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69화 (169/293)

169화

-변화 (2)

인지했다.

쇠사슬에 얽매여 눈을 슬쩍 떴던 존재는, 그의 인지(認知)를 인지(認知)했다.

그 순간, 밀려드는 감정은 단 하나였다.

환희(歡喜).

고대하고 고대했던 때가 도래했음에 ‘그’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찰그락.

다만 육체는 그 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했다.

그 정도의 여력이 없었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희망은 한계를 딛고 일어나 자신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변화가 시작된다.

이미 한 차례 큰 변화를 가져다준 격변(激變).

지구는 또 다른 격변을 겪을 때였다.

지금보다 더.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의 유일한 속죄 방법이자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는 이 일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떠올렸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지도 못하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가늠도 가지 않지만.

과거, 익숙한 외형만큼은 여전히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 니엘.’

* * *

파앗.

그것의 변화는 갑작스러웠다.

벌써 6년째에 접어드는 무변화는 사람들의 관심을 앗아가기에 충분했고.

덕분에 몇 년이나 이어졌던 경비조차 소홀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즉, 방치되었다는 소리였다.

서울에서도 은근히 낙후된 지역에서 생성된 게이트는 사상 초유의 형태로 발현되었고.

유지되었으며.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세계 유일의 케이스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튜토리얼, G-00.

그것의 게이트가 반짝였다.

던전의 등급은 게이트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게이트의 색이 짙을수록.

즉, 검은색에 가까울수록 던전의 등급은 높았다.

튜토리얼이라 불리는 G급 게이트의 색은 흰색에 가까운 회색.

F급과 비교해서도 두 배 이상은 옅은, 회색.

그것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모든 게이트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하지만 이 순간.

G-00 게이트의 색이 짙어졌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일렁이는 마력이 급증했다가 가라앉았다.

때문에 협회에선 한 차례 비상이 일 뻔했었다.

컨트롤 타워에서 해당 던전의 변화를 파악했으니까.

하지만 그 변화는 짧았고.

관리자는 이 사실을 간단한 오류로 치부했다.

해당 장소가 다름 아닌 G-00였기 때문에.

튜토리얼.

G급 던전.

인간을 플레이어로 만들어 주는 유일한 수단.

그곳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치밀었던 긴장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튜토리얼에서 등장한 이변은 다른 것에 비해선 가벼웠다.

성공 혹은 실패.

물론, 관리자는 둘 모두를 배제했다.

정우는 알지 못하지만 과거에도 몇 번이나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었다.

성공이든 실패든, 새로운 변화를 파악하고자 협회에선 그때마다 인력을 파견했었다.

하지만 던전은 여전했고, 변화는 없었다.

그게 누적이 되다 보니 이젠 무덤덤해져 버린 것이었다.

때문에 파악이 늦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지 않는 튜토리얼이었기에 무시한 경향도 컸다.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이틀이 지났을 무렵.

정기적인 점검을 나선 플레이어들은 걸음을 멈췄다.

펜스를 넘어 도착한 지역엔.

“……이, 이거 왜 없어?”

“어…… 어?”

“씨, X발…! X됐다!”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사례 G-00는 없었다.

사라진 게이트.

이틀 동안이나 ‘복귀’가 보고되지 않은 사안까지.

협회는 그야말로 난리가 나버렸다.

G-00를 관리하는 이는 다름 아닌 협회장 유지석이었다.

마른침을 삼킨 보고자의 보고를 들은 유지석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클리어?

“……정말로 없나?”

-어, 없습니다.

게이트가 사라졌다는 소리는 클리어가 됐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한정우의 부친, 한상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상진이 실패하고 다른 인원이 튜토리얼에 끌려가 공략을 진행한 적도 없었다.

튜토리얼의 게이트가 사라지는 건 오로지 클리어 때였다.

공략은 성공했다.

그런데 한상진은 어디에도 없다.

유지석은 이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담당자를 징계하게.”

생각에 잠겼던 유지석은 일단 신상필벌부터 확실히 했다.

G-00는 전 세계에서도 관심을 두고 있는 던전이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며 관심도가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유일의 케이스의 변화라면 다시 몰려들 학자들이 산더미였다.

파악이 늦은 건 분명히 잘못한 일이었다.

유지석은 턱을 쓸었다.

한상진의 위치만 파악되었다면 고민이 덜했을 텐데.

‘아들이 기다릴 텐데….’

아들뿐만이 아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한상진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유아영은 유능했고, 만약을 대비해서 정우의 옛집에 정우의 소식을 남겨 놓았다.

새로운 집의 주소까지.

누구에게라도 물으면 자연스럽게 공인중개사와 연결되어 새로운 주소로 안내가 되게끔 조치를 취해 놓았다.

그럼에도 연락이 없었다.

가족을 찾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한정우에게 들은 내용대로라면 이건 분명히 이변이었다.

한상진은 가족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 긴 세월 동안 튜토리얼에 갇혀 있으면서 감정이 마모된 것일까?

혹시나 그렇다면 다른 소란을 벌이지는 않을까?

걱정과 우려.

그리고.

‘…유일의 케이스다. 그만한 시간 동안 튜토리얼에서 무엇을 얻은 걸까?’

이중 던전을 공략했을 것이라 예상되는 한상진의 사정이 매우 궁금했다.

여러 조건이 맞물려 유지석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거의 수배령에 가까운 추적을 명했다.

안전을 중시하라는 첨언과 함께.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선 다시 자신의 업무로 눈을 돌렸을 때.

드드득!

쾅, 후두두둑!

유지석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책상 위를 가득 채우던 서류가 쏟아졌다.

“……뭐, 뭐지?”

드물게 당황한 투로 말까지 더듬거리며 유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이한 마력.

처음 느껴보는 흐름이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오소소, 소름이 들 정도로 막대한 존재감이 자신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협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문밖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문을 열며 물었다.

“…방금, 마력을 느끼지 못했나?”

“마력 말씀입니까? 느끼지 못했습니다.”

“……!”

경호원들의 수준은 뛰어났다.

그럼에도 이 마력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은 아스라이 사라져 버린 마력이었지만, 유지석은 분명히 느꼈다.

어떤 강대한 흐름을.

손짓으로 경호원들을 물린 유지석이 눈가를 좁히고선 비타를 조작했다.

몇 번의 신호음 뒤에 상대방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지석은 방금의 일에 대해 묻기 위해 입술을 뗐지만, 물을 필요가 없었다.

-방금… 느꼈어?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걸 물어왔으니까.

“…으음. 착각이 아닌 모양이군.”

-이거…… 뭔가 변하고 있어.

“변해? 무엇이?”

-모르겠어….

“천하의 대마법사가 모른다?”

-모든 걸 알 정도였으면 대마법사가 아니라 현자였겠지.

“으음…….”

-대체 뭘까?

“나도 모르겠군. 다만 대비를 해야겠어. 아, 혹시….”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을까? G-00가 클리어됐어.”

-……! 언제?

“파악이 늦었어. 의심은 이틀 전. 어쩌면 어제나 오늘 새벽일지도 몰라.”

-만나 봤어? 무슨 이중 던전에서 그렇게 오래 걸린 건지….

“못 만나봤어.”

-왜! 이중 던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꾸 말 끊어서 미안한데, 클리어 시점도 의심한다고 했잖아.”

-어…? 그러고 보면… 설마 위치 파악에 실패한 거야?

“허허. 그래.”

-맙소사…….

“가족도 찾지 않았다더군.”

-…찾아야 해.

“알고 있어.”

-아이는? 미국으론 안 온 거 같던데….

“일본에 있어.”

-아아……. 아? 일본?

“질의 놀란 표정을 오늘따라 많이도 보는군.”

-잠깐. 미스터 유! 방금의 마력 파장 있잖아.

“음?”

-내 스캔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충 발원지를 계산해 보면… 한국 아니면 일본이야.

“……뭐?”

-파장의 발생지가 둘 중의 하나라고.

“G-00?”

-그랬다면 클리어했을 때 느꼈겠지. 아마 그럴 확률이 높아.

“그럼….”

-우리 서린이는 세이렌 영토를 공략하러 갔고, 그 아이는?

“빌런. 그리고 지원…. 음. 거기서 무언가가 있었군.”

-일본일 가능성이 높겠어.

“다시 올 텐가?”

-넘어갈게. 이 일만 마무리 지으면.

“…이 일?”

-하데스가 움직였어.

“……!”

-파악이 늦었어. 너무 은밀하게 움직여서 중간에 단서가 끊겼거든.

“하데스가…….”

유지석은 침음을 삼켰다.

하데스는 거인이었다.

자신보다 강하기도 했고, 천적이 없어서 골치가 아픈 인물이었다.

모든 기운은 서로 상반된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성녀’가 한 지역에 묶여 있는 이상, 하데스를 상대할 만한 인물은 극히 드물었다.

네크로맨서의 막대한 물량과 저주는 가히 재앙이었으니까.

“급하겠군.”

-급해. 그 시체 새끼가 무슨 생각으로 움직인 건지 알아내야 하니까.

“오버레이(Overlay)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높겠지.”

-그래서 지원도 요청했어.

“백의의 연금술사?”

-어.

“……으음.”

-그 아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파악하는 대로 바로 넘어갈게.

“이번엔 밝힐 텐가?”

-밝혀지겠지. 저주 해제를 가르쳐 준 사람이 나라는 게.

“으음.”

-여차하면 내 모든 걸 가르칠 수도 있어.

“…그 정도까지?”

-왜 그래? 미스터 유도 마찬가지면서.

“……후우. 한정우가 진짜로 대마법사의 모든 걸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가능할걸. 아니. 어쩌면… 재능은 나보다 뛰어날 거야. 이제야 첫발을 내디딘 직업을, 그 아이는 이미 가지고 있다면서?

“마도사 말인가?”

-그래. 이거 궤를 달리하던데? 대마법사와 마도사는….

“으음. 그 정도라고?”

-그거 하나는 확실히 할 수 있어.

“뭐지?”

-내 직업이 마도사로 바뀌는 순간, 하데스를 잡기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일 필요는 없다는 거.

“……!”

-아무튼 이번의 마력 흐름은 뭔가가 있어. 강대한 존재감이 느껴졌거든. 미스터 유가 책임지고 찾아.

“……일본으로 가야겠군.”

-가깝잖아. 딸도 볼 겸.

“후우…….”

유지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G-00와 일본.

중국과 북한까지.

골치가 아파 왔다.

“…일이 너무 많군.”

-……어쩌면, 그 일이 조금 더 늘어날지도 모르겠어.

“그게 무슨 말이지?”

뚝 하고 연결이 끊어진 비타를 멍하니 보던 유지석이 창밖을 보았다.

마력의 흐름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질 고메즈의 말처럼 무언가가 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고(思考)가 아니었다.

본능(本能)이었다.

정의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지만.

유지석의 본능은 무언가를 대비하라며 속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으로의 일정을 고민하고 있을 때.

고맙게도 그로부터 3시간 뒤에 연결된 비타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세이렌 영토의 공략 성공과 강세기의 세뇌 해제라는 아주 기쁜 소식과 더불어.

하데스라는 포획물에 관한 사실.

그리고.

“…다, 시 말해 주게?”

-한정우 플레이어가 S급이 되었어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말이 되고 안 되곤 중요하지 않아요.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이곳도 클리어할 수 있었으니까요.

유서린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부정의 의미를 담은 경악도 잠시.

이어지는 내용에선 다급히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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