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55화 (155/293)

155화

-하데스 (1)

하늘이 부서져 내렸다.

붉게 얼룩진 하늘은 푸름을 잊은 채로 탁하기만 했다.

‘왜 붉지?’

이진수는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삐- 하는 이명과 함께 모든 사고가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그저 얼룩덜룩한 하늘이 이상하다는 생각만을 할 뿐.

X발.

그는 분명히 욕설을 내뱉었다.

머릿속으로는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너무도 익숙한 단어 하나를 툭 하니 내뱉었다.

“크륵.”

하지만 목을 타고 나오는 건 낮게 깔린 가래 섞인 소리뿐이었다.

당황할 법도 하건만 반대로 이진수는 자신의 가래 섞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대체 어디가 아픈 건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전신이 비명을 질러댔다.

수없이 전투를 벌였고 싸웠으며 다쳐 왔던 그조차도 이런 끔찍한 고통은 난생처음이었다.

‘어디 한 군데는 제대로 아작이 났나 보네.’

그나마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위안 맞나?’

거기까지 생각하던 헛웃음과 함께 조소를 머금었다.

끄륵.

여전히 가래 섞인 신음만이 가득할 뿐이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소음의 의미는 분명히 조소였다.

‘당했다.’

몬스터에게 당한 게 언제라고 왜 방심했을까.

자신이 이 공략팀의 지휘권을 가지지 않았다는 건,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퇴각을 담당한 건 엄연히 나이트 길드의 박 이사였고, 자신은 박 이사와 상당히 친분이 있는 사이였으니까.

적어도.

‘말이라도 해볼걸.’

자신의 말이라면 듣는 시늉이라도 했을 터였다.

‘그래도 똑같았으려나?’

이진수는 온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이명으로 대체된 세상 속에서, 붉게 얼룩진 하늘만을 가만히 보았다.

아무것도.

어떠한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그 생각을 품자마자 죽음이 성큼 다가와서 목을 졸라댔다.

목울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불쾌함이 통증을 이기고 포효를 질러댔고, 불쾌함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끌어당긴 채 가래와 함께 덩어리져서 전신에 퍼졌다.

이진수는,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떠올렸다.

‘뭐라고 달려 나간 거지?’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의 압도적인 마력이었다.

퇴각하려는 자신들에게, 눈동자가 변한 그가 들이닥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촌각에 불과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반응한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겨도 좋으련만, 남는 건 은근한 후회와 더불어 싸늘한 절망뿐이었다.

빌어먹을.

괜한 오지랖이었다.

은신이란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몬스터의 이변을 알리고, 조금 더 일찍 합류하여 안전을 도모하려고 했던 건 솔직히 자신들 때문이 아니었다.

유서린의 지시에 따라 퇴각에 전념했다면 아마도 아군은 안전하게 몬스터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괜히.

정말로 괜히 일본의 플레이어를 걱정한 탓에…….

빌어먹을.

‘대체 왜… 우릴 공격한 거지?’

회군하려던 아군은 일본 플레이어 쪽에서 쏟아지는 살기에 각자 무기를 꺼내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대치에 이사가 소리쳤고, 플레이어들은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지쳤다고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질 이유는 없었는데…?’

일본의 플레이어보다 한국의 플레이어가 수준이 더 뛰어났다.

같은 등급조차 우위를 점하는 게 한국이었으며, 고위급의 수는 압도적으로 한국의 우세였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C급까지 탈탈 긁어모아 수를 맞춘 일본과는 달리, 자신들은 A급만 이십여 명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공격한 건.

‘젠…장!’

단 한 명이었다.

이진수는 몸을 일으켰다.

전신은 비명을 지르고, 세밀하게 느껴지던 근육의 움직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바닥에 가까웠던 시야만큼은 확실히 상승했다.

‘일단… 팔과 다리는 정상이다.’

다급히 일격을 막은 것치고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이른 착각이었다.

“……크으.”

상체를 일으키려고 하자 엄청난 충격이 밀려들었다.

극한 동상은 화상과 같은 효과를 보인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피로 붉어진 시야 너머 보이는 푸른빛은 소름 끼칠 정도로 영롱했다.

‘이게… 강세기의 녹지 않는 얼음….’

이진수는 고개를 돌렸다.

“이 개새끼야!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며 상대를 공격하는 이사의 모습이 보였다.

피가 묻어 있긴 했지만 건재한 모습에 이진수는 적잖게 안도했다.

“다쳤어. 더 누워 있어!”

다급히 달려온 누군가가 어깨를 짓누르며 스킬을 사용했다.

거세지는 통증에 회복 스킬을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은 이진수가 신음을 참았다.

“…사, 상황은?”

“알아서 할 테니까 닥치고 누워 있어. 너… 중상이야.”

치유의 효과 때문인지 조금씩 시야가 선명해진 이진수는 힘을 풀었다.

“이만하면 다행이다.”

상체의 반이 고스란히 S급의 일격에 당했다.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좋은 상태였다.

힐러의 말에 이진수는 통증을 참으며 물었다.

“전투는…….”

“젠장! 모르겠어. 강세기가 미쳤나 보다.”

“X발. X라 강하잖아!”

“개 같은 새끼. 좀 맞아라!”

주변의 소음도 확실히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진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의 베테랑 사이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한 명의 신형이 보였다.

“……저놈. 왜 공격을….”

이진수는 강세기의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몰라. 그나마 중간에 공격을 멈춰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다 죽을 뻔했다.”

“사망자는….”

“없어. X발. 너 덕분에 이사님도 목숨을 건졌고…. 고맙다.”

“푸흐….”

이진수가 웃음을 흘릴 때였다.

돌연 가슴을 파고들었던 얼음의 크기가 살짝 커졌다.

이진수가 입을 쩍 벌리며 고통스러워할 때.

“…뭐, 뭐야?”

힐러가 당황하며 고개를 다급히 돌렸다.

그렇게 말하는 힐러의 입에서는 김이 서렸다.

서늘하게 내려간 온도는 분명히 심상치 않았으며, 힐러는 이 현상의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강세기를 대표하는 능력은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처럼 모든 걸 얼려 버리는 ‘동결’이었지만, 가장 흔한 능력은 ‘녹지 않는 얼음’과 ‘얼음 지대’였다.

프로즌 필드(Frozen field).

“X발!”

프로즌 필드는 강세기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모든 것을 말살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이었다.

그 말인즉슨.

“우리 모두를 죽이려고?”

강세기는 지금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살수를 쓰고 있다는 소리였다.

“……!”

이진수는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통증을 잊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미 공격을 당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아직까지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했었다.

자신이 당한 뒤로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른 건지는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았지만, 상황을 보니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모든 걸 뒤바꿀 수 있는 존재가 바로 S급이라는 사실을, 이진수는 잘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왜 지금에서야?

형형색색의 검기가 허공을 가르고, 피부가 뜨거울 정도의 열기가 느껴졌지만.

쏴아- 아!

언뜻 청량한 소음과 함께 모든 건 얼어붙어 사라져 버렸다.

프로즌 필드의 효과는 엄청났다.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역은.

“……마, 마력이…!”

영역 안의 모든 이들의 마력을 얼려 버리듯 제약을 걸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용.

“뒤로 빠져!”

이사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에 플레이어들이 반응하려던 찰나.

“……?”

쩌적!

프로즌 필드에 금이 갔다.

통증이 약해지자 이진수도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제 머리를 부여잡은 채로 허리를 꺾은 강세기였다.

“저거… 왜 이래요?”

“…몰라. 근데 아까부터 자꾸 공격이 끊기더니 저러는데?”

힐러가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지금이야!”

그리고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이사의 지시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프로즌 필드의 영향권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큭!”

자신을 낚아챈 다른 플레이어의 손길에 이진수는 신음을 참았다.

그렇게 프로즌 필드의 영향권에서 겨우 벗어났을 때.

강세기도 두통에서 벗어나며 붉은 눈동자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포메이션!”

이사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모두는 진형을 갖췄다.

보스 레이드.

강세기라는 걸출한 S급을 공략하기 위한 공격진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베테랑다운 면모였으나 분위기만큼은 무섭도록 무거웠다.

“……이게 무슨 일이래?”

“설마… 강세기를 상대로 레이드를 할 줄이야.”

“일본 놈들은 무슨 생각인 거야?”

몇몇의 플레이어들은 강세기 뒤편에서 상황을 주시하는 일본 플레이어들을 노려보았다.

만에 하나라도 강세기에게서 승리를 쟁취한다고 하더라도.

‘저 뒤편의 플레이어들은? 몬스터들은?’

모든 건 최악으로만 치닫고 있었다.

분명히 그럴 줄 알았다.

“이게…….”

갑자기 들린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뭐야?”

“…공중이다!”

“어? 이거 어디서 들어본 음성인데?”

“세 명?”

“서, 서린! 유서린 플레이어다!”

“김하란 플레이어도 있어.”

허공에서 들린 음성의 주인은 유서린이었다.

말문이 막히는 듯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는, 지면에 발을 디디고서야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이죠, 강세기 씨?”

싸늘한 어조만큼이나 막대한 기파가 그녀의 주변에서 넘실거렸다.

김하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명의 S급의 기세는 프로즌 필드에 금을 가게 만들었고, 그 여파는 조금씩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 살았다!”

“살아 있었어! X발. 믿었다고!”

플레이어들은 서로를 보며 반색했다.

강세기가 아무리 일본을 대표하며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난 플레이어라고는 하지만, 유서린과 김하란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지친 상태라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 대 일이지 않은가.

이진수는 두 명의 S급을 주시하다가 문득 시선을 옮겼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이 두 명의 S급 사이에 서 있었다.

유서린이나 김하란이나 허공에 떠오르는 재주는 없었으니, 허공에서 내려온 건 온전히 저 사람의 역량이었다.

이진수뿐만이 아니라 한국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정우에게 쏠렸다.

정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야, 정우.

이진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

이진수는 깜짝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가슴에 중상을 입었다는 것조차 까먹고는 상체를 펴다가 화들짝 놀랐을 정도였다.

‘……정우라고?’

자신의 친구였다.

자신과 한정우. 그리고 이승민은 태어날 때부터 친구였다.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알고, 서로의 속내와 흑역사까지 공유하고 있는 친구.

‘진짜로… 정우구나!’

모습은 달라졌지만.

느낌은 많이 달라졌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했다.

이진수는 정우의 등장에 놀라는 한편 크게 반색했다.

이런 상황이나마 친구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빌런들을 쫓겠다던 친구의 건재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유서린과 김하란이 등장한 이상, 강세기도 무턱대고 공격하진 못할 터였다.

이진수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정우가 다가왔다.

아는 척도 하지 못한 채 의아한 눈으로 정우를 보고 있을 때.

“잠시, 아플 겁니다.”

정우가 낯선 투로 말을 건넸다.

가슴에 꽂혀 있는 녹지 않는 얼음에 손을 댄 정우로부터 짧게 웅웅, 공명음이 들렸다.

‘괜찮은 거야?’

이진수의 눈빛에 정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큭!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비명을 참은 이진수는 곧이어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 얼음까지도.

“소멸시켰으니 이제 치료하세요.”

멍한 표정의 힐러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인 정우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진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정우의 팔을 낚아챘다.

‘네가 왜 앞으로 나서?’

친구의 걱정 어린 눈빛에 피식 웃은 정우가 자신의 팔을 잡은 이진수의 손등을 툭툭 치고는 떨쳐냈다.

그러고는 몸을 돌린 정우의 눈초리가 굉장히 매서워졌다.

이진수의 상태에 분노한 것이다.

‘조금만 깊었어도… 심장이었어.’

그는 이 일의 원흉을 노려보았다.

얼핏 정신을 놓은 것 같은 기이한 모습의 원흉을.

‘강세기…….’

“제가 제압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정우에게서 뻗어 나오는 마력은, 프로즌 필드를 모조리 부숴 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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