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마나 (8)
건물 옥상 위에서 메아리는 눈을 떴다.
“……이 주인님은 시도 때도 없네.”
헛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우두둑, 목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마력 회복 속도가 몇 배나 상승했네.”
새로운 방법을 선택하겠다던 주인은 약속을 지켰다.
따로 약속을 한 적은 없지만 예전의 편린을 느끼게 해준 것만으로도 정우는 강해지겠다던 약속을 지킨 셈이었다.
‘과연 주인님의 판단이 옳을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득.
메아리는 이를 갈았다.
주인의 기억에서 본 마지막 모습은, 자신이 기억하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만들지 않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기억을 되새긴 그녀는 정우의 결정이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의 도움이 필요해.”
자신의 욕심에 따라 배척할 상황이 아니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과거가 있었다.
이지스.
이제는 일족의 수장이 된 그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세상을 둘러보며 세상의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의 그는 주인을 만났고, 주인의 일부를 겪었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그는 감히 ‘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고작해야 그것만으로….
‘나는 주인을 신으로 느낄까?’
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굳이 따진다면.
모든 서큐버스 위에 군림하다가 탈피한 자신 역시 신의 반열에 올랐었으니까.
마지막 서큐버스이자 새로운 종족의 여왕.
그 힘은 전능엔 미치지 못했지만 전지란 단어엔 얼추 어울렸다.
왜 자신이 모든 힘을 잃고 ‘환생’한 주인의 튜토리얼 안에 갇혀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주인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패를 쥔 셈이었다.
‘당연히 마지막까지 얼굴도 비치지 않던 머저리들보다야 훨씬 낫지!’
그랬던 자신조차.
‘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주인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태산을 가를 힘을 얻었노라 자부하며 한 자루의 검을 들고 대륙을 질타했던 한 검사의 검도 무거웠고.
용암을 가르고 등장하며 세상을 불태울 것처럼 굴어댔던 악마도 뜨거웠으며.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거센 파도를 만들어 내며 비를 조종하던 거대한 바다뱀도 엄청났지만.
각기 신이라 불리던 이들은 모조리 주인의 손길에 쓰러지고 걸음에 허리를 굽혀야만 했다.
가히 ‘전능’의 힘이었다.
주인의 육체는 불안정했다.
태생이 근육이 붙지 않고 체력적으로 흠이 있는 육체였다.
깨어진 그릇.
하지만 그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두뇌였다.
지성(知性).
어린 나이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천재성을, 주인은 타고났다.
그리고 그것은.
“마법과 얽히며 폭발했지….”
메아리는 스트레칭을 끝마치며 당시를 회상했다.
마법을 배운 주인의 능력은, 육체적인 능력을 모조리 뛰어넘을 정도였다.
기존의 모든 체계를 바꿨으며.
마법을 배운지 불과 7년 만에 청탑의 마탑주를 뛰어넘는 실력을 가졌다.
당시 청탑의 마탑주가 대륙 3대 대마법사라고 불렸던 것을 떠올리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랬던 주인이다.
마력의 사랑을 받고, 마법의 근원을 깨달으며.
마력과 마법의 위에 군림하던 주인은.
가히 ‘전지’라 불릴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을 꿰뚫고 모든 것을 인지하며 근원을 파훼하던 능력.
마력에 한해서는 그 어떠한 존재보다도 뛰어났던 모습을 보면.
절로 ‘신’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마법의 종주라 불리던 드래곤 로드조차 머리를 조아릴 정도로…….
“…내게 있어서 신은 주인뿐이야.”
전지와 전능.
당시의 주인은 분명히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짧은 만남의 이지스조차 인정할 정도로 말이다.
하물며 자신은 주인과 정신이 연결되어 있었고, 일부를 공유하고 있었다.
주인의 능력이 얼마나 거대한지, 얼마나 위대한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존재였다.
주인은 신이다.
하지만…….
“이번엔… 제가 꼭 지켜드릴게요.”
그럼에도 주인은 끝내 두 눈이 뽑혀 보지 못했고, 두 발이 잘려 걷지 못했으며, 양손이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전지전능했던 신조차 끝내 영락해 버린 것처럼, 허무하게 쓰러져 버렸다.
그렇기에 변화한 성장.
그녀는 주인의 지금의 선택이 부디 긍정적인 변수로만 남기를 바랐다.
“실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 역시 성장하기를 다짐했다.
주인은 가파른 속도로 다시 한번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 중턱밖에 이르지 못했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것을 얻었다.
“마나…….”
자신은 이해도, 인지도 되지 않는 그것이었지만.
“잘될 거예요.”
짧게 본 그것의 존재감만큼은 과거의 주인을 떠올릴 정도로 강렬했었다.
본인의 손으로 없애 버린 수많은 것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전승하지 못했던 ‘마력 운용법’이.
“유일하게 계승에 실패한 과거의 산물을 새로운 방법과 섞어서 계승한 게 본인이라는 게 너무도 웃기지 않아?”
주인의 손에 재탄생되어 나타났다는 게 못내 신경이 쓰이면서도 기대감을 가져다주었다.
메아리는 고개를 돌렸다.
마력을 덧씌워서 자신의 육체를 가리는 ‘인비저빌리티’보다 한 단계 뛰어난 은신을 보았다.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형태는 얼핏 악마들의 이동법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네게 물은 거 맞아.”
“……!”
메아리의 뜻 모를 물음에 숨을 죽였던 사내는 흠칫 놀랐다.
덕분에 스킬이 깨어졌다.
어둠에 동화되어 있던 육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눈빛을 숨긴 사내는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메아리는 가만히 사내를 주시했다.
“네크로맨서?”
“……?”
뜬금없는 말에 사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네가 만났던 사람이, 네크로맨서네.”
퀸 마야의 능력은 전지에 가까웠다.
꿈에 녹아들어 상대의 기억을 읽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비틀어서 힘을 취하는 서큐버스.
그 정점에서 진화를 거친 그녀의 힘은.
굳이 ‘꿈’이라는 매개체가 필요가 없었다.
“한국에 좋은 속담이 있더라고.”
천천히 걸어오는 메아리의 모습을 주시하는 사내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형태로 상대의 모습이 바뀌고.
“눈 뜨고….”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이었던 무너진 건물들이 빠르게 시간을 돌린 것처럼 다시 우뚝 서며.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밟았던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이, 음악 소리가 나오는 길로 바뀌었다.
얼굴을 반이나 가리던 복면은 사라지고, 반쯤 입을 벌린 자신의 입가에 닿는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느낌에.
사내는 흠칫하면서도 자신에게 그것을 건네는 여자의 눈웃음에 미소로 화답했다.
“코 베인다고.”
멍해진 표정을 본 메아리가 천천히 사내의 볼을 쓸며 속삭였다.
“아까 만난 사람, 누구야?”
* * *
화아아악!
사우나라도 들어온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수증기와 함께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 안에 앉아 있는 두 명은 연신 묵직한 호흡과 함께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유서린과 김하란.
두 명의 S급은 자신의 주변에 몰려든 마력의 흡수에 몰두했다.
웅웅!
지면에 그려진 두 개의 마법진은 연신 발광과 공명을 하며 주변의 마력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력은.
“……후우.”
둘이 앉아 있는 작은 마법진보다 크게 그려진 마법진에 앉아 있는 정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필터 역할을 해야 해.’
각성 전의 정우는 던전 브레이크의 미해결 지역화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모든 미해결 지역이 단순히 능력 부족 때문에 발생한 건 아니었다.
‘추가로 인력이 들어가거나, 보다 강한 플레이어가 투입이 되어도 실패한 적이 많아.’
던전 브레이크 초기엔 보다 강한 인력의 파견만으로도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던전 브레이크는 점차 지구와 동화되기 시작하고 본래의 수준을 조금씩 뛰어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탄생하는 것이 미해결 지역(unresolved zone)이었다.
몇 번이나 격상한 끝에 A급이라고 판단했던 세이렌의 영토 또한 S급 세 명을 위시한 A급과 B급의 공략대면 충분할 거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상당한 준비를 진행했음에도 피해는 막심했고, 두 명의 S급조차 목숨을 잃을 위기를 겪어야 했다.
실제로 정우가 아니었다면 유서린은 사망했을 터.
‘그게 다… 이곳 마력의 특징 때문이야.’
던전 브레이크와 어둠 속에서 느꼈던 마력 흐름이 거의 동일하다는 건 꽤나 충격적이었다.
메아리로부터 주인님이야말로 신이에요, 라는 말을 줄곧 들었던 자신조차 끝내 죽을 고비를 겪어야 했던 곳이 바로 어둠이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어려울 테지.’
이곳의 적응은 버거울 터였다.
정우는 그제야 플레이어의 수준이 상승함에도 미해결 지역이 생겨나는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자신이 있던 이계도 마찬가지였다.
한 왕국의 근위대장도.
이름난 용병대도.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도.
점차 범위를 넓혀가는 어둠에겐 먹혀 버렸다.
머맨은 B급과 A급의 중간 등급이 아니었다.
B급.
‘혹은 B급에 가까운 C급이다.’
그럼에도 S급인 유서린과 김하란이 위험에 처했던 것은.
‘애당초 말이 안 돼. S급이 그 정도 은신을 놓쳤다는 건….’
유서린과 김하란이 은신한 머맨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은.
바로 이곳의 특이성 때문이었다.
‘내가 없앤 곳과는 달라.’
마력이 넘칠 정도로 많은 장소였다.
지금처럼 이렇게 끌어당기는 힘이 부족한 장소가 아니었다.
마법진 따위가 없어도, 단순히 눈만 감아도 마력의 흐름이 느껴질 정도로 농밀하던 곳이었다.
그게.
‘몬스터에게 적용되었을 뿐이야.’
대상을 고르며 적용되었을 뿐이다.
인간이 아닌, 몬스터에게.
때문에 플레이어는 알게 모르게 마력이 부족해지는 환경에 익숙해졌고, 전투로 인한 피로 혹은, 지쳤다는 이유로 마력의 회복 속도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니. 세이렌의 저주도 그런 식이다.’
익히 경험한 세이렌의 그것과는 달랐다.
어떤 면에선 서큐버스의 그것과도 닮아 있는 세이렌의 저주와는 달리, 이놈들이 펼치는 저주엔 ‘인식 저하’가 기본적으로 가미되어 있었다.
정우가 둘과 대화를 나눈 뒤에 한 작업이 바로 저주 해제였으니까.
정우의 재능은 여전했다.
걸린 저주를 푸는 것만으로도 걸려 있던 저주의 본질에 다다랐다.
무엇에 대한 인식 저하였을까.
‘마력.’
정우는 쉽게 답을 내렸다.
이곳의 마력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인식 저하가 필요했던 것이다.
유일하게 이 마력의 패턴을 이해하고 조절하고 각인하며 활용했던 정우만이.
이곳의 특이점을 곧장 느꼈다.
몰려든 마력을 흡수하여 마나로 바꾸고, 마나를 다시 마력으로 바꾸어 둘에게 주입했다.
원래라면 필요 없던 작업을 진행하면서 정우 또한 상당량의 마력을 마나로 흡수했다.
나쁠 건 하나도 없는 시간.
그 와중에 정우는 삐걱거리던 고리의 결착에 집중했다.
하지만 때때로 생각이 외부로 흘렀다.
이곳의 흐름.
몬스터의 변화.
아군의 허를 찌른 기습까지.
모든 게 다 의심이 들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지 않고서야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는 건 불가능했다.
파스스스.
마법진의 소음에 정우는 눈을 떴다.
“한계군.”
마력의 흡수가 끝났다.
정우보다 조금 늦게 둘이 눈을 떴고, 자신들의 상태에 적잖게 놀라워했다.
“마력이 반 이상이나 회복됐는데요?”
“이건… 물약보다 효과적인데?”
“여기서만 가능한 거라고 보시면 돼요.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면 바로 움직일까요?”
“어디로 갈 거죠?”
그 말에 정우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주시했다.
“당연히… 친구부터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