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70화 (170/293)

170화

-변화 (3)

유서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의 사체로 가득했던 지역이었다.

세이렌과 머맨이라는 두 종의 몬스터들과 질릴 정도로 수없이 부딪쳤다.

정우가 세이렌 여왕을 없애고 난 뒤, 지휘자가 사라진 군대처럼 오합지졸로 변해 버린 몬스터였지만, 최후의 순간엔 궁지에 몰린 쥐처럼 달려들어 곤욕을 겪었다.

자신들의 회복을 막고 있던 마력이 돌연 옅어지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크게 다쳤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정우의 합류로 몬스터들의 토벌엔 가속도가 붙었고.

기어이 근방의 모든 몬스터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다.

상당히 넓어진 놈들의 영역 가운데에서 잔당을 찾는 지루하고도 귀찮은 작업만이 남았다고 생각했을 무렵.

돌연 세상을 뒤덮던 마력의 흐름이 바뀌었다.

더디게 회복되던 마력이 갑자기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안정되기 시작했고.

마력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 사용하던 셋은 그제야 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전투는 끝났다.

지루하고 힘겨웠던 공략이 결말을 맞이한 것이었다.

미해결 지역 클리어라는, 아주 고무적인 성과를 들고.

“…처리할 게 한가득이네요.”

전투가 끝나니 생각이 복잡해졌다.

일본에서 벌어진 일의 수습만 해도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여차하면 빌런 협회와 전면전까지 고민해야 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선택을 도와드릴까요?”

“…선택이요?”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우가 다가와 물었다.

“하데스를 잡았다는 건 유지석 협회장님께만 알리죠.”

“…협회장님께만요? 왜죠?”

“걱정하신 대로. 아무래도 빌런 협회에서 하데스를 구출하기 위해서 여러 사건을 만들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복잡해요.”

“제가 처리해드릴게요.”

“어떻게요? 우리 쪽은 그렇다고 쳐도, 일본 쪽 입은 막지 못할 텐데요?”

“그것까지 포함해서 처리해드린다는 소리예요. 하데스를 몰래 한국 플레이어 협회로 배달까지 해드리죠.”

정우의 말에 유서린이 물었다.

“원하는 게 뭐죠?”

“삼 일. 삼 일만 하데스의 신변을 제게 넘겨요.”

“……!”

유서린의 눈이 커졌다.

하데스의 신변을 넘긴다는 건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빌런 협회의 중추 중 하나인 하데스를 통해서 얻을 정보는 산더미였다.

과연 그 많은 것들을 제대로 불지는 모르지만, 마력을 잃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그러고 보면 마력은 회복되는 건가요? 하데스의 마력 말이에요.”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해요.”

“…그럼 그냥 노인이란 소리인데…….”

“알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공유할 내용은 공유도 해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뭐…… 애당초 놈을 잡은 건 한정우 플레이어였으니까요. 알겠어요.”

“다행이네요.”

유서린은 정우의 그 말이 묘하게 들렸다.

제안의 수용이 다행이라는 건지, 불필요한 잡음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한정우는 이곳에 오기 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속도로 성장한 건지,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정우가 S급이 되었음에도 상호 간의 예의나 인성적인 부분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간혹 S급이 되고선 본색을 드러내듯 성격이 변하는 사람들이 있곤 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야.’

정우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듯 보였다.

“삼 일만 기다려 주세요.”

“약속을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오.”

유서린에게서 확답을 들은 정우는 김하란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의 딸을 구해 주겠다는 약속을 잠시 뒤로 미룬다는 소리였지만, 김하란은 개의치 않았다.

벌써 10년 가까이 스킬로 연명하고 있는 목숨이었다.

그 오랜 세월도 버텨 왔는데 고작 3일은 우습지도 않았다.

“음. 말씀드리고 보니 며칠 더 늦어질 수도 있겠군요.”

“……!”

김하란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본 정우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총리부터 마무리 지어야죠.”

“……아.”

정우의 말에 반응한 이는 강세기였다.

스스스.

주변의 온도가 낮아질 정도로 싸늘한 살기가 몰려들었다.

지친 표정으로 차가운 살기를 뿜어내는 그였지만, 두 눈엔 불길이 가득했다.

“마무리 지어야지.”

다짐하듯 중얼거리는 그의 입가가 매섭게 비틀렸다.

그에게 남은 건 복수였다.

자신의 인생을 무너트리고 어머니를 죽인, 총리에 대한 복수.

그리고 자신을 농락한 일본에 대한 복수.

유서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이곳에 온 목적은 공략보다는 총리의 세뇌 아티팩트의 확인과 탈취에 있었다.

그게 상황이 변해 공략이 우선시되었을 뿐이었다.

“일단 제가 밖에서 알아 온 것부터 설명할게요.”

정우가 세 명을 향해 빌런에 대해서 알렸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빌런들이 모조리 일본으로 넘어왔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빌런이 총리와 닿아 있다는 것까지.

그리고 뱀파이어를 비롯한 여러 건까지 정우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본은 빌런과 깊은 관계가 있군요.”

시청사의 지하에서 벌어진 일을 곱씹은 유서린이 눈가를 꿈틀거렸다.

“총리의 아티팩트도 빌런을 통해서 받았을 확률이 높아요.”

“그렇겠군.”

“문제는 총리 자신도 세뇌를 당한 건 아닌지….”

유서린이 말끝을 흐리며 강세기를 힐끗 보았다.

세뇌를 당했다면 그 역시 피해자였다.

어쩌면 강세기는 분노를 풀지 못하고 억눌러야 할지도 몰랐다.

“세뇌를 당했다면 추후 행동을 보고 결정하면 될 일이야.”

강세기 역시 세뇌의 피해자였다.

세뇌를 당한 동안 벌인 여러 일 가운데에서 자신에게 억울한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다면 어떻게든 보상할 생각을 하고 있는 그였다.

마찬가지로 총리 역시 진심으로 고개를 숙인다면.

자신과 같은 처지의 그를 동정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분노의 방향은 틀어지겠지만.

“어떤 결과든… 빌런을 잡는 데 한 손 크게 거들지.”

그 방향은 크게 반색할 만했다.

빌런이라는, 사회악을 향하는 것이었으니까.

나름의 대화가 정리될 때였다.

“……어?”

정우가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그 뒤를 따라 탄성을 내지른 이는 유서린이었다.

강세기와 김하란도 별 차이 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바다.

그쪽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이한 마력이 네 명을 자극한 것이었다.

마력의 파장은 짧았다.

하지만 강렬했다.

탐색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정우가 멍하니 입을 열었다.

“……권능(權能).”

“음?”

“방금 뭐라고 하셨죠?”

“균형의 권능….”

“균형의 권능?”

정우의 말에 유서린이 되물었다.

정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격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적이 있었다.

격변의 시대에 이어 새로운 격변이 도래할 것을 확신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 방향이.

[ 변화의 준비 ]

새로운 변화가 도래했다. 지금은 가파르게 성장할 때. 준비하라. 대비하라.

성공 : 전쟁(戰爭)

실패 : 파멸(破滅)

“……!”

이런 방향이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성공의 결과물이나, 실패의 결과물이나.

모든 건 전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문제는 정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

“퀘스트?”

“전쟁과… 파멸?”

다른 세 명의 S급들도 정우와 같은 퀘스트를 부여받았다.

던전이 아닌 곳에서….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정우의 당황은 그들보다도 더 깊고 중요했다.

‘마력이……!’

다급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바다에서 시작해서 퍼져 나갔던 마력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마력이.

던전의 클로징 때와 같다는 것.

‘집어삼켜진다!’

지금도 선명한 기억이었다.

던전의 폐쇄는….

던전을 이루고 있는 모든 마력이 한 지점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던 장면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마력은 분명히 어느 한 지점으로 집어삼켜졌다.

모든 것이 부서지듯 조각나서 사라졌다.

하지만 던전과는 달리.

보다 선명한 패턴의 마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크랙이 생긴 마력 조각 사이를 채우고, 비어 버린 자리를 메우는 마력은 자연스러웠으며.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

그것은 외부에서 보았던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형태였다.

격변의 시대 이후 지구도 마력을 머금게 되었다.

던전과는 달리 농도는 옅었지만, 지구에 깊게 뿌리를 내렸기 때문인지 보다 안정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미해결 지역이었던 세이렌 영토를 뒤덮은 것은 바로 그 마력이었다.

정우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이 지역이 지구에 정확하게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목도했다.

그리고…….

“어? 그건….”

“지팡이?”

갑자기 자신의 아공간에 툭 튀어나온 지팡이가 허공으로 날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정우는 다급히 손을 뻗었지만, 지팡이는 정우의 손길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움직여 이동했다.

방향은.

‘마력이 사라지는 지점.’

핵 혹은 게이트.

던전 안에서는 그런 것들이 존재했던 지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정우로서도 가늠이 서질 않았다.

이계에서 지구로 넘어온 친우들을 생각하고.

G급 던전이 최후의 보루였다는 것을 떠올린 직후의 일이라 더욱더 적응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보이는 건 있었다.

정우의 말문을 막히게 만든, 그것.

‘대체… 아라크네가 뭐지?’

아라크네의 마력 실.

마녀 일족을 구하면서 잊은 그것이 이곳에서만 벌써 두 번이나 등장했다.

마력이 빠져나간 곳이 통로라면, 이 실은 그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거미 아라크네.

마녀 일족 리암이 길러 키웠다가 오히려 잡아먹혔던, 그런 존재가 또다시 등장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 정도까지 상황이 전개되니 아예 떠오르는 존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이계에서 신의 수는 총 다섯이었다.

그중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탄생의 신, 가이아.’

정우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지팡이는 통로를 아예 틀어막듯 바다 한가운데 박혀 버렸다.

유서린의 걱정 가득한 음성을 들으면서도 정우는 그녀보다는 지팡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주변의 상황을 읽었다.

마력의 흐름.

그 모든 것들을.

지팡이를 끌어당긴 마력의 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팡이의 끝부분을 계속 잡아당기는지, 지팡이의 끝이 해수면 아래로 살짝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

“…어?”

“이건 뭐지?”

유서린과 강세기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지팡이에 고정되었던 시선 덕분에 이변을 알아차리는 건 쉬웠다.

하지만 이 이변의 형태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정우만이 이해할 따름이다.

“……재구성.”

“네?”

“마력의 재구성. 이거… 계산만 해뒀던 건데….”

“계산? 누가요?”

“아, 아니에요.”

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마력의 재구성.

정확하게 ‘재료’가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그 과정과 결과만큼은 확실히 기억이 났다.

막상 어둠을 공략하는 단계에서 써먹지도 못하고 폐기해 버렸던 것이긴 하지만.

저 마력의 재구성이라는 프로젝트가 가져오는 결과는 단 하나였다.

‘마력 감응력 향상.’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자 만들었던 계획이었지만, 어둠의 영역이 마력을 다루는 사람이나 존재를 집어삼킬 때마다 넓어지는 걸 확인하고서는 폐기한 계획이기도 했다.

‘그걸 어떻게….’

정우의 눈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그러는 사이.

변화가 시작되었다.

다른 S급들도 눈치챌 정도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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