은 복부의 욱신거리는 통증을 무시하며 확신했다.

“…너.”

“네?”

“왜 아직 빌런이 아닌 거지?”

“그게 무슨 소리죠? 하하.”

“난 널 빌런이라고 생각했어.”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악의(惡意).

그것에 대한 경고가 울리지 않았다.

같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연 적일까?

오버레이를 만들고 뱀파이어와 협력하고, 범죄를 저지른 게 뻔한 인물인데도.

‘왜 악의가 느껴지지 않는 거지?’

“너…… 누구냐?”

이전과는 다른 무거운 음성에 칭 샤오가 입맛을 다셨다.

“흥이 사라졌네요.”

“말해.”

“변화가 시작될 거예요.”

칭 샤오는 정우의 물음을 무시했다.

그저 혼잣말을 하듯 본인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앞으로의 일정을 잘 잡는 게 좋을 거예요. 실수하면… 후회할 테니까요.”

“…뭐 하는 거지?”

“뭐 하긴요. 흥미가 사라졌으니까 도주해야죠.”

“내가 그걸 놔둘…….”

“놔둘걸요? 그럴 수밖에 없을 테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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