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변화 (10)
마력은 통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꽉 쥐고 있는 것처럼, 조금의 변화도 허용하지 않는 강제성이 있었다.
하지만.
‘…익스퍼트?’
오러는 예외였다.
이계의 무기는 지구보다 다양했다.
하지만 그 모든 무기를 각자의 직업에 붙이는 건 비효율적이었고.
가장 대표격이며 빈도수가 가장 많고 흔한 ‘검’에 대부분의 직업과 능력을 적용했다.
소드 유저.
소드 익스퍼트.
소드 마스터처럼.
크게 세 분류로 나뉘는 수준은 각기 마력의 흐름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는가에 따라 구분되었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지만 검을 꽤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면 소드 유저.
오러를 사용하게 되면 소드 익스퍼트.
그리고 검과 육체 모두가 마력의 다른 형태인 ‘오러’를 자유자재로 부리며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때가 바로 소드 마스터였다.
익스퍼트라는 건, 오러를 사용할 줄 아는 검사 혹은 무기를 쓰는 육체적인 능력자를 뜻했다.
즉, 정우의 육체적인 수준이 익스퍼트에 해당한다는 소리였다.
보조 직업은.
하지만.
그것은 정우의 마력 고리를 오러로 변환했을 때 등장한.
[ 능력을 재점검합니다. ]
초기의 반응에 불과했다.
[ 막대한 오러가 감지됩니다. ]
[ 보조 직업을 조정합니다. ]
[ 보조 직업 : 마스터 ]
정우의 마력은 어지간한 S급의 그것보다도 우세했다.
그걸 모조리 오러의 형태로 변환했으니, 그 양의 방대함은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하물며 마력을 다루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던 정우다.
그 감각이 적용된 결과물은.
“……허.”
전혀 다른 형태의 최종 버전이었다.
마스터.
오러를 다루는 모든 이들이 꿈꾸는 궁극의 경지.
그것이 정우의 보조 직업이 되었다.
‘듀얼 클래스.’
유서린 이후로 세상에 드러난 적이 없는 케이스였다.
정우는 오러가 맺히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
오러는 마력과는 달랐다.
그리고 마나와는 더 달랐다.
마나는 물이었다.
고인 듯하지만 정체하지 않고 흐르며, 모든 것을 아우를 정도의 포용력을 보였다.
하지만 오러는 다르다.
오러는 불.
그것도 거세게 타오르며 모든 것과 대적하는 반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수많은 마법으로 자신의 육체를 익스퍼트에 준하는 수준까지 끌어 올렸던 정우였지만, 전투엔 적합하지 않은 육체였다.
육체적인 전투엔 재능이 전무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였어.’
정우는 침음을 삼켰다.
튜토리얼.
즉, G급 던전의 체계는 생각보다 더 견고하면서도 세밀하고, 수많은 개념이 톱니처럼 맞물려 움직이는 유기적인 장소였다.
그 어떤 던전도 이만한 수준은 아니었을 정도로.
그런 던전에서 정우는 육체적인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단계를 밟았다.
스킬은 ‘매직 미사일.’
무기는 ‘삼단창.’
익숙한 마법이 먼저 부여되고 뒤따라 육체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면?
설명이 된다.
의외로 마력보다 신체 능력에 대한 점검이 필요했던 두 번째 관문을 떠올리면.
튜토리얼은 자신에게서 신체적인 능력의 활용도 또한 보고 싶었던 게 틀림이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지.’
더불어 부족한 마력을 대체할 방법까지 준 셈이었다.
마치 이런 때를 대비한 것 같지 않은가?
생각은 길었지만, 정우는 본능적으로 오러를 펼쳤다.
마력과는 또 다른 형태의 그것이 주변을 장악하자.
와들와들.
여전히 G-00의 소멸 이유를 찾지 못해 몰려 있던 사람들이 행동을 멈추고는 온몸을 떨어댔다.
오러는 불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불태울 정도의 강렬함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오러였다.
그 여파가 이 일대를 장악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한 곳.
정우의 고개가 매섭게 돌아갔다.
* * *
오러의 감각은 정우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단순히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오러로 근육을 자극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주변의 사물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작은 숨소리까지도.
미약한 소음까지도 모조리 파악되었다.
그 결과 잡히는 건, 아주 미약한 흔적이었다.
오러의 흐름.
‘어딜!’
자신의 오러에 자극이 된 것인지, 누군가가 도망치고 있었다.
마치 천적을 만난 초식동물과도 같은 기민함으로 도주하기 시작한 놈은 은밀했다.
암살 계열.
경계보다도 도주를 선택한 상대의 의도가 매우 궁금해지는 상황이었다.
놈의 속도는 빨랐다.
그리고 확실히 은밀했다.
적어도 어중간한 관찰자는 아니란 소리였다.
더불어.
[ 악의(惡意)를 감지했습니다. ]
상대의 정체까지도 드러난 마당.
정우는 놈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마나를 사용하는 정우가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 건 아닌 것처럼.
대부분의 패턴을 오러로 변형한 지금도 마법의 사용은 가능했다.
쿵!
좁은 골목의 지붕이 무너져 내린다.
저녁을 향해 가는 시간이었지만, 집 안에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정우는 집을 무너트리면서까지 놈을 공격했다.
그래비티.
묵직한 중력이 일대를 짓눌렀다.
어느새 꺼내 든 삼단창을 회전시키며 쭈욱 뻗었다.
자연스럽게 맺힌 오러가 화살처럼 쏘아져 전면을 그어 버린다.
가가각!
겨우 들릴 법한 소음을 끝으로.
“그래도 도망을 간다고?”
다시 도주를 선택한 놈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놈은 몰랐다.
놈의 빠른 속도와 정우의 추격이 맞물려 어느새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마법의 사용에 제약이 생기는 지역.
정우는 그 경계를 넘는 순간,
슉!
곧장 블링크로 공간을 넘었다.
놈의 기척이 느껴지는 근처로.
“……흡!”
복면을 쓴 놈이 다급히 숨을 들이켜며 방향을 트는 모습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휘둘러진 손에서 번쩍, 무언가가 쇄도했다.
깡, 까깡!
세 개의 단검.
창을 휘둘러 그것을 쳐 낸 정우가 땅을 딛자마자 재도약했다.
가시거리 안에 들어온 놈을 향해 손을 뻗자.
우뚝!
놈의 신형이 멈췄다.
가까스로 염동을 벗어난 놈이 다급히 도주하려고 할 땐.
쿠웅!
이미 일대를 장악한 정우의 오러가 서슬 퍼렇게 제 목을 노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는 상대를 보며.
정우는 조용히 명령했다.
“잠들어라.”
* * *
촤아악!
“…….”
그는 자신의 정신을 깨우는 차가운 물에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흥건한 물의 온도는 매우 낮았다.
부르르.
절로 몸이 떨릴 정도로.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이 떨리는 이유가 물의 낮은 온도 때문이 아님을 잘 알았다.
‘……후우.’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깨어났나?”
으스스한 정신으로 눈알을 굴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푸른 뱀이었다.
물로 만들어진 뱀.
그것이 자신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 뒤로 익숙한 얼굴의 인물이 보였다.
“…….”
한정우였다.
‘하필이면…….’
그가 ‘헌터’라는 사실은 암암리에 알려져 있는 내용이었다.
일본에 있었다고 공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한정우는 예상대로 G-00를 찾았다.
그의 목적은 한정우를 관찰하는 거였다.
이미 일본행 때부터 위치를 놓친 상황이었다.
그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사라진 G-00.
그 소식을 들으면 한정우가 나타날 게 당연했으니까.
‘…대체 이 기운은 뭐지?’
다만 문제라면 그 짧은 사이에 한정우의 능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점이었다.
이전에 파악한 수준과 지금의 수준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봐야 옳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기에 붙잡혔다.
원래라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사건.
‘저건 또 뭐야…….’
자신에게 물을 끼얹은 물의 뱀 또한 보고되지 않았던 존재였다.
그리고 마법까지.
그를 대표하는 건 매직 미사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얽맨 건.
막대한 압력으로 자신을 억누르던….
‘중력 마법……. 그리고 공간 이동에… 마지막에 그건 뭐야?’
잠들어라.
명령과도 같은 그것을 듣는 순간,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잠든 것이다.
‘그… 그런 게 가능하다고 들은 적은 없어!’
“생각이 복잡한 모양인데, 그럴 것 없어.”
“……?”
정우의 말에 그는 입술을 모으며 눈가를 좁혔다.
“네 기억을 빼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거든.”
“……!”
그는 정우의 말이 거짓말처럼 여겨지지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야.”
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저승사자라도 본 것처럼 오한이 들었다.
그의 등급은 A급.
한정우의 성장세가 눈에 띄긴 했지만 각성한 지 이제야 1년이 되는 병아리였다.
빌런을 감지하는 특이 능력과.
그분께서 신경을 쓸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마력 효율성이 도드라질 뿐.
3년 안에 S급이 될 거란 평을 받은 자신이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G-00에서 한정우를 마주치는 순간.
아니, 한정우의 존재감이 갑자기 급증하는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도주를 선택했다.
상대할 수 없다.
아니, 항거할 수 없다.
마치 그분을 보는 듯한 존재감은 ‘어떻게’라는 의문조차 삼켜 버린 채 생존 본능만을 자극하고 또 자극할 따름이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제 각성한 지 1년이 되는 사람이 거인, ‘수르트’와 동급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A급의 자신이 너무도 무력하게 잡혔다는 점이다.
“혹시 너희가 아버지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나?”
“…….”
A급 빌런, 장길수는 정우의 말에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G-00의 소멸에 빌런이 관여한 건 없었다.
오로지 한정우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수준을 점검하기 위해서.
모든 건 그들의 왕, 수르트에게 바칠 제물의 상태 확인을 위해 벌어진 일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장길수의 입장에선 너무도 반가운 착각이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경고를 하기 위해서 나타난 거다.”
때문에 움츠렸던 상체가 펴졌다.
날 죽이면 후회할 거다, 라는 태도로.
정우는 장길수의 경고 아닌 경고에도 반응하지 않은 채 다른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종류는 다양했고, 양은 방대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로잡힌 주제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길수는 정우의 궁금증만을 자극할 뿐, 이렇다 할 언급은 피하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밑밥도 충분히 깔아 두었다.
“내가 죽는다고 네 아버지가 죽진 않겠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날 대신할 전령이 정해지기 전까진 네 아버진 계속해서 고통받을 거란 거야.”
정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곧 풀어 주겠군.’
그렇게 확신한 장길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얼마나 비참할까.
빌런을 잡아놓고 놓아줘야 하는 처지가.
있지도 않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협박당하는 처지가.
오싹.
장길수는 정우의 무너지는 표정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그래?”
“그래.”
장길수는 그렇게 말하며 입을 다물었다.
정우는 그런 장길수를 주시하다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내가 물어볼 걸 다 물어봤던가?”
“……?”
풀어 주겠다든가 분노하든가, 그런 말 대신에 들리는 건 평온한 음성에 뜬금없는 내용이었다.
장길수가 눈썹을 들어 올릴 때.
정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능력은 메아리에 미치지 못해서 말이야. 적어도 정신적인 부분에 한해선 그녀가 나보다 뛰어나지.”
메아리? 정신적?
장길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소리치려고 했을 때.
정우가 먼저 말했다.
“말했잖아. 네 기억을 빼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야.”
“…뭐, 뭐, 뭐 하는… 거야?”
장길수는 정우의 손바닥이 천천히 자신의 머리를 덮는 장면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뭔가 잘못되었다.
자신의 판단이.
혹은…….
“말해라. 지금까지 떠올렸던 것들을.”
한정우 자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