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52화 (152/293)

152화

-마나 (6)

하데스는 한정우를 떠올렸다.

어떻게 외형을 바꾼 건지에 대해서는 딱히 의문이 들지 않았다.

단순히 외형만 바꾸는 건, 자신들에게도 있는 기술이었으니까.

심지어 한정우가 바꾼 건 고작해야 외형뿐이었다.

자신의 능력엔 변함이 없었다.

다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특색이 있는 매직 미사일을 사용한 것도 그런 연유로 보았다.

아무래도 오버레이를 사용하면 본신의 능력 대신 덧씌운 능력만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눈썰미를 자신했으며, 한정우라는 관심사가 이곳에 있다는 것에 흥미를 보였었다.

분명히.

‘한정우라는 놈은 거기까지였을 텐데?’

생각보다 강해진 면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는 전 세계를 아울러도 ‘강자’라 불릴 만한 인물이었으며, 빌런 협회의 다섯 왕 중 하나였다.

가히 초인 중의 초인.

그런 이가 한정우의 수준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강해진 이유조차 제물의 인장 때문이라고 여겼다.

하데스는 제물의 인장이라 불리는 그것의 정확한 효용을 잘 알고 있었다.

붐이라는 놈에게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력은 물론 신체 능력까지,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얻을 수 있는 성장을 일부로 극대화시키는 낙인.

빠른 성장이 가능해지지만, 강제적으로 성장을 주입하다 보니 결국엔 망가질 수밖에 없는.

‘그런데… 유서린이 패배할 시점에 등장한 게 한정우다?’

수하의 설명에 등장하는 사내는 분명히 자신이 기억 속에서 본 한정우였으나.

‘한정우가 아닌가?’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

한정우의 수준은 계속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수르트의 능력을 더 이상 상승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중간에 낚아챌 계획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가로챈 경험이 있는 하데스였기에 이번에도 별다를 게 없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협회에서도 여러 일이 있었다.’

진작 한정우를 성장시키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보였을 수르트는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조커’는 뱀파이어라는 이종족의 합류를 알리며 관리에 들어가겠노라 선언했다.

자신은 중국의 선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 봤자 몇 달이 아니었나?’

한정우라는 먹잇감은 모두의 시선에서 잠시 이탈한 상황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장담할 수 있나?”

“…네. 제가 감히 어떻게 거짓을 고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 확답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지쳤다고는 하지만 유서린이었다.

유례없는 재능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최초의 듀얼 클래스.

그런 그녀를 밀어붙이던 보스를 상대한 자가 한정우라는 사실을 몇 번을 곱씹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하데스는 결정했다.

“한국 플레이어를 감시해라.”

“……알겠습니다.”

한정우를 무시하더라도 힘이 빠진 유서린은 도무지 넘어갈 수 없는 먹이였다.

독이 들었다고 해도 물고 봐야 할 정도의 먹이에 독이 없다는 건 말 그대로 천운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세뇌하기 전에 낚아채야겠구나!’

이미 진행 중인 계획이 있다는 점이 걸렸지만, 하데스는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뒷말이야 무시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무려 유서린이다.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면 성장이야 멈추겠지만, 지금만 놓고 봐도 충분히 훌륭한 전력감이었다.

‘한정우와 유서린이 같이 붙어 있으니 둘 다 노리면 충분하겠군!’

입술을 핥은 하데스가 손을 휘저었다.

그 의미를 깨달은 사내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남은 것은 탐욕에 찬, 죽음의 왕뿐이었다.

“친히 움직인 보람이 있는 날이로구나.”

* * *

김하란은 폐허 아래 숨어서 숨을 헐떡였다.

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을 본 그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오랜만이군.”

이 정도로 지친 건 간만이었다.

그리고 이런 패배감을 느끼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젠장.”

여러 감정이 얽힌 표정의 김하란이 입술을 짓이기듯 욕설을 내뱉었다.

한국의 미래.

유례없는 재능으로 단시간에 S급이 된 천재.

‘……살아, 있을까? 부디 도망쳤어야 할 텐데…….’

“후우…….”

그런 그녀를 두고 도망친 발걸음은 냉정한 어조와는 다르게 상당히 무겁기만 했다.

몇 번을 되뇌어도 같은 판단을 할 거란 건 자명했다.

하지만 후회 역시 마찬가지로 반복할 거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김하란은 그 사실이 굉장히 가슴이 아팠다.

‘어쩔 수 없어…….’

길드를 설립하거나 영입이 되어도 좋았으며, 협회 소속이 되어도 충분했을 테지만.

당당히 대우를 받을 그가 용병을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정하야.’

자신의 딸.

보험이라고는 하나도 되지 않아 주사 한 방에 20억이 훌쩍 넘어가는, 불치병과 같은 병에 걸린 딸을 위함이었다.

그가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건, 세간의 평가처럼 독고다이 성향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악의적인 평처럼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격변의 시대는 말 그대로 격변 그 자체였으며, 적응하기까지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으며 또한 천문학적인 금액이 공중 분해된 시기였다.

국가는 국가대로 잃어버린 기업과 영토를 수복하는 한편,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살 힘을 잃은 국민들을 부양해야만 했고.

사람은 사람대로 수많은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해대야만 했다.

초창기의 던전은 아티팩트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한 던전의 연속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F급부터 D급의 수준.

하지만 당시에는 재앙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며, 수많은 인류가 갈려 나갔고.

‘그 개새끼 같은 놈이 존재했다.’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진 괴물들이 존재했다.

힘이라는 것에 심취하며 온갖 범죄를 저지르던 놈들에게서 가족을 지키던 그였지만, 결국엔 아내를 잃어야만 했고.

“젠장.”

딸을 잃을 위기에서 위태롭게 버텨야만 했다.

독.

정체를 알 수도 없고, S급이 된 지금에서도 손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악독한 독에 당한 딸을 잃을 수 없었다.

그나마 매일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아 생명을 연명할 뿐.

미래도 없는 삶이었지만 그는 자식의 손을 놓을 수가 없는, 아버지였다.

초창기의 던전 수준이 낮았던 만큼 수익 구조가 생겨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닥치는 대로 모든 일에 뛰어들었고, 이내 전 세계를 무대로 뛰는 용병이 되었지만.

막상 딸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는 유서린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과했다.

귀국한 후엔 유지석을 찾아가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다.

‘일단은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나서 한국 플레이어부터 보호하자.’

비록 적을 놔두고 도망쳤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유서린을 두고 나오는 무거운 발길을 더욱 무겁게 잡아끌며, 물갈퀴 달린 손가락을 허우적대던 머맨들을 떨쳐낸 건.

‘지독한 놈들.’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다.

빌어먹을 저주가 신경을 갉아 먹고, 끝도 없이 손에 쥔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속삭이는 통에 제대로 된 전투가 힘들었다.

‘우리 의도를 알고 있었다.’

단순히 세이렌이라고만 알고 있던 놈들이 서로 다른 힘을 지니고 있으며, 종류조차 다르다는 걸 알게 된 회의에서.

그는 한국의 계획에 나지막하게 감탄했고, 이번엔 진심으로 일본의 미해결 지역을 공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동안 세이렌의 영토 공략에 실패한 이유는 다름 아닌 저주 때문이었으니까.

던전 중에는 책정된 등급보다 더 까다롭고 공략하기 어려우며, 예상외의 사상자를 상당수 만들어 내는 것들이 있었다.

세이렌은 그중 하나였다.

집중되니 자신조차 버거울 정도의 저주.

그 농밀함엔 기도 차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도 저주의 여파가 잔향처럼 남아, 자신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우습지만 그 잔향을 지워 버리는 건, 자신의 곁에서 활약했던 유서린의 등이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붉은 오러를 사방으로 떨치던, 도주하기 전에 보았던 모습.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선 각성제나 다름이 없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물론, 부작용으로 죄책감이 자리 잡았지만.

‘이게 우연일까?’

머맨이 은신하는 것은 그조차도 처음 겪어 본 상황이었다.

머맨과 세이렌의 구분이 쉽지 않았던 과거에도, 그는 수많은 머맨과 세이렌을 죽인 전적이 있었다.

물론, 등급이 상승할수록 몬스터 역시 보다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고는 했지만.

적어도 일본의 세이렌 영토는, 크고 작은 전투가 지속적으로 벌어진 곳이었다.

은신?

낌새라도 느꼈다면 진즉에 대비를 했을 정도로, 꾸준한 관리가 이루어진 장소란 소리다.

그런데 놈들은 은신이라는 예상 밖의 능력으로.

‘정확하게 저주술사를 지웠다.’

저주술사들만 골라서 죽였다.

그러고는 들이닥친 전력들.

하나같이 베테랑이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실력자들이었으나.

말 그대로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저주가 겹겹이 쌓여 가는 속도는 해제보다도 빨랐으며, 머맨의 능력 역시 오거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났다.

오거의 근력 강화나 피부 강화 따위의 능력은 없었지만, 든든한 서포터의 저주가 시시때때로 아군을 약화시켰으니 효과는 비슷했을 터였다.

S급의 자신과.

‘나보다 뛰어난 유서린이 그토록 빨리 지친 건, 다름 아닌 저주 때문이다.’

그 저주를 해결할 방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게 우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몬스터 따위가.

이런 편견만 배제한다면…….

“…….”

머리가 터질 정도의 상념에 고뇌하던 김하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웅크렸다.

‘…뭐지?’

기이한 파장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사라져서 긴가민가한 느낌도 있었지만, 지친 육신과는 다르게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기감은 짧은 접촉을 느꼈다.

김하란은 몸을 웅크리고 기감을 죽였다.

존재감을 씻은 듯이 지우는 이 스킬은, 그의 생존력을 극대화시켜 준 보물 중 하나였다.

잔해 속에 녹아든 김하란이 숨까지 참으며 상황을 주시했다.

여차하면 당장이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마친 상황에서.

“……요?”

미성이 조용하게 들렸다.

‘한국어?’

김하란은 몬스터가 아니란 사실에 귀를 쫑긋거렸다.

“맞아요. 여기에 있어요.”

대답하듯 들린 남성이 음성은.

‘왜 이렇게 잘 들리지?’

미성과는 다르게 너무도 또렷했다.

이윽고.

“…김하란 플레이어?”

익숙한 음성이 자신을 불렀다.

순간적으로 움찔한 김하란은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쩌면.

아니, 꽤 높은 확률로 듣지 못할 거라고 여겼던 음성이었으니까.

부디 제발.

그런 생각으로 그녀의 생존을 바랐을 뿐, 수많은 역경을 이겨 낸 그는 혼자가 된 그녀가 자신처럼 도주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유, 서린?”

부서진 잔해 사이로 이리저리 휘어 뻗어 있는 녹슨 철골 사이로 그녀가 보였다.

“김하란 플레이어!”

반색하는 유서린을 보며 울컥한 김하란은 저도 모르게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살아… 있었어!”

살짝 떨어져 유서린의 상태를 확인한 김하란이 먹먹한 목소리로 연신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어느 신께 바라는 기도인지는 모르지만, 대강의 내용을 들은 유서린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이내 사르르 녹았다.

자신을 걱정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몇 번의 기도를 끝마친 그는 말이 없다고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뒤늦게야 그녀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한 사내를 발견했다.

기이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사내였다.

‘…마치 내 ‘인식 저하’같은데?’

자신의 능력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김하란이 고개를 돌리자.

“저 사람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유서린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오!”

환하게 밝아진 김하란의 표정에 정우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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