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세이렌 여왕 (3)
대화는 없었다.
애당초 적의 본진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시의 외곽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은신한 머맨의 목을 잡아 꺾은 김하란이 으르렁거렸다.
유서린도 뒤지지 않았다.
두 명의 S급은 흉폭한 호랑이였다.
은신한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정우의 눈짓에 따라 시선을 돌리면 족족 적이 등장했기에, 둘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기감을 펼쳐 적을 파악했고.
콰직!
전날의 모욕을 씻어 버리려는 듯, 둘의 움직임은 경쾌하다 못해 난폭하기까지 했다.
“치욕이라….”
강세기는 그런 둘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자신의 모멸감은 몬스터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일본 내 제일의 길드를 소유하고 있으나 그 휘하의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두 명.
그 두 명만이 자신의 아군이었다.
거대한 섬이지만 무인도와 같은 형태를 만든 건 총리였다.
근질근질.
“…나도 당장 갚고 싶군.”
강세기의 중얼거림을 들은 정우 역시 생각에 잠겼다.
양다리가 잘리고 양팔이 묶인 채로 쓰러져 있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이지스의 ‘신’이라는 평과는 어울리지 않는 처참한 몰골.
이 던전 브레이크와 같은 형태의 법칙을 모조리 깨부쉈던 강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최후.
기억을 되찾았기 때문일까.
그 최후를 떠올리면 드는 감정은….
‘분노…. 그래. 나 역시 되갚아 주고 싶어.’
다름 아닌 분노였다.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자신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을 주시하던 눈.
그 눈의 주인과 어떤 관계였는지, 어떤 사정 때문에 자신을 관찰했고 ‘각인’을 남겼는지.
왜 자신의 양팔을 결박하고 두 다리를 잘라 낸 채로 죽여야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좋은 의도로 느껴지진 않지.’
“느껴지는군.”
“……?”
강세기의 말에 상념에서 벗어난 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물의 길인가 하는 그건가?”
강세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은신한 머맨과는 다른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지하수 같군. 하지만 어리석어.”
강세기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꼈던 손을 풀었다.
지하의 한 부분을 주시하던 그가 천천히 손가락을 튕긴다.
쩍.
아주 미약한 소음이 발생했고.
퍼엉!
뒤이어 폭발이 일어났다.
비교적 온전한 도로가 헤집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급속도로 자라는 건 다름 아닌 얼음이었다.
“내 앞에서 물이라니. 얼어 죽고 싶은 모양이지?”
농담이라는 듯 강세기가 피식 웃었다.
‘워터 로드가 전부 얼었어. 반경이 넓다.’
강세기의 스킬 반경이 생각보다 넓었다.
세뇌나 조종으로는 사용이 불가능한 강세기의 진정한 능력이었다.
쿵.
지면을 뚫고 얼어 버린 물의 표면에 손을 얹은 강세기가 손바닥을 깊게 밀었다.
파스스-.
가루로 변하는 얼음을 본 강세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두 종류의 기습을 모두 틀어막았군.”
강세기가 그렇게 말했다.
“이젠 우리가 갈 때죠.”
볼에 묻은 피를 닦으며, 유서린이 눈을 빛냈다.
* * *
유서린이 검을 휘둘렀다.
상처를 입고 휘청거리는 머맨 뒤로 보이는 세이렌을 향해 얼음조각이 날아갔다.
쩍!
피격 부위부터 얼어 가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 틈을 노린 김하란이 숨을 참으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쩡!
얼음 기둥이 반으로 갈라지고, 또다시 틈이 생겨났다.
그 틈으로 뛰어든 유서린의 커다란 검이 수직으로 그어진다.
콰앙!
일련의 과정은 이미 합을 맞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정우는 이들이 만들어 주는 길을 따라 달렸다.
고리를 점검하며 달리면서 이곳의 마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곳의 마력은 확실히 이상했다.
어둠과는 또 다른 형태의….
‘인위적인 형태.’
마치 하데스의 그것과도 닮아 있었다.
때문에 정우는 이 현상.
즉, 여왕의 탄생이 우연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사체의 일부는 물론, 피나 스킬의 잔해에도 정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어떠한 스킬도 사용하지 않은 채, 정우는 그저 은신만 미리 알려줄 뿐 가만히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S급이라는 초유의 병기를 손에 쥔 집단의 전략은 의외로 단순해진다.
단 하나가 모두를 압도하는 상황.
가장 파괴적이고 날카로운 비수를 얼마나 잘 운반하느냐가 전략의 골자였고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점이라면 모두가 다 S급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하나하나가 다 파괴적인 창이자 비수였으며, 핵폭탄급의 전략적 병기라는 점이 달랐다.
때문에.
“…후우. 무지막지한 속도군.”
김하란이 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타앗.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른 유서린의 검이 전면을 내리그었다.
길고 긴 고랑 사이로 반으로 갈라진 몬스터들이 벌어졌다.
그 틈을 더욱 벌리는 건.
“워터 로드라면… 난 아이스 로드인가?”
알면 알수록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강세기였다.
간만이 상쾌함을 만끽이라도 하듯, 그의 전투는 화려했다.
워터 로드를 고스란히 이용하여 그 물을 지면으로 불러내.
얼려 버린다.
족히 3미터는 솟구치며 얼어붙은 빙벽 사이로 난 길을 한 인형이 뛰쳐나갔다.
허리를 비틀며 어깨를 한껏 뒤로 젖힌 김하란의 검으로 웅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오러가 맺힌다.
그리고 내지르는 일검.
콰쾅!
무자비한 일격이 만들어 내는 틈새를 다시금 얼리는 강세기로 인해 외부와의 단절이 유지되었다.
워터 로드.
기습의 가장 중요한 단서이자 적이 깔아 놓은 고속 도로.
처음에 정우는 물의 정령을 이용하려 했으나 강세기가 만류했다.
정우의 모든 힘을 여왕에게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보스가 존재하는 건 확실했다.
일개 몬스터가 명확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건, 보통 지시에 의한 것이었으니까.
머맨조차 강했다면, 이곳의 보스의 수준은 예상을 뛰어넘을 게 분명했다.
“……보인다.”
정확히는 느껴졌다.
정우의 말에 셋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적진.
작전이 조금만 실패해도 목숨을 걸어야 할, 그런 적진에 뛰어들었다.
빙벽을 유지하는 강세기의 미간이 연신 일그러졌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예상보다 강했다.
그 짧은 사이.
확실히 이 빌어먹을 몬스터는 수준이 향상되었다.
정우의 판단이 옳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우가 느낀 감각에 맞춰 방향을 조절했다.
워터 로드가 끊기자 속도는 늦어졌다.
마력 회복 속도는 매우 더뎠다.
과연 회복이 되는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S급의 마력은 일견 무한에 가까워 보였지만, 그저 남들보다 양이 많을 뿐이었다.
그리고 회복력이 남다를 뿐이었다.
이곳에선 보통의 플레이어처럼 마력을 안배해야 했고, 소모되는 값을 조정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으음.”
수준이 높아진다.
한 단계.
두 단계.
외곽에서 조우한 몬스터보다 월등한 수준을 지닌 놈들이.
콰득, 쩌엉!
빙벽을 후려쳤고.
기어이 금이 가게 만들었다.
“용병!”
강세기의 외침에 김하란이 움직였다.
벽을 밟고 뛰어오른 그의 전신으로 연기 같은 오러가 넘실거렸다.
“…하!”
강세기를 향해 코웃음을 친 김하란의 두 손이 빙벽의 금이 간 부분을 내리쳤다.
콰앙!
그 여파가 충격파를 만들어 내어 적을 덮친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방어하지 못한 몬스터들이 찢기고 터졌지만,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뒤로 나뒹구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틈을 타.
“프리즌 필드.”
강세기의 마력이 일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방어진으로?”
유서린이 고개를 획 돌렸다.
예상했던 구간보다 더 멀었다.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은 강세기의 영역이기도 했지만.
‘여왕의 영역이다.’
이미 세이렌의 여왕의 영역이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저주를 내뿜는 역병(疫病)과도 같은 존재의 영역이었다.
몬스터들이 강해진 것도 옳았지만.
‘아군이 약해진 것도 있어.’
이미 저주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대장이 힘을 좀 써줘야겠네요.”
유서린의 상태는 둘보다 나았다.
고개를 끄덕인 유서린이 물었다.
“거리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약간 멀긴 했지만, 감지덕지였다.
정우는.
모두에게 짧게 인사를 건넸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꺼내 든 창을 빙글 회전시키며 오러를 전개한다.
전신에 깃든 오러가 정우의 몸을 폭발적으로 밀어냈다.
와그작!
뒤로 크게 밀리며 부서지는 바닥의 전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도 전에.
정우는 강세기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부웅!
공중으로 뛴 정우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머맨의 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머맨과는 상당한 격차를 지닌 네 마리의 머맨들이 아주 작은 외형의 세이렌 하나를 지키고 있었다.
‘왕관이다…….’
그것의 머리엔 왕관이 올려져 있었다.
은은하면서도 찬란한, 모순적인 감각을 지니고서.
순간적으로 그것과 정우의 눈이 마주쳤다.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둘의 시선은 서로를 관통했다.
히죽.
자신을 보며 웃는 미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인간을… 닮았다.’
더군다나 그 외형이 보통의 세이렌보다 더 인간을 닮아 있었다.
정신을 점검해 봐도 저주에 당한 흔적은 없었다.
캬아-!
흉포한 포효와 함께 머맨들이 창을 휘두르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꼬리의 힘이 어찌나 강한지, 포탄처럼 쏘아지는 머맨의 기세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정우는 세이렌의 여왕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휘릭, 파지지직!
창을 빙글 회전시키며 전격 마법을 전개했다.
솟구치는 머맨과 이제 낙하하기 시작한 정우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
전격에 의해 움찔거린 머맨들을 향해 창을 휘두르는 정우의 움직임은, 딜러 그 자체였다.
머리, 목, 허리와 가슴.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치명상을 날린 정우가.
턱.
피를 흩뿌리며 추락하기 시작한 머맨들과는 달리 허공을 디뎠다.
부유 마법.
“많기도 하군.”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머맨과 세이렌들의 수는 많았다.
정우는 힐끗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빙벽을 방벽 삼아 버티기 시작한 세 명의 S급을 본 정우가 창을 넣고 지팡이를 꺼냈다.
후웅!
“……!”
세이렌 여왕의 노란 눈동자가 천천히 커진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또 다른 포식자의 존재감을 느낀 것이다.
죽여야 한다.
자신의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단 하나의 명령을 떠올린 세이렌 여왕의 입이 쩍 벌어졌다.
피어(Fear).
살의를 머금은 그것에 응답하듯.
정우는 허공을 지팡이 끝으로 내리찍었다.
정우를 마력이 물결치듯 퍼져 나간다.
포효 한 번 내지르지 않았음에도 정우의 존재감은 피어와 다름이 없었다.
움찔, 부르르.
여왕의 존재만으로도 기세등등하던 놈들의 고개가 덜컥 아래로 숙여진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들리는 굉음에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 수밖에 없었다.
쿠르르르릉, 콰쾅!
갑작스러운 천둥.
그리고 이어지는.
“내리쳐라.”
낙뢰(落雷).
수십.
아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낙뢰가 지면을 향해 세상을 쪼개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캬아아-!
세이렌 여왕이 낙뢰를 보며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