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76화 (176/293)

176화

-변화 (9)

“……!”

유서린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곱씹으며 자신만의 정보와 대조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느껴지는 마력에 침음을 삼키며 벌떡 일어났다.

공간 이동의 흔적.

심지어 그 마력이 심상치 않을 정도로 상당했기에, 유지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후웅!

바람을 조종하여 비행하던 그의 눈에 보이는 건.

“……한정우?”

다름 아닌 정우였다.

“마중까지 나오실 필요는 없는데요.”

농담까지 건네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만만치가 않았다.

유지석은.

‘진짜로… S급이 된 모양이구나. 대체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정우의 성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로만 들었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자연스럽게 허공에 떠 있던 정우가 유지석과 함께 다시 협회장실로 들어갔다.

창문이 닫히자.

‘방음이군.’

유지석은 주변의 공기를 장악해서 방음을 펼쳤다.

“진짜로 S급이 된 건가?”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유지석은 가장 의문인 질문을 던졌다.

그 마왕조차도 이런 속도로 성장하진 못했으니까.

“네.”

정우의 단답형 대답에 유지석은 헛웃음을 흘렸다.

네 개의 관문을 클리어했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는… 숨기고 있는 무언가에 해답이 있는 것 같군.’

유지석은 정우의 과거를 떠올렸다.

여러모로 특이했던 인물이었다.

던전에 입장하는 족족 모든 몬스터에게 적대감을 받는 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이었다.

더불어 상당한 수의 던전을 클리어했음에도 성장하지 못했던 때까지.

여러모로 특이한 경우였다.

그런 사실들을 떠올리던 유지석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G-00’로 흘렀다.

시작은 그것부터였다.

세계 유일의 케이스.

당사자는 아니라지만 한정우와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에게 생긴 이상 현상.

‘그것부터 말해야겠군.’

유지석은 G-00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유서린 플레이어에게 들으셨습니까?”

“…음?”

들은 게 워낙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이 충격적인 것이라 무엇을 말하는지 퍼뜩 떠오르지가 않았다.

“하데스를 제가 삼 일만 데리고 있겠습니다.”

“…통보인가?”

“협조 요청입니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 놈을 잡은 사람이 자네라는 걸 알기는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제가 하려는 게 협회장님께서 하시려는 것과 동일하니까요.”

“취조 말인가?”

“네.”

“흐음.”

“협회보다 더 상세하게 캐낼 수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그와 관련된 스킬을 얻은 건가?”

유지석의 물음에 정우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게 플레이어였다.

‘스킬(Skill).’

게임에서 능력 혹은 기술 따위를 의미하는 단어가 고스란히 플레이어 세계에도 적용되어 있었다.

스킬은 확실히 효용성이 높았으며 간편했다.

그리고 직관적이었기에 능력에 대한 사용 이해도가 높았다.

다만, 변화가 극히 적으며 깊이가 얕았다.

여러 성향을 지닌 스킬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정의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장에 맞춰서 스킬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스킬들의 수가 상당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주어진 능력을 보다 능수능란하게 펼치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다.

때문에 유지석이 저렇게 질문하는 건 어떤 면에서는 당연했다.

S급이 된 지 오래되었으면 모를까, 길어야 불과 몇 주에 불과한 정우가 마력을 스스로의 의지대로 다루어 새로운 능력을 창안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정우는 마법을 다루며, 지구의 그 어떠한 플레이어보다도 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마법의 신, 다니엘.

그게 바로 이계에서의 정우의 위치였고, 그의 능력을 증명하는 이명이었다.

스킬.

마력의 보유량과 성장에 따라 주어지는 스킬이 어떠한 체계를 지니고 있는 건지는, 여전히 정우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스킬과 마법의 차이 정도는 너무도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S급인 유지석조차 능력 하면 스킬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플레이어는 스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동결이나 녹지 않는 얼음 같은 경우가 마법에 가깝긴 하지. 그러고 보면 이 사람도 스킬에서 벗어난 고유 능력이 있을 텐데….’

정우는 새삼스럽게 유지석이라는 사람의 능력이 궁금해졌다.

자신과 같은 이중 던전을 겪은 자…….

‘그러고 보면 이중 던전에 대한 것도 물어봐야겠군.’

저번에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말을 아끼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슷하죠. 그나저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하지만 정우의 계획은 송두리째 흐트러져 버렸다.

자신의 말을 끊은 채로 표정을 굳힌 유지석으로 인해서.

“잠깐. 이것부터 이야기를 해야겠네. G-00가…… 사라졌네.”

“……?”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정우의 눈이 천천히 커진다.

이내 부릅떠진 눈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G-00.

플레이어가 되기를 미룬 이유이기도 했으며, 결국엔 플레이어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가 되기도 했던 곳.

아버지가 계신 장소.

정우가 벌떡 일어났다.

* * *

어딘지 모르게 흐름이 이상했다.

어디선가 겪어 본 것 같으면서도 생소한 흐름.

그렇기에 정우는 익숙한 골목에서 등장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먼 거리에서 완료된 공간 이동에 입술을 깨문 정우가 오러를 둘렀다.

한껏 오러를 머금은 허벅지와 종아리가 바닥을 밀어낸다.

시멘트 조각들이 뒤로 튕겨 나가며 벽을 쳤을 땐, 정우는 이미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달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턱.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라 지붕을 밟았다.

주변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다.

‘조금 더…… 빠르게.’

우득, 콰아앙!

하지만 정우는 그조차도 부족했다.

근육과 신경을 자극하는 오러에 더욱 마력을 부여하여 속도를 높였다.

조급한 마음.

‘왜 블링크가 안 먹히는 거지?’

정우는 자신의 능력이 먹통이 되자 이를 빠득 갈았다.

오러가 아니었다면.

‘…내 능력의 대부분이 쓸모가 없어졌을…… 거야?’

콰득.

쿵, 데구르르.

순간적으로 발이 옥상의 벽에 걸려 넘어진 정우가 앞으로 굴렀다.

옥상에서 떨어질 뻔했지만, 정우는 몸을 반이나 허공에 걸친 채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지막 순간…….’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을 떠올렸다.

마법의 신.

그런 과분할 정도로 대단한 이명을 정우는 얻었다.

하지만 지금에야 과분하고 대단할 뿐.

당시의 정우에게 그런 이명은 ‘당연한’ 것이었다.

마력의 사랑을 받고, 마력을 지배하고, 마력과 더불어 존재하는 자.

그렇기에 ‘신’이라 불린 자.

그게 바로 정우였으니까.

그런 자신의 마지막은 몇 번을 되짚고 고민해 봐도.

그 과정이 유추가 안 될 정도로 처참했다.

몇 개의 간단한 조건.

하지만 간단하지 않은 조건.

정우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공간 이동이 불가능한 것만으로도.

바닥을 짚으며 주저앉아 있던 정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아버지였다.

이를 간 정우가 다시 속력을 높여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무려 5년이란 세월 동안 그를 괴롭혔던 검은 구멍이 아니었다.

휑한 공간.

그 앞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였다.

문득 유지석의 말이 떠올랐다.

“찾지 못했네.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더군. 일단 전 세계 협회에 연락은 취해 놓았네. 자네처럼… 다른 게이트에서 나올 수도 있으니까.”

자신의 케이스가 있었다.

자신 역시 입장한 게이트가 사라졌음에도 다른 길드가 입장했던 게이트를 통해 지구로 돌아왔다.

심지어 정원까지 전부 다 차서 더 이상의 인원을 허용하지 않던 게이트에서.

어쩌면 아버지도 그럴지 몰랐다.

“……아버지.”

정우는 수만 가지 생각이 담겨 있는 단어를 내뱉었다.

자신은 다행히도 평이 좋은 길드의 손에 구출되었다.

하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이 인격자의 손에 떨어지는 건 아니다.

한국만큼 던전에 대한 관리가 뛰어난 국가는 전 세계를 찾아봐도 둘이 넘지 않는다.

범죄에 이용되는 던전도 더러 있었고.

‘빌런의 손에만 떨어지지 않으셨으면…….’

빌런의 성장에 쓰이는 던전도 그 수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게 현실이었다.

이제 막 각성을 마친 F급 플레이어가 그런 던전에 떨어진다면…….

휘청.

생각만 해도 전신의 피를 마르게 만드는 아찔함에 정우는 무릎이 꺾였다.

젠장!

소리를 내지 않은 욕설이 입가에서 맴돌다가 삼켜졌다.

빨리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부디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바람도.

욕설과 함께 삼켜졌다.

상심으로 가라앉았던 정우의 눈이 매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이곳의 특이점을 파악한다.’

냉정하게만 놓고 본다면, 이곳에 벌어진 일은 아버지의 실종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공간 자체에 디스펠이 걸려 있는 것처럼 공간 이동 마법을 비롯한 여러 마법이 막혔다는 것.

과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구에선 벌써 초인의 반열에 들어선 정우조차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오러는 활용이 가능해.’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시키거나 물질을 강화시키는 오러의 사용은 어렵지가 않았다.

넘어졌을 때 들었던 의심처럼.

마치 이 흐름은 ‘자신’을 상정해 두고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다.

지금의 자신과는 달리 과거의 자신은.

‘오러는 전혀 사용하지 못했으니까.’

마력만 봉인하면 어린아이보다도 나약한 육체의 소유자였으니 말이다.

이제야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그 ‘누군가’가.

‘거의 백 퍼센트의 확률로… 그 눈의 주인이겠지만….’

간단하지만 까다롭고도 어이없을 정도로 난해한 조건을 성립하여.

‘날 사로잡았다.’

과거의 정우를 끌어내렸다.

정우는 과거 도시의 장이었다.

공작이었으며, 청탑의 마탑주였고.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의 마법 체계를 이룩한 거인이었고.

여러 마스터를 휘하에 둔 군주였으며.

어둠이라는 기이한 영역에 대항한 유일한 희망이었고.

그 희망의 도시를 다스리는 절대자였다.

그런 자신을 반대할 이는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단 하나뿐이었다.

어둠.

그 기이하고도 특이한 속성의 영역 안에서 거주하던….

지끈.

정우는 이마를 짚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 두통이 정신을 장악했다.

이어지던 생각 모두가 싹 날아가 버리고.

정우는 고개를 털어 통증을 지웠다.

젠장.

이틀이나 지났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진작 모습을 드러내야 했을 터.

입맛이 썼다.

정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을 감았다.

정우를 알아본 사람은 없었지만, 정우가 풍기는 기운이 모두의 관심을 오히려 앗아 갔다.

강자.

불과 1년 만에 그 반열에 들어선 정우가 마력을 움직였다.

기름칠이 되지 않은 기계처럼 삐걱거리며, 마력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웠다.

아버지의 마력 패턴을 본 적이 없음에도.

정우는 인간의 마력 패턴에 대한 잔재를 찾듯 마력을 퍼트리고 또 조사했다.

하지만 딱히 도드라지는 마력의 패턴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조급함을 억누르던 정우가 문득 자신의 움켜쥔 주먹을 보았다.

그 순간, 퍼뜩 떠오르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퍼트렸던 모든 마력을 다시 거둬들인다.

정우의 고리가 끼릭거리며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마력이.

커다랗고 잔잔한 호수 같던 마력이 점차 변화한다.

으득!

이를 빠득 간 정우가 통증을 참아 냈다.

강제적인 변환.

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힘이.

[ 직업을 변환……. ]

[ 보조 직업을 찾았습니다. ]

[ 보조 직업 : 익스퍼트 ]

[ 보조 직업을 적용합니다. ]

마나란 이름의 마력을, 오러라는 이름으로 탈바꿈시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