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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급 던전의 찬탈자-151화 (151/293)

151화

-마나 (5)

한국의 대통령은 유례없는 사건을 발판으로 삼아 상당한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격변의 시대를 이용한 간웅이라는 평가도 많았지만, 무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연임까지 성공한 것만 보더라도.

‘아니. 아니야. 그런 단위로 놓고 보기엔… 우리 격차는 이미 심각할 정도로 벌어졌어.’

대통령은 눈앞의 사내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초창기엔 서로 이용하는 입장이었다.

아니, 초반만 하더라도 자신이 철저한 우위에 서서 권력으로 사내를 이용하는 입장이었다.

그게 뒤바뀌기 시작한 건, 연이어 터지는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등장한 몬스터에게 자동 화기로 공격을 퍼부어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부터였다.

권력의 판도는 바뀌었고.

당시의 사건을 잘 버무려 손에 쥐었던 자신은 오히려 눈앞의 상대에게 휘둘리는 입장이 되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협력 관계이기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후하면서도 진중한 음성에 대통령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미안하오. 다시 한번…….”

“이번 회담을 진행하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아…. 크흠.”

대통령은 헛기침을 하며 앞에 놓인 차를 홀짝였다.

“그거… 꼭 필요한 일이오?”

“네.”

단호하기까지 한 대답에 대통령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복잡한 속내와는 달리 표정엔 불쾌함 따윈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이보시오. 유 협회장.”

“말씀하십시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지배 아닌 지배를 받았던 건, 10년 전의 일이오. 이제는 국제 사회에서도 나름대로 입지를 다진 나라가 되었소.”

삼대를 계승한 김정운을 죽인 ‘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새로운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용병 국가.

플레이어 전원이 국가 소속인, 매우 독특하면서도 유례없는 집단의 탄생은 국제 사회에 큰 파장을 만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압박이 통할 상대가 아니란 말이오.”

대통령의 말에 유지석은 속으로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치인으로서, 권력자로서 대통령은 나쁘지 않은 인물이었다.

비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잘못된 정책을 펼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선이라는 걸 지킬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은 자신과는 달랐다.

그가 지키는 선은 오롯이 자신의 안녕과 정치인으로서의 입지. 그리고 권력이라는 테두리를 관통하고 있었다.

나쁠 건 없었다.

…지금까지는.

“대통령님.”

유지석은 가만히 대통령을 보았다.

움찔거린 대통령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평온을 가장하더라도 복잡한 속내는 숨길 수가 없었다.

“저흰 지금 북한을 압박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 보시오. 이 작전 자체가 압박이나 마찬가지요.”

대통령은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서류를 가리켰다.

5자 회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까지.

총 다섯 국가의 원수들이 회담을 진행하자는 계획은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북한이었다.

북한의 원수는 ‘리’로, 성 외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으니까.

더군다나 눈앞의 인물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초인 중의 초인이었다.

말마따나 회담 도중에 손이라도 쓴다면 누가 막아 줄 수도 없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유지석은 중국, 일본, 러시아를 움직여 북한과의 회담을 주선하기를 바랐다.

제안서였지만 협회장 직인까지 들어간, 실제론 명령서나 다름이 없는 서류를 보면서도 대통령은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었다.

“후우. 유 협회장. 우리 좀 솔직해집시다.”

“…….”

“유 협회장이 사심을 가지고 일을 진행할 사람이 아니란 걸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소.”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었으면 자신은 진즉에 죽은 목숨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면 철저히 서류만 사인하는 허수아비로 전락했든가.

하지만 유지석은 초창기의 불편함을 잊고 굉장히 만족스러운 동업자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가장 압도적이라고는 하지만, 눈앞의 거인의 반사 효과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흐음.”

“회담에 참여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변화에서 도태되어 버린다, 는 부분 말입니까?”

“아, 그것도 그렇소. 도태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유지석이 건넨 서류의 골자는 간단했다.

5개국 정상 회담을 진행한다.

참여하지 않는 국가는 ‘다른 4개국에서의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앞으로의 변화에서 도태되어 버린다.

이 세 가지의 주제가 전부였다.

이 중 대통령은 두 번째 안건에서부터 난색을 표했다.

말 그대로 압박이었으니까.

하지만 유지석은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 안건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통령께서는 지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이라니요?”

“한국은 예외이긴 합니다만, 던전에 대한 보고는 들으셨을 텐데요.”

“…으음.”

대통령은 침음을 삼켰다.

현 국제 정세는 은근한 요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와 안정을 되찾은 시기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번에 중국에서도 협조를 요청했다고 들었소.”

이변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사건들의 발생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이번의 중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괜찮은 것이오?”

“…일단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세이렌의 영토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인원이 외부로 빠져나오기 전인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모든 대화는 중국의 사건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유 협회장.”

“네.”

“‘리’를 불러내고 싶은 거요?”

“…….”

“물어볼까 몇 번을 망설였소. 솔직히 우리의 관계는 겉으로 보기에나 나아 보일 뿐, 실제로는 대통령직도 허울 좋은 감투에 불과하지 않소?”

대통령은 어느새 식어 버린 찻잔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목이 타들어 가서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물어야겠소. …대체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오?”

“무엇을… 이라.”

유지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통령은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입술이 벌어지기만을 간절히 바라마지않던 사람처럼.

천천히 열린 입술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충분하오.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소.”

대통령의 마음에 달린 추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몇 마디의 대화를 더 나눈 후 물러난 유지석의 빈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던 대통령이 문뜩 그의 대답을 떠올렸다.

“이 사태를 끝내기 위해서라……. 확실히… 영웅이군.”

* * *

“로건? 설마 영국의…….”

금발의 미남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일본의 군인을 향해 무심한 눈빛을 보냈다.

“소, 소식은 들었습니다.”

로건의 무심한 눈동자에 움츠러든 자위대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천천히 손을 터는 로건의 모습엔 언뜻 고귀함마저 묻어날 정도였다.

“한국 지원팀은?”

“…네 시간 전에 이미 입장했습니다.”

“방향.”

“…서북쪽으로 여, 열 한 시 방향입니다.”

로건은 그 말을 듣고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방향을 가늠한 로건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자위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영국의 자랑이자 새 시대의 S급이라 추앙받는 로건의 손길에, 자위대원은 연예인을 만난 팬처럼 긴장했다.

등 뒤로 들리는 속삭임은 전혀 기대감이 섞인 긴장이 아닌, 거대한 맹수 앞에 놓인 피식자의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그는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뚜벅.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구두가 경계를 넘었다.

우웅-.

전신을 짓누르는 기이한 마력에 로건이 입꼬리를 말며 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꼈다.

아니, 끼려다가 멈칫했다.

“……사체.”

그의 뛰어난 시력은 머맨의 사체를 발견했다.

“초입인데 사체라?”

흥미가 생긴 로건은 방향을 틀었다.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군.”

사체를 본 그의 눈이 반짝였다.

“넷, 다섯.”

다섯 마리의 사체를 본 그는 흥미가 생겼다.

“누가 나보다 먼저 들어갔을까?”

그는 한국 플레이어 협회의 지원군을 떠올리지 않았다.

“마법사라…….”

왜냐하면 지원군의 대부분은 저주술사였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력의 대부분은 무기를 주로 쓰는 근접 딜러였으니까.

로건은 자신보다 불과 몇 시간 먼저 이동한 이들을 떠올렸다.

본래라면 자신과 함께 이동해야 했을 자들을.

“오히려 늦은 게 더 재미있게 생겼군.”

흔적은 간단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간단했다.

압도적인 전력 차.

그렇기에 더욱 흥미가 생겼다.

“이 정도 흔적이면, 이런 결과가 생길 리가 없을 텐데.”

마법의 흔적에 비해 전투의 결과는 너무도 일방적이었다.

그 모순이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일어나라.”

그는 머맨의 사체를 일으켰다.

사체가 빠르게 부패하더니 머맨의 뼈가 들썩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얼핏 개의 두개골을 닮은, 은은한 푸른빛의 두개골에 손을 얹은 그는 다른 능력을 사용했다.

“망자의 기억.”

그것은 정우의 것과 동일했으며.

“……!”

보다 자세했다.

그의 한국행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었지만.

그중 하나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일본의 미해결 지역 공략에 가담할 생각을 한 것도, 바로 그 누군가 때문이었다.

당연히 참여할 것으로 파악되었던 상대는 돌연 미국으로 향했고.

로건은 아쉬움을 달랜 채로, 일본의 ‘계획’을 보러 합류했다.

이 계획 또한 매우 중요했으니까.

한국의 플레이어는 질이 좋았다.

그리고 그 질 좋은 플레이어들이 마침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컬렉션을 늘릴 생각이었다.

머맨의 뿌연 기억을 읽던 그의 입가가 누군가가 잡아당긴 것처럼 상승했다.

마치 조커를 연상시키듯 찢어진 입술 사이의 틈새로 신음과도 같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 정우……!”

모습은 달랐다.

그가 본 건 전혀 다른 형상의 사람이었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전혀 다른 사람.

하지만 그는 확신했다.

“이곳에 있었어?”

킥, 즐거운 웃음을 흘린 로건의 어깨가 상승했다.

자료로만 보았던 한정우의 전매특허, 매직 미사일의 모습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자료보다 강해졌군. 수르트 때문인가?”

제물의 인장을 떠올린 로건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자신만의 군대에 당당히 수르트의 것을 박아 놓는 상상은 그의 입가를 찢어져라 상승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은 왕을 위하여….”

마왕의 무한한 신봉자이자.

새로운 시대를 주인에게 바치기 위한 결단을 내린 로건.

아니, S급 빌런 하데스는 예기치 않은 만남에 만족감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 있던 로건의 손가락 끝에서 음산한 마력이 한 줄기 퍼져 나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뒤에 스르르, 연기처럼 나타나는 하나의 신형이 있었다.

등장과 동시에 부복한 검은 사내를 본 하데스의 표정은, 종전의 즐거움을 잊은 듯 싸늘하기만 했다.

“안내해라.”

두서없는 명령이었지만 하데스는 개의치 않았다.

이것들과의 관계는 원래부터 이랬으니까.

하지만.

“……?”

부복한 채로 미동도 하지 않는 검은 옷의 사내의 태도에 하데스는 의아함을 느꼈다.

“뭐 하나! 안내하지 않고?”

그리고 그 의아함만큼이나 불쾌함을 느꼈다.

하데스의 싸늘한 어조에도 사내는 한 차례 짧게 어깨만 떨 뿐, 자세를 유지했다.

그제야 하데스가 허락했다.

“말해라.”

하데스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사내는 머리를 조아렸다.

하데스의 눈가가 더 가늘어졌다.

저건 실수 혹은 실패를 뜻하는 행동이었으니까.

“말해. 내 인내를 시험하지 말고.”

“……놓쳤습니다.”

“놓쳐?”

하데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세이렌들이 들이닥쳤고, 한국 플레이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한국 플레이어들이 당했다?”

하데스는 흥미가 생겼다.

‘이곳의 관리가… 그놈이었나?’

“자세히, 설명해라.”

하데스의 말에 사내는 전투를 설명했다.

상황을 듣던 하데스가 사내의 말을 끊은 것은 갑작스러운 단어 때문이었다.

“……보스?”

머맨의 왕.

유서린을 상대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S급 보스.

그것의 등장에 하데스는 빠득 이를 갈았다.

‘감히… 보고되지 않은 실험을 한 건가!’

움찔했던 사내가 다음의 내용을 언급했을 때.

하데스는 치밀어 오르던 분노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누가… 보스를 죽였다고?”

부정과 의심의 질문에 사내는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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