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서큐버스 (6)
저벅.
검은색 물감이라도 칠한 것처럼 모든 것이 흑백으로 변한다.
단 한 발짝.
그 한 발이 만들어 낸 여파는 생각보다 커다랬다.
-감각이… 이상해요.
‘그러니까 왜 따라온 거야?’
-왕이 가는데 신하가 따르는 건 당연한 거죠.
‘…링크(link)해 놓은 게 이렇게 골치가 아플 줄은 몰랐네.’
-호호.
‘웃지 마.’
그나마 위로가 되는 이와의 대화도 잠시, 내 시선을 사방으로 향했다.
세상을 뒤덮어 가는 지역, 어둠.
따로 붙인 이름도 없이 그저 어둠의 영역이라 불린 그곳은 정말로 기이했다.
모든 것은 기존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저 색채만 잃었을 뿐.
“……마력이 달라.”
하지만 그 외에도 차이점이 존재했다.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어지간한 대마법사조차 마력의 농도 차이만을 느낄 정도로, 아주 미세한 차이.
하지만 무엇보다도 근원적인 차이.
마력.
그것의 흐름과 패턴이 모조리 달랐다.
-비슷한데요?
나는 허리를 숙여 색을 잃은 풀에 손을 대었다.
뚝.
줄기가 끊기는 느낌도,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풀의 감촉도 동일했다.
그럼에도 달랐다.
꼭.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얇은 무언가를 덧씌워 놓은 느낌.”
-……?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보고 들은 것.
경험하고 체득한 것.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것만을 인지하는 그녀에게 지금은 ‘새로운’ 것이었다.
“그냥 기억해 둬. 언제 어떻게 써먹을지 모르니까.”
-알았어요.
조금씩 걷는다.
그녀의 대답은 조금씩 늦어졌다.
이곳은 그녀조차 기이하다 여길 정도로 이상한 장소였고.
온갖 풍문이 가득할 정도로 난해한 장소였다.
크르르-.
낮은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초식동물이 육식이 되고, 육식동물이 괴물이 되는 장소.
‘마력의 흐름이 꼬여 있어.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거야. 지속적으로 흐름을 강요하고… 변이를 촉진하는 거다.’
마력을 다룰 줄 아는 개체에게는 더 없는 기연처럼 보일 정도로 농밀한 마력이, 오히려 독이 되는 장소였다.
숨을 고른다.
숨과 함께 마력을 고른다.
처리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 다짐하고 입장했지만, 첫걸음부터 느껴지는 건 당혹과 우려뿐이었다.
가뜩이나 마력에 축복을 받은 육체였다.
숨을 쉴 때마다 마력이 쌓였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력의 흐름이 읽혔다.
그게 강요가 되는 장소.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캬아-!”
은밀히 다가와 벌리는 주둥이의 수십 개의 이빨이 세상을 쪼갤 듯 다물어졌다.
콰득!
하지만 놈이 베 문 것은 허공뿐.
입안에서 느껴져야 할 육질 대신 느껴지는 건 뜨거운 작렬감이었다.
화르르륵!
베문 허공에서부터 생겨나는 작은 불꽃은 입천장을 태우고 혀를 녹여내며.
캬웅, 켁, 켁!
이윽고 머리를 삼켜 버렸다.
쿵.
쓰러지는 습격자를 보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키메라인가? 쥐인 거 같은데….”
원형의 일부로만 유추해야 하는 거대한 쥐의 모습.
이곳의 실체를 엿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변형된 존재들.
-밖에서는 왕을 피해 다니지 않았어요?
어둠의 영역 밖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것들이 이곳에서는 강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달려들고 있었다.
사사삭!
“먹잇감이라….”
피식자의 입장에서 포식자의 입장으로.
그리고 포식자는 다시 피식자로 전락하며 더한 강자의 입안에 떨어지는 곳.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요란하고 날카로웠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뭘?’
-저것들이요.
그녀는 몸을 빙글 돌리며 주변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보았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대한 원숭이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캬카-!
날카로운 포효와 함께 뛰어내린다.
그것을 신호 삼아 간만에 외부에서 온 먹이를 갈구하는 놈들의 무차별적인 돌격이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쥐고 폈을 때엔.
아른거리듯. 그녀의 말만이 공허해진 사위에서 조용히 울릴 뿐이었다.
* * *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얇은 무언가를 덧씌워 놓은 느낌.”
“…뭐?”
“저것들이요.”
메아리의 손가락 끝은 한 폐가로 향했다.
은은한 기척이 느껴졌다.
기회를 노리는 늑대처럼, 웅크리고 숨을 죽인 푸른빛의 비늘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은신까지.’
머맨.
그 성질은 무투사나 전사에 가까웠다.
지닌 마력을 육체 강화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능력에만 사용하는 전형적인 형태.
단 한 번도.
머맨은 은신이라는 스킬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이걸 놓치고 갔다고요?”
메아리의 말에 주변을 살피던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놓치고 간 게 아니야….”
“그럼요?”
“뒤를 잡힌 거다.”
“……!”
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만전은 아니었다.
사용한 마력은 많았고 은근한 데미지는 몸에 쌓여 만성 피로처럼 몸을 무겁게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인챈트를 마무리하느라 제대로 쉬지를 못했더니 이따금씩 피곤함이 밀려 올라왔다.
그럼에도.
정우는 주먹을 쥐었다.
의지에 반응하듯 손에 맺히는 마력은 바로 직전과는 또 달랐다.
성장의 성장.
그것을 거듭하여 측정 등급보다도 더 높은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 정우였지만, 지금은….
“기회다.”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인지 아니면 역시나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인지, 머맨들도 정우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암살자처럼 기회를 노리는 데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기회요?”
기이할 정도로 짙은 농도.
인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을 파고드는 마력은 때때로는 기회였다.
과거의.
“…아! 주인님이 하셨던 방법?”
자신이 그러했듯…….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유서린과 한국 플레이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는 던전과 마찬가지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다.
카메라 따위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운 거리는 마력의 농도가 옅어서인지 위성 사진이나 망원 렌즈로도 잡히는 게 있지만.
어느 정도 나아가면 뿌연 안개만이 가득할 따름이었다.
그나마 아이템화 시킨 덕분에 거리가 멀어진 것도 있지만….
결국은 연락이 끊긴 상황이었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외부와 내부를 오가며 통신을 해야 했다.
어지간한 던전 브레이크라면 진즉에 영상이 끊어졌겠지만, 세이렌의 영역은 범위가 넓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한 시를 고스란히 잡아먹은 것처럼 말이다.
소식은 끊겼고, 오가며 연락을 취하기엔 거리가 멀어졌다.
그만한 거리를 이동했으며, 그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몬스터를 처리했지만.
“한 번 걸었던 길이야. 다시 걷기엔….”
나쁠 것도 없었다.
정우는 당시의 시행착오를 떠올렸다.
작은 불꽃을 만들어도 불기둥이 되었던 당시.
그것을 억제하고 억제하는 것에만 치중했던 실수.
그로 인해 망가져 버린 신체를 되돌리는 것만… 100년이 걸렸다.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던 시절.
이제는 아련해진 그때를 떠올린 정우가 슬쩍 눈을 감았다.
검게 변한 세상 속에서.
밝은 점 하나가 생겨난다.
하나의 점은 둘로, 둘은 넷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숫자를 늘려 간다.
눈앞을 가득 채울 것 같던 점이 멈춘 것은, 정확하게 점의 개수가 209개에 달했을 때였다.
‘아직은 여기까지….’
마력의 길.
흐름.
천천히 점으로부터 마력을 뽑아내듯 접근시킨다.
한 점에서 흐른 마력은 정우의 몸을 관통해서 다른 점으로 이어진다.
모든 마력을 잇고 또 잇는 작업이 천천히.
“……온다.”
하지만 빠르게 이어졌다.
정우의 귓가엔 메아리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웅얼거리듯 의미를 알 수 없는 음성만이 들릴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도 정우는 구슬을 꿰듯, 하나씩 점과 점을 잇기 시작했다.
오롯이 자신에게 들어와 쌓여만 갈 마력에 길을 만들어 주는 것.
“…….”
반쯤 작업을 진행하던 정우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다.
점점 속도를 높이던 작업이 느려졌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자신은 이 작업을 거쳤다.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어둠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적응하고자 자신은 이러한 작업을 거쳤다.
쌓여만 가는 마력.
분출하기만 급급해졌던 상황.
대마법을 남발해도 마르지 않던 마력까지.
그 여파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신체는 무너졌고, 막대한 마력으로 다시 버티는 악순환의 시작.
그 끝을 알렸던 작업이었지만.
‘결과는……?’
뚝 잘린 기억 속의 결과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자신은 다리가 잘린 채, 팔이 묶인 채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만한 경지에 도달하기 전에도 ‘신이 된 사나이’라는 촌스러운 호칭을 얻을 정도였음에도.
그렇다면.
‘그 …눈.’
기억을 찾아가면 찾아갈수록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눈동자는.
‘이 방법의 파훼법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정우는 빠르게 고민했다.
쿵, 쿵!
묵직한 진동이 몸을 흔들리게 만들었으며.
떠올랐던 점들이 슬쩍 이동하거나 사라졌다가 떠오르는 등, 여러 이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졌다….’
기회를 노리던 놈들이 들이닥친 게 분명해 보였다.
마력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리플렉트를 사용하지 못하는 게 불안했지만, 정우는 메아리를 믿었다.
그러면 남은 건 하나.
이대로 진행하느냐.
‘마느냐….’
이건 기회였다.
메아리에게 말한 것처럼, 이 막대한 마력의 응집으로 몇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엄청난 기연.
던전 브레이크와 어둠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지만.
그 또한 성장해야지만 증명할 수 있는 종류였다.
아직 자신은 너무 약했기 때문에.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너무도 강렬했다.
한 번 걸었던 길이지만.
종말만이 기억날 뿐, 중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불안감과 함께.
그 눈의 주인이 그 불안감의 주인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포기하자….’
결국, 정우는 방향을 바꾸었다.
강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굳이 이 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강해질 수가 있었다.
패턴이 다른 마력.
본질이 다른 마력을 굳이 몸에 새기지 않더라도…….
‘새긴다?’
모든 마법사는 서클이라는 것을 만든다.
하나의 고리.
마력의 길로 이루어진 고리를 만들고, 또 다른 고리와 연결하여 흐름을 만든다.
고리 내에 생성된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인 마법사의 사용법.
하지만 정우는 처음부터 달랐다.
마력의 흐름을 쌓을 필요가 없었다.
꽃에 날아드는 나비처럼.
혹은 달콤한 꿀을 채취하는 벌처럼.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력은 자신을 휘감고 지나갔다.
자신의 방법은 이질적이었다.
보편적이지 않은, 특별한 방법.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하고 따라 할 수 없는 방법.
휘감고 지나가는 마력만을 사용하는, 지극히 독특한 방법만으로도 정우는 신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렇기에 어둠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에도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들러붙는 벌의 수가 예상을 초월했고, 잔여하는 마력의 양이 점차 덩치를 불려 나가며 결국 육체를 망치게 만들었다.
정우는.
반대로 생각했다.
과거라면 할 수 없었던 방법.
지금도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성이 있다.’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방법.
일반적인 마법사처럼 고리를 만들고, 그 고리의 개수를 무한대로 늘린다면?
이지스조차 경악할 발상이었다.
고리 하나가 가지는 힘과 반발력을 생각한다면, 몸이 터져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정우는 믿는 게 있었다.
다니엘이었을 때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그런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고리’가 이미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바로.
‘마력. 그것에 연결한다.’