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G급 던전의 찬탈자-144화 (144/293)

144화

-서큐버스 (7)

“흩어져라!”

기억은 힘이다.

메아리는 정우와 함께 과거를 떠올렸고, 가장 전성기 때의 기억을 얻었다.

물론, 아무런 진행도 없이 당시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녀 역시 단계를 밟아야 했고, 뛰어넘을 수 있는 계단은 두어 개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힘은 보다 현실적으로 변했다.

여러 색의 안개가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마치 생명이라도 깃든 것처럼, 채찍과도 같은 유연함을 지니고 있었다.

현혹하고, 공포를 불러내었다.

각 객체마다 약점은 상이했고, 그녀는 그런 놈들의 약점에 맞춰 능력에 변화를 주었다.

그녀가 현재 각성한 건 안개뿐.

몸을 숨기는 인식의 저하와 각종 현혹 마법이 주였다.

놈들은 물에 민감했고, 보랏빛 안개로 몸을 숨기기엔 부적절했다.

이곳은 그들의 영역이었으니까.

공기 중의 수분 역시 놈들의 손아귀에 있는 셈이었다.

이곳을 불태워 모든 수분을 증발시키기 전까지는 놈들의 시선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고.

때문에 메아리는 매우 오랜만에 육체를 움직여 활동해야 했다.

‘…자꾸만 풀려!’

애당초 머맨은 저주에 대한 저항력이 뛰어났다.

현혹에 걸린 머맨 하나가 동족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얻어맞은 머맨이 나가떨어지는 그 짧은 사이.

팟!

정신을 차린 머맨이 당황하다가 그 분노를 메아리에게 표출했다.

은신이 감지되었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모든 마력을 육체 강화에 쏟은 덕분에, 머맨의 육체는 거한 그 자체로 변했다.

마력이 육체를 강화할수록.

‘…벗어, 난다!’

놈들의 움직임은 더욱 격렬해졌다.

그 격렬함이 가져온 건, 저항.

한순간에 정신을 장악할 정도의 힘이, 아직 그녀의 손엔 미치지 못했다.

과거의 영광.

종족을 막론하고 모든 의식 속에서 거할 수 있었던 과거의 힘이 그리운 그녀였지만.

지금은 반쯤 튀어나온 철근을 낚아채는 머맨의 손길을 막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주, 인님.’

시기가 좋지 않다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가만히 몰두하기에 주위는 너무도 난잡했고, 그 난잡함의 주인들은 자신들의 목을 잡아 비틀 생각으로 가득한 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주인을 위해 사용하고 또 사용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육체에 깃들어야 하기 때문에 본래의 능력을 백분 발휘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움직였다.

현혹에 걸려 우악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양팔을 휘저어 동족의 움직임을 막고.

목을 틀어쥘 때쯤엔 퍼뜩 정신을 차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무기가 없다는 것이 손해가 되었으며, 육체를 강화했다는 것이 방해가 되는 상황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츠츠츠.

꽈득, 툭, 콰르르르!

주르륵!

그러는 사이.

“……!”

놈들의 포위망이 점차 좁혀져 왔다.

십여 미터는 멀리 떨어져 있었던 놈들의 뜨거운 콧김이 지근거리에서 느껴졌다.

허우적대는 손아귀의 날카로운 손톱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옅어진 안개.

헐떡거리는 숨과 핑 도는 시야까지.

불과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전투만으로 그녀는 한계에 달했다.

‘이대로는… 안 돼. 주인님이 위험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스스로의 심상에 빠져 있는 정우를 힐끗 본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그녀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주춤.

짧은 순간 느껴진 존재감에 처음으로 머맨이 주춤거렸으나 그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그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일족.

서큐버스의 한계에서 벗어난, 어떤 방법을 택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으며 어떻게 탈피했는지 가늠도 가지 않는 그러한 것보다.

‘서큐버스로서……!’

무의식중에 잠시 미뤄두었던 본능을 이끌었다.

퀸이라는 자리에 앉기 전의, 발악을 끄집어 손으로 붙잡고 발로 끌어안았다.

두근!

그제야 느껴지는 박동.

기묘하지만 이제야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편안함을 주는 감각.

시선이 현혹이 되고, 입김이 욕망이 된다.

얼굴을 낚아채려던 손길이 멈칫하며 거미줄에라도 걸린 것처럼 손가락을 꿈틀거려댔다.

허공조차 쥐지 못한 손길의 주인의 가뜩이나 탁한 눈동자는 초점마저 잃은 채.

콰아앙!

옆에서 달려드는 머맨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쳤다.

부웅, 콰앙!

뒤로 날아가 부딪치는 놈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로, 놈은 점프하는 놈의 목을 잡고 빙글 돌려 지면으로 내리꽂았다.

쩌억!

쿠르르릉!

어깨까지 박혀 든 몸체가 파르르 떨며 꿈틀거렸다.

캬아-!

입을 벌린 놈의 신체가 보다 더 거대해진다.

한껏 부풀었던 근육은 철갑이라도 두른 것처럼 도드라졌다.

마력.

그것을 한계까지. 아니, 한계를 넘어서까지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춤.

동족의 처음 보는 모습에 주춤거린 머맨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전과는 다르다.

진즉에 풀렸어야 할 현혹이 오히려 공고해지며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늘어트린 양팔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고.

벌어진 비늘 틈 사이로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입을 쩍 버려 포효하는 머맨의 모습은.

“……!”

세이렌을 지키는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 * *

쩌적!

피부가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막대한 통증이 전신을 누비고도 해소되지 않은 채로 잔류했다.

마력이라는 수치.

플레이어로서 지니는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그것.

그건 정우의 생각대로 이미 완성된 하나의 고리나 다름이 없었다.

다만.

‘……고리의 완성도가 높다.’

고리를 만들고 기존의 고리에 연결시키려면 기존의 고리를 살짝 풀 필요가 있었다.

쇠사슬을 연결하듯.

일종의 틈을 만들어 새로운 고리를 결착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정우의 입장에선, 단단하다 못해 도무지 틈을 보이지 않는 고리가 원망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외부에서 느껴지는 흐름.

그것은 여전히 불안하기 짝이 없어서 정우의 시선을 때때로 앗아 가고 있었고.

자신했던 계획을 변경한 이상 물러설 길은 없었다.

고리에 건다.

그리고 새로운 고리를 건다.

걸고, 또 걸고, 또 걸어서!

‘놓칠까 보냐!’

정우는 이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를 위기.

저주에 강한 머맨과 저주만 사용할 수 있는 메아리의 격돌.

당장 두 눈을 뜨고 작업을 멈춰야 할 상황이었지만 정우의 결정은 반대였다.

이미 흐름을 만들었고, 반은 연결을 한 상태.

이대로 그만둔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예전과 똑같이, 모든 마력의 길을 연결하여 자신을 관통하게 만드는 것.

‘그 힘을 사용하는 것은… 어쩌면 실패했을지도 몰라.’

그런 불안감을 안고 다시 같은 길을 걸어가기에는.

‘열려라……!’

이변과 의외성을 강제하기 위하여, 정우는 기어이 견고한 고리에 집중했다.

고리의 흐름을 읽고.

고리의 패턴에 집중하며.

고리의 견고함에 관여하고 있을 무렵.

“……!”

찰나의 순간을 본 정우가 경악으로 미간을 치켜올렸다.

집중하기 위해 감은 눈을 뜰 뻔한 정도의 충격이었다.

점과 점을 잇는다.

하나의 선.

그것을 반복하여 만든 다발의 선.

그것은 마치 밧줄처럼 서로 얽히고 꼬여 단단해지고, 끊기 어려울 정도의 장력을 가지게 된다.

밧줄이 모여 또다시 꼬이고 얽히며 덩치를 불려 간다.

힘으로도 끊기던 것이 칼로도 끊기 어려워지고, 오러로도 끊기 어려울 정도로 견고해진다.

수없이 얽힌 다발은 마치 하나의 면처럼 보일 정도였으며, 얽히고 얽혀 만든 선들은 오히려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은 채로 고착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정우가 본래 만들기 위해 시작했던 작업.

자신을 지나는 수많은 선을 그대로 고착시켜서 선에 흐르는 막대한 마력을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

연금술의 궁극을 인용하여 직접 붙인 이름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엘릭시르(Elixir)….’

불로불사.

그것에 준하는 권능을 가져다주는 작업.

정우 외에 이 방법을 아는 이는 이계와 지구를 통틀어도 단 한 명뿐이었다.

‘……안나.’

대마법사 안나.

자신의 친우이자 신하이자 연인이었던 그녀.

마력 수치란 고리는 분명히 엘릭시르의 그것이었다.

[ 마력이 1 상승합니다. ]

[ 마력이 1 상승합니다. ]

[ 마력이……. ]

[ 마……. ]

몇 번이고 울리던 메시지가 뚝 하니 사라졌다.

그러고는 떠오르는 한 줄기의 메시지에.

[ ‘마나’를 활성화하여 주십시오. ]

“……!”

정우는 기어이 눈을 부릅떠 버렸다.

* * *

“젠장!”

“막아!”

다이센시의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15km가량.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전부 초인이라는 단어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강자들이었으며, 치타와 경주를 해도 능히 이길 정도의 속도를 자랑하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을 때에나 가능한 것.

불과 15km를 앞에 두고, 일행은 발이 묶였다.

“…마력이 고갈됐어!”

“막아! 좌측 좀 막으라고!”

“힐러! 이 새끼 어깨를 다쳤어! 힐러!”

곳곳에서 고함이 터졌다.

별다른 피해조차 없이 진격해 왔던 것이 거짓처럼 여겨졌다.

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기습은 기어이 일행의 몸에서 피를 흘리게 만들었고, 작은 생채기는 경상으로.

경상은 중상으로 변하며 그 위험성을 절감케 했다.

사상자가 없는 게 기적처럼 여겨질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동행한 몇몇의 저주술사가 기습에 명을 달리한 순간부터.

몇 번이고 시도된 공략이 끝내 실패로 돌아갔던 일본의 전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시에 비하면 몇 배나 월등한 전력이었으나.

“……X발. 예상보다 더 강하잖아!”

미리 파악된 것보다 강해진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세이렌의 저주가 곳곳을 누비고.

현혹된 플레이어가 아군을 향해 칼을 돌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무자비한 칼날을 자랑하는 유서린의 움직임이 멈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저주 해제.

광전사의 능력보다 성기사의 능력에 치중하면서부터 그녀는 발이 묶였다.

“빌어먹을!”

이진수는 욕설을 내뱉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어지간한 몬스터에겐 밀려 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머맨의 힘은 가히 A급 몬스터인 미노타우로스를 떠올릴 정도로 강대했다.

쿵!

짧게 휘둘러진 주먹이 라운드실드에 작렬했다.

마력을 머금어 두껍게 부풀었던 허벅지가 사정없이 떨렸다.

휘청!

고랑을 만들어 내며 뒤로 밀리던 다리가 기어이 거대한 충격을 해소하지 못해 한 차례 꺾였다.

중심이 무너진 순간.

이진수는 다급히 자세를 낮추며 방패를 몸에 붙였다.

“미친놈아! 그렇게 맞으면 죽어!”

뾰족한 고함이 방패를 후려치기 위해 허공을 가르는 주먹과 부딪쳤다.

콰앙!

주먹에 검을 꽂아 넣은 이는 다름 아닌 나이트 길드의 이사.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단번에 피떡으로 만들 정도의 위력을 해소하며, 오히려 뒷걸음질 친 머맨에게 달려들었다.

그 짧은 순간 이진수는 다시 자리를 잡았다.

툭, 툭!

잘게 경련하는 허벅지를 내리친 이진수가 단내 나는 뜨거운 숨을 훅하고 내쉬었다.

“…이게 뭐야?”

미해결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난이도는 아닐 것이라 예상했다.

머맨은 탱커에 가까웠고, 세이렌은 저주술사에 가까웠으니까.

심지어 공략대장인 유서린은 세이렌에 대한 대책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몇 번의 교전을 통해 그녀가 말한 대책은 성공적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낙관적인 시선이 생겨났다.

그렇게 열 마리의 세이렌을 죽였을 무렵.

상황이 일변했다.

머맨에게 있어서는 안 될 스킬이 등장했으며.

예기치 못한 불의의 일격은.

낙관적이던 전황을 한순간에 나락으로 끌고 내려갔다.

놈들이 등장할 때마다 출렁이는, 저 물속으로 가라앉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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