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50화 (150/293)

150화

-마나 (4)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손아귀에는 힘이 있었다.

농밀하게 맺히는 흐름을 본 정우는 확실히 마력이 변화했음을 확인했다.

“그 얼굴은 뭐예요?”

유서린은 정우의 모습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몬스터들이 도망친 장소는 황폐했지만 고요했고, 해후를 나누기엔 나쁘지 않았으니까.

“변장이요.”

“…진짜 한정우 씨가 맞는 거죠?”

정우가 마법을 해제했다.

스르르, 드러나는 본래의 모습.

‘그러고 보면 준비한 게 아쉬울 정도네.’

장기간 방치된 던전 브레이크의 마력 흐름이 ‘어둠의 영역’과 비슷할 줄 알았다면 마정석을 따로 준비하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을 터였다.

“진짜…네요?”

유서린의 얼빠진 표정을 보며 정우는 웃음을 흘렸다.

단단해 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나이대에 어울리는 모습을 본 것 같아서.

“어떻게 된 거예요? 혹시 이쪽으로 오면서 아군을 보지 못했나요?”

“아군은 보지 못했어요.”

“…아.”

“돌아가면서 찾아보죠.”

정우는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렸다.

이리저리 시선을 움직이던 유서린도 정우의 곁에 따라붙었다.

“물약은 있어요?”

“없어요.”

“그럼 이것부터 마셔요.”

정우가 건넨 회복 물약을 마신 유서린이 인상을 찌푸렸다.

“변장은 어떻게 한 거예요? 그것도 마법인가요?”

“마법이죠.”

“…혹시 그런 마법이 쉬운가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지 않아요?”

“들어본 적은 없어요.”

“그럼 일단 저만 가능한 걸로 하죠.”

외형을 바꾸는 마법은 다양했다.

아주 간단한 환상부터.

미러 이미지를 활용한 방법까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디스펠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저급한 수준의 마법에 불과했다.

정우의 그것은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폴리모프(Polymorph).

그것은 아예 형질 자체를 바꿔 버리는, 위대한 마법 중 하나였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유서린의 물음에 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같은 편으로써,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동안의 행적을 보았을 땐, 해가 되지 않을.

하지만 모든 걸 전부 다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유서린은 진수가 아니니까.’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언급한 건 이진수가 유일했다.

그렇기에 그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벽을 몇 번 넘었어요.”

“…그게 말이…….”

“지금은 이렇게 설명 드릴 수밖에 없군요.”

“…후우.”

복잡한 기색의 유서린이 머리를 쓸며 정우를 주시했다.

하지만 이윽고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는데 너무 추궁을 했네요.”

“추궁은 무슨.”

피식 웃은 정우가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기습을 당했어요. …은신을 사용할 거라곤 예상하질 못해서…….”

유서린이 입술을 잘근 씹었다.

회복 물약 덕분에 딱지가 졌던 입술이 다시 터지며 피를 흘렸다.

“보고된 건 없었죠?”

“……없었어요.”

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머맨의 능력이 달라진 것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본이 의도적으로 이를 숨겼을 경우.

다른 하나는 바로 ‘격변(激變)’이었다.

“……격변.”

유서린은 굳이 고른 그 단어에 침음을 삼켰다.

격변이라 하면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떠올리는 시기가 있었다.

격변의 시대.

말 그대로 모든 것들이 급격히 변화하며 기존의 체계를 모조리 무너트리던 그때.

유서린은 순간적으로 오싹함을 느꼈다.

당시는 그녀에게 있어서도 악몽 그 자체였다.

그리고 격변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는….

‘실제로…… 존재해.’

여러 이변들.

당장 그것들로 인하여 협회장도 골머리를 썩이고 있지 않은가.

당시가 연상이 되며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그건 나중으로 미루죠.”

정우의 음성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정우의 곁에 서서 힐끗 그를 보았다.

변했다.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급변할 수 있나?’

생각에 잠겼지만 딱히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의문을 묻어둔 채, 생각을 정리한 유서린이 말했다.

“한국 플레이어부터 찾죠.”

던전 브레이크는 지구에 던전이 덧씌워지는 형태로서, 출입구가 하나인 던전과는 다르게 범위만 벗어나면 곧장 던전을 탈출할 수가 있었다.

때문에 후퇴한 한국 플레이어들이 어떠한 방향을 선택했는지는.

“이쪽입니다.”

“……알 수 있어요?”

“감지하면 그만인걸요.”

“…감지요?”

유서린이 흠칫했다.

이곳은 외부와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더군다나 그녀가 느끼기엔 일반적인 던전과도 다른 면이 있었다.

아군의 합류와 더불어 산발적인 전투를 진행한 상황에서 그녀의 기감은 보통보다 예리해야 옳았다.

‘…그럼에도 은신은 발견하지 못했지.’

감지 계열이 없다는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보통 S급 정도 되면 마력을 다룰 줄 알기 때문에 어지간한 은신은 통하지도 않는 법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은신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예기치 못했다는 건 핑계에 불과했다.

그녀는 모든 걸 아우를 줄 알아야 했고, 또한 책임져야 하는 입장과 위치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건 의미가 없어. 확실히…….’

“마력의 흐름이 비틀어져 있죠.”

그녀는 갑작스러운 정우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생각을 읽은 건 아니에요. 보통이라면… 그렇게 생각했겠죠.”

씨익 웃은 정우가 방향을 잡았다.

“아무래도 이곳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겠군요.”

빠르게 이동이 가능하다지만 지금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게요. 후우.”

“이번 작전,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 할 수도 있어요.”

“계획 변경이요? 그러고 보면 왜 여기에 들어온 거죠? 밖에 뭔가가 있는 건가요?”

“꽤 늦게 물어보시네요. …정보를 얻었어요.”

“정보?”

“교토 시청 지하에서 빌런을 발견했어요.”

“…그게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거군요.”

“네. 마츠다 켄이치라는….”

“마츠다 켄이치?”

유서린이 정우의 말을 끊었다.

“유명한 빌런이라고 하더군요.”

“유명…하죠. 놈이…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럼 총리에 대한 단서를 찾았겠군요.”

“음. 놈이 총리와 연결이 되어 있나요?”

“단 한 번. 스쳐 지나가듯 조우하는 걸 찍었을 뿐이에요. 운이 좋았지만… 운이 나빴죠.”

카메라맨은 마츠다 켄이치에게 걸려서 죽임을 당했으니까.

“자동 전송 시스템이 아니었으면 정보도 못 얻을 뻔했었어요.”

“그때가 언제였죠?”

“대략… 일주일 전쯤 됐을 거예요.”

“……!”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시모토가 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의 일이었다.

마츠다 켄이치가 총리와의 접점이 있다면.

“마츠다 켄이치와 만난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누구죠?”

“강세기요.”

“……?”

언뜻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의심과 부정이 떠오르고, 이내 경악과 분노가 자리한다.

“설마…….”

“확신하기에는 아직도 정보가 부족해요. 다만, 총리가 먼저 만났다니… 총리를 의심해 보는 게 더 빠르겠죠. 아무래도 지금만 놓고 보면 강세기는….”

“…세뇌… 중이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뇌라는 조건이 있는 한, 모든 걸 의심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걸로 모든 걸 무마시키기엔 의심이 가는군요.”

“그렇죠. 사실 강세기의 말 중 걸리는 것도 있어요.”

“그게 뭐죠?”

“처녀를 잡기 전까지 사역을 끝마쳐라.”

“사역?”

“음…….”

정우는 침음과 함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쳤다.

“뱀파이어라면 이전에 말했던 거군요.”

철원에 대해 설명할 때 언급했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에서 발견이 된 건가요? 이쪽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려는 걸까요? 아니면 아예 이동하려는…….”

“일단은 그건 제가 시간을 끌었어요. 중요한 건 그보다 강세기가 언급한 ‘처녀’예요. 제가 생각하기엔….”

“저겠죠.”

유서린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날 잡는다라…….”

그녀는 싸늘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해당 단어를 곱씹었다.

그러고는 결론을 내렸다.

“세뇌시킬 생각이었다면… 강세기한테 아티팩트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본인도 모르거나. 아니면 본인이 관여되어 있거나.”

“골치… 아프네요.”

강세기의 쪽지로 시작된 계획이었다.

앤드류까지 불러 나름대로 교차 검증을 했음에도 모든 걸 강세기의 발언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작전 전에 앤드류가 넌지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뭐죠?”

“총리가 노리고 있다, 고.”

“세뇌는 확실하겠군요. 방법이 문제이지.”

아티팩트를 본다면 작동 방법이나 범위 등을 파악해 낼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마력이 아닌 ‘마나’를 사용하는.

‘진정한 마도사니까.’

예전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욱 단단해진, 마도사였다.

‘시스템이 잠잠한 게 마음에 걸리긴 한데… 상관없겠지. 이제는.’

정우는 몇 단계를 뛰어넘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F급에 불과했던 자신은 성장을 거듭해서 S급 보스를 단독으로 죽일 정도로 성장했다.

여태껏 모든 성장마다 등장하던 메시지를 떠올리면, 이례적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의 성장에도 등장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시스템은 잠잠했고.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정우는 오히려 그것이 신경이 쓰였다.

“일단 한국 플레이어들과 합류하죠. 약간은 마력이 회복되고 있으니까요.”

정확히는 삐걱거리던 고리가 다시 안정을 되찾은 거였지만.

“조금 빠르게 움직일게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유서린은 자신을 옭아매는 힘을 느꼈다.

“염동력?”

“꽤 흥미로운 능력이더라고요.”

염동으로 유서린을 고정한 정우가 비행 마법을 사용했다.

빠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플레이어의 구보 정도.

“잊지 말아요. 강세기도… 조심해요.”

그렇게 말하는 정우의 얼굴이 천천히 다시 변했다.

* * *

“…….”

사내는 다시 눈을 떴다.

여전한 박쥐들의 풍경을 본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뱀파이어.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쓸모가 없군요.’

소모품들.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벌써… 격변(激變)을 이끌어 내다니…….’

사내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지 모르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자각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한정우…….’

사내가 눈을 뜬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마력이 변화했다.’

마력의 흐름의 변화는 ‘격변’의 징조였다.

사내는 눈을 감고 세상의 모든 마력을 읽겠다는 듯, 고요한 지하에서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여러 군데 박아 놓은 ‘기둥’들이 제 역할을 하며 모든 흐름을 사내에게 전달해 주었다.

백작의 사정을 속속들이 안 까닭도 바로 그 기둥 덕분이었다.

그렇게 상황을 파악한 사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국으로 가지 않았어. 일본에 있다.’

현재 전 세계의 시선이 주목된 나라, 일본.

그곳에서 벌어지는 미해결 지역 공략에 참여한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2단계를 이끌어 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로서는 나쁠 게 없어.’

애당초 시간과 공을 들여서 실행했어야 하는 작업이었다.

제물의 인장을 가만히 놔둔 이유도 그것에 있었으니까.

‘왕과 여왕을 잡을 정도라면… 협회에도 꽤나 충격적인 경고가 되겠지.’

사내는 빌런 협회를 떠올렸다.

협회의 계획은 차근차근히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일은 분명히 변수였다.

자신이 알아차렸으니 몇몇의 민감한 놈들도 하루 이틀이면 알아차릴 터였다.

그리고 모든 ‘시스템’이 바뀌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후우. 과연 무슨 선택을 할 건지 궁금해지는데…. 자리를 비울 수 없다라. 그냥… 모두 죽여 버릴까요?’

수많은 관을 보는 사내의 눈동자가 일순간 보랏빛으로 물들었다가 사라졌다.

‘총리와 한정우라…. 잘만 버무리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겠군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로건.’

사내가 짓궂은 미소로, 아들의 탈을 쓴 괴물의 얼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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