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62화 (162/293)

162화

-하데스 (8)

“허허. 고작해야 지팡이 하나에 이 정도까지 심혈을 기울일 줄이야.”

“고작이라뇨. 누가 쓸 건데.”

“고작이지! 그저 긴 막대에 마정석을 단 것뿐이니까.”

“…장인이 할 말은 아니지 않소?”

“흥! 내가 만들긴 했지만 이건 내 손에서 탄생한 게 아니니까 그렇지.”

“흐음. 그건 그래. 브룩 노인은 한 게 없어. 그저 형상을 잡아 준 게 전부이니까.”

“에잉! 입 다물어라! 못된 놈아!”

“그런 것치고는 심혈을 기울였다면서요.”

“기울였지! 젠장! 형상 잡는 것만 죽어라 했으니까. 조금만 손을 떼도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성질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흐흐. 고생했소. 영감.”

“젠장맞을 것들. 술이나 준비해 놔.”

“이미 준비했소.”

“흥! 일 처리 하나는 마음에 드는구나. 에잉. 벌써 한 달을 꼬박 새웠다. 못 잔 잠이나 자야겠으니, 다들 꺼져!”

“이 영감이 졸려서 정신이 멍한가? 대장간에서 주무실 거요? 방으로 돌아가서 쉬쇼.”

“그래요. 브룩 님.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허허. 어찌 저 머저리 같은 놈들 사이에 이런 착한 아이가 있을까.”

“안나! 저 영감 다리가 아무리 짧아도 혼자 갈 수 있으니까, 넌 다니엘이나 불러와.”

“……썩을 것들. 에휴. 내가 말년에 뭐라고 고생해서 저것들 장비를 하나씩 다 맞춰 줬을꼬.”

“푸흐. 덕분에 목숨 몇 번이나 구했으니 잘 쉬기나 하쇼. 오래 살려면 잘 쉬셔야지.”

“에잉. 간다. 가.”

“코쿤 맥주와 브로민 와인을 가득 채워 놨으니, 먹고 푹 쉬쇼.”

“오? 흐흐. 그래도 대접은 할 줄 아는구나. 구경이나 잘해라, 이것들아.”

“그렇지 않아도 열심히 구경하고 있어요. 무려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지팡이인데….”

“영광이군.”

“응? 안 들어오고 왜 문밖에 서 있었던 거냐? 엿들은 게야?”

“다니엘!”

“왔으면 들어오지, 왜 그래?”

“야, 빨리 와봐. 네 무기가 완성되었어.”

“주인이 왔으니 각인까지만 보고 잘까?”

“영감은 얼른 가서 쉬쇼.”

“에이! 이 육시랄 것들이…!”

파직!

기억이 옅어진다.

수수한 문 너머의 대화를 듣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정우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친구들.

이제는 볼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는… 오래된 인연들.

그들의 기억이 떠올랐다.

더불어 지팡이의 정체와 함께.

[ ???로 만든 지팡이 ]

???의 가지 일부로 만들어진 지팡이.

모종의 저주로 오염되었다가 정화되었다.

마력 회복 : +50

파괴력 : +150

마법 방어력 : +100

마력 전도율 : +80

모든 능력치 : +5

스킬(1) : 정화(淨化)

스킬(2) : 리플렉트(Reflect)

갓 정화된 것만으로도 무지막지한 효과를 발휘했고, 몇 번의 위기를 넘기게 해주었던 물건.

[ 세계수로 만든 지팡이 ]

세계수의 가지 일부로 만들어진 지팡이.

‘근원(根源)’을 알게 되었다.

완벽하게 정화되어 본래의 능력을 되찾아 가는 중이다.

내용이 변했다.

그리고 효과가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손에 쥔 지팡이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화되고 있을 정도.

‘언제 꺼낸 거지?’

기억이 떠오르는 것과 생각은 찰나의 순간에 진행되었다.

“…너! 그걸 어디서 얻은 거냐!”

하데스의 고함에서야 정신을 차렸음에도 주변의 상황은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하데스만이 손을 뻗으며 경악할 뿐이었다.

세계수의 가지.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얻어지는 기억들은 상당히 다양했다.

그리고 가장 큰 이득은 다름 아닌.

포옹!

이전과는 달리 제멋대로 튀어나와 정우의 주변을 맴도는 푸른빛은 굉장히 활달했다.

“너도 즐겁구나.”

바로 물의 정령이었다.

물의 정령은 세계수의 가지에 깃든 생명력에 반색하며 즐겁게 뛰놀았다.

그것은 일견 신비해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이었으나.

스스스스!

“말해라! 네가 그걸 어떻게 쥐고 있는 것인지!”

하데스의 소름 끼치는 기세엔 움찔하며 정우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날 지켜 주려고?”

끄덕.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계수는 정령의 모태나 다름이 없다.

정령으로서는 그 가지이나마 미치도록 반가운 존재인 셈이었다.

“좋아. 그럼 네가 날 지켜 줘. 저 또 다른 가지를 회수할 테니.”

끄덕!

힘찬 고갯짓과 함께 정령이 결연한 몸짓으로 힘을 사용했다.

퐁.

맑은 소음과 함께 물기둥이 올라와 정우를 휘감았다.

그것은 거대한 물뱀과도 같았다.

캬아-!

“……모든 걸 빼앗아야겠다.”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지. 이 지팡이는 전리품일 뿐이야.”

정우는 쿵,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자신의 기억 속 물건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비슷한 형태의 감각이 손아귀를 타고 전신을 맴돌았다.

세계수는 정령의 모태가 되는 나무다.

그리고 그 가지 역시 효과는 떨어지지만 비슷한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력의 성질을 놓고 보면.

“정령의 마력은 ‘순수’.”

후우웅.

정우를 중심으로 은은한 바람이 불었다.

“……!”

그리고 그 바람이 하데스의 마력 범위에 닿는 순간.

스스스.

정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으켜 세운 뼛조각들이 풍화되고.

머리를 털고 있던 드레이크가 모래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성질에는 천적이 있는 법이다.

불과 물처럼.

어떤 힘이 강하냐에 따라 천적은 뒤바뀔 수가 있었다.

유서린의 신성력이 하데스의 사기에 밀렸던 것처럼.

“이제는 반대가 될 차례야.”

고요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 고요한 바람이 닿는 모든 건, 정화되어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정화의 대상이 되는 천적은.

“네 기운을 지워 주지.”

하데스의 마력이었다.

“……뭐, 뭐냐!”

* * *

유서린은 눈을 비볐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음산한 사기는 사라지고 대신 자리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청량함이었다.

한정우의 주변에서 똬리를 틀 듯 고요히 떠 있는 물로 만들어진 뱀이 등장한 이후.

정우를 중심으로 퍼지는 청량함은 시간이 갈수록 짙어져만 갔다.

‘맙소사…….’

그리고 그건 눈앞의 장면으로 이어졌다.

이치를 저버리고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가 소멸한다.

신성력과는 다르지만 그 효과는 비슷했다.

그리고 자신조차 이 정도로 광범위한 신성력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했다.

‘저자가… 하데스가 맞는 거지?’

너무도 무력했다.

일어나는 족족 정화되어 버리는 언데드는 소용이 없었고.

사용하는 스킬은 모조리 정우의 반격에 오히려 낭패를 보고 있었다.

언데드의 마력과 하데스의 마력 패턴.

그리고 세계수의 정령력까지 합쳐진 결과였지만, 이를 모르는 유서린으로서는 가히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물론, 그것은 모든 걸 내쏟음에도 족족 격퇴당하는.

“……내가.”

하데스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내가……!”

하데스의 눈동자는 크게 떨렸다.

허우적대는 양팔과 후들거리는 두 다리는, 세상을 호령하던 거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했다.

들끓는 마력이 사라진다.

물에 녹아 버리는 솜사탕처럼, 너무도 쉽게 사라진다.

욕설을 내뱉고, 화를 내도 상황은 변하는 게 없었다.

난생처음으로 굴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 마왕조차도, 이 정도로 무력감을 주진 않았다.

마왕에게서 보았던 건 압도적인 폭력과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감이었으니까.

그건 자신이 평생 동안 가지고 있던 그것과 비슷했다.

때문에 굴복이 쉬웠던 것일지도 몰랐다.

자신은 강자였고, 돈이라는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돈 대신 마력이라는 이능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뿐이었다.

마왕은 강했고, 자신은 약했다.

그 강함에 취했고, 반했을 뿐이었다.

“그, 그만……!”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마왕만큼의 존재감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대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한 건 분명히 놀라우나, 그뿐이었다.

하지만 차분해 보이는 존재감 너머로 보이는 힘은.

‘…와, 왕이다!’

왕이라는 헛된 이명을 달고 있는 자신들과는 달리 오롯이 존재하는 마왕의 그것에 필적할 정도였다.

그것이 아니고서야 자신을 이토록 허무하게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데스는 발악을 거듭했다.

지팡이를 휘두르고, 스킬을 사용하고.

소멸하는 언데드를 끊임없이 소환했다.

그런 그의 얼굴의 주름이 조금씩 짙어졌다.

마력이 소모되어 가면서 육체의 최상의 상태까지 무너지고 있는 셈이었다.

아들의 육체까지 탐했던 그가 두 번째로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벽을 맛본 순간.

“…….”

콰르르릉.

그의 안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스스스!

주변을 잠식해 가는 정령력이 기어이 하데스의 코앞에까지 다다랐고.

주름진 볼살을 푸들거리며 떨어대는 그의 손아귀의 지팡이 끝에 닿았을 때.

화악!

밝은 빛이 터졌다.

그리고 느껴지는 반발력.

‘이건… 정화 작업이다!’

지팡이에 걸려 있는 저주가 순수한 힘을 머금은 정우의 기운에 정화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발은 강했지만, 짧았다.

며칠이고 기절하고 고통에 신음했던 과거가 허탈할 정도였다.

“아아악!”

하데스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손아귀로부터 느껴지는 막대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지팡이를 내던졌다.

그의 모습은 뜨거운 물건에 손을 댄 노인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잃어버린다.

영락한다.

모든 죽음 위에 군림한다고 하여 붙여진 하데스라는 이명은 사라지고, 죽음을 두려워하던 고리대금업자로 변해 버린다.

육체의 고통이 과거의 나약했던 부분을 고스란히 불러왔다.

정신의 두려움이 과거의 나약했던 순간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추하군요.”

유서린의 평은 정확했다.

벌벌 떨리는 손은 물론, 정신없이 이리저리 살펴보는 시선과 고갯짓은 하데스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게요.”

짧게 답한 정우가 걸음을 옮겼다.

주춤.

정우의 접근에 화들짝 놀란 하데스가 점차 뒤로 물러선다.

S급.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강자의 면모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정우를 경계하면서도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뒤로 물러선 그에게서.

정우는 허리를 숙여 떨어진 지팡이를 주워 들었다.

웅웅.

미약한 공명.

두 개의 지팡이를 든 정우는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청량함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괜찮군.’

피로감이 씻기는 느낌이었다.

화악!

물의 정령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뱀의 형상이 풀어졌다가 뭉쳐졌다가, 허공에서 난리를 피우며 즐거움을 표현했다.

어찌나 눈길을 끄는지 유서린조차 저도 모르게 시선을 고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두 개의 지팡이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고스란히 활용한 정우의 존재감은 이전보다 더욱 또렷해졌고.

‘맑다.’

훨씬 맑고 순수해졌다.

그에 따라 가해지는 압박에 하데스는 몸을 돌렸다.

무려 빌런들에게서 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이의 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푹!

“……커, 커어?”

갑자기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는 무언가에 무산이 되고야 말았다.

“그, 그건?”

“비밀이에요.”

통로.

반쯤 허공을 가른 지팡이가 도주하는 하데스의 전면에 나타나 그의 심장을 찌른 것이었다.

하데스는 떨리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수많은 감정이 뒤엉킨 표정을 지었다.

가장 커다랬던 절망이 사라지고 난 뒤 자리한 것은.

“네… 네까짓 게……!”

뒤늦은 정우에 대한 부정.

촤악!

그 악의를 읽은 정령이 부산하게 몸을 떨어댔다.

덜컥!

목을 크게 꺾은 하데스의 눈이 희번득 돌아갔으나.

분노로 정신을 잃기 전에 들었던 것은, 수많은 벌떼의 날갯짓 소리였다.

콰콰콰콰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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