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서큐버스 (8)
* * *
불과 3시간 전.
“지원군입니다.”
급보이자 낭보였다.
후위에서 주변을 경계하던 플레이어의 소식에 모두는 반색했다.
“후우. 생각보다 할 만하긴 한데… 어째 불안하네요.”
잠깐의 휴식.
물기둥과 함께 나타난 적의 기습에 우왕좌왕하던 것도 잠시, 모두는 매우 자연스럽게 진형을 갖추었고 적을 격퇴했다.
이진수는 털썩 주저앉은 채로 육포를 질겅 씹으며 중얼거렸다.
“너 그 또 저주받은 주둥이를 놀리는 거야?”
곁에 다가온 이사가 질린 표정으로 이진수의 뒤통수를 쳤다.
“저주받은 주둥이라니요!”
“풉. 이 팀장 주둥이가 좀 망할 주둥이긴 하지.”
“저번에 이 팀장님 따라서 던전에 들어갔다가 ‘해치웠나.’ 이 말 해서 보스한테 기습당했잖아.”
“야! 그게 내 탓이야?”
“우우! 역시 나이트 길드의 저주받은 주둥…… 죄송합니다.”
몰려든 나이트 길드원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진수가 찢어진 눈을 더욱 찢으며 모두를 노려보았다.
“불안하다는 소리나 하지 마라.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하고 있으니까. 역시 한국과 일본의 차이랄까?”
자잘한 전투까지 합치면 셀 수 없는 공략이 이루어졌다.
단 한 마리라도 수를 줄이기 위한 일본의 발악이랄까.
던전 브레이크가 위험한 건, 던전의 생태계와 몬스터가 고스란히 지구에 들이닥친다는 점이 아니었다.
물론, 침공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던전 브레이크가 위험한 것은 다름 아닌 ‘확장성’에 있었다.
한 구를 집어삼킨 던전 브레이크를 장시간 방치하면 던전의 영역은 점차 넓어진다.
때문에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지역은 지속적인 토벌이 이루어진다.
마력의 농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발악.
물론, 던전을 구성하는 건, 몬스터가 아닌 다른 것들이었지만.
애당초 공략조차 불가능한 지역에서 핵을 처리하거나 아티팩트를 강탈하는 등의 행위는 불가능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확장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플레이어들은 지속적으로 미해결 지역을 공략한다.
한국처럼 미해결 지역이 없는 나라를 제외하곤, 모두가 다 폭탄을 떠안고 살아가는 셈이었다.
일본의 미해결 지역인 세이렌의 영토는 초창기엔 그저 해안가를 집어삼키는 것으로 끝났던 장소였다.
“그게 이렇게나 커졌는데… 불안하죠.”
그게 이제는 서울시의 면적 정도를 삼킨 거대 지역이 되었다.
이 정도 규모는 미해결 지역 중에서도 상위급.
전 세계를 놓고 봐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위험 지역이었다.
“입조심해. 공략은 차분히 진행되고 있고, 일본과의 합류도 멀지 않았어. 지원군까지 왔잖아? 할 만하다니까?”
“에휴. 난 이사님의 그 낙천적인 성격이 오히려 불안하네요.”
“이 새끼가 말끝마다 불안하대.”
기어이 한 대 더 얻어맞은 이진수였지만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나이트 길드에서 시작된 웃음기가 슬그머니 모든 일행에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나이트 길드는 분위기가 좋네요.”
“유독 좋기로 유명하지. 후우. 우리 길드장도 저런 면을 배웠으면 좋겠네.”
“그래도 너넨 던전 공략권이라도 잘 따내잖아. 우리는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고.”
“으음. 하긴. 이번 공략에 참여한 이유는 그거 때문이니까. 성장은 덤이고. 다들 각 길드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실력자잖아.”
협회에서 이번 공략에 내건 보상, 던전 공략권.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각자의 성장보다는 그것에 치중해야 하는, 각 길드의 가장들이었다.
때문에 협회에서도 망설임 없이 그런 보상을 내걸 수 있었다.
이 공략에 참여한 모두는 부정할 수 없는 베테랑들이었으니까.
“오? 저거 유민 아니냐?”
“거검의 유민?”
“야, 재규어 길드의 박정훈도 있어.”
유서린에게 인사하는 지원군을 보는 눈동자들이 빛났다.
인재 풀이 뛰어난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들이었다.
“칼을 갈았네, 아주.”
나이트 길드에 내건 조건만 하더라도 협회에선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 것으로도 모자라.
“……어? 야, 자, 잠깐만.”
“아, 씨. 아파. 왜 그래?”
“저, 저 사람…… 얼굴이 좀 낯익지 않냐?”
플레이어 하나가 동료의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
놀란 음성에 시선을 돌린 플레이어가 얻어맞는 것도 잊은 채로 덜컥 멎었다.
유명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물.
유서린에 비해 퇴색된 영광을 지녔지만, 자신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물.
“……김하란이다.”
“워! 진짜 김하란 플레이어다!”
김하란.
한국에 존재하는 또 다른 S급 플레이어.
그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대체 얼마를 쓴 거야?”
김하란은 어떠한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은 용병이었으니까.
S급에 올라섬과 동시에 길드를 탈퇴, 전 세계를 무대로 용병으로서 활동하는 거인이었다.
때문에 간혹 용병 국가라 불릴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북한으로 국적을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지간한 금액으로는 움직이지도 않는 김하란의 등장에 분위기는 한층 뜨거워졌다.
“아주 드림팀이네.”
“야, 한국에서 모이기도 힘든 사람들이 이 일본에서 모였다는 게, 참. 이참에 점령이나 해봐?”
“요고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네?”
“왜? 일본의 역사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보다 우위에 섰던 역사가 훨씬 짧아. 그게 최근이라는 게 억울하고도 화날 정도지만… 이젠 역전됐잖아. 다시.”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그만하죠? 싸울 대상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 아닌가요?”
그 말에 플레이어들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한층 더 뜨거워지기만 했다.
지원군의 면면이 화려한 만큼.
“제대로 놀아볼 수 있겠네.”
안전해질 테니까.
우득!
뼈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며, 모두는 일전을 준비했다.
“세이렌이 미리 등장한 만큼 저주술사의 역할도 중요해.”
이곳에 온 저주술사들은 하나같이 협회에서 진행한 세이렌의 던전 내 실험에 참여했던 이들이었다.
세이렌이 저주에 약하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들.
때문에 저주술사들은, 평소의 지원 역할에서 벗어나 주인공이 될 생각에 약간 들떠 있었다.
“김하란 플레이어는 좌측을. 저는 우측을 맡겠습니다.”
끄덕.
과묵한 그답게 단단한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두 명의 S급 플레이어.
“든든하네.”
탱커들의 방벽 너머 저주술사가 자리했고, 그 뒤로 원거리 딜러가 자리하며.
“근접 딜러 앞으로.”
정찰 역할을 담당하는 근접 딜러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진형이 갖춰지자 유서린은 다시금 전진했다.
주춤.
멀리서 아군의 동태를 살피던 몬스터들이 뒤로 물러설 정도로, 아군의 위용은 대단했다.
진군하고.
후퇴하고.
“이대로 후퇴만 해라. 일본하고 좀 합쳐 보자.”
든든한 플레이어들이 합류했지만, 덩치가 커져서 나쁠 건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진군했지?”
“대략 9km입니다.”
상당한 거리를 이동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짧은 교전 끝에 십여 마리의 세이렌을 사살하며 기세가 등등해졌을 때.
더한 활약을 기대했던 저주술사들의 어깨가 슬쩍 평소처럼 돌아가고, 긴장으로 흐르던 땀이 식어 서늘하다는 느낌마저 받을 무렵.
정찰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전해지지 않은 그런 상황에서, 이변은 말 그대로 예상을 뛰어넘어 발생했다.
“……컥.”
“……어?”
서걱!
푹, 푸푹!
“뭐, 뭐야?”
“기, 기습이다!”
베테랑들조차 당황해 패닉에 빠져들 정도였다.
저주술사의 목 하나가 잘려 허공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은신! 은신이다!”
진형의 중추에서 모습을 드러낸 머맨들이 저주술사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마, 막아!”
저주술사의 중요성은 이미 공지된바, 플레이어들은 사색이 되어 머맨과의 전투에 나섰다.
“X발! 뒈져! 뒈지라고!”
“사, 사사, 살려줘……!”
갑작스럽게 시작된 전투.
유서린과 김하란이 반응할 찰나, 후퇴만을 반복하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젠장!”
유서린의 얼굴이 구겨졌다.
보이던 것보다 더 많은 수였다.
어떻게 기감을 피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포메이션!”
벼락처럼 소리친 그녀와 김하란이 단단히 전면을 틀어막고.
패닉에 가까운 상황을 마주했을지언정 빠르게 이겨내 습격자들을 모조리 처리했을 무렵엔.
“……허.”
저주술사는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빌어먹을!”
사망자가 발생한 첫 전투.
그러나 그 피해는 너무도 컸다.
“이 미친 새끼들이 저주술사의 합류를 기다렸어.”
“그걸 어떻게 알고?”
“몰라! X발. 그럼 이건 말이 되고?”
이진수는 발버둥 치는 머맨의 목을 라운드실드로 찍어 누르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 X같은 저주받은 주둥이!”
스스로를 향하는 욕설이었다.
어쩐지 이 참사에 죄책감이 물씬 밀려들었다.
“X새끼들아!”
버럭 소리를 지른 그가 전면으로 튀어 나갔다.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향해 여과 없는 살의를 내뿜은 그의 방패가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근접 딜러들이 속속들이 합류하며.
진형은 거북이를 연상시키듯 단단하게 변해 버렸다.
그럼에도.
이진수의 눈은 머맨들 뒤편으로 향했다.
“X발. 세이렌… 어떻게 하지?”
단 한 수에 무너진 계획.
암운이 드러웠다.
* * *
[ ‘마나’를 활성화하여 주십시오. ]
마나?
그것은 새로운 개념이었으며 과거의 자신이 정립한 체계였다.
마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던 시절에 떠올린 차별성.
어둠 속에서 밀려드는 마력을 정리하고자 만든 방법인 ‘엘릭시르’의 결정체이자.
마력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이 붙인 이름이었던 그것이 뜬금없이 등장했다.
부릅뜬 눈동자로 주변의 상황이 들어왔다.
분전하고 있는 메아리의 모습.
그녀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두 마리의 머맨까지.
마나의 활성화.
메시지가 준 그것을 곱씹은 정우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간의 가정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플레이어 시스템을 만든 이는.
‘내가 아는 자다….’
자신과 상당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정우는 염동으로 달려드는 머맨을 밀어냈다.
쩌저저적, 쩌적!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번개가 내리치며.
우우우우우우웅!
벌떼가 요란하게 울기 시작했다.
‘……매우 작은 고리.’
매직 미사일.
마력을 사용하여 스스로 전개한 마법과는 달리, 스킬로서 존재하는 매직 미사일은 하나의 고리나 다름이 없었다.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존재한다는 게 다를 뿐.
그리고 정우는 이런 개념을 알고 있었다.
사방으로 퍼지는 매직 미사일의 향연은 폭죽과도 같았다.
손과 팔을 총동원해도 도무지 막을 수 없는, 엄청난 수가 일제히 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푸른 비늘이 깨어지고, 드러난 살점이 패이며, 두 눈동자가 폭사하고, 지느러미가 뜯겨 나가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
털썩.
살점과 피로 얼룩진 지면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지친 메아리의 눈이 불안하게 정우를 향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고.
‘……왜, 주인님의 생각이 들리지 않지?’
링크가 끊어진 것처럼 고요하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잔해 사이에서.
정우만이 고요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요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정신은 큰 풍랑이라도 만난 것처럼 불안정했다.
충격으로 헝클어진 생각.
정우는.
“…자리 잡자. 이거부터 해결해야겠어.”
일순간 삐쩍 마른 음성으로, 빈 장소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