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변화 (6)
“일본인은 입을 열 자격이 없다.”
싸늘하면서도 신랄한 말투였다.
“지금 무슨……!”
총리는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며 심장을 옥죄는 한기가 쏟아지자 말을 잇지 못했다.
총리는.
‘……뭔가가.’
직감적으로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다…….’
오랜 전투로 지친 모습은 남아 있었다.
때문에 예리해진 감각으로 주변을 압박한다고 봐도 무방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걸 긍정적으로 판단하기엔.
총리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꿀꺽.
총리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강세기는 천천히 입을 열고 있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해진 좌중을 파고드는 음성으로.
“이번 공략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진행했고, 성공시켰다.”
강세기가 입을 다물자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긴 기자 하나가 더듬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 그럼 한국에서…….”
한국 기자였다.
그는 심리적인 압박만을 겨우 이겨 낸 것인지 일어 대신 한국어로 질문을 던졌다.
강세기는 그에 대한 압박을 살짝 해제했다.
단숨에 거센 숨을 몰아쉰 기자가 헛기침을 하고선 다시 물었다.
“그럼 한국 측에서 보스를 잡은 겁니까?”
보스를 누가 잡았냐는 건 매우 중요했다.
보스의 처리 유무에 따라 이 지역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총리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소리치려고 했지만, 마치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강세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마리의 보스가 존재했다. 한 마리는 유서린 플레이어가. 다른 한 마리는 김하란 플레이어가 상대했지.”
“…그럼 강세기 플레이어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강세기는 기자를 가만히 보았다.
마른침을 삼킨 기자였지만, 끝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강세기는 피식 웃으며 카메라를 주시했다.
“난… 전투를 벌일 상황이 되지 못했다.”
정우의 예상보다도 더한 발언이었다.
온전히 모든 공을 한국에게만 돌리기 위한 강세기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상처를 입었던 겁니까?”
플레이어나 일반인이나 할 것 없이 입을 다물고, 해당 기자만 입을 열고 있으니 마치 인터뷰처럼 진행이 되었다.
얼어붙은 와중에도 어찌나 대화는 잘만 들리는 건지.
“상처라…….”
조소까지 섞인 중얼거림이 모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어쩌면… 상처겠지.”
“…어쩌면?”
강세기의 폭탄 발언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강세기의 싸늘한 시선이 총리를 향하는 순간부터.
모두는 그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세뇌’를 당하고 있었거든. 제정신이 아니었어서 말이야.”
“……!”
그 사실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일본,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 * *
강세기가 세뇌에 당했다.
이 사실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누가 감히 S급 플레이어를 세뇌시킬 수 있을까.
여러 인물들이 떠올랐다.
카메라 너머로 말문이 막혔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말을 쏟아 냈다.
누가 강세기를 세뇌시켰을까?
무슨 세뇌를 시킨 걸까?
무슨 세뇌였기에 전투를 할 수 없었을까?
그렇다면 한국 플레이어들만 저 지경이 된 게 세뇌를 건 사람의 목적이었을까?
혹시… 강세기가 예전에 일본으로 귀화한 것도 세뇌 때문이 아닌가?
그럼.
“……누가 세뇌를 푼 거죠?”
어떻게 세뇌에서 풀려난 것일까?
모두의 소란을 대언하듯, 기자가 물었다.
강세기는 유서린을 가리켰다.
“징벌의 처녀. 그녀 덕분이지.”
총리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징벌의 처녀 유서린은 성기사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치유력과 방어력.
신성력을 이용한 공격까지 가능한 전천후 직업.
하지만 평범한 저주나 독 계열이라면 모를까, 이미 골수까지 파고든 세뇌를 없앨 능력 따위는.
“…거짓말!”
그녀에겐 없었다.
총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
그리고 나서야 다시 경악했다.
언제 압박이 풀린 거지?
대체…….
모두의 시선이 총리에게로 몰려들었다.
억압은 끝났다.
호기심이 채워졌으니 강세기는 차분히 설명할 따름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모두가 진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무엇이 거짓말이란 소리지?”
강세기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총리는 이미 자신들과 기자들 중간에 서 있었으니 다가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총리를 보는 강세기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내가 세뇌에 걸렸었다는 사실이 거짓말인가? 아니면 내 세뇌를 풀어준 이가 유서린이라는 사실이 거짓말이라는 소리인가?”
“…그, 그건….”
총리는 강세기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세, 세뇌에 걸릴 이유가 없잖나! 누, 누가 감히 S급에게… 세뇌를…….”
“감히. 감히라…….”
강세기가 피식 웃었다.
“그러게. 누가 감히 내게 그따위 짓을 했을까?”
“유, 유서린이 거짓말을 한 거다. 자네가 왜 세뇌에 걸려? 우리 일본이 자랑하는 플레이어가!”
말을 하던 총리의 태도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확실히 대단한 사람이었다.
세뇌 아티팩트는 자신만의 비처에 숨겨져 있었다.
모든 S급이 여기에 있는 이상.
‘아니, 그 누가 오더라도 그건 확인하지 못해!’
온갖 마법과 저주로 보호받고 있는 금고를 열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세뇌 아티팩트만 없다면.
‘이 사실을 증명할 수단은 없어!’
강세기의 발언은 무의미했다.
총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서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가?”
강세기는 총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조소에 가까운 비웃음이었다.
“그래!”
총리는 그 웃음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당당하게 나섰다.
S급의 위용은 이미 많은 봤기 때문에, 강세기가 마음을 먹는 순간 자신은 죽은 목숨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A급 플레이어까지 있는 경호원조차 강세기에겐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강세기가 자신을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복수를 위해서라도 무조건 날 노렸을 거다.’
진정으로 유서린이 강세기의 세뇌를 푼 것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지만.
‘그 세뇌가 모조리 풀렸을 리가 없다.’
세뇌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고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나중에 가선 세뇌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본인의 것으로 자리 잡는 게 바로 세뇌의 무서움이었다.
강세기가 세뇌에 당한 건 한두 해가 아니었다.
벌써 8년.
이 정도의 세뇌라면 뿌리 깊게 박힌 기억 때문이라도 해제가 쉽지 않았다.
‘유서린이 세뇌를 해제했다고? 웃기는 소리! 저 자식은 지금 잠시 정신이 들었을 때를 노려서 날 공격하는 거야.’
총리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는 강세기를 보며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한 가지 사실 또한 확신했다.
강세기는 세뇌에서 잠시 벗어났을 때조차 자신에게 위해를 끼치지 못한다고.
“누가 그딴 짓을 하냔 말이야!”
총리는 보란 듯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기자들을 보았다.
압박에서 벗어난 기자들은 지금의 상황에 부리나케 영상을 송출하며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다.
특종.
모두의 머릿속엔 기존의 특종보다 더 크고 거대한 특종이 자리 잡았다.
이미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긴 했지만.
총리는 그런 기자들을 보며 일순간 눈살을 찌푸렸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막는 순간 오히려 의심이 생겨날 테니까.
“아무래도 강세기 플레이어가 고된 전투에 지친 게 틀림없소. 저 간악한 몬스터인 세이렌의 저주의 여파일 가능성이 농후하오!”
세이렌의 저주란 단어에 기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발언이었다.
“본인은 강세기의 발언을 확실히 조사할 것이고, 저주 해제에도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아무래도 검사부터 해야…….”
“왜? 검사하는 동안 ‘아티팩트’를 숨기려고 하나?”
“……!”
모두의 눈이 커졌다.
저 말인즉슨.
“……지, 지금 무슨 말을…….”
“설마… 세뇌의 배후에 아벤 총리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강세기 플레이어! 지금 발언이 무슨 뜻인지….”
“아벤 총리가 세뇌의 주범이라는 말씀입니까?”
다시금 소란이 가득 찼다.
총리는 덜컥 내려앉았던 심장을 추스르며 고개를 돌렸다.
늘어진 볼이 잘게 떨렸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인임에도 강세기를 노려보는 눈빛에는 오랜 세월 동안 정치를 해온 권력자의 힘이 담겨 있었다.
강세기는 저 눈알을 당장이라도 뽑아 버리고 싶었다.
부르르.
힘줄이 도드라진 주먹이 움켜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떨렸다.
총리는 일이 틀어졌음을 확신했다.
저 발언.
잠시간의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이게, 이 순간에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짓이지?”
“틀어졌던 모든 걸 되돌리려는 생각이지.”
“무엇이 틀어졌다는 소리야!”
“이런 순간까지도 연기라…. 차라리 배우가 되는 게 나을 뻔했어.”
강세기가 총리를 노려보며.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움직이는 건 강세기와.
“……도, 동결(凍結)?”
이 능력을 알아본 총리뿐이었다.
“지금 네 목을 얼마나 뜯어 버리고 싶은지, 넌 모를 거다.”
“……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지. 잘 알지.”
강세기가 으르렁거렸다.
“내 어머니를 납치했고, 어머니를 구하려고 일본으로 온 날 세뇌해서 강제로 귀화까지 시켰지.”
“……!”
“그리고…….”
강세기가 순간적으로 손을 뻗었다.
총리의 볼에 닿기 직전 멈춘 손이 크게 떨렸다.
쥐고 싶지만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어머니를 죽였다. 네가….”
“그, 그걸 어떻게…….”
“아티팩트를 못 찾았다고 안심했나? 성장할 때마다 가끔씩 정신을 차렸던 걸 몰랐겠지.”
“서, 설마….”
“그때마다 모은 자료만으로도… 넌 끝이야.”
총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뇌된 강세기는 자신의 치부를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다.
세뇌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만큼 강한 자가 일본엔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온갖 지저분한 일의 처리를 도맡은 강세기의 입이 열리면.
‘끄… 끝이다!’
총리는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자, 자, 잠깐…. 내, 내가 자네를 이, 일본의 협회장으로 만들어 주겠네. 타, 타소가레 길드도. 다른 길드도… 일본 플레이어계의 모든 권력을 자네에게 주, 줄게.”
다급히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총리.
강세기는 그런 총리를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따위 놈에게….
강세기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시 다른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결이 풀린 것이다.
하지만 총리는 몰랐다.
띠리리리-.
누군가의 전화를 시작으로, 연이어 기자들의 전화가 벨소리를 토해 내듯 울리기 시작한 이유를.
“…그, 그게 무슨….”
기자 하나가 다급히 카메라를 살폈다.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카메라.
동결의 권능에서 잠시 벗어나 있던 문명의 이기가.
“초, 총리. 아벤 총리! 강세기의 발언이 사실입니까!”
“강세기가 일본으로 귀화한 게 세뇌 때문이었습니까?”
“저… 개새끼를! 야, X발 원숭이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둘의 대화를 고스란히 송출했다.
총리의 굳은 얼굴이 뻣뻣하게 회전하여 강세기를 보았다.
“……!”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총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좌절은 일렀다.
강세기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집중되는 마력에 방어 자세를 취하며 마력을 끌어 올렸으나.
검은 구멍 사이로 떨어진 건 공격이 아니었다.
주먹만 한 구슬.
검은 연기가 휘돌고 있는 그것이 강세기의 손에 떨어졌다.
더불어 들리는 설명에 강세기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웃는 듯, 화가 난 듯.
정의할 수 없는 상반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표정으로.
강세기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보며 경악하는 총리에게 판결을 내렸다.
“이 저주스러운 아티팩트도 내 손에 들어왔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