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75화 (175/293)

175화

-변화 (8)

일본의 사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묻혔다.

그 정도로 가벼운 사건은 아니었지만, 당장의 사건이 더욱 컸기 때문에 다소 뒷전으로 밀려 버렸다.

강세기가 총리의 비리를 가지고 일본의 개혁을 선포한 이후.

일본은 유례없는 바쁨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공직자나 플레이어나 할 것 없이 빌런과의 관계를 점검하며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런 일본조차도.

“……10분이 남았군.”

카운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아니, 개혁보다도 ‘격변’이라는 두렵고도 증오스러운 단어에 얽매여 있었다.

그것은 강세기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은?”

그는 고개를 돌렸다.

한국으로 귀환한 한국 플레이어들을 대신하여 그의 곁에 서 있는 이는 사사키 후유였다.

그는 눈가를 좁혔다.

“대대적인 던전 브레이크. 혹은… 던전의 출현입니다.”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겠지.”

총리실을 차지한 강세기는 사치스러운 물건을 모조리 치워 버렸다.

어떤 면에서는 유지석의 집무실을 닮은 삭막한 모습이었지만, 강세기는 물론, 사사키도 지금의 총리실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24시간의 시간 동안 상당수의 나라에서 일본으로 인력을 파견했다.

아무래도 카운트가 진행되는 장소가 일본이다 보니,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은 마음에 움직인 이들이 많았다.

때문에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세이렌이라는 몬스터의 군락지에 불과하던 장소는, 여느 번화가보다도 복잡한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이를 노리고 각종 물건 등을 들고 이동하는 눈치 빠른 상인을 막는 것도 일이었다.

“그나저나 날 이렇게 강력하게 지지할 줄 몰랐는데?”

시간은 남았고, 대략적인 준비는 끝났다.

24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온 강세기와 사사키는 지친 표정으로 카운트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세기의 질문에 사사키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어서 말이죠.”

“누가? 내가?”

강세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시고요.”

질색인 표정은 사사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윽고 진중한 표정으로 강세기를 보았다.

“죗값을 치른다는 말도 마음에 들었고….”

“또?”

“일본에도 사람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호오.”

강세기가 미소를 지었다.

“누구보다도 가장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던 사람이 자네니까.”

“그걸 알아주면 다행이군요.”

“알지. …너무 잘 알아서 문제지.”

뒷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사키는 헛웃음을 삼키며 못 들은 척을 했다.

지금의 강세기는 이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과연 그의 세뇌가 모조리 풀린 게 맞는지.

자신들이 파악하고 쫓던 빌런들에 대한 섬멸 작전을 펼친 그가, 오히려 기만을 펼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한국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겠다는 말과.

‘내게 모든 사안을 열람할 권한을 주겠다는 말만으로도 일단은 지켜볼 자격은 충분하다.’

사사키는 자신의 목숨마저도 견제 조건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강세기에 대한 불안과 의심은 남았다.

하지만 그의 곁에 있는 자신이 혹시나 잘못된다면.

강세기에 대한 의혹은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즉, 스스로가 그를 증명하는 조건이 된 것이었다.

본인의 목숨을 걸고.

* * *

유서린 일행과 헤어진 이후였다.

이진수에게서 하데스를 받은 정우는 하데스와 함께 메아리를 만났다.

“……죽을 거 같아요.”

실제로 메아리는 구토까지 한 상황이었다.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온 그녀는 하데스라는 거인과의 전투의 여파를 제대로 씻지 못했다.

다급히 마녀의 마을로 도망쳤던 그녀는 단 하루 만에 정우의 손에 이끌려 다시 지구의 땅을 밟아야만 했다.

그리고 지친 육신을 이끌고 던전 내의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저주를 걸어야만 했다.

덕분에 그녀는 정우에게 건넨 말마따나 죽을 맛이었다.

“미안하군.”

정우는 그녀의 마력을 조금 조정해 주었다.

지친 육신과 바닥난 마력이 조금은 회복되자 그녀의 표정 역시 약간은 나아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정우의 말에 그녀의 얼굴은 다시 파랗게 질려 버렸다.

“하데스의 정신을 장악하고 있어.”

“…….”

원망 섞인 눈으로 정우를 보던 메아리가 어깨를 늘어트리며 하데스를 데리고 이동했다.

던전이 클리어된 상황.

사람들이 몰려들면 만약을 대비하여 일대를 확인하려고 할 테니, 조금 더 안정적인 장소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마력이 부족하니까.

그렇게 메아리와 하데스를 일단 이동시킨 정우는 곧장 공간을 넘었다.

‘확실히 효용성이 높아졌다.’

세이렌 영토에서 얻은 건 S급이라는 단계만이 아니었다.

평생 자신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았던 마력의 ‘고리’를 형성했다.

일단 고리를 형성한 이상, 주변의 마력이 아무리 고갈되어도 어지간한 능력은 사용이 가능했다.

‘어……?’

총리 관저 인근 하늘에 도착한 정우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자신을 억압하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일지도 몰랐다.

물론, 그 까다로운 조건을 다 맞춘다면 말이다.

첫 번째로는 마력 자체를 아예 고갈시켜야 했고.

마력 고갈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야 했다.

최소한 한반도 정도.

그만한 공간의 마력을 고갈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불어 조금의 틈도 없이 사방을 차단해야 했다.

마력이 고갈된 지역을 유지해야 했으니까.

고작해야 두 가지 조건이라고 하지만, 이게 얼마나 까다로운 일이냐면.

마력 고갈 지역은 아무리 넓어도 한 도시 이상을 넘길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이계는 마력이 풍부했었고.

심지어 모든 마법을 아우르던 자신을 속이고 마력을 고갈시킨 후에 그 영역을 확대시켜서 고정시키는 게.

‘가능할 리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확신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자신의 결말은, 결박당한 채로 죽음을 앞두고 있었으니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어쩌면 어둠의 영역을 이용할 때 ‘고리’를 생성시킨 게 신의 한 수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도 정우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총리실의 앞에 선 정우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마법 결계는 수준급이었다.

더불어 카메라 등을 이용한 감시 체계까지 철옹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시 체계를 무력화시키며, 정우는 가볍게 총리실에 입장했다.

그리고 즉시 비타의 영상 녹화를 켰다.

몇 중의 결계를 무력화시키고, 어렵지 않게 금고를 열었다.

“이거로군.”

세뇌 아티팩트.

그것은 은은한 보랏빛과 검은빛이 뒤섞여 있는 구슬이었다.

그것의 패턴을 파악하고 개념을 확인한 정우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삐릭.

기다렸다는 듯 유서린에게서 연락이 왔다.

들것에 누워서 몰래 보낸 연락이었다.

-확인됐나요?

유서린이 원한 건 녹화 영상이었다.

하지만 정우는 그것에 앞서서.

“…보내자.”

자신의 손에 들린 아티팩트를 보며 통로를 열었다.

통로를 통해 반대편의 상황이 선명하게 잡혔다.

경계 태세를 취하는 강세기를 향해.

툭.

아티팩트를 던졌다.

‘눈’이라는 이름의 아티팩트를.

정우는 금고 안에서 여러 서류와 저장 매체를 꺼냈다.

일부로 과장되게 흔든 후, 녹화된 영상도 보냈다.

그리고 저쪽에 관심을 끈 정우가 서류를 펼쳤다.

온갖 비리가 적혀 있는 서류.

서류의 내용은 주로 공적인 업무 중 저지른 비리 문서였다.

비타에 저장 매체를 연결해 확인했다.

‘찾았다.’

문서와는 달리 누구에게도 밝혀져서는 안 되는 파급력을 가진.

‘……칭 샤오!’

빌런과의 접촉이 확인되었다.

짧게 등장하는 이름을 확인한 정우가 입술을 씹었다.

불과 얼마 전.

도살자의 입에서 들렸던 이름이 바로 ‘칭 샤오’였으니까.

오버레이를 만든 인물.

빌런 협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게 분명한 인물.

또다시 등장한 그 이름에 정우는 눈을 빛냈다.

‘찾아야겠군.’

* * *

“……어.”

멍한 표정의 하시모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결정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정우의 채근에 더욱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지금 들린 내용은 그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난 종류였다.

“…그니까…….”

정우는 약한 한숨을 내쉬며 하시모토에게 확언했다.

“제가 하시모토 씨를 고용하고 싶어서요. 평생 써도 모자라지 않을 돈을 드리죠.”

“…그, 그러니까 절 왜 그 정도 돈을 들여서 고용하려고 하는 건가요?”

정우의 진중한 말투에 정신을 차린 하시모토가 물었다.

“저는… 아직 등급도 낮은 플레이어에 지나지 않은데요?”

“등급이야 높이면 돼요. 그리고….”

정우는 하시모토의 눈을 주시했다.

“찾을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제가 도움이 된다고요?”

“네.”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는 곧장 하시모토를 찾았다.

그러고는 영입 제안을 했다.

빌런의 추적에 집중하던 그는 뜬금없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어지는 정우의 말엔 심각한 표정으로 경정할 수밖에 없었다.

“…빌런 협회에서 중요한 인물을 찾는다는 거죠?”

꿀꺽, 마른침을 삼킨 그는 긴장한 모습이었다.

“맞아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빌런 협회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라면 강자가 틀림없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추격자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목을 따버릴 정도로 강한 경호원들을 두고 있을 게 뻔했다.

자신이 추적에 능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엄연히 일반 세계에서나 통하는 수준이었다.

플레이어?

그 세계에서 자신은 손가락만 까딱해도 죽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겁이 납니다.”

그는 두려웠다.

악인을 찾아 징벌하는 것에 한 팔을 거드는 건 평소의 사명이자 신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 건, 오히려 의미가 없는 개죽음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기도 했다.

안전하게 진실을 파고들자.

그게 그의 평소 생각이었으니까.

어쩌면.

사다코의 뒤를 쫓았을 때부터 무언가가 어긋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지금이 아닌, 보다 나아진 자신을 꿈꾸는 삶을 떠올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어지간해야 생각이라는 걸 해보는 게 아닐까.

정우는 걱정과 우려로 가득한 하시모토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성장시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요.”

그의 말대로 추적이 뛰어난 플레이어는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성장하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상황이었다.

추적 스킬을 활용하며, 어지간한 건 스킬에 의존하는 경향도 강했다.

하시모토처럼 스킬과 자신의 생각. 그리고 본능을 비롯한 경험까지 종합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제대로 성장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재능도 충분했고.

“걱정…이라.”

하시모토는 정우를 잠깐 따라다니며 플레이어 세계의 이면을 확인했다.

살인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범죄의 온상.

다시금 그것을 상기하자 하시모토의 정의감이 꿈틀거렸다.

잠깐의 고민 끝에 그는 묵직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바로 가죠.”

“……에? 바로요?”

일본인 특유의 감탄사를 들으며 정우는 곧장 공간 이동을 전개했다.

황폐해졌던 장소.

여전히 몬스터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는 폐허에서 메아리가 허우적대며 나타났다.

“쉬면서… 하시모토에게 추적에 대한 모든 걸 습득시켜.”

“……쉬지 말란 소리잖아요.”

야근에 시달리는 직장인처럼, 메아리가 앓는 소리를 냈다.

“걱정하지 마. 저쪽에 가면 가르칠 사람은 넘쳤으니까.”

“…아아. 그렇다면야…….”

메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 하시모토까지 데리고 숨어 있어.”

“……알겠, 어요.”

메아리가 어리둥절해하는 하시모토의 손을 끌고, 다시 사라졌다.

하데스와 하시모토.

둘은 모두 마녀의 마을로 이동시킬 생각이었다.

이지스라면 자신의 생각대로 하데스에게서 많은 걸 뽑아낼 터였다.

더불어 메아리의 회복에도 신경을 쓸 테고.

“그 안에서 쉬고 있었으니까, 좀 움직이라고.”

옛 인연이자 자신의 수하가 된 이지스를 향해 중얼거린 정우가 남은 시간을 떠올리며.

“…한국부터 가자.”

다시 공간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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