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하데스 (7)
[ ‘악의(惡意)’를 각인…. ]
[ ‘악의(惡意)’를 각인…. ]
[ ‘악의(惡意)’를 각인…. ]
하데스는 거인이었다.
마왕, 뇌신에 이어 대마법사 질 고메즈와 동일선상에 놓이는 초강자.
일인 군단이라 불리는 그의 등장은 분명히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나쁠 건 없다.’
정우는 기회로 여겼다.
끝도 없이 울리는 메시지를 무시한 채로.
수백에 달하는 매직 미사일이 레이저처럼 긴 꼬리를 그리며 쏘아졌다.
으득.
솟아난 뼈 방패에 부딪혀 폭음이 일어나고.
거대한 동체의 드레이크마저 밀려날 정도의 후폭풍이 뒤따랐다.
몽실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섬뜩한 소음과 함께 또 다른 폭발이 터졌다.
시체 폭발.
먼지로 가려진 사이에서 정우와 하데스는 서로의 기척을 느끼며 공격을 일삼았다.
구름 속에서 뇌운이 이런저런 형상을 그리는 것처럼, 먼지 사이에서 여러 공격이 오갔고.
그때마다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후웅!
둘의 모습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추악한 형체의 시체 더미가 휘저은 팔 때문이었다.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까지?”
과연 하데스라는 이명이 허투루 붙은 게 아니었다.
메모라이즈와 어보미네이션.
둘 다,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른 이들만이 사용 가능한 준 궁극기에 가까웠으니까.
철벅.
놈의 크기는 대략 5미터가량이었다.
거대한 덩치.
수십의 시체가 뭉쳐져서 만들어진 그것은, 의외로 움직임이 가벼웠다.
“죽음의 저주.”
그리고 그런 어보미네이션을 가로질러, 하데스의 저주가 정우를 노렸다.
화악!
“……저주 해제라고? 내 저주를 막을 정도의 효과를 지녔단 말인가!”
정우도 그렇고, 저주를 이긴 채로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메아리도 그렇고.
하데스는 자신이 자랑하는 일면을 무마시킨 둘의 능력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토네이도(Tornado).”
저주 해제와 동시에 사용된 마법은 하데스도 경시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위력이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서로 다른 마력을 지닌 마법이 교차한다.
기어이 어보미네이션을 밀어낸 정우가 준비한 마법이 하데스의 마력을 밀어내고 작렬한다.
“어스퀘이크(Earthquake). 기어 올라온 곳으로 떨어져라.”
정우의 싸늘한 일갈과 함께 지면을 뒤집을 정도의 지진이 사방을 장악했다.
‘지하가 비었다. 그렇다면 이만한 마법이 없지.’
뒤뚱거리던 어보미네이션이 추락한다.
시체 더미가 뭉쳐져 만든 것 같지 않게 반응이 빠르고 기민한 놈이었으나, 마법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사라진 어보미네이션을 보는 하데스의 눈동자엔 일견 황망함까지 감돌고 있었다.
“……네가, 감히!”
푸르륵.
수염을 떤 하데스의 일갈에 정우는 저도 모르게 조소를 보냈다.
“그럼 신줏단지 모시듯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했을까?”
정우는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소름에 미소를 지웠다.
왼쪽 눈가를 가로지르는 상처에서 조금씩 흐르는 핏물이 정우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데스의 굳어진 표정만큼이나 주변의 공기가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것만 같았다.
‘…과연.’
죽음의 신, 하데스.
비단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을 떠나 존재감 자체가 죽음과 비슷한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그 입을 찢고, 네 갑작스러운 성장을 연구한 뒤에 내 충성스러운 노예로 부려 주마.”
그렇게 말하는 하데스의 발밑에서부터 스멀스멀 검은 연기가 천천히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가 흡수되기 시작했다.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어보미네이션을 되돌리고, 소모된 마력을 재흡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보인다.’
그것은 하데스가 행한 두 번째 실책이었다.
처음은 메아리에게 밀려 오버레이를 강제로 해제한 일이었고.
외모와 재능과 능력.
그 모든 것들을 덧씌우는 작업이 정상적일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
때문에 착용과 해제에 생각보다 수고를 들여야 하는 게 바로 오버레이였다.
그걸 급격히 해제했으니 반발력이 상당한 건 당연했다.
반발력은 드러난 것도 있었지만 감춰진 것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력의 흐름.
약간의 불안감이 정우에겐 눈을 빛내게 만들 정도의 틈이 되었다.
하데스의 마력 패턴은 기이했다.
마치 끝도 없이 변주하는 피아노처럼, 장단조가 급변하듯 이뤄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흐름에 대한 장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끝도 없이 변하는 암호처럼 분주했다.
정우는 그 사실이 신경이 쓰였다.
더불어.
콰쾅!
비기까지 사용하며 한계에 다다랐던 유서린의 육체는 마력과는 달리 크게 회복된 상태가 아니었다.
드레이크와 호각을 이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심지어.
‘상성에서 밀린다.’
드레이크의 뼈 날개에 얻어맞은 그녀가 긴 고랑을 만들어 내며 뒤로 밀리고 있었다.
상성이라는 것은 오묘했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지만, 물을 증발시키는 건 불인 것처럼.
천적의 개념 또한 언제든지 역전될 수가 있었다.
누가 더 강하냐에 따라서.
하데스의 역작일 게 분명한 드레이크는 강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S급의 유서린이 뒤로 밀릴 정도로 강한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녀의 직업이 버서커 하나였다면 나았을 것이다.
성기사의 능력은 오히려 네크로맨서의 마력에 짓눌려 위축되었다.
그게 유서린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어딜 보는 것이냐!”
마력의 재흡수가 끝난 하데스의 기세는 폭발적이었다.
마치 상처란 건 입지 않은 것처럼, 조금 전보다 더 나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우는 그의 흐름을 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다.
‘무리하는군.’
늘어진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탁한 동공이 유서린을 슬쩍 훑는다.
드레이크는 당장의 유서린을 뒤로 밀어낼 만큼 강했지만, 어차피 그녀의 승리는 시간문제였다.
‘저건 미완성이니까.’
드레이크의 심장.
라스베이거스를 노렸던 빌런들이 강탈하려다 실패한 물건.
그 배후에 하데스가 있었음을, 정우는 확신했다.
본 드래곤이라는 놈이 있다.
죽은 드래곤의 뼈와 마력으로, 해골로 된 드래곤을 소환하는 마법으로 모든 네크로맨서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는 놈이었다.
본 드래곤은 그저 그것의 뼈만 존재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마력.
생전에 지니고 있었던 마력이 가미되어야지만 완성이 된다.
그전까지는 그저 단단하고 커다란, 뼈로 이루어진 공룡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마력을 머금는 순간, 가히 드래곤이라는 위용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변모한다.
또 다른 심장이라 불리는 ‘드래곤 하트(Dragon Heart)’의 강대한 마력을 통해서.
드레이크 역시 드래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꽤나 강대한 몬스터였다.
용족으로 분류되는 만큼, 한 곳에 마력을 쌓는 성질도 비슷했다.
다만 드래곤 하트가 없는 드레이크가 선택한 그릇은 실제 심장이라는 게 달랐을 뿐이다.
‘드레이크의 심장을 노린 게 이 이유 때문이었군.’
블링크로 사라진 정우의 주변으로 벌떼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귀가 예민한 사람은 당장에 귀를 막고 두통을 호소할 정도의 소음이 이어졌다.
“또 매직 미사일인가!”
하데스는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정우는 그런 생각과 함께 손을 털었다.
‘터져라.’
더불어 속으로 언령까지 사용하여.
매직 미사일에 속성을 부여했다.
바로 폭발 말이다.
벌 떼는 유려하게 허공을 가로질러 하데스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 새로운 방법에 움찔거린 하데스가 코웃음을 치며 시체를 불러냈다.
머맨과 인간의 사체가 등장과 동시에 하데스를 경호하며,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일제히.
퍼퍼퍼퍼펑!
터진다.
시체 폭발이 매직 미사일에 걸린 폭발을 자극했다.
폭죽처럼 끝도 없이 터지는 연쇄 폭발로 공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으며.
정우가 날린 매직 미사일의 대부분이 하데스의 주변에 있었던 만큼 폭발의 여파는.
“……크윽!”
고스란히 하데스가 뒤집어써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열리는 틈.
스며드는 음산한 마력.
고작해야 두 번의 흐름을 읽은 것으로.
딱!
손가락을 튕긴 정우의 가벼운 행동은 상황에 변화를 가져왔다.
휘두르던 꼬리가 돌연 방향을 바꾸어 바닥을 찍는다.
가뜩이나 처참하던 바닥이 더욱 부서졌고, 피막 하나 붙어 있지 않은 날개는 힘없이 추락하여 바닥을 뒤덮었다.
쿵.
고개를 반쯤 꺾은 채 거대한 두개골을 바닥으로 내리찍는 드레이크의 모습은, 그것의 살아생전 패배했을 당시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 라?”
고개를 휘젓던 하데스의 신형이 덜컥 멎었다.
별다른 이변은 없었다.
자신이 공급하는 마력은 여전했고, 스킬은 여전히 유효했으니까.
드레이크가 활동을 멈출 이유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마치 죽어서 풍화되어 뼈만 남은 사체처럼, 고요히 쓰러져 있었다.
“……무엇을, 한 것이냐?”
경계심을 한껏 고조시킨 하데스가 품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간섭(Interference).”
놀랍게도 정우는 하데스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차피 이 개념은, 자신 외에는 불가능한 개념이었으니까.
마력만 놓고 보면 지구보다도 월등한 이계에서조차 이 개념을 이해하는 이는 안나가 전부였다.
물론, 그녀조차 실행은 불가능했지만.
정우의 마력 감지 능력은 가히 사기적이었다.
그렇기에 흐름에 익숙해지고 패턴만 파악한다면.
“간섭이 가능해지는 거지. 이렇게.”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하데스는 말문이 막혔다.
여태껏 경험한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수준이 아닌가.
간섭?
그딴 게 가능했다면, 모든 마법 계열은 저자 앞에선 결국 무력하단 소리였다.
그나마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그게…….
말끝을 흐리던 하데스는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왕을 섬기기로 한 뒤.
그는 왕으로부터 새로운 개념 하나를 접했다.
마력의 패턴을 끝도 없이 변화해야만, 그나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뜻 모를 소리와 함께.
왕의 명령을 지상 명제로 삼은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마력의 패턴이라는 것을 개발했고, 흐름을 꼬아 냈다.
그리고 기어이 하나의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빌런 협회 내에서도 지극히 소수의 플레이어만이 지니고 있는, 마왕이 직접 전수한 스킬을.
‘변화(Shift)의 이유가 저놈 때문이었단 말이더냐!’
충격에 휩싸인 하데스를 향해 정우는 손을 뻗었다.
후웅!
응축된 마력이 손끝에 맺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사기(死氣)…….”
너무도 익숙한 기운이었다.
“네크로맨서?”
바로 네크로맨서 특유의 음산한 사기였다.
‘대마법까지 사용한 놈이 네크로맨서라니! 듀얼 클래스라도 된단 말인가!’
하데스는 경악하는 한편 내심 침음을 삼켰다.
메아리를 상대하다가 얻은 피해.
오버레이만 아니었다면 전혀 입지 않았을 피해 때문에, 그녀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불러낸 모든 언데드를 다시 없앴고 미약한 ‘페널티’가 있는 지팡이를 다시 아공간에 보관했다.
지금의 상황에선 그걸 다시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까득.
‘내가 이런 꼴을 당할 줄이야….’
이를 간 하데스가 품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연결되어 있던 아공간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지팡이의 내장된 스킬이.
화아아악!
하데스의 마력을 급증시켰다.
덜컥!
비단 마력뿐만이 아니라 정우의 간섭까지 이겨 낼 정도로, 마력의 질이 달라졌다.
덜컥거리며 움직임을 보이는 드레이크가 그 증거였다.
하지만 정우는.
그 짧은 전투로도 땀을 흘리는 유서린과 자신을 향해 살의를 내뿜는 하데스는 보이지도 않았다.
오로지 보이는 건.
‘저 지팡이는…….’
???로 만든 지팡이.
나름의 기억과 능력을 되찾았음에도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재질의 지팡이가.
‘왜 네 손에도 있는 거지?’
파직!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두통에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