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64화 (164/293)

164화

-세이렌 여왕 (2)

“인사도 늦었군. 강세기다.”

“한정우예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군. 그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런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정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운이 좋았어요.”

“운이 좋았다? 하…. 비밀은 비밀로 남겨 두란 소리군. 뭐,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쓴웃음을 지은 강세기가 정우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별말씀을.”

악수를 마친 강세기가 물었다.

“빌어먹을. 세뇌도 모자라서 조종까지 하다니. 후우. 그 때문인지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아.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았나?”

“준비할 겁니다.”

“…준비?”

의아해하는 강세기를 향해 웃은 정우는 걸음을 옮겼다.

“괜찮냐?”

“…X발. 죽는 줄 알았다.”

“그러게 뭐 하려고 달려들었어?”

“반사 속도라고 들어는 봤냐? X라 빨리 움직였대.”

“목숨 걸 정도는 되고?”

“이사님? 저 형님 덕분에 내가 살아 있으니까… 빚은 충분하지.”

“멋있는 척은….”

정우가 이진수의 어깨를 툭 쳤다.

“…음.”

괜히 뒤따랐던 강세기가 침음을 삼켰다.

신체 능력이 향상되어 청력이 좋은 그는 한국 플레이어들의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얼핏 기억이 나는 것만 같았다.

인간을 공격하는 자신의 모습.

악착같이 저항하던 때가 떠올라 강세기는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나 눈앞의 인물로 인해 피해가 없었으니 다행이랄까.

“…미안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사과와 함께.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했다.

강세기의 태도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한국 플레이어들은 연신 서로를 보며 수군거렸다.

이진수도 마찬가지.

두 눈이 벌게져서 달려들던 그가 정상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지만, 애당초 그는 일본으로 귀화한 인물이었다.

혐한도 강했고 한국과 반목하는 여러 사건도 존재했기에.

“……적응이 안 되네요.”

이진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강세기의 사과를 받았다.

“아무튼 사과하신다니 받겠습니다. 뭐, 밥숟가락을 놔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이진수의 수더분한 말에 강세기의 묵직한 짐 하나가 덜어졌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이 손으로 무의미한 살인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강세기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모든 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언제고 세뇌가 약해지는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기억을 되뇌었고, 자신의 정보를 모아 상황을 파악했다.

그나마 자신을 도와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피로 얼룩진 손.

그것도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에 저지른 범죄는 총리에 대한 분노를 키운 원인 중 하나였다.

자칫하면 또다시 자신의 손으로 한국의 전력을 깎아 버릴 뻔했다.

“뭐…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거 같은데 해결된 것 같네요. 그… 이전에도 이것 때문에 그런 거죠?”

이진수가 자신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툭툭 건드렸다.

그 모습에 정우는 웃음을 흘렸다.

강세기 역시 가벼운 태도에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좀 맑아진 기분이군요.”

“음… 그럼 잊을게요.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주십시오.”

“…잊지 않겠습니다.”

강세기는 다시 한번 이진수와 악수를 한 뒤 정우를 보았다.

“따라오세요.”

정우를 뒤따르던 강세기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저들은 어떻게 할 거지?”

“일본 플레이어라면… 한국 플레이어와 함께 잠시 몸을 감추고 있을 겁니다.”

“왜?”

“전투가 치열했다고 알려 주려고요.”

“……하긴. 저들도 상황을 다 봤을 테니까.”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아쉽게도 저놈 때문에 집어넣어서요.”

정우의 턱짓에 닿는 인물을 본 강세기가 눈을 깜빡였다.

“허… 그러고 보면 저자가 여기에 있는 것도, 사로잡힌 것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군.”

하데스.

그의 포획은 전 세계를 들끓게 만들 커다란 사건이었다.

심지어 마력을 잃어버린 상태라는 건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어떻게 마력을 없앤 거지?”

“없앤 건 아니에요. 제 마력이 밀려나긴 했지만, 플레이어 체계는 제 현 지식보다 뛰어나서 다시 회복될 테니까요.”

“…회복이라. 차라리 사지를 잘라 버리는 건 어떤가.”

“나쁠 건 없죠. 하지만 지금도 정신이 반쯤 무너졌어요. 얻어야 할 게 있는데 아예 무너트리는 건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죽여서 기억을 뽑아낼까 고민하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정우는 끝내 하데스를 살렸다.

그는 빌런 협회의 중추 중 하나였고, 이런 곳에서 잡힐 리가 없었을 인물이었다.

예기치 않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 셈이다.

“…그렇군. 이 기회를 잘 살리면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도 있겠어.”

“적어도 놈들의 움직임은 파악할 수 있겠죠.”

“그럼 더더욱 숨겨야겠군.”

“그래서 말인데요. 하루만 여기서 머물러야 할 것 같군요.”

“…하루를?”

* * *

회복의 시간은 길었다.

셋은 S급의 강자들.

하루쯤은 밤을 꼬박 새워도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초인들이었으니까.

정우는 이곳의 마력을 긁어모았다.

마법진을 통해 정제한 마력을 한곳에 모아 두었고, 셋은 그 안에서 빠르게 회복을 진행했다.

이미 한 번 경험한 유서린만이 거부감 없이 마법진 안에 들어섰고, 다른 둘은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서야 마법진에 착석했다.

마력 회복은 더뎠다.

‘마법진에 모이는 마력의 양이 적어졌어.’

정우는 고개를 돌려,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세이렌의 여왕.

세이렌 종족은 마녀에게 ‘아류(亞流)’ 혹은 모방범과 같은 박한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꽤나 우수한 종족이었다.

증폭 마법을 흉내 낸 유일한 종족이었으니까.

물론, 저주에 국한된 능력과 육체강화에 치중된, 편향적인 능력은 한계가 분명했지만 적어도 이계에서도 세이렌은 골치 아픈 몬스터였다.

마녀의 마법을 흉내 낼 정도의 지능이 있음에도 놈들이 하나의 종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그들의 본성 때문이었다.

놈들은 인간이나 여타 생물에 대한 식욕을 억누르지 못했으며.

상당한 지능을 가진 것치고는 대화가 어려웠다.

지극히 단편적인 단어만을 사용한 대화는, 그들에 대한 이해도를 떨어트렸고.

결국, 놈들은 질서와 법을 지켜야 하는 종의 길 대신 몬스터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을 때, 놈들은 완전한 몬스터가 되어 있었다.

혹자는 그게 놈들의 잔혹한 본성이라 평했고, 혹자는 아직도 대화의 여지가 있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결론은 똑같았다.

죽이고, 죽는 것.

그리고 한때.

자신이 탄생하기도 전의 한 역사에선 세이렌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이 이루어질 정도로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그들의 여왕이 탄생한 것으로 인해서.

여왕은 돌연변이였다.

‘꽤 그럴싸하게 사용했지.’

마녀의 마법을 꽤나 그럴싸하게 사용할 줄 아는 지능을 지녔고, 퇴화된 구강 대신 마력을 사용하여 대화를 나눌 정도의 지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종의 대통합(大統合).

‘사령관이나 다름이 없는 능력이야. 생각을 통해서 상황을 전달하고 전해 받을 수 있어. 무전기나 전화기를 상시로 지니고 있는 거라고 봐야 해.’

때문에 지시가 말도 안 되게 빨랐다.

통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모든 수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기습도.

워터 로드를 이용하는 것도.

더불어 은신이라는 새로운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모조리 여왕이라는 개체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보면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허… 대체 이건 어떻게 만든 마법진이지?”

그도 역시 마법사였다.

그것도 얼음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마력을 얼려서 시간을 멈추는 듯한 효과를 보이는, 마법사.

한 속성에 치우쳐져서 그렇지, 그 역시 대마법사란 칭호가 아깝지 않은 인물이었다.

“회복은요?”

“대충 8할 정도는 회복된 것 같군.”

정우는 이들의 회복을 도우면서 지속해서 강세기를 유심히 주시했었다.

과연 저것이 온전한 그의 성격인지, 아니면 또 다른 계획의 일부인 건지 확인했다.

‘메아리가 없는 것이 아쉽군.’

사다코의 육체를 쉽게 버릴 수가 없기에, 메아리를 마녀의 마을로 보냈지만….

‘지금쯤이면 알아차렸겠지. 자신의 권속과 연결이 끊겼을 테니까….’

사다코의 육체를 장악한 이유 중 하나가 무산되어 버렸다.

이곳의 상황도 파악해야 하고, 공략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부로 연락이 되면 좋으련만….’

철원을 감시하라는 부탁을 전하지 못하는 게 아쉽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놓치겠지.’

백작 이상의 작위를 가진 진혈을 놓치는 건, 생각 이상으로 타격이 클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우는 이곳부터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본능은 이곳의 탐색을 이어가라고 조언했고, 지성은 이곳에 무언가가 있음을 확신했다.

‘어쩌면 세이렌의 여왕이 탄생한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르겠어.’

“좋아요. 그럼 대장이 지시를….”

“아뇨.”

유서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정우의 얼굴을 가만히 주시하며, 단단한 어조로 말했다.

“한정우 씨가 맡으세요.”

“…공략을요?”

“네.”

“으음.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하오.”

“하라는 대로 하지.”

전 세계적으로도 이름 높은 세 명의 S급들이 정우를 주시했다.

정우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묘한 그리움도 생겨났다.

“네가 정해라.”

“다니엘의 결정이라면 따라야죠.”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다니엘! 결정해. 어떻게 할까?”

친우들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사라졌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진행할게요.”

“괜찮으니 말을 꺼냈지.”

“좋은 선택이에요.”

“잘 부탁하오.”

이곳의 플레이어들은 정우를 인정했다.

어떻게 이렇게 급성장한 건지 이해되지 않는 면이 강했지만, 각자의 판단하에 정우는 괜찮은 인물이었다.

지휘를 맡은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하데스의 신변을 맡기로 한 나이트 길드의 이사와 이진수가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잘 부탁한다.’

‘…다치지 말고 돌아와라.’

눈빛만으로도 대화를 나눈 정우는 협회 측 인원과도 눈인사를 나눴다.

“맡겨 두세요!”

일본 측 플레이어들을 담당하게 된 플레이어가 버럭 소리쳤다.

“에휴.”

유서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소소한 웃음이 오갔다.

지팡이 하나를 손에 쥔 정우가 시선을 바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그 옆으로 유서린과 강세기, 김하란이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웅장하네.”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뒤로한 채로.

“마력을 최대한 아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요.”

“마력 회복이 더딘 건 알고 있어요.”

“전투 중에는 아까와 같은 짓을 못하겠지. 아쉽군. 마법진 위에서 싸우면 지구력이 꽤나 좋을 텐데.”

“불가능해요.”

“아쉬운 마음에 그저 말해 봤을 뿐이야.”

강세기가 입맛을 다셨다.

“한 가지만 잊지 말아 주라.”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이곳을 공략한 뒤에 총리는 내 몫이야.”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내포된 폭력성은 절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약속대로. 그전까진 저희 계획대로 따라 주셔야 해요.”

“아무렴.”

강세기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턴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정우의 속도가 빨라졌다.

따라붙은 이들을 향해 정우가 설명했다.

“첫 조우가 중요합니다. 그곳부터는 온전한 여왕의 영역이니, 총력전을 감수해야 합니다. 섬멸로 나가면 안 됩니다.”

“늦지.”

“맞아요. 늦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취할 방법은 하나.”

“이미 이해하고 있다. 오로지 돌격뿐이라는 걸.”

“퇴로는 제가 따로 마련하겠습니다.”

“으음.”

“김하란 플레이어는 평소대로 하셔도 되고요.”

“…아무리 내가 돈으로 움직인다지만, 사람 보는 눈은 있는 사람이오.”

김하란은 전투를 얼마 같이 겪지 못했지만 정우가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새 시대라…. 그 말이 딱인 것 같소. 둘을 보면.”

유서린과 정우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김하란의 눈빛이 묵직하게 정우에게로 향했다.

“기대하고 있소.”

그의 떨리는 음성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유해 드릴게요. 김하란 플레이어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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