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변화 (7)
충격으로 일그러진 장내를 가득 채우는 음성이 있었다.
“총리가 빌런과 결탁했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던 유서린이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충격에 이은 충격.
“…유, 서린?”
“알아본 바로는 교토 시청사의 재건축을 진행한 게 바로 총리 본인이더군요.”
“……?”
“자, 잠깐만. 교토 시청사?”
“거기 지금 엄청 소란스럽지 않나?”
“어……. 빌런 이야기도 나온 거 같은데.”
“X발. 맞아. 거기… 이번에 난리가 났잖아?”
기자들이 수군댔다.
총리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비, 빌런이라니… 그게 무, 무슨 소리야.”
“한국에서 빌런들이 대거 일본으로 넘어왔어요. 아시죠? 한국에서 빌런을 박멸하기 시작했던 거.”
“못 견뎌서 일본으로 넘어온 건가? 근데 왜 일본이야? 중국으로 가야지.”
“우리나라는 그동안 빌런 청정국가 아니었나?”
“아니었어요. 놈들은 이미 일본에 수십, 수백 개의 터전을 가지고 있더군요.”
“……!”
충격에 이은 충격.
특히나 자국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했던 몇몇의 기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한국에서 넘어온 빌런들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각자 역할이 있는 것처럼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걸 여길 공략하면서 알아보셨다고요?”
“네.”
“…그 무슨.”
“헌터(Hunter).”
“……?”
“그가 미국으로 갔다는 사실은 거짓이니까요.”
“……!”
유서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헌터는 지금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빌런을 감별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빌런이라는 최악을 미리 파악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었다.
“그, 그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맞아요.”
유서린의 말에 기자들이 눈을 빛냈다.
헌터가 일본에 있다.
그렇다면 유서린의 말의 신빙성이 높아진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이미 한국에서 자국을 정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일반인 사이에 숨어,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고 있는 빌런조차 찾아내는 건 능력이 없고선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정보를 얻었다고 해도 박멸에 가깝게 일을 처리하려면, 그 정보의 출처가 우두머리급이어야 가능했다.
정보로는 불가능한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헌터의 존재가 확실하다고 믿었다.
“헌터는 일본의 네 길드와 협력했고….”
유서린의 눈이 누군가와 마주쳤다.
“저기 계시는 앤드류 몬타나 협회장님께서도 한 팔 거드셨죠.”
기자들이 황급히 앤드류를 돌아보았다.
총리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헝클어진 머릿속에선 연신 ‘죽음’이라는 단어가 경고음처럼 떠올랐다.
그가 떠올린 죽음은 말 그대로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었다.
이뤘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권력적인.
사회적인 죽음.
“거, 거짓말이야…….”
“아까부터 자꾸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강세기가 아티팩트를 살짝 띄웠다가 다시 잡았다.
파리한 안색의 총리가 손을 뻗었다.
“그, 그거… 이리 내.”
“다시 세뇌라도 시키려고 그래?”
“내가 왜! 초, 총리. 그래. 일본의 총리로서 그것의 진위를 파악해야….”
“푸하!”
강세기가 웃음을 터트렸다.
허리까지 꺾으며 한참을 웃어대던 강세기의 주변으로 서리가 맺혔다.
말 그대로 진짜로 공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어 눈처럼 떨어졌다.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는 온도에 이곳에 모인 모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제 팔을 감싸며 추위에 떨었다.
“이게 네 금고에서 나왔는데?”
때마침 유서린이 비타를 조작했다.
영상 하나가 재생된다.
1인칭 영상이었다.
누군가의 시점으로 보이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곳이었다.
“지, 집무…실.”
추위로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누군가가 그곳의 정체를 말했다.
집무실을 녹화한 누군가는 이리저리 집무실 내부를 살피더니 총리의 책상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웅얼거렸다.
위잉-.
짧은 진동음과 함께 책상 주변의 바닥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기이한 형태의 문자가 가미된 발광체는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털썩.
그 장면을 보던 총리는 아예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주저앉고야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녹화까지 해놨을 줄이야.
총리는 자신의 집무실에 걸린 디스펠과 마법 장벽이 해제되었다는 것부터가 믿기지가 않았다.
아티팩트가 강세기의 손에 떨어졌음에도, 모조품이라는 생각도 버리지 않고 있었던 그였기에 더더욱.
그만큼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 대한 경계를 믿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참모가 진행해 주었기에.
그만큼 총리의 참모에 대한 믿음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무산이 되어 버렸다.
마법진은 해제되었고.
감춰져 있던 금고가 드러났다.
공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금고에 걸린 마법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하나같이 해제되어 벗겨져 버렸다.
아이스크림 봉지를 뜯어 아이스크림을 꺼내는 것처럼 쉽게, 모든 것들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딸깍.
심장이 쿵 내려앉을 정도의 소음과 함께 금고의 문이 열렸다.
금고에서 나오는 건 아티팩트만이 아니었다.
여러 서류와 저장 매체.
총리 자신이 저지른 각종 범죄와 비리의 결정체가.
팔랑.
누군가의 손에 들려 흔들렸다.
바람의 촛불처럼.
총리는 자신의 생명이 끝났음을.
푹.
확신하며 고개를 숙였다.
* * *
세이렌 영토의 공략 여부는 전 세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때문에 몰려든 외신의 수도 적잖았고, 생중계로 송출되는 채널의 수도 상당했다.
모인 대부분이 기자였고 관련된 플레이어였지만, 이 참사가 퍼져 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초면 충분했다.
일본 총리의 만행.
빌런과의 결탁.
충격에 휩싸여서 수군거리던 이들이 입을 다물고 다시금 영상에 집중한 것은.
“한 가지만 말하지.”
강세기가 다시 입을 열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은 영상 너머의 공기가 자신들의 주변에도 내려앉은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강세기의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총리는 법의 심판을 받을 거다.”
당연한 말이었지만, 강세기는 마치 자신이 판사라도 된 것처럼 선고했다.
강세기는 카메라를 주시했다.
“나는 한국인이다.”
강세기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비록 총리의 계략에 모친을 잃고 세뇌되어서 일본으로 귀화를 했지만….”
“정신이 살짝 들 때마다 난 내 이름을 지키기 위해 다른 것들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그렇게 지킨 이름이다.”
강세기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여 모두는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일본의 국회 의원들은 불편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입을 열지 못했다.
총리와 엮인 일들이 어디 한둘인가?
총리의 저 비리 문서에 자신들의 목줄이 꿰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하는 때였다.
강세기가 자신들을 부정하고, 감히 일본을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참을 때였다.
그렇게 자위하며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였다.
강세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더군.”
뜬금없는 말이었다.
일본은 무인도가 아니다.
그의 조국 대한민국보다 더 커다란 영토를 지니고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세기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내 처지를 알면서도 입을 다문 사람.”
“날 이용하기 위해 오히려 총리에게 고개를 조아린 사람.”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당당한 사람.”
강세기의 말이 이어질수록 사색이 되어 가는 몇몇의 얼굴들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강세기는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사사키를 비롯한 네 길드를 떠올렸다.
그 외에도 자신의 사정을 알아차리고 도와준 사람을 떠올렸다.
일본인임에도 총리와는 전혀 다른 이들이었다.
“사람다운 사람도 있었어.”
강세기는 다시 카메라를 주시했다.
차가운 눈동자에 열기가 맺혔다.
보는 사람들조차 마른침을 삼키고 뒷말을 기다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였다.
타소가레의 길드장 강세기.
일본의 S급 플레이어.
이런 타이틀을 걸고 활동할 때는 보지 못했던 열기였다.
사람들은 저 모습이야말로 강세기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일본에 남는다.”
누구 하나 물어보지 않았다.
강세기의 거취에 대해서.
그 이유는 간단했다.
총리가 저지른 범죄가 사실이고, 강세기가 세뇌로 인해 귀화한 게 사실이라면.
그는 본래의 조국을 찾아갈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렇기에 강세기의 발언은 오히려 사람들의 머리를 둔기로 친 것 같은 묵중한 충격을 주었다.
강세기가 일본에 남는다?
“난 내 조국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뚝 선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어느새 충혈된 눈이 좌중을 훑었다.
“하지만 내가 없어도 대한민국은 잘하고 있더군.”
“난…… 이젠 일본을 바꾸고 싶다.”
“빌런을 없애고, 범죄를 척결하고, 온갖 재해와 던전으로 얼룩진 이곳을….”
“사람답게 살도록 바꾸는 데 힘쓰겠다.”
그렇게 말한 강세기가 선언했다.
모두는 그 말을 들으며 직감했다.
그리고 고개를 떨궜다.
총리의 시대는 저물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그 모든 권력을 거머쥔 사람은.
다름 아닌 강세기였다.
“타소가레 길드부터 공적(公敵)으로 정하고 척결한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길드장으로 있는 타소가레 길드에 대한 정화와 척결이었다.
* * *
왕권 체제.
하나의 절대적인 권력자를 둔 국가의 형태가 다시금 재현되었다.
일본은 기형적인 피라미드 구조의 플레이어 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넘쳐나는 F급과 E급과는 달리 B급 이상의 고위 플레이어는 씨가 마른 듯 그 수가 급감했다.
하물며 S급이야.
강세기는 일본에 존재하는 두 명의 S급 중 하나였다.
더불어 사사키 후유라는 일본의 국민 영웅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사사키뿐인가.
그를 위시한 일본의 4대 길드가 모조리 강세기를 지지했다.
플레이어 체계는 개편되었고.
정부 역시 무너져 내렸다.
모든 권력이 집중되었고, 강세기는 총리가 그토록 바라던 왕권 체계에 가까운 권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단 하루 만에.
그가 길드장으로 있던 타소가레 길드는 공중 분해가 되어 버렸다.
타소가레 길드 자체가 총리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진행하는 사냥개 집단이었던 만큼 비리는 넘쳐났다.
“세뇌를 당했다고는 하지만 나 역시도 잘못을 인정한다. 하지만….”
강세기는 스스로의 죄를 인정했다.
세뇌를 당해서 명령을 받았다지만, 우둔했던 과거의 자신의 선택으로 시작된 일의 죗값을 언젠간 치를 예정이었다.
“모든 건 몬스터를 다 쓸어버리고서… 짊어지지.”
몬스터.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놈들을 쓸어버린 후로 미루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격변에 대비하라는 퀘스트.
그에 따라 변화하는 시간.
이제 채 30분도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처음 퀘스트가 떠오른 건 세 명뿐이었다.
유서린, 강세기, 김하란.
지팡이가 변화할 때 가장 가까이 있었던 S급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순차적으로 퀘스트가 등장했다.
S급부터.
F급까지.
모두가 다 같은 퀘스트를 부여받았다.
격변에 대비하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직관적이며 두려운 퀘스트명에서 자유로운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시간이 흐를 때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
정우는 여전히 퀘스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