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60화 (160/293)

160화

-하데스 (6)

불과 몇 시간 전의 정우라면, 본인이 나서서 뜯어말릴 정도의 판단이었다.

컴퓨터 또한 명령을 지우기 위해선 ‘접속’을 해야만 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저주 해제는 ‘무선’.

근원을 지우는 작업은 ‘유선’이었다.

비단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마력이라는 것 자체의 성질은 고약했다.

세상에 퍼져 있을 땐 공기나 다름없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는 마력이지만.

육체, 사물 따위에 깃들게 되면 상황이 달라졌다.

자신 외엔 대부분의 것들을 배척하는 성질을 지니게 되며, 사물의 경우엔 그 정도가 지나쳤다.

때문에 이미 마력이 자리한 사물에 다른 마력을 흘리는 건, 자칫 해당 사물의 파괴까지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짓이었다.

뇌에 적용된 세뇌의 마력에 접속하여 삭제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확실히 S급이다.’

정신을 잃은 강세기였지만 그의 마력은 정우의 접근에 크게 반발했다.

보통 이 순간, 반발력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정우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마력을 흘리고.

보다 가늘게 뽑아낸다.

아라크네의 마력은 여러모로 큰 도움이었다.

몇 시간 만에 전혀 다른 수준이 되어 버린 정우였기에, 조심은 하되 망설임은 없었다.

조금씩 강세기의 마력 패턴을 파악하고, 흐름을 장악한다.

본래의 그보다 탁한 부위의 장악에 나서자 거센 반발력이 밀려들었다.

작은 관에 억지로 커다란 물체를 쑤셔 넣는 듯한 느낌.

적잖은 반발과 더불어 기절한 강세기의 육체가 움찔거렸다.

‘세뇌는 이게 골치가 아프다.’

‘기억’이라는 손대기 어려운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게 굉장히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린 것과는 달리 정우의 마력은 거리낌 없이 전진하고 진행한다.

관을 연하게 만들고 넓혀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거기다 강세기의 저항조차 억눌러야 했기에 난이도는 몇 배로 상승했다.

주륵.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집중력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꽤나 긴 세월이었다.

마력이 그리 많지 않을 때부터 시작하여, S급에 이를 때까지 풀리지 않은 세뇌는 암세포와도 같았다.

자칫 잘못 손대면 정상적인 부분까지 손상을 받을 상황.

‘마력으로 차분히 끊어 내야 한다.’

하지만 정우는 차분히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

들썩거리던 강세기의 반응이 조금씩 차분해져만 갔다.

뇌의 전역에 퍼져 있던 마력을 잘라 내 소각하던 정우는,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있는 마력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순간.

정우의 마력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 * *

“……!”

먼저 반응한 건 하데스였다.

“감히, 유인을?”

자신의 일격을 경상만으로 피해 내며 움직이는 상대를 잡지 못해, 끝내 상당한 거리를 이동한 하데스는 저 끝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에 버럭 고함을 질렀다.

쏴아악!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도 날카로운 살기에 메아리는 다급히 땅을 굴렀다.

금발의 미남자는 사라지고, 주름이 가득한 노인의 눈빛이 메아리를 찢어발길 듯 살의를 머금었다.

단순히 뼈를 이용하는 일격에서 벗어난 하데스의 스킬은 방대했다.

저주 또한 메아리의 그것과 비교해서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때문에 도주하면서도 메아리는 가슴 철렁한 위기 순간을 몇 번이나 겪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후욱, 조금씩… 이해가 가.’

사력을 다해 도주하는 상황에서 그녀가 지속적인 성장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육체를 이 정도까지 다루는 건 그녀로서도 색다른 경험이었고, 살기 위해 휜의 능력을 떠올리는 것에 집중하며 움직이다 보니 벽에 간 금이 더 커진 것이었다.

때문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힘겨운 와중에도 밝았다.

하나씩 얻어 가는 재미란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종류였으니까.

아니, 아득한 과거에나 느꼈던 감정이 지워진 기억 속에서 발아하는 느낌이랄까.

더불어 난생 처음 느끼는 육체적인 움직임까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살기와 예기에 다급히 몸을 비틀고.

발을 구르고, 구르면서까지 메아리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더불어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검의 궤적은, 상처는 입을지언정 치명상은 모조리 피해 내게 만들고 있었다.

하데스의 눈에서 귀화가 피어올랐다.

“합류를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일갈과 함께 메아리가 디디려는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휘청.

예기치 않은 상황에 메아리가 다급히 안개를 조절해 검을 채찍처럼 만들어 반으로 꺾인 자동차에 묶었다.

‘뭐지?’

무너진 지하 아래로는 커다란 동굴이 생성되어 있었다.

딱 봐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통로.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다.

‘웜.’

휘릭!

메아리가 손에 힘을 주고 반동으로 떨어지던 지하에서 탈출했을 때.

촤악!

그녀를 덮치는 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의 저주였다.

잿빛으로 물든 안개가 덮치자.

‘……!’

순간적으로 메아리는 입을 쩍 벌렸다.

부릅뜬 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무수한 망상(妄想)이 그녀의 머릿속을 장악했다.

그사이.

지근거리까지 다다른 하데스가 손을 뻗으며, 메아리의 목을 낚아채려 했다.

번쩍!

하지만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부릅뜬 눈동자에 귀화(鬼火)가 서렸다.

그와 더불어 후욱 하는 미약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래!’

메아리의 신형이 사라졌다.

두 다리를 쩍 벌린 채로 자세를 낮춘 메아리가 발을 회전하며 하데스의 발목을 걷어찼다.

마력으로 막긴 했지만 느껴지는 은은한 통증에 펼쳤던 손을 아래로 꺾으려던 찰나.

“……!”

검고 긴 선이 자신의 시야를 반으로 가르며.

촤아아악!

솟구쳤다.

뒤늦게 등장하는 붉은 방울과 함께.

* * *

긴 한숨과 함께 눈을 뜨는 정우를 향해 유서린이 몇 발짝 다가갔다.

“끝났어요?”

그녀의 물음에 정우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유서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세한 건 정신을 차린 강세기와 대화를 나눠 봐야 했지만, 어쨌든 세뇌가 걸렸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기에.

그리고 아군을 잃긴 했지만 결국 목표는 달성했기 때문에.

숨을 고른 정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장을 정비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이대로 후퇴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지시를 내리기 직전이었고.

하지만.

“마력은요?”

“부족하긴 한데… 적당히 있어요.”

정우는 고개를 돌려 김하란을 보았다.

“음. 나도 평소보단 못하지만 썩 쓸 만하오.”

“좋아요. 그럼 이 사람을 경계하면서 살펴 주시고….”

다시 고개를 돌려 유서린을 본 정우가 목을 꺾으며 말했다.

“대장은 저와 움직이죠.”

“움직여요?”

“으음?”

그녀의 물음이 끝남과 동시에 느껴지는 존재감에.

유서린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김하란 역시 마찬가지로 무기를 들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이걸 못 느꼈다고?”

“아무리 지쳤다고는 하지만….”

둘이 은은한 충격으로 중얼거렸다.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음산한 마력.

메아리가 사력을 다해 가린, 하데스의 마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주인님!

메아리의 비명이 때마침 들려왔고.

정우는 그것을 신호 삼아.

콰앙!

땅을 박찼다.

주춤했던 유서린도 정우의 뒤를 따랐다.

정우는 마력을 흘려 메아리의 상황을 읽었다.

그녀의 상황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지만.

‘썩 나쁘지도 않군.’

비명처럼 죽을 위기인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막상 본 그녀의 수준은 이전과는 차이가 있었으니.

심장이 일순간 덜컥거리는 익숙한 그리움은 그렇다 치고.

‘벽을… 부수기 직전이다!’

그녀는 서큐버스가 아닌 다른 능력을 개화시켜 기어이 S급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사실에 반색하기엔 조금 이른 모양이었다.

드득!

돌연 흔들리는 지면에서 뾰족한 것들이 치솟는다.

마력을 머금은 그것들이 급속도로 닫히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정우와 유서린이 메아리에게 닿기도 전에.

하나의 거대한 언데드가 완성되었다.

상당한 경지에 오른 네크로맨서만이 지니는 스킬.

‘메모라이즈(memorize)?’

마법을 저장해 놓는 마법사와는 달리, 이미 완성된 강력한 소환수를 불러내기 위한 ‘내장 마법’.

그 즉각적인 형태에 정우는 눈길을 주었다.

‘드레이크!’

“……드레이크?”

정우는 물론 유서린 역시 상대를 확인했다.

“그럴 리가…. 드레이크 사체가 유통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는데….”

드레이크는 존재 자체가 S급으로 분류되는 놈들이다.

역사상 지금까지 딱 두 번만 등장했던 놈들.

때문에 혼선을 겪을 리가 없었다.

처음 드레이크가 등장했을 때엔 수많은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었으며.

일각에선 드래곤으로 불릴 정도의 충격적인 존재감을 알렸던 것.

그것이 뼈만 남은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

하지만 메아리를 집어삼키기도 전에, 정우는 그녀의 앞에 통로를 열었고 그녀는 망설임도 없이 통로로 뛰어들었다.

끼릭.

뒤늦게 열쇠 돌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만 울렸다.

자신만의 영역인, 마녀의 마을로 보낸 것이다.

하루에 한 번 사용하는 마녀의 열쇠를 이용해서.

그렇게 하마터면 해골의 배 속에 갇힐 뻔한 메아리가 사라지고.

드레이크의 뒤편에서 등장한 섬뜩하리만큼 날카로운 시선이 둘을 관통했다.

둘의 반응은 빨랐다.

유서린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마력을 뿜었다.

날카로운 예기에 절대 밀리지 않는 막대한 마력이었다.

비록 회복이 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경시하지 못할 강함이 있었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를 필연적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징벌?”

“…하데스!”

둘의 불신 섞인 음성이 서로 부딪쳤다.

하데스는 메아리가 도주하는 방향에 플레이어들이 있는 것은 확인했지만, 이 방향은 일본 측이었기 때문에.

‘왜 한국 플레이어들이 이쪽에 있는 거냐?’

한국 플레이어들이 합류 지점보다 먼저 합류했다는 것에 놀랐고.

또한 유서린의 존재감을 마주칠 때까지 그녀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유서린의 놀람은 더 컸다.

‘하데스가 왜 여기에?’

자신보다 윗줄에 놓이는 몇 안 되는 인물 중에서도, 상대하기 어려운 것만 놓고 보면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가 바로 하데스였으니까.

하데스의 움직임은 전 세계의 플레이어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심각한 사안이었음에도.

‘아무도 몰랐다고? 그리고 그가 왜 여기에?’

하지만 경악은 짧았고, 대응은 빨랐다.

하데스의 손짓에 반응한 드레이크가 뻥 뚫린 입을 쩍 벌렸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동체는 실제 살아 있는 것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며.

콰르르륵!

정우와 유서린을 향해 목을 뻗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유서린은 땅을 박차 자리를 피했으며, 정우는 블링크를 통해 이동했다.

유서린이 드레이크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사이 정우는 하데스의 전면에서.

“오버레이를 푼 건가?”

하데스를 자극했다.

“한정우….”

“내 이름을… 아. 사체의 기억을 읽은 거군.”

정우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결국, 수하의 말은 옳았다.

상당한 피해를 입고 후유증에 시달려야 할 것 같은 유서린이 나름대로 건재한 것도, 한정우 때문인 것만 같았다.

한정우와 유서린.

하데스는 더 무리를 하더라도 지금 이 둘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우연히도.

“메아리가 오버레이를 풀게 만들 정도로 강해졌나 보군. 안 그래?”

정우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로건?”

정우의 주변에 수없이 많은 발광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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